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리얼 공장 안에서 산다면 어떤 집이 나올까. 호주 서부 노스 프리맨틀에는 1930년대에 Weeties 시리얼을 만들던 벽돌 창고가 서 있고, 그 안에 원형 실내 수영장까지 들인 공장 개조 주택이 들어와 있다.
공장 개조 주택이라는 말만 들으면 흔한 로프트를 떠올리기 쉽다. 이 집은 사정이 조금 다르다. 문화재로 지정된 이 건물은 1990년에 13세대 아파트로 바뀌었고, Spaceagency는 그중 세 채를 터서 한 가족의 집으로 합쳤다. 잘게 쪼개져 어두운 미로가 된 옛 공장 안쪽을 다시 큰 덩어리로 되돌려 놓은 셈이다. 연면적은 424m²다.

간판이 그대로 남은 벽돌 공장, 겉은 건드리지 않았다
집 앞 길에서 올려다보면 이곳이 주택이라는 사실을 알아채기 어렵다. 적벽돌 벽에는 옛 시리얼 브랜드의 간판이 여전히 걸려 있고, 블랙 스틸 프레임 창과 레드 문이 벽돌 색과 맞물려 있다. 건물의 얼굴이 곧 동네의 기억이라서 손댈 수 있는 여지가 적었을 것이다.
그래서 설계팀은 밖에서 보이는 것을 지키는 쪽을 택했다. 북쪽과 남쪽 박공벽에는 원래 있던 개구부 패턴을 되살리고 새 스틸 스크린을 끼웠다. 단층 날개 부분의 골함석 지붕은 걷어내되 구조는 남겼고, 같은 골 모양의 천공 알루미늄 판을 새로 얹었다. 멀리서 보면 지붕 형태가 그대로인데 가까이서는 그늘과 보안을 함께 해결하는 껍데기가 된 것이다.
이런 접근은 어댑티브 리유즈에서 가장 흔하게 통하는 문법이다. 외피는 도시의 자산으로 남기고, 변화는 안쪽에서 일어나게 한다. 이 집이 다른 공장 개조 주택과 갈리는 지점은 그다음, 문을 열고 들어선 뒤부터다.

문을 열면 공장의 5m 층고가 한꺼번에 펼쳐진다
현관을 지나면 옛 공장 공간이 지닌 5m 높이의 볼륨이 그대로 드러난다. 거실과 식당이 이 높은 공간을 함께 쓰고, 벽과 천장은 화이트로 칠한 벽돌과 철골이 맨살로 노출돼 있다. 바닥은 갈아낸 콘크리트, 벽 일부는 재활용 목재로 덮어 차가운 재료 사이에 온기를 끼워 넣었다.
평면에서 눈여겨볼 대목은 서비스 공간을 한 줄로 몰아 넣은 방식이다. 주방·팬트리·세탁실·파우더룸과 수직 배관, 전기 덕트가 하나의 길쭉한 코어에 모여 있고, 그 앞쪽으로 식당과 거실이 자유롭게 펼쳐진다. 조닝을 이렇게 나누면 동선이 코어 한 면을 따라 흐르고, 나머지 공간은 벽에 방해받지 않는 큰 방으로 남는다.
설계팀은 기존 창과 문의 위치가 평면을 좌우하지 못하도록 새 틀을 짰다. 북쪽과 남쪽에는 유백색 유리벽을 벽돌에서 살짝 띄워 세웠다. 벽돌 표면이 유리 뒤에서 그대로 읽히니 오래된 벽이 살아 있는 채로 빛만 걸러 들어오는 구조다.

화이트 스파이럴 계단이 이 집의 얼굴이다
현관에서 시선이 처음 꽂히는 곳은 거실 한가운데의 스틸 스파이럴 계단이다. 화이트로 마감한 계단이 조각처럼 서서 메자닌과 2층으로 이어진다. 직선 박스 같은 공장 공간에 곡선을 한 번 던지는 장치로, 설계팀은 이 계단으로 집을 옛 공장의 기억에서 한 발 떨어뜨리려 했다고 밝힌다.
곡선은 계단에서 끝나지 않는다. 메자닌의 난간, 실내 안뜰의 원형 수영장까지 원과 곡면이 반복되면서 직선의 벽돌 상자를 눌러 준다. 직선과 곡선이 맞붙으면 서로를 더 또렷하게 만든다는 원리를 집 전체에 적용한 셈이다.
이 계단을 두고 설계팀이 쓴 표현이 재미있다. 집 전체를 놓고 100퍼센트 장난기라고 말하는데, 실제로 화이트 계단 옆에 놓은 오렌지 톤 의자와 곡선 소파가 그 말에 무게를 싣는다. 진지한 문화재 건물 안에서 이렇게 가볍게 노는 집은 흔치 않다.

22명이 앉는 8m 테이블이 곧 주방 아일랜드다
주방에는 길이 8m의 목재 아일랜드 벤치가 주방과 나란히 놓여 있다. 이 벤치는 평소엔 조리대이고, 손님이 오면 22명이 앉는 식탁으로 바뀐다. 설계팀이 이 집을 엔터테이닝을 위한 공간이라고 소개하는 이유가 이 가구 하나에 담겨 있다.
뒤쪽 벽은 블랙 목재로 마감해 밝은 나무 다리와 강한 대비를 만든다. 기둥과 벽 사이를 가르는 이 어두운 배경이 벤치의 원목 상판을 더 도드라지게 하고, 천장 가까운 곳에는 레드 커튼이 걸려 시선을 위로 끌어올린다.
주방 뒤편 캐비닛은 가전을 안으로 감춘 조인어리로 정리했다. 8m 벤치 하나가 주인공이 되도록 나머지는 조용히 물러난 구성이다. 큰 공간일수록 주인공 가구를 하나로 정해 두면 시선이 산만해지지 않는다.

공장 한가운데에 정원이 생겼다
거실 옆으로는 옆 유닛을 터서 만든 실내 안뜰이 붙어 있다. 큰 스틸 포털 프레임 개구부를 벽돌 벽에 뚫어 거실과 안뜰을 이었고, 안뜰 위에는 투명한 골함석 알루미늄 지붕을 얹었다. 덕분에 실내 한가운데서도 식물이 자라고 하늘빛이 그대로 떨어진다.
조경은 Dangar Barin Smith가 맡았다. 그린 계열 잎이 큰 식물이 벽돌과 스틸 사이에 촘촘히 서 있고, 바닥에는 석재 판을 띄엄띄엄 깔아 걷는 길을 만들었다. 시멘트색 바닥과 화이트 벽 사이에서 식물이 유일한 채도가 된다.
유리로 된 안뜰은 실내 온도를 조절하는 장치이기도 하다. 북쪽 채광정에 환기 팬을 달아 뜨거운 공기가 위로 빠지도록 했다. 여름 열기를 굴뚝처럼 내보내는 이런 방식은 층고가 높은 공장 건물에서 특히 효과가 좋다.

블랙 원형 수영장과 공중에 뜬 메자닌
이 집에서 가장 놀라운 장면은 안뜰 한복판에 자리한 원형 수영장이다. 물 색이 어둡게 보이는 블랙 마감이라 수면이 거울처럼 위쪽 빛을 되받는다. 거실에서 이 수영장이 들여다보이도록 창을 냈고, 메자닌에서는 아래로 내려다볼 수 있다.
메자닌은 기존 철골 구조에 매달려 있다. 아래에 기둥을 세우지 않고 위에서 당기는 방식이라 1층 거실이 기둥 없이 트인다. 이 곡선 메자닌에는 서재와 놀이방, 욕실, 게스트룸이 들어 있어서 집의 사교 공간이 한꺼번에 위층으로 올라간 모양새다.
수영장과 정원, 계단, 메자닌이 모두 한 시선 안에 들어오다 보니 집 안 어디에 있어도 다른 층의 기척이 느껴진다. 타이폴로지로 보면 공장의 큰 방을 남긴 채 그 안에 작은 집을 여러 개 끼워 넣은 구성이다.

레드 카펫을 깐 서재와 게스트룸
메자닌의 서재에는 벽을 따라 캔틸레버 목재 데스크가 길게 나와 있다. 바닥에는 진한 레드 카펫이 깔렸고, 같은 색 커튼이 난간을 따라 걸려 있다. 화이트 벽과 철골의 공장 공간에서 레드는 이 층 하나를 구분하는 색이 된다.
게스트룸은 극장 무대 같은 러스트 톤 커튼으로 둘러싸여 있다. 설계팀은 이 방을 두고 손님에게 레드 카펫을 깔았다고 표현한다. 방이 커튼으로 열고 닫히기 때문에 손님이 없을 때는 메자닌이 하나의 큰 공간으로 남는다.
이 층에는 서재 옆으로 놀이방도 함께 들어가 있다. 기둥 없이 매달린 메자닌이라 아래 거실과 시선이 자연스럽게 이어지고, 5m 층고의 공장이 가진 열린 볼륨을 그대로 활용한 구성이다.

블랙 목재 침실, 거친 벽돌과 마주 세웠다
침실이 있는 2층은 분위기가 확 달라진다. 주침실은 그을린 듯한 블랙 목재 벽으로 감싸고, 그 맞은편에는 거친 원래 벽돌을 그대로 노출했다. 화이트로 가득한 아래층과 다르게 어둡고 아늑한 층이 위에 얹힌 셈이다.
마감 재료의 조합이 볼만하다. 벽과 바닥에는 재활용한 자라 목재를 쓰고, 주침실 스위트에는 Grigio Carnico 대리석을 넣었다. 거친 벽돌과 매끈한 대리석이 맞붙으면 서로의 질감이 더 강해진다. 여기에 드레싱룸과 욕실이 딸린 넓은 주침실 스위트가 이어진다.
침실 위 작은 다락에는 옛 공장의 목재 호이스트 구조가 그대로 남아 있다. 창고에서 물건을 끌어 올리던 장치를 철거하지 않고 방 안에 품었고, 위쪽 고측창으로는 항구가 내다보인다. 이런 디테일이 이 집을 새 집이 아니라 오래된 건물의 새 층으로 읽히게 한다.

욕실마다 다른 표정, 테라조와 글라스 모자이크
이 집의 욕실은 하나같이 성격이 다르다. 파우더룸은 올블랙 글라스 모자이크로 감쌌고, 손님 욕실은 올화이트 글라스 모자이크로 마감했다. 아이들 욕실은 핑크와 레드, 캐러멜 컬러를 함께 써서 장난스럽다.
가장 눈에 띄는 곳은 카옌 컬러 테라조 욕실이다. 벽 전체를 매운 고추 같은 레드 톤 테라조로 덮고 그 위에 화이트 욕조를 앉혔다. 색이 강할수록 재료 표면이 단순해야 한다는 원칙을 잘 지켰다. 오렌지와 골드 계열 세면대 수납장, 블랙 대리석 상판 욕실도 함께 있어서 욕실만 돌아봐도 작은 쇼룸을 구경하는 기분이다.
주침실에는 사우나처럼 쓰는 스팀 샤워도 숨어 있다. 화이트 모자이크 타일로 마감한 좁은 방이라 눈에 잘 띄지 않지만, 사용해 보면 이 집에서 가장 고급스러운 구석이 아닐까 싶다.

원형 천창 하나가 만드는 빛
테라조 욕실 천장에는 원형 천창이 뚫려 있다. 천창 안쪽 면을 테라코타 컬러로 칠해 놓아, 낮 동안 하늘빛이 이 색 벽면을 한 번 튕긴 뒤 욕실로 내려온다. 한 번 반사된 빛이라 부드럽고 따뜻한 색조를 띠는 것이 특징이다.
이 집 전체가 빛을 다루는 방식은 일관되다. 북쪽과 남쪽 벽에는 유백색 반투명 유리를 세워 빛을 확산시키고, 안뜰 위에는 투명 골함석 지붕을 얹었다. 욕실에는 세면대 옆에 라인 조명을 넣어 거울 앞을 밝혔다. 자연광은 확산시키고 인공광은 국부적으로 쓰는, 전반·국부·연출의 세 겹 구조다.
조명 계획에서 흔히 놓치는 원칙이 있다. 직접광 하나로 방 전체를 밝히면 그림자가 진해지고 눈이 피로해진다. 반투명 마감이나 간접광으로 빛을 한 번 걸러주면 같은 밝기여도 실내가 넓고 차분해 보인다. 채광이 깊은 방이나 북향 공간이라면 젖빛 유리 파티션을 넣거나, 욕실 거울 주변에 2700~3000K 웜톤 라인 조명을 더해 보길 권한다. 디머가 달린 조명 하나만 추가해도 아침과 밤의 분위기를 따로 조절할 수 있다.

문화재 건물 안에서 집을 식히는 법
문화재로 지정된 건물이라 지붕 겉모습을 바꿀 수 없다. 대신 설계팀은 지붕 안쪽에서 성능을 끌어올렸다. 기존 지붕 아래에 단열재를 새로 채우고, 새 창에는 고성능 유리를 적용해 열과 소음을 함께 잡았다.
북쪽 채광정에는 환기 팬이 달린 열 굴뚝을 만들어 자연 환기를 돕는다. 여기에 냉난방 겸용 에어컨과 천장 팬, 바닥 난방을 함께 써서 높은 공간에서도 온도를 고르게 유지한다. 문화재 건물의 개조에서 흔히 부딪히는 문제, 즉 높은 층고와 얇은 지붕이 만드는 열 손실을 여러 장치를 겹쳐 해결한 사례다.
시공은 Assemble Building Co, 구조 설계는 Hera Engineering이 맡았다. 설계를 이끈 Spaceagency는 2000년 Michael Patroni가 프리맨틀에서 세운 사무소로, 이 집은 2023년에 마무리됐다.
비슷한 어댑티브 리유즈의 다른 결도 궁금하다면 타일 창고를 건축학교로 바꾼 Lesley Lokko의 아크라 리노베이션이 좋은 짝이다. 철거 위기를 넘기고 원형을 복원한 Hunt House와 견주어 보면, 오래된 건물을 어떻게 다시 쓰느냐에 따라 집의 성격이 얼마나 달라지는지 알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