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법은 1962년 8개 장, 58개 조문으로 출발했다. 60여 년 동안 사고가 날 때마다, 제도가 바뀔 때마다 조문이 덧붙었고, 이제는 전문가조차 목차만으로 허가 절차를 따라가기 어렵다는 말이 나온다. 대한건축사협회와 건축공간연구원이 10월 26일 국회도서관 대강당에서 건축법 전부개정 토론회를 열고 구체적인 개정안을 내놓았다.

2000년 이후 50차례 고쳤다, 조문은 누더기가 됐다
발제에 나선 대한건축사협회 한창섭 건축연구원장에 따르면 건축법은 2000년 이후에만 50차례 개정됐고, 이는 전체 개정 횟수의 76.9%에 해당한다. 실질 조문 155개 외에 가지조문이 49개로, 실질 조문 대비 31.6%에 이른다. 개별 현안에 대응해 조문을 끼워 넣다 보니 장·절의 기능과 조문 순서가 실제 업무 흐름과 뒤엉켰다는 진단이다.
협회는 이를 조문 혼재, 절차 중복, 예측 가능성 부족, 책임 불균형, 안전기준 분산, 디지털 활용 근거 미비의 여섯 가지 구조적 한계로 묶었다. 국가건축정책위원회 김진애 위원장은 “각종 건축 규제는 건설·토목이 중심이던 시절 제도화된 내용들이며, 현재는 거듭된 수정으로 누더기가 됐다”고 말했다.
10개 장 179개 조문, 허가 흐름대로 다시 짠다
개정안은 법 체계를 ‘심의·허가 등 절차 → 건축공사 → 계획·안전·설비기준 → 공간계획 → 분쟁·제재·벌칙’ 순서로 재배열해 총 10개 장, 179개 조문으로 재구성했다. 현행 제4~7장과 보칙에 흩어져 있던 기준은 계획·안전·설비 세 개 장으로 나누고, 건축협정·결합건축·특별건축구역은 제6장으로 합쳤다. 분쟁조정(제7장)과 위반행위 조치·이행강제금(제8장)은 독립시켰다.
눈에 띄는 변경은 사전결정제도를 사전검토제도로 바꾸는 안이다. 행정처분이던 사전결정을 행정서비스로 돌리고, 검토 대상을 용도지역·재해·환경·문화유산·개략적 건축 규모 같은 핵심 쟁점으로 좁힌다. 건축신고는 건축사가 법령 적합성을 확인하면 허가권자의 검토·확인을 갈음하게 하고, 건축심의에서는 법령과 심의기준에 없는 별도 조건을 붙이지 못하게 해 반복심의와 부당한 조건 요구를 막겠다는 내용이다.
AI 보조 심사와 설계·시공·감리 책임 분담
인공지능(AI)도 법에 들어온다. 허가·신고·용도변경·착공·사용승인 과정에서 누락 사항과 법령 적합성을 AI가 보조적으로 검토하되, 최종 판단과 처분은 행정기관이 맡는 구조다. 협회는 검토 누락과 지역별 행정 편차를 줄일 수 있다고 본다. 지능형건축물 인증은 안전·에너지·편의·AI·로봇 성능을 종합 평가하는 스마트 인증으로 전환하는 방안이 담겼다.
책임 범위도 구체화한다. 설계자에게는 설계도서를 총괄 작성·조정할 권한과 법령 적합성 확인 의무를, 시공자에게는 시공 품질과 현장 안전, 위험공정 관리를 부여한다. 공사감리는 상주감리와 수시(비상주)감리로 나눠 시정·공사중지·자료요구 권한까지 규정한다. 건축협정·결합건축·특별건축구역의 제안 동의율은 전체 동의에서 4분의 3 동의로 완화하는 안이다.
토론장의 반응과 남은 과제
2부 토론에서 서울시 노경래 건축기획과장은 지자체도 건축법을 바꿔야 한다는 점에 공감하지만 “각론으로 들어가면 약간의 괴리가 있다”고 밝혔다. 윤혁경 건축사는 건축 전문가와 일반 건축주가 같은 법을 함께 보게 돼 있는 현행 방식이 문제라며, 일반 국민을 위한 행정절차 체계와 전문가 제도를 이원화하자고 제안했다.
이날 제시된 것은 협회 차원의 개정안이어서 입법까지는 갈 길이 멀다. 10월 21일 오.건.이에서 58개 조문으로 출발한 건축법, 64년 만에 전면 재설계 논의로 예고된 토론회가 실제로 구체적 조문 구조를 내놓은 첫 자리인 셈이다. 사전검토 전환과 AI 보조 심사처럼 허가 실무를 바꾸는 항목이 국회 논의에서 어디까지 살아남을지가 관건이다.
이 기사는 아래 원문 보도를 참고해 PHM ZINE이 새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사진과 자세한 내용은 원문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