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선 파빌리온 띄운 1930년대 주택 증축, Ring House

슬로베니아 류블랴나의 옛 교외 주택가에는 두 차례 세계대전 사이에 지은 중산층 빌라가 모여 있다. 그중 한 집이 1930년대 모더니즘 주택 증축에 색다른 답을 내놨다. 가는 기둥 수십 개를 두른 고리 모양 증축동이 옛 집에서 뻗어 나와 뒤뜰을 감싼다. 류블랴나에 사무실을 둔 OFIS Architects가 8년에 걸쳐 고친 Ring House다.

오래된 집에 무언가를 덧붙일 때 건축가의 선택지는 대개 둘이다. 원래 모습을 최대한 되살리거나, 옛것과 확실히 대비되는 새 볼륨을 옆에 세우거나. 이 주택 증축은 셋째 길로 갔다. 옛 집이 처음부터 가지고 있던 반원형 곡선을 끌어내 정원 쪽으로 길게 늘였다. 그래서 새로 붙인 건물이 옛 집에서 자라난 팔처럼 보인다.

넓은 정원 끝에 선 1930년대 빌라와 기둥 고리로 이어진 Ring House 주택 증축 전경
© Janez Martinčič, Tomaž Gregorič

평지붕 위 경사 지붕에 가려진 1930년대 모더니즘 주택

원래 집은 1930년대 초기 모더니즘의 문법을 그대로 따른 상자형 볼륨이다. 모서리 몇 군데를 반원으로 둥글렸고, 장식이라 부를 만한 것은 거의 없다. 이 시기 모더니즘 주택에서 평지붕은 일종의 선언이었다. 처마도 기와도 없는 납작한 윗면이 “이 집은 새 시대의 집”이라고 말해 주는 셈이었다.

문제는 1980년대에 생겼다. 그 평지붕 위에 흔한 경사 지붕이 씌워졌고, 집은 순식간에 동네 어디에나 있는 교외 주택이 됐다. 건축주와 건축가가 처음 만났을 때 이 집은 한창때 모습과 거리가 멀었다고 한다. OFIS Architects가 맨 먼저 한 일은 그 지붕을 걷어내는 것이었다. 빈자리에는 원래 볼륨을 깔끔하게 마무리하는 작은 테라스 층을 얹었다. 덧붙이기 전에 먼저 덜어냈다는 순서가 이 리노베이션의 태도를 보여 준다.

오래된 집 곁에 새 볼륨을 세우는 방식은 〈오래된 저택에 말을 거는 집〉에서도 다른 결로 볼 수 있다. Ring House는 대화 상대를 세우기보다 옛 집의 말투를 그대로 이어받는 쪽을 택했다.

하늘에서 내려다본 Ring House 배치, 옛 주택과 중정을 감싼 고리형 증축동과 디딤돌 길
© Janez Martinčič, Tomaž Gregorič

정원보다 높은 1층, 고리 하나로 풀었다

지붕보다 까다로운 숙제는 정원이었다. 대지 안의 정원은 건물이 차지한 면적의 두 배가 넘을 만큼 넓은데, 정작 집에서 그 정원으로 바로 나갈 길이 없었다. 1층 바닥이 정원 지면보다 높아서다. 넓은 마당을 두고도 창밖으로 내려다보기만 하는 집이었던 셈이다.

해법은 위에서 내려다보면 한눈에 읽힌다. 가는 기둥을 고리처럼 이어 붙인 증축동이 옛 집에서 출발해 정원을 한 바퀴 감싸고 돈다. 이 고리는 거실을 늘린 공간이자 정원 파빌리온이고, 동시에 십자형 복도 역할도 한다. 고리가 반쯤 에워싼 안쪽은 “젠(Zen)” 중정이 됐고, 바깥쪽 길은 남쪽 정원을 향해 천천히 내려간다.

사진 오른쪽으로는 디딤돌 길이 잔디를 가로질러 대지 끝까지 뻗는다. 집이 정원을 향해 손을 내밀고, 정원이 그 손을 받아 다시 길을 낸 모양새다.

잔디 위에 떠 있는 듯한 Ring House 곡선 파빌리온 측면 외관과 커튼
© Janez Martinčič, Tomaž Gregorič

옛 집의 반원에서 빌려 온 곡선

고리의 형태는 어디서 왔을까. 답은 옛 집의 둥근 모서리다. 1930년대 볼륨에 새겨진 반원형 윤곽을 출발점 삼아, 그 곡선을 몇 배로 늘이고 구부려 정원 위에 펼쳤다. 그래서 전혀 다른 시대에 지은 두 건물이 한 사람의 필체로 쓴 것처럼 읽힌다.

정원 쪽에서 보면 파빌리온은 잔디 위에 살짝 떠 있다. 바닥판 아래를 안쪽으로 깊게 들여 그림자를 만든 덕에, 납작한 지붕판과 바닥판이 가는 기둥 사이에 끼워진 채 공중에 걸린 것처럼 보인다. 무게가 사라진 건물은 정원을 누르지 않는다. 길게 휘어진 증축동이 들어섰는데도 마당이 좁아 보이지 않는 이유다.

곡선 건물은 보는 위치에 따라 표정이 계속 바뀐다. 직선 건물은 한 각도에서 대부분을 보여 주지만, 휘어진 띠는 몇 걸음만 옮겨도 다른 면이 열린다. 정원을 걷는 사람에게 이 집은 한 장의 정면이 아니라 이어지는 장면들로 다가온다.

정원 쪽으로 완만하게 내려가는 Ring House 기둥 복도와 경사 바닥
© Tomaž Gregorič

계단 대신 완만한 경사, 걸으며 내려가는 정원

1층과 정원의 높이 차이는 계단 몇 단이면 간단히 해결된다. OFIS Architects는 그 높이를 고리 전체에 나눠 실었다. 복도 바닥이 정원을 따라 돌면서 아주 완만하게 내려가, 걷다 보면 어느새 잔디와 같은 높이에 닿는다.

설계팀은 이 증축을 건축적 산책로, 경사로, 투명성, 자유로운 평면 같은 모더니즘의 주제를 다시 읽은 작업이라고 설명한다. 건축적 산책로는 Le Corbusier(르 코르뷔지에)가 Villa Savoye에서 경사로로 구현한 개념이다. 1930년대 집에 1930년대의 언어로 말을 거는 셈이다.

이 방식은 생활에서도 차이를 만든다. 계단은 “이제 다른 층으로 간다”는 신호를 몸에 주지만, 완만한 경사는 그 경계를 지운다. 집 안에서 정원으로 나가는 일이 결심이 필요한 이동이 아니라 산책의 연장이 된다. 아이가 있는 집이라면 문턱 하나 없는 길이 주는 자유가 꽤 크다.

곡선 기둥 복도가 감싼 Ring House 안쪽 젠 가든 중정
© Tomaž Gregorič

기둥 사이로 들여다보는 젠 가든 중정

고리가 반쯤 감싼 안쪽 마당에는 자갈을 갈퀴로 고른 듯한 바닥과 큼직한 바위, 키 낮은 침엽수가 놓였다. 일본식 정원을 떠올리게 하는 구성이라 설계팀도 이곳을 “젠” 중정이라고 부른다.

흥미로운 건 중정이 완전히 닫혀 있지 않다는 점이다. 사방을 벽으로 막는 대신 가는 기둥이 촘촘히 늘어서 경계를 흐린다. 시선은 기둥 사이로 새어 나가고, 몸은 복도를 따라 중정 둘레를 돈다. 이웃집 시선에서는 한 겹 물러나 있으면서도 갇힌 느낌이 들지 않는다.

둥근 고리로 마당을 품는 구성은 〈도넛 모양 발리 빌라가 중정을 품었다〉에서도 볼 수 있다. 열대의 빌라가 그늘과 바람을 위해 고리를 둘렀다면, 류블랴나의 이 집은 정원과의 거리를 좁히려고 고리를 둘렀다.

양쪽이 전면 유리로 열린 Ring House 유리 복도 내부
© Tomaž Gregorič

양쪽이 유리인 복도, 투명성을 다시 읽다

고리의 일부는 양쪽을 바닥부터 천장까지 유리로 막았다. 그 안을 걸으면 바깥 정원과 안쪽 중정이 동시에 보인다. 겨울에도 정원 한가운데를 걷는 기분을 낼 수 있는 구간이다.

바닥은 밝은 그레이, 천장과 기둥은 화이트로 통일했다. 마감이 조용하니 시선이 유리 너머 풍경으로 곧장 빠져나간다. 모더니즘이 꿈꾼 투명성을 액자처럼 다루지 않고 걷는 경험으로 바꿔 놓은 셈이다.

다만 유리 복도는 계절을 탄다. 여름 오후의 직사광선과 겨울밤의 냉기를 그대로 받기 때문이다. 집에 비슷한 유리 구간을 들인다면 로이유리와 바닥 난방, 그리고 필요할 때 칠 수 있는 커튼 레일을 함께 계획해 두는 편이 좋다.

곡면 유리 앞에 라운지 체어와 원형 테이블을 둔 Ring House 거실
© Janez Martinčič

반 층 올라선 거실, 옛 집과 새 집의 이음매

정원을 도는 고리는 두 군데에서 폭을 넓힌다. 첫째는 유리로 감싼 구간 안의 거실이다. 바닥을 주변보다 살짝 올려 옛 집과 새 볼륨을 잇는 연결부로 삼았고, 남북 축을 따라 자리 잡았다.

곡면 유리 앞에는 낮고 푹신한 라운지 체어와 둥근 커피 테이블 하나가 놓였다. 가구를 더 들이지 않은 이유는 짐작이 간다. 이 방의 주인공은 유리 너머 정원이고, 가구는 그걸 보는 자리일 뿐이다. 낮게 앉으면 눈높이가 잔디와 가까워져 방 안에 있는데도 정원에 앉은 것 같은 착각이 든다.

바닥 높이를 아주 조금 바꾸는 것만으로도 공간의 성격이 달라진다. 살짝 올라선 자리는 자연스럽게 머무는 곳으로 읽히고, 그 아래 복도는 지나가는 곳이 된다. 벽 하나 세우지 않고 거실과 통로를 갈라낸 방법이다.

벽 없이 기둥만 선 Ring House 파빌리온 다이닝 공간과 긴 식탁
© Tomaž Gregorič

벽 없는 다이닝, 기둥이 방을 대신한다

고리가 넓어지는 두 번째 지점은 잔디 위로 떠 있는 정원 파빌리온이다. 여기에는 기다란 화이트 식탁과 의자가 놓였다. 머리 위로는 지붕판이 덮고, 옆으로는 가는 기둥만 서 있을 뿐 벽이 없다.

자유로운 평면이라는 모더니즘의 오래된 약속이 가장 극단적인 형태로 구현된 곳이다. 벽이 하중을 받지 않으니 방의 경계를 정하는 건 기둥의 간격과 바닥의 단차, 그리고 가구 배치다. 식탁 아래 깐 짙은 러그 한 장이 “여기가 식당”이라고 말해 주는 유일한 표시다.

이런 반외부 다이닝은 계절이 좋을 때 진가를 낸다. 식사가 실내 행사가 아니라 정원에서 열리는 일이 되고, 대화는 자연스럽게 길어진다. 국내 주택이라면 처마 깊은 데크에 바닥 단차와 러그로 영역만 표시하는 방법을 빌려 올 수 있다.

커튼 한 장으로 바깥과 경계를 나눈 Ring House 정원 파빌리온
© Janez Martinčič

커튼 한 장이 벽이 되는 정원 파빌리온

파빌리온의 경계는 기둥과 커튼뿐이다. 화이트 커튼이 기둥 사이를 따라 둥글게 매달려 있어, 걷으면 정원 한복판이 되고 치면 안락한 방이 된다.

벽은 한번 세우면 하루 종일 같은 정도로 사람을 가린다. 커튼은 다르다. 아침에는 반쯤 열어 빛을 들이고, 손님이 오면 활짝 젖히고, 해가 지면 닫아 감싸는 식으로 노출의 정도를 사는 사람이 직접 고른다. 스스로 조절할 수 있다는 감각이 공간을 편하게 만든다는 건 환경심리학에서도 자주 언급되는 이야기다.

바람이 불면 커튼이 부풀어 오르고, 그 움직임이 가는 기둥과 납작한 지붕판으로 이뤄진 단단한 구조에 부드러운 리듬을 더한다. 집에 응용한다면 리넨이나 거즈 같은 비치는 소재 커튼을 천장 매립 레일에 달고, 바깥쪽에 암막을 한 겹 더한 이중 레일이 실용적이다.

밤이 되자 실내 조명으로 등불처럼 빛나는 Ring House 곡선 증축동 야경
© Tomaž Gregorič

밤이면 등불이 되는 곡선 증축동, 조명 설계

해가 지면 이 집의 인상이 확 바뀐다. 실내에서 새어 나온 빛이 유리와 커튼을 통과하면서 곡선 증축동 전체가 정원 위에 놓인 등불처럼 빛난다. 천장에는 작은 다운라이트가 일정한 간격으로 박혀 있고, 거실 쪽에는 아치형 플로어 램프가 보인다. 전체적으로 따뜻한 색온도의 빛이다.

화이트 천장과 기둥은 빛을 잘 되받아 친다. 같은 다운라이트라도 짙은 마감보다 훨씬 밝고 넓게 퍼진다. 반면 유리가 많은 집은 밤이 되면 바깥이 어두워지면서 유리가 거울처럼 실내를 비추기 시작한다. 정원을 계속 보고 싶다면 바깥에도 빛이 있어야 하는 이유다.

조명은 전반 조명, 작업 조명, 연출 조명 세 겹을 겹쳐 깔 때 깊이가 생긴다. 이 집처럼 천장 다운라이트가 전반을 맡는다면, 2700~3000K 웜톤 플로어 램프로 앉는 자리를 따로 비추고, 정원의 큰 나무 밑동에 낮은 업라이트 하나를 두는 것만으로도 유리 너머 풍경이 밤까지 이어진다. 다운라이트에 디머를 달아 저녁 시간대 밝기를 낮출 수 있으면 더 좋다.

목재 부조 작품과 높은 문을 둔 Ring House 옛 빌라 현관 홀
© Tomaž Gregorič

8년 걸려 되살린 옛 빌라의 안쪽

증축동을 지나 옛 빌라로 들어서면 분위기가 한층 차분해진다. 화이트 벽과 밝은 그레이 바닥으로 정리한 현관 홀 한쪽 벽에는 목재를 각지게 짜 맞춘 부조 작품이 걸렸고, 맞은편에는 천장까지 닿는 짙은 톤의 높은 문이 섰다. 홀 끝의 큰 창으로는 테라스 난간과 바깥 나무가 들어온다.

이 프로젝트는 2015년 설계를 시작해 2018년 공사에 들어갔고, 마무리까지 8년 가까이 걸렸다. 철거할 것을 철거하고, 1930년대 볼륨의 비례를 되찾고, 그 곡선을 정원까지 끌고 나가는 데 그만큼의 시간이 들었다.

덕분에 정원과 단절돼 있던 집은 이제 정원을 한 바퀴 돌아야 끝나는 집이 됐다. 아침에 중정을 내다보며 커피를 마시고, 오후엔 커튼을 젖힌 파빌리온에서 밥을 먹고, 밤에는 불 켜진 고리를 정원 끝에서 바라본다. 하루의 동선이 그대로 산책 코스다.

ArchitectsOFIS Architects
PhotosTomaž Gregorič, Janez Martinčič
Category단독주택 리노베이션·증축
Country슬로베니아
Materials화이트 원형 기둥, 전면 유리, 패브릭 커튼
Location류블랴나(Ljubljana)
Area실내 280m², 윈터가든 34m², 파빌리온 73m²
Year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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