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샌프란시스코의 언덕 동네 버널 하이츠(Bernal Heights)에는 대문을 열어도 집이 바로 보이지 않는 집이 있다. 계단을 서른 개 넘게 내려가 정원을 가로지른 뒤 다시 스무 개 넘는 계단을 올라야 겨우 현관에 닿던 이 집을, Ryan Leidner Architecture가 정원 위에 다리 하나를 놓는 것으로 완전히 바꿔놓았다. 리모델링 전 이 집의 가장 큰 매력이자 약점은 도로에서 한참 물러앉은 위치였다. 프라이버시는 확실했지만, 그 프라이버시를 지키려고 매번 등산하듯 계단을 오르내려야 했다.
이 집을 매입한 카이샤(Kaisha)와 조이 플린(Joey Flynn) 부부는 원래 욕실 두 곳만 손볼 생각이었다. 첫 리모델링치고는 소박한 계획이었다. 작은 프로젝트를 맡아줄 건축가를 구하던 이들에게 지인이 추천한 사람이 Ryan Leidner였다. Craig Steely 밑에서 실무를 쌓고 막 독립한 그는, 욕실 공사를 상담하러 온 첫날 대문에서 현관까지 이어지는 이상한 동선을 그냥 지나치지 못했다.

숨어버린 집, 계단 50개의 딜레마
이 집은 대지의 뒤쪽, 도로에서 한참 물러난 자리에 앉아 있었다. 대문을 열면 바로 마당이 아니라 서른 개가 넘는 계단이 아래로 이어졌고, 다 내려가면 웃자란 정원을 헤치고 지나야 했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정원을 가로지르면 다시 스무 개 넘는 계단이 위로 이어졌고, 그걸 다 오른 뒤에야 진짜 현관을 만날 수 있었다. 프라이버시를 지키려던 원래 설계가 정작 집주인에게는 매일 오르내려야 하는 장애물이 된 셈이다. Ryan Leidner가 이 집에서 가장 먼저 손댄 것도 욕실이 아니라 이 진입 동선이었다.

정원 위에 놓은 다리 하나
해법은 계단을 줄이는 게 아니라 아예 새로운 경로를 만드는 것이었다. 앞마당에서 시작해 조성한 낮은 정원 위를 가로질러 새 현관까지 이어지는 다리를 놓았다. 검은 철제 난간을 두른 목재 데크가 허공에 떠 있는 형태라, 정원은 그대로 두고도 접근 동선만 완전히 새로 그릴 수 있었다. 계단을 줄이는 대신 아예 새 길을 낸 발상은 런던 Stocke Home이 계단 하나를 옮겨 공간감을 완전히 바꾼 것과 닮아 있다. 다리를 건너면 바로 현관이 아니라 반 층짜리 계단참이 나오고, 거기서 한 층을 더 올라야 주방과 거실이 있는 맨 위층에 닿는다.

지붕 아래로 열린 스카이라이트, 새로 그린 계단실
진입로만 바뀐 게 아니다. 어색했던 실내 동선도 함께 재구성됐다. 현관을 들어서면 경사진 목조 천장을 따라 계단실이 이어지고, 천장에 낸 스카이라이트로 정원의 나무가 그대로 들여다보인다. 계단실 벽에는 원형 창을 하나 더 뚫어, 다리를 건너오는 사람이 실내에서도 보이게 했다. 큰 개구부를 낸 새 파사드 덕분에 예전엔 어둡던 진입부가 지금은 집에서 채광이 가장 좋은 구간 중 하나가 됐다.

오래된 서까래는 그대로, 리모델링이 남긴 흔적
집 안으로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경사진 목조 천장이다. 기존에 있던 서까래와 천장 마감을 그대로 살려 리모델링했고, 나머지 창호와 바닥, 마감재는 전부 새로 교체해 통일감을 줬다. 오래된 목재의 질감과 새로 깐 밝은 색 바닥재는 톤이 다르지만 서로 부딪히지 않는데, 이 대비 덕분이다. 거실에는 짙은 브라운 톤의 빈티지 가죽 소파를 두고, 그 위로 높은 층고를 그대로 살려 개방감을 강조했다. 아이들이 뛰어놀다가도 저녁이면 자연스럽게 디너파티로 넘어갈 수 있는, 격식 없는 사교 공간을 만드는 게 이 리모델링의 핵심 목표였다.

빈티지 이탈리아 가구와 회전하는 원형 창
집주인 부부가 국제적인 디자인에 관심이 많다는 점이 인테리어 곳곳에 드러난다. 다이닝 공간에는 샌프란시스코의 가구 제작자 노부토 스가(Nobuto Suga)가 짠 커스텀 원목 테이블을 두고, 그 옆으로 귀도 팔레스키니가 디자인한 빈티지 투크로마 체어와 가에 아울렌티의 로쿠스 솔루스 튜불러 암체어를 매치했다. 벽에는 원형 피벗 창을 새로 냈는데, 창 자체가 축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구조라 필요할 때는 문처럼 열어 환기도 시킬 수 있다. 일본 여행에서 받은 영감과 캘리포니아 특유의 자유분방한 감성, 이탈리아 빈티지 가구가 한 공간에서 부딪히지 않고 섞이는 게 이 인테리어의 재미다.

도시 전망을 끌어들인 주방
맨 위층에 자리한 주방과 거실은 샌프란시스코 시내 스카이라인을 향해 통창을 냈다. 싱크대 위로 가로로 긴 창을 내 설거지를 하면서도 도심 전망을 놓치지 않게 했고, 천장 가까이에는 별도의 사선 창을 하나 더 내 하늘까지 담았다. 주방 가구는 화이트오크로 짜고 상판은 콘크리트로 마감했으며, 손잡이마다 황동 디테일을 더해 다른 공간의 마감재와 통일감을 맞췄다. 천장에서 늘어뜨린 화분들이 자칫 딱딱해질 수 있는 부엌 분위기를 한결 부드럽게 풀어준다.

정원으로 열리는 위스키 바 라운지
아래층 라운지는 이 집에서 가장 개성이 강한 공간이다. 도쿄의 위스키 바에서 받은 인상을 그대로 옮겨오려 한 곳으로, 바닥과 벽, 천장까지 넓은 폭의 화이트오크 판재로 감쌌다. 한쪽에는 레코드를 트는 자리를 마련하고, 커스텀 벨벳 데이베드를 두어 정원을 보며 누워 쉴 수 있게 했다. 라운지는 낮은 정원 쪽으로 완전히 개방돼 있어서, 문을 열어두면 실내와 실외의 경계가 거의 사라진다. 경사지에 앉은 대지를 거스르지 않고 매스를 계단식으로 쌓아올린 방식은 Lua House가 가지처럼 뻗은 기둥으로 경사지를 다룬 접근과도 통하는 데가 있다.

타일 침대 프레임이 있는 게스트룸
게스트룸은 이 집에서 가장 실험적인 공간으로 꼽힌다. 벽과 천장에는 질감이 살아있는 삼베 플라스터를 발라 다른 방과는 완전히 다른 촉감을 냈고, 침대 프레임은 타일을 촘촘히 붙여 커스텀 제작했다. 이탈리아 모더니즘 시대의 가구를 오마주한 소품들을 곁들여, 방 전체가 하나의 작은 전시실처럼 느껴진다. 부드러운 커튼으로 창가를 마감해 삼베 벽의 거친 질감과 균형을 맞춘 점도 눈에 띈다.

베네치안 플라스터로 마감한 욕실
프라이머리 욕실은 벽과 천장, 바닥까지 전부 베네치안 플라스터로 통일했다. 이음매 없이 매끈하게 이어지는 마감 덕분에 공간 전체가 하나의 덩어리처럼 보이고, 욕조 옆으로 낸 원형 창은 집 곳곳에 반복되는 모티프를 욕실까지 끌고 온다. 수전과 욕조 다리는 황동으로 통일해 차분한 회백색 마감 속에서도 온기가 느껴지게 했다. 미니멀한 스툴 하나와 자연석 하나만 놓아, 장식을 더하기보다 재료 자체로 분위기를 완성했다.

차콜 삼나무와 구리 지붕
외장은 차콜 컬러로 스테인 처리한 삼나무 사이딩으로 통일하고, 새로 올린 매스의 지붕에는 구리 스탠딩심 마감을 더했다. 시간이 지나면 구리가 자연스럽게 산화되며 색이 변하는 점까지 계산에 넣은 선택이다. 계단식으로 쌓아올린 매스와 다리가 만나는 지점에서, 이 집이 원래 갖고 있던 프라이버시와 새로 얻은 개방감이 동시에 읽힌다. 해가 진 뒤 라운지와 거실에 불이 켜지면, 무뚝뚝해 보이던 차콜 외피 안쪽으로 화이트오크의 온기가 비쳐 나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