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과 파도가 지붕을 비틀어놓았다, Pāvilosta House

발트해를 마주한 라트비아의 작은 해변 마을 파빌로스타(Pāvilosta)에는, 낡은 헛간들 사이로 슬레이트 지붕이 파도처럼 휘어진 건물 한 채가 서 있다. 현지 건축사무소 Made가 완성한 이 300㎡짜리 별채는 길 건너편 집주인이 손님을 더 넉넉히 맞고 싶다며 지어달라고 한 게스트하우스 겸 응접 공간이다. 침실 네 개와 넓은 거실 겸 다이닝 공간을 새로 들이는 게 목표였다.

건축가는 파빌로스타 특유의 헛간형 건물을 기본 틀로 삼되, 그대로 베끼지 않았다. 대신 이 지역 해안을 끊임없이 깎아내는 바람과 모래언덕의 움직임을 지붕 곡선에 옮겨 담았다. 마을의 오래된 목조 창고들 사이에 놓고 보면 이질감은 없지만, 자세히 보면 지붕선 하나가 통째로 뒤틀려 있다는 걸 알아챌 수 있다.

Pāvilosta House 곡면 지붕 외관 전경
© Jānis Vēveris

헛간을 닮았지만 그대로 베끼지 않은 지붕

Pāvilosta House는 서쪽의 좁은 박공 지붕 동에서 시작해, 대지 모서리를 돌아나가며 북쪽으로 갈수록 넓게 벌어지는 곡면 외지붕 동으로 이어진다. Made의 파트너 Linda Krūmiņa는 이 마을이 거친 바다와 오래된 마을 구조, 전통이 공존하는 독특한 곳이라 설명한다. 새 건물이 기존 건물들의 스케일을 존중하면서도, 클라이언트가 원한 바다와 바람, 모래언덕, 파도의 느낌을 담아야 했다고 말한다. 마치 바람과 물이 오랜 시간 파빌로스타의 모래언덕을 빚어온 것처럼, 지붕의 형태도 그렇게 자연스럽게 휘어지도록 설계했다.

Pāvilosta House 박공면 원형 창
© Jānis Vēveris

원형 창 하나로 마무리한 박공면

서쪽 박공 동의 정면은 세로 방향 목재 사이딩으로 단정하게 마감하고, 그 위에 커다란 원형 창을 하나 뚫었다. 이 둥근 개구부는 집 전체를 관통하는 디자인 모티프로, 동쪽 거실의 큰 포트홀 창부터 가장 서쪽 침실의 작은 원형 창까지 반복해서 등장한다. 곡면 지붕 위로는 자연 슬레이트를 비늘처럼 겹쳐 덮었는데, 빛을 받는 각도에 따라 표면이 다르게 반짝이도록 골랐다고 한다. 셀 수 없이 많은 모델링을 거쳐 이 뒤틀림의 정도를 정했다는 설명이 납득될 만큼, 보는 위치마다 지붕의 표정이 달라진다.

Pāvilosta House 곡면 모서리와 개방형 차고
© Jānis Vēveris

모서리를 돌아나가는 곡면, 클래식카 한 대가 어울리는 차고

건물이 대지 모서리를 감아 도는 지점에는 세로 목재 패널로 완전히 감싼 원통형 볼륨이 자리한다. 이 곡면 벽 안쪽은 빈티지 차량을 세워둘 수 있는 개방형 공간으로 쓰이는데, 유리문을 열면 실내가 그대로 마당과 이어진다. 콘크리트 기초 위에 글루램 목재 프레임을 세우고 그 사이를 CLT(직교집성판) 패널로 채운 구조라, 곡선 형태를 만들면서도 내부는 목재가 그대로 드러나 따뜻한 인상을 준다. 오래된 빨간 클래식카 한 대가 유리벽 너머로 비치는 장면이 이 집의 성격을 가장 잘 보여주는 순간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Pāvilosta House 원형 창과 실내 복도
© Jānis Vēveris

둥근 창 너머로 마을의 옛집이 보인다

곡면을 따라 휘어진 복도 겸 거실 공간은 CLT 목재가 그대로 노출돼 있고, 그 벽면에 커다란 원형 창을 냈다. 창 너머로는 마을에 남아 있는 오래된 목조 가옥이 액자처럼 담긴다. 새 건물과 옛 마을 풍경이 하나의 창 안에서 자연스럽게 만나는 지점이다. 넓게 트인 이 공간은 손님을 맞는 응접실이자 통로 역할을 동시에 하며, 곡선을 따라 걷다 보면 방향 감각이 계속 바뀌는 재미가 있다.

Pāvilosta House 침실과 원형 창
© Jānis Vēveris

침실마다 다른 원형 창, 검게 그을린 헤드보드

서쪽 동에 자리한 네 개의 침실은 모두 옅은 색 원목 마감을 기본으로 하되, 침대 헤드보드 쪽만 검게 그을린 목재로 포인트를 줬다. 방마다 자리한 원형 창의 위치와 크기가 조금씩 달라, 같은 구조의 방이라도 전혀 다른 표정을 갖는다. 창가에는 짙은 색 스톤 상판의 붙박이 벤치를 짜 넣어 수납과 좌석을 겸하게 했다. 바닥은 짙은 스틸 톤의 타일로 마감해, 밝은 목재 벽과 대비를 이루면서도 차분한 분위기를 잡아준다.

Pāvilosta House 세면 공간과 창밖 풍경
© Jānis Vēveris

싱크대 앞에 앉으면 옆집 지붕이 통창 가득 들어온다

욕실 겸 세면 공간은 낮은 창턱의 통창을 그대로 살려, 세면대에 서면 옆집의 주황빛 기와 지붕과 초원이 한눈에 들어온다. 세면대는 짙은 색 목재 캐비닛 위에 콘크리트 볼 형태로 올려, 마감재를 최소화하면서도 존재감은 분명하게 남겼다. 커튼이나 블라인드 없이 창을 그대로 열어둔 것은 이웃과의 거리가 충분히 확보된 마을의 여유 덕분이기도 하다. 사소해 보이는 세면 공간 하나에도 이 집이 풍경을 대하는 태도가 그대로 드러난다.

Pāvilosta House 저녁 무렵 외관
© Jānis Vēveris

해 질 무렵, 곡선 지붕 아래 불이 켜지면

저녁이 되면 곡면 지붕 아래로 낮게 깔린 처마선을 따라 실내조명이 은은하게 새어 나온다. 낮 동안 무채색으로 가라앉아 있던 목재 사이딩과 슬레이트 지붕이 이 시간대에는 한결 부드러운 표정으로 바뀐다. 마당을 사이에 두고 마주한 기존 주택과 이 별채는 서로 다른 채로 남으면서도, 저녁이면 같은 불빛으로 이어진다. 손님을 위해 지은 공간이지만, 결국 이 집 전체의 풍경을 완성하는 마지막 조각인 셈이다.

ArchitectsMade (Linda Krūmiņa)
PhotosJānis Vēveris
CategoryGuest House
CountryLatvia
MaterialsCL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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