핑크 기둥이 받친 단층주택, House with a large porch

이탈리아 북동부 파도바(Padova)에서 남쪽으로 내려간 평야 마을 산텔레나(Sant’Elena)에 핑크 콘크리트로 지은 단층주택이 한 채 있다. 건축주의 주문은 짧았다. 선이 단순할 것, 그리고 집을 둘러싼 공원을 마음껏 누릴 수 있을 것. 현지 사무소 MIDE architetti가 내놓은 답은 방보다 지붕을, 지붕보다 포치를 먼저 그린 집이다. 이름부터 숨기지 않는다. House with a large porch, 말 그대로 ‘큰 포치가 있는 집’이다.

처음 보면 색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노출 콘크리트라고 하면 으레 떠오르는 그레이 대신 레드 기운이 은근히 도는 핑크다. 그런데 조금만 더 들여다보면 시선은 색에서 지붕으로 옮겨 간다. 처마 밑에 뚫린 둥근 구멍으로 나무가 하늘을 향해 자라고 있어서다. 500m² 규모인 이 집의 진짜 주인공은 방이 아니라 지붕 아래 남겨 둔 바깥이다.

원형 천창 아래 나무를 품은 핑크 콘크리트 포치, House with a large porch 정면 외관
© Alberto Sinigaglia

집의 절반은 포치가 맡았다

남향 거실 앞을 깊은 포치가 덮고 있다. 현관 앞에 잠깐 비를 피하는 차양 정도를 떠올리면 곤란하다. 평면도를 보면 유리로 된 거실 위로 지붕이 넉넉하게 뻗어 나가고, 그 아래 반쯤 바깥인 공간이 거실을 세 방향에서 감싼다. 방 한 칸 크기가 아니라 거실 몇 개는 들어갈 만한 포치다.

이 구성이 흥미로운 건 우리 주거 문화와 정반대 방향을 가리키기 때문이다. 한국 아파트는 발코니를 확장해 반(半)실외 공간을 실내로 먹어 버렸다. 이 집은 실내만큼의 면적을 일부러 바깥으로 남겨 두었다. 비가 와도 나가 앉을 수 있고, 한여름 볕도 피할 수 있는 바깥이랄까. 팬데믹 이후 ‘집 안의 바깥’을 찾는 사람이 늘었다는 걸 떠올리면, 이 포치는 꽤 시의적절한 답이다.

진입로에서 본 단층 핑크 콘크리트 주택 House with a large porch 전경
© Simone Bossi

길에서는 담과 지붕선만 보인다

진입로 쪽에서 보면 이 집은 놀랄 만큼 말이 없다. 집과 같은 핑크 콘크리트로 세운 담, 그리고 그 너머로 낮게 깔린 지붕선 하나가 전부다. 평면도를 보면 진입부 옆에는 차고와 창고가 든 부속동이 따로 서 있고, 이 역시 모서리를 둥글게 말아 본채와 같은 언어로 맞췄다.

길에서는 닫고 정원 쪽에서 활짝 여는 구성이다. 들판 한가운데 선 단층집은 사방이 노출되기 쉬운데, 진입 쪽 벽을 무겁게 세워 두면 집 안에 있는 사람은 등을 기댈 곳이 생긴다. 등 뒤가 막혀 있어야 앞을 마음 놓고 열 수 있다는 건 오래된 집짓기의 상식이고, 이 집은 그 상식을 콘크리트로 다시 쓴다.

둥글게 말린 평지붕 모서리와 대형 창이 보이는 핑크 콘크리트 주택 외관
© Simone Bossi

모서리를 둥글게 말아 올린 평지붕

하나의 커다란 평지붕이 거실, 침실, 포치를 한 번에 묶는다. 설계팀은 이 지붕이 모든 방을 하나로 엮으면서 햇빛과 비바람을 막아 준다고 설명한다. 실제로 사진 속 지붕은 두툼한 슬래브 한 장이 집 위에 떠 있는 모양새다.

눈여겨볼 건 모서리다. 지붕 끝도, 그 아래 벽도 직각으로 꺾이지 않고 둥글게 말려 있다. 콘크리트처럼 무거운 재료는 모서리가 날카로우면 금세 위압적으로 읽힌다. 곡면 하나가 그 무게를 덜어내고, 덕분에 길게 누운 단층주택이 들판 위에서 한결 부드럽게 보인다.

U자 콘크리트 기둥이 곡면 지붕을 받친 포치 모서리
© Alberto Sinigaglia

U자 기둥, 벽이라 해야 할까 기둥이라 해야 할까

지붕을 받치는 건 평범한 기둥이 아니다. 윗변은 반듯하고 아랫부분은 반원으로 둥글게 깎은 두꺼운 판이 U자처럼 서 있다. 벽이라 부르기엔 짧고, 기둥이라 부르기엔 넓다. 바닥에 닿는 면이 둥글게 줄어드니 육중한 판이 살짝 떠 있는 듯한 착시도 생긴다.

핑크 콘크리트의 색이 가장 진하게 드러나는 곳도 이 기둥이다. 위에 칠한 색이 아니라 콘크리트 자체가 띤 색이라, 거푸집 자국과 표면의 얼룩까지 같은 톤으로 읽힌다. 레드 기운의 이 핑크는 테라코타 기와지붕이 이어지는 베네토 평야에서 튀기보다 오히려 풍경 쪽으로 녹아든다. 한 가지 색을 콘크리트에 끝까지 밀어붙인 사례로는 앞서 소개한 〈스카이블루로 끝까지 밀어붙인 브루탈리즘 주택, The Blue House〉도 함께 볼 만하다.

포치 지붕의 원형 구멍으로 자라 오른 나무와 화단
© Alberto Sinigaglia

지붕에 구멍을 뚫어 나무를 들였다

이 집에서 가장 사진발 좋은 장면은 여기다. 포치 지붕에 커다란 타원형 구멍을 내고 그 아래 화단을 만들어 나무를 심었다. 평면도에서는 거실 양옆으로 이런 광정이 하나씩, 모두 두 개가 보인다. 나무는 지붕 아래에서 자라 구멍을 지나 하늘로 가지를 뻗는다.

기능부터 따져 보면 이유가 분명하다. 포치가 깊어질수록 안쪽은 어두워지기 마련인데, 지붕에 뚫린 구멍이 그 한가운데로 빛을 떨어뜨린다. 그런데 효과는 밝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지붕 아래 앉아 있어도 고개만 들면 하늘과 나뭇잎이 보이니, 덮여 있지만 갇혀 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사람이 오래 머무는 자리는 등 뒤가 보호되고 머리 위가 열린 곳이라는 말이 있는데, 이 포치가 딱 그런 자리를 만든다.

설계팀이 이 광정을 집과 주변 공원을 이어주는 장치라고 말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나무가 지붕을 뚫고 올라가는 순간, 건물과 정원의 경계는 지붕선이 아니라 나뭇가지 끝으로 옮겨 간다.

곡면 유리로 감싼 거실 박스와 핑크 콘크리트 포치
© Alberto Sinigaglia

거실은 공원을 비추는 유리 상자

남쪽을 향한 거실은 통째로 유리 상자다. 설계팀의 표현을 빌리면 공원을 비추는 유리 상자다. 모서리마저 곡면 유리로 돌려 세워서, 프레임이 시야를 끊는 지점이 거의 없다. 창호는 Wolf Fenster가 맡았다.

남향 통유리는 겨울엔 축복이지만 여름엔 온실이 되기 쉽다. 이 집에서는 앞서 본 깊은 포치가 그 문제를 푼다. 높이 뜬 여름 해는 지붕이 막고, 낮게 들어오는 겨울 해는 유리 안쪽까지 깊숙이 들어온다. 포치는 쉼터이면서 동시에 거대한 차양인 셈이다. 낮에 바깥에서 보면 유리에 나무와 잔디가 비쳐 거실이 풍경 속으로 반쯤 사라진다.

세로 창을 일정 간격으로 낸 침실 동 콘크리트 외벽
© Simone Bossi

침실 동은 안으로 웅크린다

거실이 활짝 열린 쪽이라면 침실 동은 정반대다. 평면도를 보면 거실 뒤편으로 복도를 하나 두고 침실과 욕실이 일렬로 늘어서 있다. 이쪽 외벽은 두꺼운 콘크리트이고, 좁고 긴 세로 창이 일정한 간격으로 박혀 있을 뿐이다. 설계팀은 이 영역을 좀 더 내향적인 공간이라고 설명한다.

한 지붕 아래에서 성격이 다른 두 영역을 이렇게 또렷하게 가른 건 생활 리듬과 맞닿아 있다. 낮에는 유리 거실과 포치에서 바깥을 향해 지내고, 밤이 되면 벽이 두꺼운 쪽으로 물러나 쉰다. 공간이 바뀌면 몸의 모드도 바뀐다. 거실이 아무리 근사해도 침실까지 통유리였다면 이 집은 쉬기 어려운 집이 됐을 것이다.

테라초 바닥과 목재 수납장이 이어지는 유리 거실 내부
© Alberto Sinigaglia

재료는 셋, 테라초 바닥이 꿰맨다

재료는 일부러 적게 썼다. 유리, 목재, 그리고 레드 기운이 도는 콘크리트. 이 셋을 하나로 잇는 게 바닥에 깔린 베네치안 테라초다. 돌 조각을 박아 연마한 테라초는 베네치아 일대에서 오래 써 온 바닥재라, 이 지역 집에 깔렸을 때 특히 자연스럽다.

테라초는 거실 안에서 끝나지 않고 유리 문턱을 넘어 포치까지 그대로 이어진다. 안과 밖의 바닥이 같으면 유리벽이 열리는 순간 두 공간은 하나의 방이 된다. 집을 고칠 때 응용해 볼 만한 포인트다. 거실과 베란다, 혹은 거실과 테라스의 바닥 마감을 같은 톤으로 맞추기만 해도 경계가 흐려지면서 공간이 한결 넓어 보인다.

목재 패널 벽과 블랙 책장이 놓인 복도
© Alberto Sinigaglia

밖은 콘크리트, 안은 목재

실내에 들어서면 온도가 달라진다. 벽은 세로결 목재 패널로 길게 덮였고, 패널 사이에 세로로 박힌 블랙 손잡이가 아니면 어디가 문이고 어디가 수납장인지 알아보기 어렵다. 그 앞에 블랙 오픈 책장이 칸막이처럼 서서 공간을 나눈다. 목공은 R+R partners가 맡았다.

바깥의 콘크리트가 묵직하고 서늘한 만큼, 안쪽을 목재로 감싸 손에 닿는 면을 따뜻하게 만든 구성이다. 수납을 벽 패널 속에 숨기면 생활 잡동사니가 시야에서 사라지고, 집은 재료 몇 가지만 남은 조용한 배경이 된다. 다만 목재와 콘크리트만으로는 밋밋해질 수 있는데, 이 집은 블랙 책장과 블랙 창틀로 선을 그어 긴장감을 붙잡는다. 따뜻한 재료 두 가지에 짙은 색 하나를 섞는 조합은 일반 집에서도 실패가 적다.

블랙 라인 조명 아래 놓인 다이닝 테이블과 통유리 너머 정원
© Alberto Sinigaglia

조명은 드러내되 천장은 지켰다

조명도 짚고 넘어갈 만하다. 다이닝 테이블 위로는 가늘고 긴 블랙 라인 펜던트가 낮게 내려와 식탁 길이만큼 빛을 깔고, 거실 천장에는 트랙 레일을 따라 스포트 조명이 달렸다. 포치 천장에는 원통형 다운라이트가 일정한 간격으로 붙어 있다. 조명은 Esse-ci가 맡았다.

공통점은 전부 천장에 매립하지 않고 드러낸 방식이라는 점이다. 노출 콘크리트 천장은 한 번 타설하면 뒤늦게 구멍을 내기 어렵고, 매립등을 촘촘히 박으면 콘크리트 면도 어수선해진다. 레일과 노출형 기구를 쓰면 천장은 깨끗하게 남고 빛의 위치는 나중에도 바꿀 수 있다. 여기에 식탁 위 라인 펜던트가 작업용 빛을, 트랙 스포트가 책장과 벽을 비추는 연출용 빛을 맡으면서 전반·국부·연출 세 겹의 조명이 자연스럽게 겹친다.

아파트에서도 그대로 가져올 수 있는 방법이다. 천장 매립 공사가 부담스럽다면 식탁 위에 라인 펜던트 하나, 거실에 트랙 레일 하나만 달아도 공간의 표정이 달라진다. 휴식 공간은 2700~3000K 웜톤 전구로 맞추고 디머를 달아 두면, 하나의 밝기로 하루 전체를 버틸 필요가 없다.

해 질 무렵 실내 조명이 켜진 단층 주택 원경
© Alberto Sinigaglia

해 질 녘, 포치가 등불이 된다

해가 지면 이 집의 인상이 또 한 번 바뀐다. 들판 저편에서 보면 낮게 누운 지붕 아래로 따뜻한 불빛이 띠처럼 새어 나온다. 깊은 포치 덕분에 빛은 바깥으로 쏟아지기보다 처마 밑에 고이고, 집 전체가 커다란 등불처럼 보인다.

교외에 집을 지을 때는 2층을 올려 면적부터 늘리려는 경우가 많다. 이 집은 반대로 층을 하나로 눌러 앉히고, 남는 힘을 지붕 아래 바깥을 만드는 데 썼다. 방 개수가 아니라 머물고 싶은 자리의 개수로 집의 크기를 재는 셈이다. 같은 이탈리아에서 콘크리트와 색 하나로 이야기를 만든 집이 궁금하다면 〈헛간 자리에 레드 브리지를 놓은 이탈리아 별채, Annesso Rosso〉도 함께 볼 만하다.

ArchitectsMIDE architetti
PhotosSimone Bossi, Alberto Sinigaglia
ContractorTognetto srl
Category단독주택
Country이탈리아
Materials핑크 컬러 콘크리트, 유리, 목재, 베네치안 테라초
LocationSant'Elena, Padova
Area500m²
Year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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