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크리트 주택이라고 하면 보통 현장에 거푸집을 짜고 콘크리트를 붓는 장면부터 떠오른다. 나가노현 미요타마치(Miyota-machi)의 숲에 들어선 일본 게스트하우스 Culvert Guesthouse는 출발점이 아예 다르다. 원래 땅속에 묻혀 물길과 전선을 품는 토목 부품, 박스 암거(box culvert)를 공장에서 찍어 와 크레인으로 쌓아 올린 집이다.
설계는 가구와 제품, 공간을 넘나드는 일본 디자인 스튜디오 nendo(넨도)가 맡았다. 2002년 Oki Sato가 세운 스튜디오다. 이 집의 본래 용도는 가구와 제품, 작품을 보관하는 수장고이고, 손님이 묵을 수 있는 게스트하우스가 한쪽에 붙었다. 개당 약 12톤짜리 콘크리트 박스 63개로 2022년 완성된 이 집 앞에서는 ‘건축’보다 ‘조립’이라는 단어가 먼저 떠오른다.

숲속 타원 마당에 내려앉은 콘크리트 주택
위에서 내려다보면 구성이 한눈에 들어온다. 짙은 숲 한가운데 타원형 자갈 마당을 하나 내고, 그 위에 길쭉한 콘크리트 박스를 가로세로로 엇갈려 얹었다. 긴 박스 하나가 마당을 세로로 가로지르고, 짧은 박스들이 그 위를 가로로 덮는 식이다.
레고 블록을 툭 던져 놓은 것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십자 구도 안에 질서가 있다. 마당 경계를 넘어서면 곧바로 숲이 시작된다. 십자 구도가 한눈에 읽히는 건 하늘에서 내려다볼 때다.

적송 숲속에 들인 수장고
미요타마치는 나가노현의 작은 마을이다. 사진 속 산 아래로 펼쳐진 숲에 점처럼 박힌 화이트 박스가 바로 이 집이다.
nendo는 이 땅을 개울이 적송 숲 사이를 휘감아 흐르는 조용한 곳이라고 소개한다. 수장고라고 하면 보통 도시 외곽의 무표정한 창고를 떠올린다. 이 집은 그 기능을 숲 한가운데로 옮기고 사람이 묵을 방까지 붙였다. 물건을 쌓아 두기만 하는 곳이 아니라 머물며 다시 들여다보는 곳으로 성격이 바뀐 셈이다.

박스 암거, 원래는 땅에 묻히는 부품
박스 암거는 도로 밑으로 물길을 내거나 전선, 통신선, 통로를 지나게 할 때 쓰는 사각형 콘크리트 구조물이다. 공장에서 규격대로 찍어낸 뒤 현장에서 이어 붙이는 프리캐스트 방식으로 만든다. 평소엔 흙 속에 묻혀 있어서 누구도 그 단면을 감상할 일이 없다.
이 집은 바로 그 단면을 정면에 내세웠다. 터널 끝에서 보이는 두툼한 벽 두께와 안쪽으로 비스듬히 접힌 모서리가 그대로 입면이 된다. 장식 하나 없는데도 묘하게 조형적이다. 무거운 흙을 견디려고 만든 형태라 처음부터 군더더기가 없어서다.

터널 네 줄과 지붕 하나
집의 구성은 의외로 단순하다. 터널 네 줄을 쌓고 그 가운데를 지붕 하나로 덮었다. 실내는 터널 안쪽에도 생기고, 터널끼리 엇갈리며 생긴 틈에도 생긴다.
지붕 아래 열린 가운데 공간이 거실과 다이닝을 맡고, 터널은 수장고와 주방, 욕실, 침실처럼 성격이 분명한 방이 된다. 방을 먼저 그리고 벽을 세우는 보통의 설계와 순서가 정반대인 셈이다. 이 집에서는 정해진 부품을 어디에 어떻게 놓느냐가 곧 평면이다.

부품 크기는 트럭과 크레인이 정했다
박스 하나의 무게는 약 12톤이고, 이 집에 들어간 박스는 모두 63개다. 부품 크기를 정한 건 디자이너의 취향이 아니라 물류였다. 배송 트럭 적재함에 실을 수 있는 크기, 크레인이 들어 올릴 수 있는 무게가 기준이 됐다.
트럭으로 실어 와 크레인으로 하나씩 올리는 공정은 집 짓기보다 다리 놓기에 가깝다. 2층 터널이 아래 매스 위로 성큼 내민 캔틸레버도 이렇게 쌓은 결과다. 요즘 건축계가 공사 기간과 현장 폐기물을 줄이려고 주목하는 탈현장 시공(off-site construction)을 가장 극단까지 밀어붙인 사례라 할 만하다.

프리캐스트 콘크리트의 약점을 와이어로 조였다
문제는 박스 암거가 애초에 쌓으라고 만든 물건이 아니라는 점이다. 프리캐스트 부품을 이어 붙이기만 해서는 이음매로 물이 새고, 위로 겹겹이 올리기도 어렵다. nendo가 꺼낸 해법은 교량 같은 토목 구조물에 쓰는 프리스트레싱 공법이다. 부품을 일렬로 맞춘 뒤 속을 관통하는 와이어로 팽팽하게 당겨 하나로 묶는 방식이다.
터널마다 와이어 14가닥을 넣었고, 모든 와이어에 늘 같은 힘이 걸리도록 시간을 두고 조금씩 조였다. 마지막에 와이어 한 가닥에 걸린 장력은 46톤이다. 그 결과 이음매가 매끈하게 붙어 물이 새지 않고 내구성도 높아졌다.
개구부 안쪽 모서리를 45도로 덧댄 부분도 눈여겨볼 만하다. 입구 모서리에 덧댄 이 보강은 가새처럼 작동해 지진에 버티는 힘을 키운다. 지진이 잦은 일본에서 이 비스듬한 모서리는 장식이 아니라 생존 장치다.

프레임 없는 10m 유리, 장지문처럼 끼웠다
터널이 엇갈리며 생긴 가운데 공간은 지붕만 덮였을 뿐 사방이 거의 열려 보인다. 유리가 없는 게 아니다. 금속 프레임을 최대한 덜어내고 투명도가 높은 유리를 썼는데, 가장 긴 것은 길이가 10m에 이른다.
고정 방식이 재미있다. 일본 전통 장지문(쇼지)을 문틀 홈에 끼우듯, 홈을 파고 거기에 유리를 그대로 끼워 넣었다. 그래서 사진만 보면 유리가 있는지조차 헷갈린다.
바깥 마당에 깐 자갈과 나무는 실내 바닥에도 그대로 이어진다. 거실 한가운데 나무가 서 있고 발밑에선 자갈이 사각거리는 집이랄까. 실내에 들어왔다는 감각보다 지붕 있는 숲속 마당에 앉아 있다는 감각이 먼저 든다.

자갈 바닥은 레진으로 굳히되, 번들거리지 않게
실내에 자갈을 깔면 걷기가 불편하다. 그래서 자갈 일부를 레진으로 굳혔다. 흔한 방법은 자갈을 깔고 그 위에 레진을 붓는 것인데, 이러면 표면이 유리처럼 번들거린다.
nendo는 순서를 뒤집었다. 바닥에 레진을 먼저 바르고 그 위에 자갈을 얹었다. 발은 단단하게 받쳐 주면서 겉은 마당 자갈 그대로의 무광 질감을 남긴 것이다.
긴 다이닝 테이블과 의자는 옅은 우드 톤이라 자갈의 그레이와 콘크리트의 화이트 사이에서 튀지 않는다. 천장도 결이 고운 밝은 목재 톤으로 덮어, 단단한 재료뿐인 공간에 온기를 한 겹 얹었다. 바닥재 하나에도 ‘보이는 그대로’를 지키려는 집요함, 제품 디자인에서 출발한 스튜디오다운 대목이다.

40m 터널 수장고, 컬렉션이 늘면 터널도 는다
이 집의 본업은 아카이브다. 가장 긴 수장고는 깊이가 약 40m에 이르는 좁고 긴 터널이고, 이와 별도로 작은 수장고가 두 개 있다. 터널 벽을 따라 길게 뻗은 선반 위에 제품과 오브제가 전시하듯 놓인다.
단면이 끝까지 일정한 터널은 그 자체로 끝없이 이어지는 진열장이 된다. 흥미로운 건 이 집이 완성형이 아니라는 점이다. nendo는 컬렉션이 불어나면 대지에 터널을 더 보탤 계획이라고 밝혔다. 부품을 더하면 집이 자라는 구조, 말 그대로 확장팩이 있는 건축이다.

폭 2m 침실이 오히려 편안한 이유
주방과 욕실, 화장실처럼 물을 쓰는 공간은 1층에 모았고, 2층 터널에는 아담한 침실과 서재를 넣었다. 터널 안쪽 치수는 약 2×2.3m다. 침대 하나 놓으면 꽉 차는 폭이다.
보통이라면 답답하다고 할 크기인데 사진 속 침실은 의외로 아늑하다. 터널 끝 한 면이 통째로 창이 돼 숲이 액자처럼 걸리기 때문이다. 등 뒤와 양옆은 두꺼운 콘크리트가 감싸고, 시선은 한 방향으로만 열린다.
사람은 등 뒤가 막히고 앞이 트인 자리에서 가장 편안함을 느낀다는 ‘조망과 피신(prospect-refuge)’ 이론이 그대로 들어맞는 방이다. 몸은 동굴처럼 숨기면서 바깥은 지켜볼 수 있으니 잠자리로는 이만큼 안심되는 형태도 드물다. 다만 창이 한쪽뿐이라 해가 진 뒤엔 그 액자가 깜깜한 면이 된다. 밤의 표정까지 생각한다면 커튼보다 조도를 낮춘 간접 조명 하나가 더 요긴하다.

손잡이는 문과 벽 사이 틈에 숨겼다
디테일로 내려가면 nendo의 본색이 드러난다. 화이트 벽에 기성품 손잡이를 그대로 달면 그 하나가 공간 전체에서 툭 튀어 보인다. 그래서 문과 벽 사이 좁은 틈에 숨는 손잡이를 직접 디자인했다.
문이 닫혀 있으면 벽인지 문인지 구별이 어렵고, 열면 터널이 다음 터널로 이어진다. 사진 속 문 너머로 긴 복도가 빨려 들어가듯 보이는 장면은 이 집이 방의 연속이 아니라 통로의 연속이라는 걸 보여준다.
집에서 손잡이를 감추고 싶다면 누르면 열리는 푸시 오픈 철물이나 문 옆면에 손가락이 걸릴 만큼 홈을 파는 방식이 현실적인 대안이다. 벽과 같은 색으로 문을 칠하고 문틀을 벽 안으로 묻으면 효과가 배가된다.

바닥을 파낸 욕조, 수면이 곧 바닥
욕조는 바닥을 파서 만들었다. 물을 받으면 수면이 바닥 높이와 딱 맞아, 터널 바닥이 그대로 물로 이어지는 것처럼 보인다. 욕조라는 가구가 사라지고 물이 고인 터널만 남는 셈이다.
창 너머 식재가 수면에 비쳐 들어오니 욕실이 작은 정원처럼 읽힌다. 원래 물이 흐르라고 만든 박스 암거에 다시 물을 채웠다는 점에서는 일종의 건축적 농담처럼도 느껴진다.
이런 매립형 욕조를 따라 하려면 방수층을 바닥 아래까지 한 번 더 감싸야 하고, 넘친 물이 빠질 배수 홈이 꼭 있어야 한다. 슬래브를 낮추는 단차 시공과 방수 비용부터 따져 보는 게 순서다.

밤이 되면 터널은 등불이 된다
해가 지면 이 집은 다른 얼굴이 된다. 낮에는 화이트 덩어리였던 터널이 안에서 빛을 내뿜으며 거대한 등불처럼 변한다. 수장고 천장에는 레일 조명이 줄지어 달려 선반 위 오브제를 하나씩 짚고, 터널 개구부마다 안쪽의 따뜻한 빛이 바깥으로 새어 나온다. 밤 사진을 보면 마당 바닥에 묻은 업라이트가 콘크리트 벽을 아래에서 쓸어 올려 벽면 자체가 은은한 광원이 된다.
조명 설계의 기본은 전반(앰비언트), 국부(태스크), 연출(액센트) 세 겹을 겹쳐 까는 것이다. 이 집에서는 레일 스폿이 오브제를 짚는 국부 조명을, 벽을 쓸어 올리는 업라이트가 연출 조명을 맡고, 터널 안을 채운 빛이 개구부 밖으로 번지며 마당의 바탕 빛 노릇을 한다. 이 빛들이 따로 놀지 않고 화이트 면을 매개로 겹치는 게 핵심이다. 반사율이 높은 화이트 마감은 빛을 한 번 튕겨 공간을 넓어 보이게 하지만, 기구가 눈에 많이 띄면 그만큼 눈부심도 커진다. 그래서 이 집은 기구를 바닥 속에 묻거나 레일 하나로 정리하고 빛만 면에 떨어뜨렸다. 사진으로 보면 빛의 색도 쨍한 주백색이 아니라 휴식에 어울리는 웜톤 쪽이다.
우리 집에 가져온다면 천장 등 하나에 기대는 대신 벽 아래쪽에 매립등이나 걸레받이 라인 조명을 더해 벽을 쓸어 올리는 연출부터 시도해 볼 만하다. 2700~3000K 전구로 바꾸고 디머 스위치를 달아 밤 시간대 밝기를 낮추는 것만으로도 비슷한 분위기에 꽤 가까워진다.

토목과 제품 디자인 사이, 콘크리트 주택의 새 문법
nendo는 이 프로젝트를 두고 건축적인 공간이라기보다 토목의 개념과 제품 디자인의 디테일을 합친 작업이라고 설명한다. 겸손처럼 들리지만 꽤 정확한 자기소개다. 구조와 크기는 트럭과 크레인, 와이어가 정했고, 사람이 공들여 손댄 건 손잡이와 바닥, 욕조처럼 몸에 닿는 부분이다. 거대한 인프라 부품과 밀리미터 단위의 디테일, 그 극단적인 두 스케일이 한 집 안에서 부딪친다.
숲속의 작은 일본 게스트하우스 한 채가 기성 부품을 조합해 새 형태를 만드는 키트배싱(kitbashing)이 건축으로도 넘어왔다는 신호를 보내는 셈이다. 앞서 소개한 〈짓는 과정이 설계가 된 콘크리트 별장, Capsule Retreat〉가 공정을 설계로 끌어올렸다면, Culvert Guesthouse는 부품 자체를 설계의 출발점으로 삼았다. 현장에서 계단과 가구까지 통째로 부어 만든 〈계단도 가구도 콘크리트에 통째로 부어버렸다, Nakano House〉와 나란히 놓고 보면, 같은 콘크리트로도 집을 짓는 방식이 얼마나 다를 수 있는지 실감하게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