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제네바 근교의 조용한 단독주택 동네에 노출콘크리트 주택 한 채가 섰다. 한 가족과 할머니까지 3대가 함께 살 집인데, 땅은 작고 예산은 처음부터 빠듯했다. 설계를 맡은 Lacroix Chessex Architectes는 이 조건 안에서 고를 수 있는 구조가 사실상 하나뿐이었다고 말한다. 거푸집 자국이 그대로 남은 맨 콘크리트였다.
콘크리트 집이라고 하면 보통 돈이 많이 드는 집, 미술관 흉내를 낸 집을 떠올린다. New Villa는 정반대 지점에서 출발했다. 창을 어디에 낼지, 보를 얼마나 길게 걸지, 방을 어느 각도로 꺾을지까지 전부 ‘이게 얼마짜리냐’는 질문으로 풀었다. 그렇게 아끼고 아껴서 고른 재료가 결국 동네에서 가장 개성 있는 얼굴이 됐다는 점이 이 집의 반전이다.

제네바 Zone 5, 단독주택 동네의 규칙
집이 있는 곳은 제네바 주(canton)에 속한 작은 코뮌 프레니샹베지(Pregny-Chambésy)다. 제네바는 도시를 용도별 구역으로 나누는데, 이 땅은 단독주택만 지을 수 있는 ‘Zone 5’에 속한다. 이름만 보면 한가로운 전원 동네 같지만 규칙은 꽤 촘촘하다.
경계선에서 건물을 얼마나 떨어뜨릴지가 정해져 있고, 지을 수 있는 면적도 대지 면적의 일정 비율로 묶여 있다. 여기까지는 우리 건폐율·용적률과 비슷하다. 흥미로운 건 그다음이다. 빗물이 스며드는 투수 면적을 얼마나 남길지, 태양광 패널을 몇 장 올릴지, 단열 성능은 어느 등급 이상이어야 하는지까지 규정이 내려온다.
그런데 정작 디자인에서는 자유가 컸다고 한다. 공동 대표 Hiéronyme Lacroix는 이런 형태의 건축으로 허가를 받는 데 별 어려움이 없었다고 회상한다. 이 집의 진짜 적은 법규가 아니었다는 뜻이다.

콘크리트밖에 남지 않은 빠듯한 예산
그럼 진짜 적은 뭐였을까. 돈이다. 넓은 집이 필요한 대가족, 작은 대지, 빠듯한 예산이라는 세 가지가 한꺼번에 걸려 있었고, 계산기를 두드려 본 결과 예산 안에 들어오는 건 바깥을 그대로 드러낸 콘크리트 구조뿐이었다.
Lacroix는 맨 콘크리트 구조에 단열을 안쪽에 대는 내단열 조합이 비용 면에서 ‘이길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말한다. 바깥 콘크리트가 구조이면서 동시에 마감이 되니 외장재를 따로 씌울 필요가 없다. 외피 한 겹을 통째로 덜어내는 셈이다.
물론 요즘 콘크리트는 탄소 문제로 곱지 않은 시선을 받는다. 설계팀도 이 질문을 피하지 않는다. 다만 친환경을 포장하는 그린워싱 대신, 짧은 경간과 얇은 구조, 단순한 시공법으로 실제 물량을 줄였다고 설명한다. 눈에 띄게 내세우지는 않지만 실제로 아낀 것들이라는 얘기다. 라벨보다 물량을 말하는 태도가 오히려 솔직하게 들린다.

창을 뚫지 않고, 벽과 벽 사이를 비웠다
이 집의 콘크리트 벽에는 창이 하나도 뚫려 있지 않다. 그렇다고 창이 없는 집은 아니다. 벽은 전부 구멍 없는 통판으로 타설하고, 문과 창은 그 벽과 벽 사이의 틈에 바닥부터 천장까지 끼워 넣었다.
이게 왜 돈을 아끼는 방법일까. 벽 한가운데 창을 내려면 개구부 위에 인방을 걸고, 거푸집을 창 모양대로 따로 짜고, 모서리마다 철근을 보강해야 한다. 벽을 통째로 붓고 틈을 비워 두면 그 공정이 통째로 사라진다.
덤으로 얻은 것도 있다. 창이 전부 바닥까지 내려오니 빛이 방 깊숙이 들어오고, 정원이 실내 바닥과 거의 같은 높이에서 이어진다. 바깥에서 보면 콘크리트 판과 유리 띠가 번갈아 서 있는 모습이라, 벽 자체가 하나의 리듬이 된다.

거푸집 자국까지 마감이 된 노출콘크리트 외벽
가까이 다가가면 외벽에 세로 줄무늬가 촘촘히 보인다. 거푸집 판재의 결이 콘크리트에 그대로 찍힌 자국이다. 설계팀은 이 외관을 네오 브루탈리즘이라 부르는데, 70년대 관공서식 육중함보다는 나뭇결 같은 부드러움이 먼저 읽힌다.
국내 노출콘크리트 주택은 대개 매끈한 코팅 합판으로 거울 같은 면을 뽑아내는 쪽이다. 그런 면은 작은 기포 하나, 이음매 하나에도 티가 난다. 판재 자국을 일부러 살린 이 집의 면은 조금씩 다른 색과 얼룩을 오히려 표정으로 받아들인다. 완벽을 요구하지 않는 마감이라 예산에도 너그러운 셈이다.
여기에 돌로 마감한 테두리가 재료를 하나 더 보탠다. 그레이 콘크리트 덩어리에 얇은 선을 그어 주는 역할이라, 재료가 하나뿐일 때 생기는 단조로움을 살짝 덜어낸다.

알루미늄 현관이 여는 긴 시선
무광 콘크리트 사이에서 유일하게 빛을 튕겨 내는 요소가 현관이다. 알루미늄 판으로 감싼 문 옆에 세로 골이 진 골유리 측창을 붙였는데, 골유리가 바깥 풍경을 뭉개 주니 현관 쪽 시선은 막고 빛만 들인다.
문을 열면 시선이 복도를 따라 일직선으로 날아가 반대편 정원 창에 꽂힌다. 들어서자마자 집 끝까지 보이니 실제 크기보다 깊은 집이라는 인상이 생긴다. 현관에서 이 정도 길이의 시선을 확보하는 건 넓은 집에서도 쉽지 않다.
현관 캐노피 아래에는 작은 원통형 직부등 하나가 붙어 있다. 콘크리트 슬래브에 매립하지 않고 표면에 그대로 단 방식인데, 이 집 전체의 조명이 이런 식이다. 이유는 뒤에서 다시 짚는다.

계단처럼 쪼갠 매스, 310m² 집이 더 넓어 보이는 이유
사용면적은 310m²다. 3대가 살기에 넉넉하다고 하기는 어려운 숫자인데, 집 안을 걸어 보면 체감은 그보다 크다. 비밀은 1층 평면에 있다. 벽이 곳곳에서 한 발씩 물러나고 비스듬히 꺾여 있어서, 설계팀 표현대로라면 볼륨이 ‘계단식으로 쪼개져’ 있다.
사람은 공간의 크기를 면적이 아니라 시선이 얼마나 멀리 가느냐로 판단한다. 이 집은 현관에서 정원까지 곧게 뻗는 긴 축과, 꺾인 벽 사이로 대각선으로 새어 나가는 짧은 시선을 일부러 섞었다. 모퉁이를 돌 때마다 다음 방이 반쯤 보였다 사라지니, 한 바퀴를 다 돌기 전까지 집의 끝이 쉽게 읽히지 않는다.
이 모든 걸 큰 경간 없이 해냈다는 점도 눈여겨볼 만하다. 탁 트인 넓은 거실을 만들려면 긴 보와 두꺼운 슬래브가 필요하고, 그건 곧 비용이다. 설계팀은 공간을 크게 한 덩어리로 열기보다 작은 방들을 어긋나게 이어 붙여 개방감을 얻었다.

그린 타일 벽난로가 데우는 거실
거실 한가운데에는 세로로 긴 그린 유약 타일로 감싼 벽난로 기둥이 서 있다. 바닥은 폴리싱 콘크리트, 벽과 천장은 노출콘크리트인 공간에서 이 기둥이 유일하게 윤기 나는 색이다. 콘크리트 일색의 집에서 색을 어디 한 군데 몰아 쓰면 그곳이 자연스럽게 집의 중심이 된다.
콘크리트 인테리어의 약점은 차갑다는 인상이다. 이 집은 그 온도를 나무로 끌어올린다. 바닥까지 내려오는 창은 전부 연한 목재 프레임이고, 거실의 유리 커피 테이블도 나무 다리로 받쳤다. 화분과 러그, 책을 올린 선반까지 더해지니 그레이 바탕이 오히려 생활의 색을 돋보이게 하는 배경이 된다.
다만 바닥과 벽, 천장이 모두 단단한 면이라 소리가 잘 울릴 수밖에 없다. 비슷한 집을 꿈꾼다면 러그를 넉넉히 깔고 패브릭 소파나 두꺼운 커튼처럼 소리를 먹는 재료를 의식적으로 들이는 편이 좋다.

콘크리트 천장 아래 조명은 이렇게 건다
다이닝 테이블 위에는 얇은 목재 띠를 둥글게 엮은 슬랫 펜던트가 걸려 있고, 주방 창가에도 같은 계열의 펜던트가 하나 더 있다. 거실 벽난로 옆엔 작은 블랙 펜던트, 주방 옆 식사 공간엔 납작한 원형 직부등이다. 눈치챘겠지만 천장에 매립된 다운라이트는 하나도 없다.
노출콘크리트 천장은 타설하는 순간 배선 위치가 확정된다. 나중에 천장을 뚫어 등을 매립할 방법이 없으니, 전선관만 미리 묻어 두고 기구는 표면에 다는 방식이 정석이다. 그래서 이 집의 조명은 펜던트와 직부등 위주로 단출하다. 빛의 첫 번째 층인 전반 조명은 사실상 바닥까지 내려오는 창이 낮 동안 대신하고, 저녁의 몫은 테이블과 아일랜드 위 펜던트가 맡는다.
목재 슬랫 펜던트를 고른 것도 영리하다. 그레이 콘크리트는 빛을 먹는 재료라 같은 밝기여도 어둡게 읽힌다. 나무 띠 사이로 새어 나오는 따뜻한 빛은 테이블을 감싸면서 천장에 결 무늬 그림자를 드리워 차가운 면에 온기를 더한다. 2700~3000K 웜톤 빛이 휴식에 맞는다는 조명의 기본 원리와도 맞아떨어진다.
콘크리트 천장 집을 짓는다면 타설 전에 펜던트와 직부등 자리를 도면에 확정하고 박스까지 미리 묻어 두는 게 가장 중요하다. 이미 지어진 집이라면 콘크리트 톤의 노출 레일이나 트랙 조명으로 배선을 정리하고, 천장을 향해 빛을 쏘는 플로어 램프 한 대로 벽과 천장에 간접광을 튕기면 된다. 디머 스위치까지 달면 하나의 밝기로 저녁 전체를 버티지 않아도 된다.

할머니의 집이 1층에 따로 있는 3대 주택
1층은 현관 홀에서 주방, 다이닝룸, 거실로 물 흐르듯 이어진다. 서재와 욕실처럼 조용해야 하는 방은 꺾인 평면의 구석구석에 숨겨 두었다. 라이트 블루로 칠한 문 하나가 콘크리트 벽 사이에서 작은 표지판 노릇을 한다.
이 층에는 할머니를 위한 침실 하나짜리 독립 주거도 들어 있다. 같은 지붕 아래 살지만 살림을 따로 꾸릴 수 있는 별도의 집이다. 나이 든 가족이 계단을 오를 일 없이 1층에서 생활을 해결하고, 위층 가족의 생활 소음과는 적당히 거리를 둘 수 있는 배치다.
다세대가 한집에 사는 방식은 이제 제네바에서도, 서울에서도 낯설지 않다. 문제는 ‘함께’와 ‘따로’의 균형인데, 앞서 소개한 〈부모와 아들이 8자로 이어 사는 에콰도르 주택, Casa Ortega〉가 두 세대를 동선으로 엮었다면, New Villa는 한 층 안에 독립된 집을 하나 품는 쪽을 택했다.

지하는 놀이방, 2층은 침실
스위스 단독주택에 지하층이 기본처럼 딸려 오는 건 오래된 관습이다. 이 집도 전통적인 스위스식 지하층 위에 올라앉아 있다. 지하는 창고와 함께 영화를 보고 게임을 하는 미디어룸으로 쓰는데, 평면도에는 테이블 축구대까지 그려져 있다.
가장 시끄러운 활동을 땅속으로 내려보낸 셈이다. 아무리 시끄러워도 소리는 두꺼운 콘크리트에 갇히고, 1층의 할머니 집과 2층 침실은 조용함을 지킨다. 층마다 소음의 등급을 나눠 놓은 구성이라 할까.
2층으로 오르는 계단은 양쪽이 노출콘크리트 벽으로 꽉 막힌 좁은 통로다. 대신 꼭대기에 천창을 뚫어 위로 오를수록 밝아지게 했다. 2층에는 드레스룸과 욕실이 딸린 큰 안방, 그리고 욕실 하나를 함께 쓰는 작은 침실 두 개가 있다.

천창으로 밝힌 욕실, 일부러 어긋낸 2층 창
2층 욕실은 모두 천장에서 빛을 받는다. 벽에 창을 뚫지 않는다는 원칙이 여기서도 이어진 셈인데, 결과적으로 욕실에서 가장 중요한 프라이버시까지 덤으로 챙겼다. 이웃집과 눈이 마주칠 일 없이 하늘만 보인다.
민트 톤 골유리로 세운 샤워 부스는 천창 빛을 받아 은은하게 번진다. 골유리는 현관 측창에 쓴 재료와 같은 계열이라, 집 안팎에 같은 언어가 반복된다.
2층에도 바닥까지 내려오는 창이 이어지지만 1층 창과 줄을 맞추지 않았다. 일부러 어긋나게 배치해 파사드가 바둑판처럼 굳지 않게 했다. 층마다 창 위치가 다르니 방마다 내다보는 풍경도 달라진다.

제각각인 동네에서 존재감을 얻는 법
New Villa가 선 골목은 시대도 양식도 제각각인 집들이 나무 사이에 흩어진 동네다. 그 사이에서 이 집의 노출콘크리트는 튀려고 고른 재료가 아니었는데도, 결과적으로 가장 또렷한 얼굴이 됐다. 콘크리트 테두리를 두른 길쭉한 수영장과 정원은 그 단단한 덩어리를 한결 느긋하게 풀어 준다.
Lacroix Chessex Architectes는 2005년 Hiéronyme Lacroix와 Simon Chessex가 세우고 Grégoire Martin, Ludovic Durand가 파트너로 합류한 제네바 사무소다. 이들은 모든 프로젝트를 백지에서 다시 시작한다고 말한다. 세계 어디서나 비슷한 건물이 찍혀 나오는 시대에, 그 땅과 그 쓰임에만 맞는 건물을 짓겠다는 것이다.
앞서 소개한 〈옥상 수영장을 얹은 클로버 콘크리트 주택, Trefoil House〉가 콘크리트로 형태의 자유를 밀어붙였다면, New Villa는 같은 재료로 비용을 깎아내는 쪽을 택했다. 그 절약의 흔적이 거푸집 자국과 벽 사이 유리 띠로 고스란히 남았고, 그게 이 집의 표정이 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