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Red가 집안에서 여덟 번 다르게 산다, CORNER villa

Caspian Sea를 낀 Iran 북부 Mazandaran Province. 주택 단지 한 모서리, 남들은 애매한 자투리 땅이라 여겼을 법한 자리에 SUPER VOID SPACE가 집을 지었다. 이름부터 그 조건을 그대로 딴 CORNER villa다.

이 집이 올해 A+Awards “Architecture + Color” 부문에서 특별 언급을 받은 이유는 하나다. 흰 매스 속에 낸 몇 군데의 절개면을, 건축가들이 직접 “Persian Red”라 이름 붙인 진한 Red로 채웠기 때문이다. 오늘은 이 집의 평면이나 구조보다, 그 Red 하나가 이 집 안에서 어떻게 다르게 쓰이고 다르게 작동하는지를 따라가 본다.

채도 높은 붉은 매스가 흰 외벽을 가르는 코너 빌라 정면
© Hossein Hamzeh Louie

흰 매스를 가르는 절개선

정면에서 보면 이 집의 원리가 한눈에 읽힌다. 흰 매스 하나가 통째로 있고, 그 안쪽으로 파고든 부분에만 Red 발랐다. 벽 전체를 칠한 게 아니라 “깎아낸 자리”에만 색을 넣었다는 게 핵심이다. 건축가들 표현을 빌리면 이 Red는 마감재가 아니라 “제약을 기회로 바꾼” 지점을 표시하는 색이다.

색을 면적으로 승부하지 않고 위치로 승부하는 방식이다. 집 전체를 빨갛게 칠하면 그저 튀는 집이 되지만, 흰 바탕 속 몇 군데에만 정확히 배치하면 그 자리마다 “여기서 뭔가 다른 일이 벌어진다”는 신호가 된다. 국내 주택에 포인트 컬러를 쓸 때 가장 흔한 실수가 색을 예쁜 벽 하나에 무작정 바르는 것인데, 이 집은 색을 바를 자리를 먼저 정하고 그 자리에 의미를 부여하는 순서를 따른다.

흰 벽돌 사이로 깎아낸 붉은 진입 현관
© Hossein Hamzeh Louie

모서리의 약점을 진입로로 바꾸다

이 집의 출발점이었던 “모서리 대지”라는 제약은 진입부에서 가장 직접적으로 풀린다. 흰 벽돌 매스의 모서리를 통째로 깎아 현관을 냈고, 그 깎인 단면 전체를 Red로 마감했다. 벽돌의 우둘투둘한 질감과 레드의 매끈한 마감이 맞닿는 그 선이, 원래 있던 벽과 새로 낸 개구부의 경계를 정확히 그어준다.

여기서 Red는 “환영합니다”를 표시하는 장식이 아니라, 매스를 어떻게 조작했는지를 그대로 드러내는 단면색이다. 건물을 깎아 만든 자리는 어디든 원래 재료가 아닌 새로운 표면이 드러나기 마련인데, 그 새 표면에 원래 마감과 확실히 다른 색을 입히면 “이 부분은 의도적으로 파낸 자리”라는 사실이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전달된다. 리모델링에서 기존 벽을 헐어 새 개구부를 낼 때도 같은 원리를 쓸 수 있다 — 새로 만든 단면을 원래 벽과 똑같이 마감해 감추기보다, 오히려 다른 색으로 그 흔적을 남기는 편이 더 정직한 결과를 만든다.

해질녘 산 그림자를 배경으로 붉게 빛나는 진입부
© Hossein Hamzeh Louie

낮의 Red와 밤의 Red는 다르다

해가 지고 나면 같은 레드이 완전히 다른 역할을 맡는다. 낮에는 흰 벽 위의 색 면이던 것이, 밤이 되면 산 그림자 앞에서 스스로 빛을 내는 유일한 지점이 된다. 집 전체가 실루엣으로 가라앉는 시간에 이 한 조각만 또렷하게 남아, 멀리서도 “저기가 입구”라는 걸 바로 알아보게 한다.

포인트 컬러를 고를 때 낮의 인상만 보고 정하는 경우가 많은데, 조명이 들어간 밤의 인상까지 미리 그려보는 집은 드물다. 레드, 특히 채도가 높은 난색 계열은 조명을 받으면 스스로 광원처럼 보이는 효과가 있다. 대문이나 현관처럼 밤에도 위치를 알려야 하는 자리에 이런 색과 조명 조합을 쓰면, 별도의 사인이나 조명 장치 없이도 건물 자체가 이정표 역할을 한다.

붉은 처마 아래 옥상 잔디 테라스
© Hossein Hamzeh Louie

하늘을 향한 면에도 같은 RED

건축주가 요청한 “사람이 쓰는 옥상”은 경사 지붕 형태 안에 그대로 녹아들었다. 그 지붕 밑면, 그러니까 옥상 테라스에 앉았을 때 올려다보게 되는 면에도 똑같은 레드 발랐다. 잔디를 깐 바닥과 대비되면서, 테라스에 누우면 시야 절반이 레드로 채워지는 구조다.

보통 지붕 밑면이나 천장은 흰색이나 무채색으로 처리해 존재감을 지우는 게 관행이다. 이 집은 반대로 그 자리에도 같은 색을 밀어붙여서, 건물을 어느 각도에서 올려다보든 같은 레드로 계속 마주치게 만든다. 색을 한 장소에만 국한하지 않고 건물 전체의 여러 단면에 반복해서 심으면, 보는 사람은 그 색을 우연이 아니라 이 집의 정체성으로 인식하게 된다.

거실 전체를 대각선으로 관통하는 붉은 계단
© Hossein Hamzeh Louie

RED가 계단이 되어 집을 관통한다

실내로 들어오면 이 집에서 가장 과감한 결정과 마주한다. 계단 전체를 레드로 만든 것이다. 벽도 천장도 바닥도 흰색인 이중 높이 거실 한가운데를, 빨간 철판 계단이 대각선으로 가로지른다. 흰 배경 위에 그은 붉은 선 하나가 공간 전체의 구도를 결정해버린다.

계단은 원래 이동을 위한 장치일 뿐이지만, 이 집에서는 공간을 조각하는 주인공이 됐다. 흰 벽 안에서 유일하게 색을 가진 입체이다 보니, 시선이 자연스럽게 계단의 궤적을 따라 움직인다. 여러 층을 잇는 계단이 있는 집이라면, 그 계단을 굳이 감추거나 무채색으로 처리하지 않고 오히려 색으로 강조해 공간의 중심축으로 삼는 방법을 참고할 만하다. 다만 이렇게 큰 면적에 원색을 쓰면 자칫 유치해 보일 위험도 있는데, 이 집이 그 함정을 피한 건 나머지 공간을 철저히 흰색으로 비워뒀기 때문이다.

삼각형 천창 사이로 보이는 붉은 프레임과 다이닝 공간
© Hossein Hamzeh Louie

천창 프레임까지 레드로 통일했다

다이닝 공간 위로는 삼각형 천창이 뚫려 있다. 그 창을 짜는 프레임, 그리고 옆으로 이어지는 블라인드까지 전부 레드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빛이 이 붉은 틀을 통과하면서, 흰 천장 곳곳에 은은한 붉은 잔광을 남긴다.

창틀 같은 작은 부재까지 메인 컬러로 통일하는 건 손이 많이 가는 작업이다. 검은 창틀이나 흰 창틀을 쓰면 훨씬 무난하고 시공도 간단하다. 그런데도 이 집은 천창 프레임까지 같은 레드를 고집했고, 그 결과 창 하나가 그냥 채광 장치가 아니라 벽·계단과 한 몸으로 묶인 색채 계획의 일부가 됐다. 포인트 컬러를 쓰기로 했다면 큰 면만 칠하고 끝내지 말고, 창틀·손잡이·스위치 같은 작은 디테일까지 같은 논리로 끌고 가야 “장식”이 아니라 “시스템”으로 읽힌다.

붉게 마감한 캔틸레버 지붕 아래 야외 주방과 수영장
© Hossein Hamzeh Louie

야외 주방 지붕에도 같은 레

수영장 쪽으로 나가면 캔틸레버로 뻗은 지붕이 야외 주방 자리를 덮는다. 그 지붕의 밑면과 안쪽 조리대까지 통째로 레드다. 실내 계단에서 시작한 색이 건물 바깥, 그것도 완전히 다른 기능의 공간까지 그대로 이어진 것이다.

실내와 실외를 재료로 통일하는 집은 흔하지만, 색으로 통일하는 경우는 상대적으로 드물다. 이 집은 실내의 붉은 계단, 천창 프레임, 그리고 야외 주방 지붕까지 같은 색을 반복해서 써서 안과 밖이 하나의 동선처럼 느껴지게 만들었다. 마당이나 테라스를 계획할 때 실내 포인트 컬러를 야외 어딘가에 딱 한 군데만 다시 등장시키는 것만으로도, 공간이 끊기지 않고 이어진다는 인상을 줄 수 있다.

복도 양쪽 창틀마다 박아 넣은 붉은 프레임
© Hossein Hamzeh Louie

복도 끝마다 심어둔 붉은 점

위층 복도로 오면 레드의 쓰임이 다시 한 번 바뀐다. 여기서는 벽이나 계단처럼 큰 면이 아니라, 복도 양쪽 끝 창틀 하나씩에만 소심할 만큼 작게 등장한다. 복도 자체는 여전히 흰색이고, 그 끝에 걸린 창 프레임만 빨갛다.

같은 색이라도 어디에 얼마나 쓰느냐에 따라 효과가 완전히 달라진다는 걸 이 복도가 보여준다. 계단에서는 면적으로 압도했다면, 여기서는 점 하나로 시선을 끝까지 끌고 간다. 긴 복도의 끝이 밋밋해 보인다면, 벽 전체를 손대는 대신 창틀이나 문틀 하나만 메인 컬러로 바꾸는 것으로도 복도에 목적지가 생긴다. 비용도 훨씬 적게 든다.

흰 거실과 주방을 가로지르는 붉은 조리대
© Hossein Hamzeh Louie

주방 조리대, 색 하나로 존재감을 낸다

1층 주방으로 내려오면 조리대 하부장 일부가 레드로 마감돼 있다. 상부 수납장은 흰색, 벽도 흰색인데 조리대 아래쪽만 색을 넣어서, 이 구역이 주방이라는 걸 형태가 아니라 색으로 먼저 알아채게 된다.

오픈 플랜 주택에서 주방은 거실과 구조적으로 분리하기 어렵다. 벽을 세우지 않고도 “여기서부터 주방”이라는 경계를 만들고 싶다면, 이 집처럼 하부장이나 아일랜드 옆면 같은 한정된 면에만 색을 넣는 방법이 있다. 상부까지 다 칠하면 산만해지지만, 하부 한 단만 색을 주면 은근하게 영역을 표시하면서도 전체 톤은 절제된 채로 남는다.

통유리 너머로 보이는 수영장과 붉은 바닥선
© Hossein Hamzeh Louie

거실은 반대로, 레드 스치듯만

거실에서 통유리 너머 수영장 쪽을 보면 이번엔 레드가 거의 안 보인다. 소파도 벽도 바닥도 흰색, 유리 밖으로 살짝 붉은 바닥선 하나만 스쳐 지나간다. 앞서 본 계단이나 캔틸레버 지붕과 비교하면 극단적으로 절제된 장면이다.

이 대비가 오히려 핵심이다. 집 전체가 계속 레드를 강조하기만 했다면 나중엔 무뎌졌을 것이다. 거실처럼 오래 머무는 공간은 색을 최소로 줄이고, 그 대신 창밖으로 살짝 보이는 레드 한 줄로 존재만 암시한다. 강한 색을 쓸 때 가장 어려운 기술은 사실 “어디에 안 쓸지” 정하는 일이다. 이 집은 쓸 곳과 안 쓸 곳을 확실히 나눠서, 정작 색이 등장하는 자리에서의 임팩트를 지켜냈다.

붉은 벽난로 선반과 그 너머 붉은 수영장 데크
© Hossein Hamzeh Louie

벽난로 선반 하나에도 같은 원칙

벽에 붙박이로 낸 얇은 벽난로 선반, 그 아래쪽 면에도 레드가 발려 있다. 창밖으로는 붉게 마감한 수영장 데크가 이어져서, 실내의 작은 레드와 실외의 넓은 레드가 유리 하나를 사이에 두고 마주 본다.

이 집을 끝까지 보고 나면 레드가 등장하는 자리들 사이에 규칙이 있다는 걸 알게 된다. 벽을 깎아낸 자리, 지붕이 하늘이나 사람을 향하는 밑면, 동선이 꺾이는 지점, 그리고 작은 붙박이 가구 하나까지. 크기는 제각각이지만 전부 “건축적으로 의미가 생기는 지점”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포인트 컬러 계획을 세울 때 그 색을 어디에 쓸지 목록을 미리 정해두면, 이 집처럼 집 전체에 흩어진 색이 우연이 아니라 하나의 논리로 읽히게 된다.

야간, 흰 공간 속에서 빛나는 붉은 계단
© Hossein Hamzeh Louie

밤이 되면 계단은 벽난로처럼 타오른다

조명을 끄고 다시 계단을 보면 낮과는 또 다른 장면이 펼쳐진다. 주변 벽은 어둠에 묻히고, 조명을 받은 붉은 계단만 마치 불씨처럼 도드라진다. 낮에는 조형물이었던 것이 밤에는 공간의 온기를 담당하는 요소로 바뀐다.

흰색 위주의 미니멀한 집들이 자주 듣는 평가가 “차갑다”는 것이다. 이 집은 낮에는 흰색과 레드의대비로 명료함을 얻고, 밤에는 조명이 그 레드를 데워서 온기를 만든다. 하나의 색이 시간대에 따라 이렇게 다른 역할을 하게 하려면 처음부터 조명 계획과 색채 계획을 따로 짜지 않고 함께 검토해야 한다. 낮 사진만 보고 마감재를 고르면 이런 효과는 우연히도 잘 안 나온다.

초록으로 마감한 마스터 스위트, 욕조와 그린 알코브
© Hossein Hamzeh Louie

이 집에서 유일하게 레드 아닌 곳

그런데 마스터 스위트만은 다르다. 여기서는 레드가 완전히 물러나고 짙은 초록이 벽과 천장을 채운다. 침실의 플랫폼 베드 너머로는 여전히 붉은 창틀이 살짝 보이지만, 이 방의 주인공은 명백히 초록이다. 욕실도 마찬가지로 초록 타일과 초록 벽으로 마감했고, 문틀에만 레드를 살짝 남겨 다른 공간과의 연결고리를 잃지 않았다.

건축가들은 이 초록을 “실외 조경을 실내로 들여오는 손길”이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더 중요한 건 색 배분의 논리다. 공용 공간(계단, 거실, 주방, 옥상)은 전부 레드의 영역이고, 가장 사적이고 오래 머무는 침실·욕실만 다른 색을 준 것이다. 집 전체를 한 가지 포인트 컬러로 통일하면 일관성은 생기지만 공간마다의 성격 차이가 사라질 위험이 있다. 이 집은 “공용 공간의 색”과 “사적 공간의 색”을 처음부터 다르게 설정해서, 통일감과 공간별 개성을 동시에 챙겼다.

붉은 창틀 안에 놓인 작은 조각상, 디테일 클로즈업
© Hossein Hamzeh Louie

가까이서 보면, 레드는 조각이 된다

마지막으로 붉은 창틀 하나를 바짝 당겨 찍은 사진이다. 창틀 안쪽으로 유리에 비친 풍경과 작은 동물 조각상이 겹쳐 보인다. 지금까지 봐온 큰 면적의 레드와 달리, 이 사진에서는 프레임의 단면과 마감의 정밀도가 그대로 드러난다.

넓은 면적을 원색으로 마감할 때 가장 티가 나는 부분이 디테일의 완성도다. 색이 강할수록 이음매나 마감선의 오차가 더 잘 보이기 때문이다. 이 집처럼 레드를 건물 전체의 언어로 쓰려면, 큰 벽 하나뿐 아니라 창틀 단면 같은 작은 부재까지 같은 정밀도로 마감해야 한다. 포인트 컬러는 그 색을 고르는 순간이 아니라, 그 색을 끝까지 정교하게 실현하는 시공 단계에서 완성되는 셈이다.

ArchitectsSUPER VOID SPACE
DesignerNima Mirza Mohamadi
PhotosHossein Hamzeh Louie
CategoryResidential
CountryIran
MaterialsBri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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