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엔 열리고 밤엔 닫히는 쇼윈도, 부처샵 컨버전

이름만 보면 그냥 고기를 팔던 가게였을 이 건물이, 지금은 낮에는 사무실로 밤에는 또 다른 얼굴로 거리와 마주하는 공간이 됐다. 호주 빅토리아주 질롱 웨스트의 오래된 상가 건물 한 칸을 개조해 만든 이 프로젝트는 건축사무소 tsai 디자인이 자기 자신을 위해 벌인 작업이라 더 흥미롭다. 자기네 사무실이자 앞으로 살게 될 집이 될 자리를, 스스로 설계하고 스스로 실험한 셈이다.

전체 계획은 두 단계로 나뉜다. 거리에 면한 앞쪽은 쇼룸 겸 사무 공간으로 먼저 완성했고, 뒤쪽 주거 영역은 다음 단계로 남겨뒀다. 그래서 지금 보이는 결과물은 정확히 말하면 ‘진행 중인 이야기의 앞부분’이랄까, 아직 완결되지 않은 리노베이션의 한 장면이다.

파란 타일 벽과 매달린 식물이 있는 창가 작업 공간에서 건축 모형을 다듬는 모습

파란 타일 벽 앞, 작은 작업대 하나

안으로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허리 높이까지 두른 파란 타일이다. 원래 정육점이었을 때부터 있었을 법한 색이자 질감인데, 철거하지 않고 그대로 살려 새 공간의 배경으로 삼았다. 그 위로는 화이트워시로 마감한 자작합판이 벽을 감싸고, 천장에서는 넝쿨식물이 늘어져 내려온다.

창가에 붙은 둥근 테이블 하나가 이 공간의 성격을 압축해서 보여준다. 사무 공간이라기보다는 작업대에 가까운 크기와 분위기다. 건축 모형을 손으로 다듬는 모습이 그대로 창밖 행인들에게 노출되는데, 이 우연한 전시 효과야말로 설계팀이 의도한 것이기도 하다.

합판 진열장에 늘어선 축소 건축 모형들

합판 진열장에 놓인 그동안의 작업들

벽면 한쪽에는 자작합판으로 짠 얕은 진열장이 자리 잡았다. 선반마다 그동안 이 사무소가 작업했던 프로젝트들의 축소 모형이 늘어서 있다. 문을 열면 안쪽으로 사진과 도면이 붙은 벽이 다시 나타나는 이중 구조라, 여닫는 동작 자체가 하나의 전시 장치처럼 작동한다.

재료를 아끼지 않고 합판 그대로의 질감과 나뭇결, 옹이 자국까지 노출한 방식이 인상적이다. 마감을 감추기보다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태도가 이 사무소의 설계 철학을 가장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라 할 수 있다.

노출된 벽돌벽과 합판 문, 파란 현관문으로 이어지는 복도

벽돌은 벽돌대로, 합판은 합판대로

복도로 들어서면 왼쪽 벽은 페인트 자국과 갈라진 틈이 그대로 남은 오래된 벽돌벽이고, 오른쪽은 새로 짜 넣은 합판 문과 프레임이다. 새것과 헌것을 하나로 뭉뚱그리지 않고 나란히 병치한 방식이 이 리노베이션 전체를 관통하는 원칙이다.

철거 과정에서 나온 자재들도 함부로 버리지 않고 새 기둥이나 프레임으로 재사용했다고 한다. 감추는 대신 드러내는 쪽을 택한 셈인데, 그 결과 복도 하나를 걷는 동안에도 이 건물이 거쳐온 시간의 켜가 자연스럽게 읽힌다. 안쪽 끝에 놓인 파란 현관문은 그 낡은 배경 속에서 유일하게 선명한 색으로, 시선을 거리 쪽으로 끌어당기는 역할을 한다.

곡선으로 마감한 합판 카운터와 녹색으로 칠한 구조 기둥, 가죽 의자가 있는 공간

각진 공간 속 둥근 카운터 하나

직선과 각으로 이뤄진 오래된 상가 구조 안에, 부드럽게 휘어지는 합판 카운터가 끼어들었다. 각진 공간에 놓인 곡선 하나가 동선을 유연하게 풀어주는 동시에, 방문객을 맞는 자리라는 신호를 은근하게 준다.

바로 옆에는 녹색으로 칠한 구조 기둥이 서 있는데, 원래 있던 부재를 그대로 살리면서 색만 새로 입힌 흔적이다. 낡은 것을 걷어내는 대신 손질해서 계속 쓰는 태도가 여기서도 반복된다. 가죽을 씌운 사무용 의자 두 개가 놓인 걸 보면, 이 자리가 손님을 응대하는 자리이자 동시에 실무 공간이라는 이중의 쓰임을 갖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벗겨진 회벽에 무드보드 사진이 붙어 있고 책상에 모니터가 놓인 업무 공간

낡은 벽이 그대로 무드보드가 되다

사무실 안쪽 벽은 아예 손대지 않았다. 오랜 세월 켜켜이 앉은 얼룩과 벗겨진 자국이 그대로 남아 있고, 그 위에 참고 이미지와 자재 사진들을 핀으로 꽂아 무드보드처럼 활용한다. 새로 벽지를 바르거나 도장을 했다면 얻을 수 없었을 질감이다.

모니터와 키보드가 놓인 책상은 지극히 평범한 업무용 가구이지만, 뒤에 놓인 낡은 벽과 대비되면서 공간 전체에 시간의 층위를 더한다. 실무를 보는 자리와 옛 건물의 흔적이 한 프레임 안에서 자연스럽게 공존하는 방식이 이 사무소다운 절충이라 할 만하다.

여성이 테이블 위에 마감재 샘플을 배치하는 모습, 뒤로 사진들이 핀으로 고정되어 있다

재료를 직접 만지고 고르는 자리

넓은 원목 테이블 위에 색과 질감이 다른 마감재 샘플 몇 장이 놓여 있고, 그 앞에서 재료를 이리저리 배치해보는 모습이 포착됐다. 화면 속 렌더링이 아니라 실물을 직접 만져보고 나란히 놓아보며 결정을 내리는 과정이 그대로 드러난다.

등 뒤로는 앞서 본 무드보드 벽이 이어진다. 이 사무소가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방식—레퍼런스를 눈에 보이는 곳에 붙여두고, 재료를 손으로 확인하며 판단하는 방식—을 그대로 보여주는 장면이라 할 수 있다. 완성된 결과물만큼이나 이런 과정의 풍경도 이 공간이 가진 매력 중 하나다.

두 사람이 나무 테이블에 마주앉아 회의하는 모습, 창밖으로 거리가 보인다

긴 테이블 너머로 보이는 동네 풍경

사무 공간 가장 안쪽에는 여러 명이 함께 앉을 수 있는 긴 테이블이 놓였다. 이 자리에서 눈을 들면 창 너머로 맞은편 옛 주택의 지붕과 발코니 난간이 그대로 들어온다. 사무실 안에 있으면서도 동네와 계속 연결돼 있다는 감각을 놓치지 않는 배치다.

합판으로 마감한 벽에는 그동안 진행한 프로젝트의 사진들이 줄지어 붙어 있다. 회의 테이블과 아카이브 벽이 한 시야 안에 들어오는 구성 덕분에, 이 공간은 실무를 처리하는 곳이자 동시에 그동안의 작업을 되짚어보는 곳으로도 기능한다.

낮 시간 닫힌 파란 문과 창 안쪽으로 보이는 사무 공간

닫혀 있어도 다 보이는 거리의 얼굴

파사드 전체를 다시 밖에서 보면, 이 건물이 거리와 맺는 관계가 더 분명해진다. 하늘색 타일과 파란 문, 큼직한 통유리창이 만드는 조합은 옛 상가 건물치고는 꽤 산뜻하다. 문이 닫혀 있는 순간에도 유리창 너머로 안쪽 풍경—액자에 걸린 사진, 테이블, 화분—이 고스란히 들여다보인다.

이 큰 개폐형 유리 패널이야말로 설계의 핵심 장치다. 낮에는 열어 두어 건축 모형과 사무 공간을 오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지나가는 이웃들에게 보여주고, 저녁이 되면 닫아서 가구를 진열하거나 지역 작가의 작품을 걸어두는 용도로 바꿀 수 있다고 한다. 하나의 벽이 시간대에 따라 완전히 다른 역할을 하는 셈이다.

밤에 조명이 켜진 파란 타일 파사드 안으로 두 사람이 보인다

해가 지면 켜지는 또 다른 표정

같은 자리를 밤에 찍은 사진은 완전히 다른 인상을 준다. 짙어진 하늘 아래 파란 타일과 조명이 켜진 실내가 마치 작은 무대 세트처럼 도드라진다. 안에서 대화를 나누는 두 사람의 실루엣이 거리를 걷는 사람들에게는 하나의 볼거리가 된다.

낮 동안 업무 공간이었던 자리가 조명 하나로 분위기를 바꾸면서, 이 작은 상가 건물은 하루 중 언제 지나가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얼굴을 보여주게 됐다. 소박한 규모의 개조 프로젝트지만, 거리와 맺는 관계를 이렇게까지 세심하게 설계한 사례는 흔치 않다.

이 집이 흥미로운 지점은 건축사무소 스스로가 실험대에 올랐다는 데 있다. 남의 집을 설계할 때는 하기 힘든 과감한 재료 선택과 절반쯤 완성된 상태를 그대로 두는 배짱을, 자기 사무실이었기에 가능했던 셈이다. 낮과 밤으로 표정이 바뀌는 쇼윈도 하나가 작은 동네 골목의 리듬을 살짝 바꿔놓았다는 점도 눈여겨볼 만하다.

 

Architectstsai Design
PhotosTess Kelly
ContractorPaul Botes
CategoryLive Office
CountryAustral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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