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드리드 남쪽, 문 닫은 모피 가게가 있던 자리에 BURR가 74m² 스플릿 플로어 집 Benito를 완성했다. 지하주차장으로 차가 지나다니도록 뚫려 있던 1.8m 높이의 통로 하나가 이 집의 평면 전체를 결정지었다.
거리 쪽 4m 층고의 좁은 띠와, 그보다 1.8m 높은 메자닌 띠. 폭이 같은 두 개의 긴 공간이 나란히 붙어 L자형 볼륨을 만들었고, 두 층을 어떻게 잇느냐가 이 리모델링의 전부나 다름없었다.

낡은 모피 가게, 마드리드 스플릿 플로어 집이 되다
원래 이 자리는 오래전 문을 닫은 모피 가게였다. 지하주차장으로 향하는 차량이 지나다닐 수 있도록 건물 한쪽에 낮은 통로를 뚫어둔 탓에, 실내 층고가 구간마다 들쭉날쭉했다. BURR는 이 불리한 조건을 지우는 대신 그대로 두 사람을 위한 집의 구조로 삼았다. 거리에 면한 낮은 층과 안쪽의 높은 메자닌이 계단 하나로 이어지며 74m² 스플릿 플로어 주택이 완성됐다.

차고 통로였던 단차가 만든 L자형 평면
평면은 폭이 똑같은 두 개의 긴 띠로 나뉜다. 거리 쪽 띠는 4m 층고를 그대로 살렸고, 안쪽 띠는 예전 차량 통로 때문에 바닥이 1.8m 위로 올라간 메자닌이 됐다. 두 띠가 만나는 지점에서 단면이 L자로 꺾이고, 그 꺾인 지점을 오르내리는 계단이 집 전체의 동선을 쥐고 있다. 74m²라는 작은 면적 안에서 층고 차이를 감추지 않고 오히려 공간감을 만드는 재료로 쓴 셈이다.

책장 뒤에 숨은 콘크리트, 건물의 역사를 남기다
메자닌 복도 한가운데 노출된 콘크리트 기둥은 철거하지 않고 그대로 두었다. 새로 짠 자작합판 책장이 그 옆을 지나가며 오래된 구조체와 새 마감을 나란히 보여준다. 화이트 철제 난간은 얇게 그어 아래층 주방까지 시선이 뚫리게 했고, 그 덕에 좁은 복도인데도 답답한 느낌이 없다. 기존 구조의 흔적을 지우기보다 남겨서 보여주는 쪽을 택한 결과다.

계단 밑에 화장실까지, 수납이 곧 구조다
가장 공들인 부분은 계단이다. 계단 아래 삼각형 공간마다 계단 각도를 그대로 따라가는 사선 문을 달아, 가전제품과 식료품, 청소도구는 물론 비행기 화장실만 한 크기의 손님용 화장실까지 숨겨 넣었다. 문을 닫으면 계단만 보이고 수납은 흔적도 남지 않는다. 계단 하나로 수납 문제를 해결한 사례는 런던의 Stocke Home에서도 볼 수 있는데, 두 집 모두 벽을 세우는 대신 동선의 중심에 기능을 몰아넣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천장의 배관을 감춘 반원통형 볼트
거리 쪽 공용 공간 천장에는 여러 세대가 공유하는 배관이 제각각 다른 높이로 지나갔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반원통형 볼트 천장을 통째로 얹어 배관을 감췄다. 볼트는 소음을 줄이는 효과도 있지만, 무엇보다 좁고 낮았을 공간에 뜻밖의 볼륨감을 준다. 스테인리스 아일랜드 식탁과 화이트 진열장이 이 볼트 아래 나란히 놓여 소박한 재료들 사이에서 유일하게 극적인 제스처로 남았다.

U자형 동선으로 나뉘는 공과 사
현관은 거리 쪽 낮은 층에서 시작해 계단을 따라 메자닌으로 올라간 뒤, 다시 정면 파사드 쪽으로 돌아오는 U자형 동선을 그린다. 오르는 동안 자연스럽게 공용 공간에서 사적인 공간으로 옮겨가는 단계가 생긴다. 메자닌에 올라서면 파스텔 블루 의자와 크림색 패브릭 소파가 놓인 거실이 나오는데, 여기까지가 손님을 들일 수 있는 마지막 지점이다.

브라운 우드와 파스텔 블루가 만든 대비
거실 안쪽 벽은 자작합판을 브라운 톤 그대로 세워 마감했다. 나머지 벽과 천장은 전부 화이트나 베이지로 통일했기 때문에, 이 브라운 월 하나가 공간의 방향을 잡아주는 기준점 역할을 한다. 둥근 형태의 파스텔 블루 의자와 흑백 사진 액자들이 그 앞에 편하게 기대어 있어, 정돈된 구조 안에서도 사는 사람의 취향이 드러난다.

핑크 침구로 마무리한 침실
메자닌 가장 안쪽에 자리한 침실은 집에서 유일하게 문으로 완전히 닫히는 공간이다. 침대 머리맡은 콘크리트 기둥과 나란히 붙였고, 난간 너머로는 아래층 진열장이 그대로 내려다보인다. 핑크 컬러 침구가 브라운 합판 벽과 대비를 이루면서 집 전체의 절제된 톤에 유일하게 생기를 더한다.

옷장 사이에 숨은 욕실 입구
침실 한쪽 벽은 천장까지 닿는 붙박이 옷장으로 채웠다. 여닫이문 하나가 실은 욕실로 통하는 입구라는 사실은 열어보기 전까지 알아채기 어렵다. 서랍과 여닫이 도어를 같은 브라운 합판으로 맞춰 짜, 수납 가구 전체가 하나의 벽처럼 읽히게 만든 디테일이다.

안뜰과 테라스로 열리는 두 개 층
두 층 모두 바깥으로 열려 있다는 점도 이 집의 중요한 조건이다. 층고가 높은 아래층은 이웃과 공유하는 안뜰로, 메자닌은 이 집만 쓰는 프라이빗 테라스로 각각 연결된다. 옐로우 컬러 접이식 체어와 커다란 화분을 내놓은 테라스는 타일로 마감한 니치 안에 들어앉아 마드리드 골목의 낡은 벽돌 건물들을 그대로 마주 본다. 양쪽 파사드에 다 열리는 구조 덕분에 맞통풍이 저절로 이뤄지고, 벽을 거의 세우지 않은 평면이 실제 면적보다 넓게 느껴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스페인의 오래된 구조체를 살려 새 쓰임을 더한 사례는 암벽 동굴 속에 들어앉은 스페인 주택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그릇장 하나에 담긴 취향
거리 쪽 공용 공간 한쪽 벽은 바닥부터 천장까지 유리 선반으로 채운 진열장이다. 세라믹 그릇과 유리잔, 도예 오브제들이 칸마다 자유롭게 놓여 이 집에 사는 두 사람의 취향을 그대로 보여준다. 벽을 세우는 대신 선반을 세운 선택은, 74m² 안에서 수납과 장식을 동시에 해결하는 이 스플릿 플로어 집의 방식과 다시 한번 맞닿아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