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실에 비상구가 있다? 김민의 동두천 집, 불편이 만드는 생활

배우 김민의 동두천 집은 문을 열기 전부터 질문을 던진다. 지난 10월 2일 MBC ‘나 혼자 산다’에서 공개된 이 집은 1938년쯤 지은 구옥으로, 침실 구석 작은 문에는 ‘비상구’ 표지가 붙어 있고 전구는 마당 수풀 속 발전기 줄을 당겨야 켜진다. 방송 화면에 담긴 하루가 그렇다.

혼자 산 지 28년, 그중 8년을 영국·뉴질랜드·호주를 떠돌며 보낸 사람이 고향 동두천에 돌아와 월세로 살며 조금씩 고쳐 쓰는 집이다. 집이라기보다 한 사람의 이동 경로가 그대로 굳어 버린 지도에 가깝달까. 그 지도를 공간의 언어로 읽어 보면, 불편을 일부러 남겨 둔 집이 사는 사람의 몸과 습관을 어떻게 바꾸는지가 보인다.

진입로에서 본 김민 동두천 구옥과 마당 전경
출처: MBC ‘나 혼자 산다’

1938년의 구옥을 월세로 고쳐 쓴다는 것

이 집은 가족끼리 오래 가깝게 지내 온 형의 집이고, 김민은 여기에 월세를 내고 산다. 블루 지붕을 얹은 단층 본채 옆으로 야자수와 산을 그려 넣은 창고가 서 있고, 그레이 함석 담장이 마당을 둘러싼다. 창고 벽의 그림은 직접 그렸느냐는 질문에 본인이 그렇다고 답했다. 마당엔 샌드백과 짚 파라솔, 나무 팔레트 몇 단이 놓여 있어서 집이라기보다 작은 캠프장처럼 읽힌다.

재미있는 건 고치는 방식이다. 이 집에는 갈아엎은 흔적이 거의 없다. 바닥이 갈라지면 메우고, 비어 있는 벽에는 그림을 그리고, 천장은 천으로 덮는다. 구조와 설비는 그대로 두고 표면에서 해결하는, 세입자가 할 수 있는 최대치의 리모델링이다. 배우가 되기 전 건축 일을 했다는 본인 이력이 이런 손에 익은 보수와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남의 집을 고쳐 쓸 때는 넘지 말아야 할 선이 있다. 벽을 헐거나 배관·전기 배선을 새로 따는 일은 집주인 동의와 원상복구 문제가 따라오고, 80년이 넘은 집이라면 어느 벽이 하중을 받는지조차 확인하기 어렵다. 이 집이 ‘덮고, 메우고, 그리는’ 선에서 멈춘 건 그런 의미에서 꽤 현명한 선택이다. 월세 구옥을 고쳐 쓰려는 사람이라면 이 경계부터 기억해 두는 게 좋다.

알록달록한 천과 쿠션으로 감싼 김민 침실과 핑크 커튼 창
출처: MBC ‘나 혼자 산다’

침실이 동굴이다? 차 뒷좌석을 옮겨 온 방

침실은 이 집에서 가장 이상하고, 동시에 가장 이해가 되는 방이다. 레드·핑크·퍼플 계열의 천이 천장과 벽을 겹겹이 덮고, 바닥엔 패턴이 제각각인 이불과 쿠션이 산처럼 쌓여 있다. 창도 핑크 커튼으로 가려 빛이 천을 한 번 거쳐 들어온다. 방 안에 또 하나의 방, 텐트를 친 셈이다.

사연을 들으면 구조가 읽힌다. 외국에 살 때 차에서 지낸 적이 있는데, 뒷좌석에 매트리스를 깔고 창문에 알록달록한 천을 걸어 두고 살았다고 한다. 그때 기분이 너무 좋아서 그 느낌을 그대로 침실에 옮겨 왔다는 설명이다. 그러니까 이 방의 어둠은 분위기를 내려고 조도를 낮춘 간접 조명식 어둠과는 결이 다르다. 몸이 기억하는 크기, 차 한 대 분량의 아늑함을 다시 만든 결과다.

사람은 등 뒤가 막히고 시야가 좁게 닫힌 자리에서 안정을 느낀다. 아이들이 식탁 밑이나 이불 텐트로 기어드는 것과 같은 원리다. 이 방이 낮에도 동굴처럼 어두운 건 취향이라기보다 몸이 안심하는 크기를 찾아간 결과로 짐작해 볼 수 있다. 문제는 이 감각이 집 전체로 번질 때다. 앞서 소개한 〈낮에도 커튼을 닫는다? 빛이 없는 생활공간, 취향이 아닌 행태에 대한 영향력〉에서 짚었듯, 빛을 막은 공간에 오래 머물수록 바깥과의 거리는 더 멀어진다. 다행히 이 집은 동굴을 침실 한 칸에 가둬 두었다. 동굴이 필요하다면 이렇게 방 하나로 한정하는 게 맞다.

천 사이로 드러난 김민 침실의 엮은 천장 마감재
출처: MBC ‘나 혼자 산다’

동굴은 침실에만, 천은 불에 강한 것으로

침실 천 사이로 고개를 들면 뜻밖의 장면이 나온다. 천장 일부가 걷힌 자리에 엮은 천장 마감재가 그대로 드러나 있다. 옛 천장이 어떤 재료로 마감됐는지 엿보이는 대목이라 그 자체로 볼거리지만, 인테리어 관점에선 걱정도 함께 보인다. 그 아래로 천이 늘어지고, 천 한가운데 작은 샹들리에가 매달려 있기 때문이다.

천을 많이 쓰는 방에서 제일 먼저 챙길 건 열원과의 거리다. 전구가 천에 닿거나 가까우면 오래 켜 둘수록 위험해진다. 이런 방이라면 발열이 적은 LED 전구로 바꾸고, 걸어 둔 천은 방염 처리된 원단으로 바꾸는 게 첫 순서다. 천을 고정할 땐 조명 기구 주변을 한 뼘 이상 비워 두는 것만으로도 위험이 크게 준다.

마감이 걷혀 드러난 천장은 단열 면에서 약점이 되기 쉽다. 오래된 집의 천장은 겨울 열이 가장 많이 빠져나가는 통로인데, 지금은 겹겹이 걸린 천이 일종의 임시 단열층 노릇을 하고 있는 셈이다. 집주인과 협의해 손을 볼 수 있다면 천장 위에 단열재를 채우고 방습층을 깐 뒤, 드러난 마감재 일부만 남겨 옛 흔적과 성능을 함께 챙기는 방법이 있다. 천은 먼지와 습기를 잘 머금으니 떼어 빨 수 있게 고리나 집게로 거는 것도 구옥에서는 생활의 기술이다.

침실과 거실 사이 작은 문 위에 붙은 비상구 표지판
출처: MBC ‘나 혼자 산다’

비상구 표지가 붙은 문, 몸을 숙여야 바깥이다

침실과 거실 사이에는 허리를 숙여야 지나갈 수 있는 작은 문이 있고, 그 위에 진짜 ‘비상구’ 표지판이 붙어 있다. 거실 쪽 다른 문에는 ‘관계자 외 출입금지’ 표지도 보인다. 공공건물에서 떼어 온 듯한 이 표지들은 농담처럼 보이지만, 공간이 어떻게 쓰이는지를 꽤 정확하게 말해 준다.

낮은 문은 지나가는 사람의 몸부터 바꾼다. 다실의 낮은 출입구가 손님을 몸 숙이게 만들어 바깥의 소란을 내려놓게 하듯, 높이가 낮은 문은 지나가는 사람의 자세를 바꾸고 그 자세가 마음가짐을 바꾼다. 이 집의 작은 문도 비슷하게 작동한다. 침실이라는 은신처와 거실이라는 일상 사이에 몸으로 넘어가야 하는 문턱을 하나 더 세운 것이다. 아침마다 그 문을 숙여 나오는 동작이 일종의 기상 의식이 되는 셈이랄까.

따라 해 보고 싶다면 문 크기를 바꿀 필요까진 없다. 침실 입구에 두꺼운 커튼 한 겹을 달거나, 침실 바닥만 한 단 올려 ‘들어간다’는 감각을 만드는 것만으로도 방의 성격이 또렷해진다. 원룸이라면 침대 머리맡에 낮은 책장이나 패브릭 파티션을 세우는 정도가 현실적인 대안이다. 방을 가르는 건 결국 벽 두께보다 몸이 느끼는 문턱 쪽이다.

천장에 야자수 패턴 천을 펼친 김민 집 거실과 스피커·건반
출처: MBC ‘나 혼자 산다’

거실은 밝게, 패턴은 한 군데에만

작은 문을 나서면 거실은 의외로 평범하다. 창 두 개로 빛이 들고, 짙은 원목 장식장 위에 TV와 모니터 스피커, 건반이 놓였다. 맞은편엔 버튼 장식이 들어간 브라운 가죽 소파와 조각 장식 앤티크 테이블, 핑크 곰 인형이 자리를 잡았다. 그런데 천장을 보면 다시 이 집답다. 야자수 그림이 프린트된 대형 천을 천장에 텐트처럼 펼쳐 놓았다.

거실의 아쉬움은 ‘많다’는 데 있다. 천장의 야자수 프린트, 바닥의 클래식 문양 러그, 벽의 액자, 원목·가죽·플라스틱 소품이 한 시야 안에서 동시에 말을 건다. 패턴과 오브제는 서로 경쟁할수록 각자의 존재감이 약해지고, 무엇보다 천장에 큰 그림이 걸리면 실제보다 천장이 낮아 보인다. 오래된 단층집은 대개 층고가 넉넉하지 않으니 이 손해가 더 크다.

방법은 선택과 집중이다. 이 거실의 주인공을 야자수 천으로 정했다면 러그는 무지 톤으로 바꾸고, 러그를 살리고 싶다면 천장은 비워 화이트 면으로 두는 게 낫다. 가구는 이미 짙은 원목과 브라운 가죽이라는 같은 계열을 갖고 있으니, 플라스틱 수납함 같은 이질적인 소품만 덜어내도 앤티크 무드가 한결 또렷해진다. 침실이 동굴이라면 거실은 반대로 밝고 비어 있어야 두 공간 모두 제 역할을 한다.

옷 행거와 레드 패턴 벽지로 채운 김민 동두천 집 드레스룸
출처: MBC ‘나 혼자 산다’

옷이 넘치는 방엔 행거보다 순환이 필요하다

침실 옆 방 하나는 통째로 드레스룸이다. 레드 패턴 벽지와 옐로우 벽 사이로 옷 행거가 줄지어 섰고, 옐로우·블랙 줄무늬 털 소재 옷과 원색 셔츠, 모자와 액세서리 바구니가 빈틈없이 들어찼다. 해외를 떠돌다 보니 옷이 많아졌다는 설명처럼, 옷 하나하나가 어느 도시의 기억을 붙들고 있는 아카이브에 가깝다.

물건이 많다는 것 자체는 흠이 아니다. 아쉬운 건 ‘보이는 수납’만 있다는 점이다. 행거에 걸린 옷은 먼지와 빛에 그대로 노출되고, 구옥의 습기까지 더해지면 섬유가 상하기 쉽다. 특히 오래된 집의 외벽 쪽은 겨울에 결로가 잘 생기니 행거를 벽에서 한 뼘쯤 띄워 두는 것만으로도 곰팡이 위험이 준다. 이런 방에선 제습기 한 대가 옷값을 지키는 가장 싼 보험이다.

양이 문제라면 수납 가구를 늘리기보다 순환 규칙을 만드는 편이 효과가 크다. 〈드레스룸이 두 개인데도 옷이 넘친다? 수납의 기술이 아니라 순환의 습관에 대한 문제〉에서 다뤘듯, 계절이 지난 옷은 뚜껑 있는 박스로 빼고 지금 입는 옷만 행거에 남기는 식이다. 행거 앞에 천 한 장만 드리워도 시각적 소음이 줄어든다. 천을 다루는 감각이 이미 탁월한 집이니, 이 방에서는 그 재주를 ‘가리는 데’ 써 볼 만하다.

수풀 속 비닐을 씌운 발전기를 켜는 모습
출처: MBC ‘나 혼자 산다’

줄을 당겨야 불이 켜지는 집, 빛은 나눠서 아껴 쓴다

방송 화면대로라면 이 집의 하루는 발전기 시동으로 시작한다. 마당 수풀을 헤치고 비닐을 씌운 발전기 앞에 서서 줄을 당기면, 그제야 침실 샹들리에와 거실 전구에 불이 들어온다. 물도 펌프로 지하수를 끌어올려 쓰는데, 발전기 하나가 펌프까지 함께 돌리다 보니 샤워하는 동안 전구가 깜빡이기도 한다.

조명 관점에서 이 집의 빛은 ‘한 방에 전구 하나’ 구조다. 조명은 공간 전체를 밝히는 전반 조명, 책상·조리대를 비추는 작업 조명, 분위기를 만드는 연출 조명 세 겹이 겹칠 때 깊이가 생긴다. 이 집은 침실 샹들리에가 연출을, 거실 천장등이 전반을 맡고 작업 조명은 거의 비어 있다. 전력이 한정된 집일수록 이 세 겹을 저전력으로 나눠 까는 게 핵심이다. 2700~3000K 웜톤 LED 전구로 통일하고, 독서용 스탠드나 주방 하부장 아래 라인 조명은 충전식 제품으로 따로 두면 발전기 부하를 늘리지 않고도 필요한 곳만 밝힐 수 있다.

발전기 생활엔 놓치기 쉬운 함정도 있다. 엔진 발전기는 반드시 바깥, 창과 문에서 떨어진 곳에 두어야 하고 집 안에는 일산화탄소 경보기를 다는 게 기본이다. 연료는 집과 떨어진 그늘에 보관하고, 지하수를 마시는 용도로 쓴다면 정기적인 수질 검사가 필요하다. 낭만은 이런 안전장치를 깔아 둔 다음에야 오래간다.

시멘트로 메운 뒤 표면에 무늬를 그은 마당 바닥
출처: MBC ‘나 혼자 산다’

구옥의 갈라진 바닥은 메우고, 젖는 벽은 말려야 한다

마당 쪽 바닥이 여기저기 갈라져 떨어져 나가자, 김민은 시멘트 포대를 뜯어 물과 섞고 직접 비벼 구멍을 메웠다. 갈라진 곳이 많아 고쳐 가며 산다는 말 그대로다. 굳기 전 표면에 손으로 무늬를 긋는 장면도 보인다. 보수가 곧 이 집에 자기 흔적을 남기는 일이기도 한 셈이다.

오래된 집의 균열은 대개 증상이지 원인이 아니다. 뒷문 현관 쪽 벽을 보면 마감이 군데군데 벗겨져 속살이 드러나 있는데, 이런 박리는 땅에서 올라오는 습기나 빗물이 벽을 타고 들어올 때 흔히 생긴다. 겉을 시멘트로 덮으면 당장은 깔끔하지만, 물길을 그대로 두면 같은 자리가 다시 갈라진다. 땜질에 앞서 낙숫물이 어디로 떨어지는지, 바닥 기울기가 집 쪽으로 물을 모으지 않는지부터 보는 게 순서다.

리노베이션급으로 가 본다면 이 집에서 손댈 곳은 셋이다. 벽체 하단의 방수와 배수 정리, 외벽 쪽 방의 내단열 보강, 그리고 열이 가장 많이 새는 낡은 창호 교체다. 셋 다 비용이 적지 않고 월세 집이라 집주인과의 협의가 전제되지만, 사는 사람이 바뀌어도 남는 공사라는 점에서 설득할 여지는 있다. 세입자 선에서 할 수 있는 건 창에 단열 필름과 문풍지를 붙이고, 외벽 쪽 가구를 벽에서 띄우는 정도다.

밤이 되자 창에 불이 들어온 김민 동두천 집 원경
출처: MBC ‘나 혼자 산다’

불편을 남겨 둔 동두천 구옥이 사람에게 하는 일

해가 지면 이 집은 창 몇 개만 밝혀 둔 채 숲에 묻힌다. 외등 하나와 창에서 새어 나오는 빛이 전부다. 도시의 집이라면 결함으로 꼽힐 조건들, 그러니까 줄을 당겨야 켜지는 전기와 펌프로 퍼 올리는 물, 손으로 메워야 하는 바닥이 이 집에선 하루를 움직이는 동력이 된다.

김민은 스튜디오에서 삶이 약간 부족해야 더 행복한 것 같다고 말했다. 공간이 사람을 바꾼다는 말은 보통 넓고 편한 집을 두고 하지만, 이 집은 반대 방향에서 같은 말을 증명한다. 모든 게 버튼 하나로 해결되는 집에서는 몸이 집에 관여할 일이 없다. 반면 이 집은 아침마다 문을 숙여 나오게 하고, 마당까지 걸어가 발전기 줄을 당기게 하고, 갈라진 바닥을 직접 비비게 만든다. 집이 요구하는 작은 수고가 쌓여 그 사람의 리듬이 된다.

물론 이 방식을 그대로 따라 할 이유는 없다. 겨울 난방과 안전, 습기라는 현실은 낭만보다 집요하다. 그래도 가져갈 만한 건 분명하다. 몸이 안심하는 방 하나를 갖는 것, 그 방과 일상 사이에 문턱을 세우는 것, 그리고 집의 일부를 내 손으로 고칠 수 있게 남겨 두는 것. 1938년의 구옥이 지금 한 사람에게 맞춰지는 방식은 생각보다 훨씬 구체적이다.

Designer김민(셀프 리모델링)
PhotosMBC 나 혼자 산다
Category셀럽 주택, 구옥
Country대한민국
Location경기 동두천시
Year1938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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