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면대는 매일 아침저녁으로 손을 담그면서도 정작 눈여겨보는 사람이 드문 물건이다. 대개는 흰색 도기 덩어리로 뭉뚱그려지고, 디자인의 언어보다는 배관의 언어로 먼저 소비된다. 독일 디자인스튜디오 KaschKasch와 위생도기 브랜드 Villeroy & Boch가 함께 내놓은 세면대 ‘Antao Earth’는 이 무심함에 균열을 낸다. 곡선으로 흘러내리는 형태와 손으로 직접 입힌 유약 마감이 만나, 공산품처럼 찍혀 나오던 세면대에 표정을 되돌려준 제품이다.

물방울에서 출발한 곡선, 기존 컬렉션의 확장판
Antao Earth는 이름 그대로 Villeroy & Boch가 이미 운영해온 Antao 컬렉션의 연장선에 있다. 세면대의 윤곽은 물방울이 표면 위에 맺혔다가 막 퍼지려는 순간을 닮았다 — 각진 모서리 없이 한 방향으로 흘러내리는 실루엣이다. 상판이나 가구 위에 얹어 쓰는 탑마운트 방식이라 기존 욕실 가구와 조합하기 쉽고, Villeroy & Boch는 이 세면대를 수전이나 수납 등 Antao 라인의 다른 구성 요소와 섞어 쓰도록 설계했다고 밝혔다. 하나의 완제품이 아니라, 욕실이라는 공간 전체를 하나의 재료 언어로 묶으려는 전략에 가깝다.
색상은 샌드(Sand), 테라(Terra), 스모크(Smoke) 세 가지로 한정했다. 화려한 원색 대신 흙과 대지에서 끌어온 중성 톤을 고른 것은, 이 세면대가 결국 다른 마감재들 사이에서 배경처럼 존재해야 한다는 판단 때문으로 보인다.
아르티잔 글레이즈 — 손이 개입하는 순간
이 제품에서 가장 눈여겨볼 지점은 형태보다 마감 공정이다. Villeroy & Boch는 이번 세면대에 ‘아르티잔 글레이즈(Artisan Glaze)’라 이름 붙인 수작업 유약 기법을 적용했다. 기계로 균일하게 뿌리는 대신 사람이 직접 유약을 바르기 때문에, 같은 색상이라도 개체마다 색과 질감의 미세한 편차가 남는다. 이 편차는 결함이 아니라 오히려 이 제품의 존재 이유로 제시된다. 이 기법은 독일 메트라흐(Mettlach)에 있는 Villeroy & Boch의 첨단 글레이징 연구소에서 개발됐다. 오랜 세월 대량생산 세라믹 기술을 축적해온 브랜드가, 정반대로 ‘손맛’을 되살리는 데 최신 연구 인프라를 투입했다는 점이 흥미롭다.

KaschKasch의 공동 창업자 Florian Kallus는 “아르티잔 글레이징 작업에서 가장 어려웠던 지점은 감성적으로 끌리는 촉각적 경험과 매일 쓰는 위생도기로서의 기능성을 동시에 충족시키는 일이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공동 창업자 Sebastian Schneider는 가마 안에서 벌어지는 물리적 변수의 복잡함을 언급하며 “이런 구조를 세면대 하나 전체로, 그것도 반복 가능한 방식으로 확장하려면 디자인과 첨단 세라믹 기술의 접점에서 최고 수준의 정밀함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예쁘게 보이는 결과물 뒤에, 수율과 재현성을 맞추는 기술적 줄다리기가 있었다는 뜻이다.
쾰른의 스튜디오, 독일 욕실 산업이 만나는 지점
KaschKasch는 독일 쾰른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디자인스튜디오로, 가구와 조명, 생활용품을 넘나들며 산업 생산 방식과 손작업의 경계를 실험해온 곳이다. Villeroy & Boch 역시 독일을 대표하는 위생도기·타일 브랜드로, 세라믹 기술력을 오랫동안 축적해온 회사다. 대형 브랜드가 자사의 연구 인프라를 독립 스튜디오의 감각과 맞붙여 완제품을 내놓는 방식은, 최근 유럽 인테리어 제품 업계에서 반복적으로 확인되는 흐름이기도 하다. 브랜드는 스케일을, 스튜디오는 관점을 제공하는 조합이다.
국내 욕실 트렌드도 방향은 비슷하다. 한동안 무광 블랙이나 매끈한 미니멀 마감이 대세였다면, 최근에는 표면 자체의 물성과 손으로 만든 흔적을 드러내는 마감재에 대한 관심이 커지는 중이다. 세라믹 표면에 유약의 자연스러운 편차를 살리는 방식은 최근 국내에 소개된 Marazzi의 유약 재현 타일 Terramater나 Ceramiche Keope의 석회암 재현 타일 컬렉션에서도 비슷하게 읽힌다. 재료가 공장에서 찍혀 나온 티를 굳이 지우지 않고, 그 흔적을 상품성으로 바꾸는 흐름이다. Antao Earth는 이 흐름을 바닥이나 벽이 아니라 매일 손이 닿는 세면대로 옮겨왔다는 점에서 눈에 띈다.
이 기사는 아래 원문 보도를 참고해 PHM ZINE이 새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사진과 자세한 내용은 원문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출처 : Dezeen — Antao Earth washbasins by KaschKasch and Villeroy & Boch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