좁고 긴 협소주택을 지을 때 가장 큰 숙제는 폭이다. 시드니 본다이비치 인근, 낡은 건물을 헐어낸 자리에 들어선 이 두 층짜리 집도 그 조건에서 출발했다. 현지 건축사무소 Nick Kent Design은 좁은 대지를 억지로 넓혀 보이게 꾸미는 대신, 가벼운 철골 뼈대를 반복해서 짜맞추는 쪽을 택했다.
집 전체는 정해진 몇 가지 부재만 반복해 쓴, 말 그대로 조립식에 가까운 구조로 지어졌다. 내벽과 외벽 모두 하중을 받지 않는 비내력벽이라 나중에 얼마든지 벽을 옮기거나, 다른 대지에 재조립해 시범주택으로 쓸 수도 있다고 설계팀은 말한다. Bondi House라는 이름은 그렇게 지어진 집의 위치, 본다이비치에서 따왔다.

차가운 재료에 온기를 심은 방법
스틸과 유리, 폴리카보네이트로 채운 집은 자칫 차갑게 느껴지기 쉽다. Nick Kent Design은 그 균형을 깨려고 군데군데 레드 계열 패브릭과 오크 마감을 끼워 넣었다. 얇은 커튼을 레드 톤으로 골라 늘어뜨린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건축가는 “외부와 내부 표현 사이에 미학적 연속성이 있다”면서 “콘크리트, 스테인리스 스틸, 아노다이징 알루미늄, 유리, 폴리카보네이트가 기본 팔레트지만, 자연 소재와 색을 넣은 요소로 더 부드러운 질감과 온기를 더했다”고 설명한다. 반투명한 벽 너머로 루버가 비치는 이 장면 하나만 봐도, 이 집이 재료를 다루는 방식을 짐작할 수 있다.

협소주택이 거리에 내놓은 얼굴
좁고 긴 땅 위에 지어진 만큼, Bondi House의 정면은 이웃한 오래된 주택들 사이에서 유독 도드라진다. 1층은 스테인리스 스틸 소재 차고 도어로 막고, 2층은 반투명한 메시 스크린으로 감쌌다. 앞뒤 모두 도로와 뒷마당 쪽으로 건물을 물려 앉혀, 번잡한 도로 소음을 한 겹 걸러내면서 뒷마당에도 여유를 남겼다. 노을이 비칠 때면 스틸 도어 표면과 메시 스크린이 하늘색을 그대로 반사해, 협소주택 특유의 납작한 인상 대신 은은한 존재감을 만든다.

스틸 볼륨 안에 짠 목재 계단실
차고 도어를 지나 들어서면 복도 끝에 욕실이 있고, 그 안쪽이 곧장 거실로 이어진다. 거실 한쪽에는 화이트로 도장한 스틸 계단이 걸려 있는데, 그 뒤를 오크 합판으로 마감해 스틸의 차가움을 눌러준다. 계단 난간 대신 얇은 와이어를 촘촘히 걸어 시야를 막지 않으면서도 안전을 확보했다. 반투명 스크린이 이 계단실 앞을 한 겹 가리고 있어, 위층에서 내려오는 사람의 그림자만 어렴풋이 비치는 것도 이 집만의 장면이다.

폴리카보네이트 한 장이 만든 채광
거실은 반투명 폴리카보네이트로 마감한 벽 하나로 빛을 받는다. 직접 창을 내는 대신 폴리카보네이트 너머로 빛을 걸러 들이는 방식이라, 하루 중 언제 봐도 실내가 고르게 밝다. 짙은 네이비 톤 벨벳 소파와 오크 책장을 배치해 스틸·콘크리트 마감과 대비를 줬고, 바닥에 깐 러그의 레드 톤이 공간에 온도를 더한다. 이웃집과 거리가 가까운 협소주택 특성상 사생활 문제가 불거지기 쉬운데, 폴리카보네이트 벽 하나로 채광과 프라이버시를 동시에 해결한 셈이다.

욕실에 넣은 블루 타일 한 겹
1층 복도 끝 욕실은 블루 계열 타일로 벽 전체를 채웠다. 창을 크게 내 자연광이 타일 위로 그대로 떨어지게 했고, 욕조 옆에는 벽면 수납 없이 수건 한 장 걸 자리만 남겨 군더더기를 뺐다. 스틸과 콘크리트가 지배하는 집 안에서 이 욕실만큼은 컬러 타일 덕분에 온도가 확 달라진다. 비슷한 방식으로 컬러 하나를 공간의 중심에 놓은 사례로는 빨간색 대신 파란색을 골랐다, Rinskopf도 있는데, 작은 공간일수록 색 하나가 인상을 좌우한다는 걸 보여준다.

오크 수납장을 두른 주방
주방은 거실과 마찬가지로 폴리카보네이트 벽을 등지고 앉았다. 다만 마감재는 오크로 바꿔, 금속 위주였던 앞선 공간과는 결이 다르다. 오크로 짠 수납장에 손잡이만 스틸로 달아 절제된 느낌을 유지했고, 붙박이 오븐도 같은 톤의 목재 패널 뒤에 숨겼다. 건축가가 말한 “따뜻한 질감”은 이 주방에서 가장 분명하게 드러난다.

아일랜드 위, 재료가 겹치는 지점
조리대 겸 아일랜드는 스테인리스 스틸로 마감해 주방 벽면의 오크와 대비를 이룬다. 그 위에 놓인 스틸 볼과 유리그릇, 도마 하나까지도 전부 이 집이 쓴 재료 팔레트 안에서 고른 소품들이다. 인덕션 위로는 반투명 후드를 낮게 달아, 조리 중에도 폴리카보네이트 벽에서 들어오는 빛을 가리지 않는다. 좁은 협소주택일수록 아일랜드 하나에 수납·조리·채광을 모두 걸어야 하는데, 이 집은 재료 선택만으로 그 문제를 풀었다.

통유리 슬라이딩 도어로 여는 뒷마당
다이닝 공간은 전면 통유리 슬라이딩 도어로 마감해, 문을 완전히 열면 실내와 뒷마당이 한 켜로 이어진다. 좁고 긴 대지를 살려 앞뒤로 건물을 물린 덕분에, 협소주택치고는 드물게 널찍한 마당을 확보했다. 마당에는 시드니 자생종 식물을 심어, 이웃집 담장이 눈에 걸리지 않게 가렸다. 등나무 카인 체어와 원형 유리 테이블을 놓아, 스틸·콘크리트 위주의 실내와는 다른 편안한 분위기를 냈다.

외부 롤러 블라인드로 조절하는 햇빛
마당 쪽 통유리에는 외부용 롤러 블라인드를 달아, 1층 전체의 차양을 이 블라인드 하나로 해결한다. 볕이 강한 낮에는 블라인드를 절반쯤 내려 그늘을 만들고, 저녁에는 완전히 걷어 마당과 실내 경계를 지운다. 2층 침실에는 같은 역할을 알루미늄 루버가 대신하는데, 각도를 조절할 수 있어 계절에 따라 채광량을 바꿀 수 있다. 협소주택은 창을 낼 자리가 마땅치 않은 경우가 많은데, 이 집은 차양 장치 자체를 채광 조절 수단으로 삼아 그 한계를 우회했다. 색 하나로 공간의 성격을 바꾼 하나의 Red가 집안에서 여덟 번 다르게 산다, CORNER villa처럼, 이 집도 장치 하나를 여러 자리에 반복해 쓰는 방식으로 협소주택의 한계를 풀어낸 셈이다.

2층, 스카이라이트가 이끄는 스터디 공간
2층은 스카이라이트를 낸 복도를 따라 거리 쪽 스터디 공간으로 이어진다. 이 공간은 발코니처럼 건물 밖으로 살짝 튀어나와 있고, 바닥과 천장 모두 금속 그레이팅으로 마감해 가벼운 인상을 준다. 그 위를 다시 얇은 메시 스크린으로 감싸, 도로에서 시선은 막으면서도 바람과 빛은 그대로 통과시킨다. 오크 패널로 마감한 코너 하나가 이 스틸 구조물 안에서 유일하게 손에 닿는 온기를 남긴다.








건축사무소: Nick Kent Design
위치: 시드니(본다이비치 인근), 호주
구조: 경량 철골 프레임(비내력벽, 재구성 가능한 조립식 구조)
자재: 콘크리트, 스테인리스 스틸, 아노다이징 알루미늄, 유리, 폴리카보네이트, 오크, 그래니트
분류: 단독주택(협소주택)
사진: Tom Ros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