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 기흥구 중부대로를 달리다 보면 도로 오른편에서 시야가 한 번 막힌다. 레미콘 공장 사일로와 아파트 단지 사이에 은색 원통 하나가 통째로 박혀 있기 때문이다. 경기장인가 싶다가, 컨벤션센터인가 싶다가, 결국 둘 다 아니라는 걸 알게 된다. 자동차 정비소다.
현대자동차가 6월 30일 개관식을 열고 7월 1일부터 운영에 들어간 수원하이테크센터. 지하 2층 지상 5층, 연면적 5만1,497㎡, 최고 높이 42.35m. 경기 남부권에서 가장 큰 정비 시설이자, 설계부터 준공까지 꼬박 10년이 걸린 건물이다. 카센터에 10년이라는 말이 어색하게 들린다면, 이 건물이 정확히 그 어색함을 노렸다고 봐도 좋다.

레미콘 공장 옆에 원통이 섰다
대지는 용인시 기흥구 영덕동, 1만6,729㎡. 원래 수원 영통구에 있던 서비스센터를 이쪽으로 옮겨 새로 지었다. 항공사진을 보면 이 건물이 어떤 동네에 앉았는지가 한눈에 들어온다. 서쪽은 레미콘 공장이고 동쪽은 신축 아파트, 뒤로는 야산이 붙어 있고 앞으로는 왕복 10차선 중부대로가 지나간다. 도시라기보다는 도시의 가장자리, 산업과 주거가 정리되지 않은 채 섞여 있는 자리다.
그런데 이 애매한 위치가 사실은 계산의 결과다. 삼성전자 기흥캠퍼스로 이어지는 반도체 벨트와 현대차 남양연구소가 모두 차로 20~30분 거리. 고난도 정비가 필요한 차량이 가장 많이 몰리는 권역 한가운데인 셈이다. 여기에 건폐율은 43.91%, 용적률은 165.63%로 잡혔다. 법정 한도가 각각 70%와 350%였으니 절반 정도만 쓴 것이다. 땅을 꽉 채워 상자를 세우는 대신, 원을 그리고 남은 자리를 비워두기로 한 판단이 숫자에 그대로 남아 있다.
왜 하필 원이었을까
설계는 서아키텍스 건축사사무소가 맡았다. 서을호·조병욱 두 사람이 디자인을 총괄했고, 시공은 현대건설이 했다. 정비 시설의 평면은 거의 예외 없이 사각형이다. 리프트를 줄 세우기 좋고, 기둥 간격 잡기도 편하다. 그 관습을 버리고 원을 택한 이유는 미학보다 동선 쪽에 가깝다.
이 건물이 하루에 받는 차는 약 60대, 연간으로 치면 1만4,400대다. 차 한 대가 정문으로 들어와 접수를 하고, 램프를 타고 층을 올라가 정비를 받고, 다시 내려와 나가기까지의 궤적이 끊기지 않아야 한다. 원은 시작점과 끝점이 같은 도형이다. 램프 구간의 곡면 벽체가 그 궤적을 그대로 이어받고, 3층 작업 공간도 원의 흐름을 따라 늘어선다. 코너에서 차를 꺾어 돌려세울 일이 없다는 건, 대형 정비 시설에서는 생각보다 큰 이득이다.
위에서 내려다본 사진을 보면 이 논리가 더 선명해진다. 원의 한가운데는 유리 돔으로 비어 있고, 그 주위를 정비 공간이 도넛처럼 감싼다. 옥상 바깥쪽 링에는 태양광 패널이 촘촘하게 깔려 있다. 기능이 서로 다른 세 겹의 고리가 동심원으로 포개진 구조다.
얼굴을 만든 건 660개의 루버
이 건물의 인상을 결정하는 건 결국 외피다. 파사드에는 SUS316 스테인리스 압출 파이프로 짠 루버가 660개 매달려 있다. 투과율은 약 40%. 완전히 막지도, 완전히 열지도 않은 수치다. 서향과 남향으로 쏟아지는 빛을 걸러내는 차양이면서, 동시에 지름 100m에 육박하는 거대한 원통의 몸집을 잘게 쪼개는 장치이기도 하다.
흥미로운 건 거리에 따라 건물이 다르게 보인다는 점이다. 바로 아래에서 올려다보면 루버들이 층층이 겹치면서 상당한 깊이감이 생긴다. 어떤 각도에서는 안쪽 유리가 그대로 비치고, 몇 걸음만 옮기면 금세 불투명한 금속 벽이 된다. 반대로 길 건너에서 보면 개별 루버는 사라지고 완만한 곡선의 실루엣만 남는다. 하나의 재료로 근경과 원경을 완전히 다르게 만든 셈이다.
콜로세움을 닮았다는 말
PHM TV 취재진이 이 건물을 드론으로 처음 잡았을 때 현장에서 나온 단어가 콜로세움이었다. 실제로 두 이미지를 나란히 놓으면 닮은 구석이 꽤 있다. 타원에 가까운 평면, 수평으로 층층이 반복되는 개구부, 그리고 가운데가 뻥 뚫린 구성까지.
비유를 조금 더 밀고 가보면 오히려 더 정확해진다. 로마의 원형경기장은 장식적인 건물이 아니라 4만 명이 넘는 관중을 짧은 시간에 넣고 빼기 위해 만들어진 동선 기계였다. 80개의 아치 출입구가 그 목적 하나를 위해 존재했다. 수원하이테크센터도 결국 같은 종류의 문제를 푼다. 다만 관중 대신 자동차고, 아치 대신 루버이며, 석회암 대신 스테인리스일 뿐이다.
밤이 되면 등이 켜진다
낮의 이 건물은 의외로 무뚝뚝하다. 은색 루버가 빛을 죄다 튕겨내는 탓에 표정이 잘 읽히지 않는다. 흐린 날에는 하늘과 색이 붙어버려서 덩어리째 배경에 녹아버리기도 한다.
밤은 완전히 반대다. 층마다 켜진 실내 조명이 루버 사이로 새어 나오면서 수평의 빛 띠가 여러 겹으로 드러난다. 낮에 안 보이던 층 구성이 밤에야 비로소 읽히는 것이다. 1층 처마선을 따라 두른 라인 조명이 건물 전체를 지면에서 살짝 띄워 보이게 만드는 효과도 있다. 야간 항공 사진에서 이 건물이 유독 도드라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대기실을 지우고 광장을 놨다
1층으로 들어서면 원의 한가운데가 통째로 비어 있다. 5개 층을 관통하는 아트리움이다. 정비소에서 손님이 가장 견디기 힘든 건 수리 자체가 아니라 기다림이다. 특히 오전 8시 30분부터 10시 사이, 출근 전에 차를 맡기려는 사람들이 한꺼번에 몰리는 시간대의 혼잡은 어떤 서비스센터에서든 골칫거리다.
여기서의 해법은 대기실을 크게 만드는 게 아니라 아예 없애는 쪽이었다. 벽으로 방을 나누는 대신 화단으로 영역을 구분했고, 그 사이사이에 등받이가 높은 초록색 1인 소파를 흩어놓았다. 조경은 동영조경이 맡았다. 위에서 내려다보면 초록 덩어리들이 원의 중심을 향해 느슨하게 배열된 게 보이는데, 대기 공간이라기보다 공원의 벤치 배치에 가깝다. 상담 부스와 차량 입고장, 접수 카운터가 모두 이 하나의 공간에서 시야로 연결된다는 점도 중요하다. 내 차가 어디로 갔는지 눈으로 좇을 수 있으면 기다림의 체감 시간은 확실히 줄어든다.
천장에서 떨어지는 빛
아트리움 꼭대기를 올려다보면 방사형 프레임이 원의 중심으로 수렴하는 유리 돔이 있다. 한가운데에 원판이 하나 박혀 있어서 판테온의 오큘러스를 떠올리게 하는데, 실제로 이 천창이 하는 일도 비슷하다. 인공조명 없이 낮 시간의 1층 전체를 밝히는 유일한 광원 역할이다.
바닥에도 손이 많이 갔다. PHM TV 영상에서 짚은 대로 아트리움 바닥은 액세스 플로어, 즉 이중 바닥 구조다. 배선과 설비를 전부 바닥 아래로 밀어 넣었기 때문에 표면에는 아무것도 올라오지 않는다. 덕분에 이 공간은 평소엔 라운지지만 필요할 때는 통째로 무대가 된다. 개관식 당일에도 이 자리에 대형 LED 스크린과 좌석이 들어섰고, 행사가 끝나자 다시 원래의 라운지로 돌아갔다.
2~4층, 정비장이라기엔 지나치게 조용한
정비 공간은 2층부터 4층까지 세 개 층에 걸쳐 있다. 브랜드별로 층이 나뉘어 현대차와 제네시스가 따로 움직인다. 실제로 올라가 보면 흔히 상상하는 정비소의 풍경과는 거리가 멀다. 노출 콘크리트 원기둥이 규칙적으로 서 있고 바닥은 반사가 될 만큼 매끈하며, 벽에는 H4 같은 스톨 번호만 크게 박혀 있다. 공구가 널브러진 구석이 없다. 스톨마다 컴퓨터와 리프트, 공구가 하나의 세트로 묶여 있어서 엔지니어가 자리를 뜰 일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차를 위층으로 올리는 카리프트는 사방이 유리다. 내진 1등급을 적용한 이 투명 리프트에 차가 실려 올라가는 장면은, 솔직히 말하면 필요 이상으로 근사하다. 정비동 구조는 SRC, 사무동과 수소충전소는 RC, 폐기물처리장과 전기차충전소는 SC로 부위마다 구조 방식을 달리 가져갔다.
부품은 지하에서 스스로 올라온다
바닥에 적힌 AMR이라는 글자가 이 건물의 성격을 요약한다. 자율주행 운반 로봇이 다니는 길이라는 뜻이다. 지하 2층에는 현대모비스 자동창고가 있고, 자율 케이스 처리 로봇(ACR)이 필요한 부품 상자를 꺼내 놓으면 11대의 AMR이 그걸 싣고 화물 엘리베이터를 타고 작업층으로 올라온다. 엔지니어가 부품을 가지러 내려가는 동선이 통째로 사라진 것이다.
안전 설비도 예전 정비소 기준으로는 낯선 것들이 많다. 고전압 배터리와 수소·LPG 차량 작업장에는 전면 강제환기와 수소 누출 감지 센서, 방폭 전기설비가 들어갔고, 배터리 화재에 대비한 이동식 침수조와 질식소화포, 드릴랜스까지 갖췄다. 전기차 배터리 하나가 잘못되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업계가 이미 여러 차례 겪은 뒤에 지어진 건물이라는 게 여기서 드러난다. 진단 쪽에서도 데이터&NVH 분석실과 품질합동분석실을 새로 뒀고, 입고 전에 원격진단 플랫폼(RDSP)으로 차량 데이터를 미리 뜯어본 다음 손을 댄다.
옥상은 발전소다
옥상으로 올라가면 유리 돔을 둘러싼 링 전체가 태양광 패널로 덮여 있다. 원형 평면이라 패널을 부채꼴로 배치했는데, 사진으로 보면 거대한 해시계 같기도 하다. 여기에 계절과 시간대별 태양 고도에 맞춘 차양 시스템을 더해 냉방 부하를 줄였다. 외부에는 350kW급 초급속 충전기 6기와 수소충전소를 뒀다.
정비소가 자기 전력을 생산하고 수소를 충전하는 시설까지 품는다는 건, 이 건물의 수명 주기를 꽤 길게 잡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내연기관 차의 비중이 줄어드는 속도를 감안하면 지금 짓는 정비소는 앞으로 20년치 변화를 미리 담아둬야 한다.
정비소에 굿즈 매장이 있는 이유
1층 한쪽에는 제네시스 컬렉션 전시 공간이 있다. 목재 선반 위에 가방과 소품이 놓여 있고 통유리 너머로 바깥 조경이 들어온다. 정비를 맡기러 온 사람에게 굿즈를 파는 게 얼마나 실효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의도는 분명하다. 차를 고치러 오는 자리를 브랜드를 경험하는 자리로 바꿔보겠다는 것이다.
같은 논리가 5층에도 적용된다. 꼭대기 층 전체가 직원 사무실과 회의실, 식당 같은 복지 공간이다. 보통 정비 시설에서 직원 공간은 지하나 구석으로 밀려나는데, 여기서는 전망이 가장 좋은 층을 가져갔다. 지하 1층은 전산과 연동되는 부품 창고다.
10년이 걸린 이유
운영 방식도 기존 서비스센터와는 다르게 짰다. 100% 예약제로만 차를 받고, 입고부터 출고까지 한 명의 엔지니어가 전담한다. 접수는 키오스크로, 진행 상황은 알림톡으로, 결제는 모바일로 처리된다. 3층에는 거점 기술교육센터(RTC)를 둬서 전국 블루핸즈 엔지니어들이 신차 구조와 신기술 진단을 배우러 온다. 현대차는 전국 22개 하이테크센터를 이런 방식으로 단계적으로 바꿔나가겠다고 밝혔다.
개관식에서 서을호 서아키텍스 대표가 남긴 말이 이 건물의 성격을 가장 잘 설명한다. 건축가가 멋지게 디자인한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었고, 본질은 운영 시스템과 사용자가 실제로 이 공간을 어떻게 쓰느냐에 있었다는 것. 10년이라는 기간의 절반 이상은 아마 도면이 아니라 그 질문에 쓰였을 것이다. 장재훈 현대차그룹 부회장도 같은 자리에서 이 공간을 두고 “신속·정확·친절을 미래 모빌리티 시대에 맞게 새롭게 구현한 공간”이라고 했다.
정비소는 원래 도시에서 가장 눈에 띄지 않게 만들어지는 건물이다. 소음이 나고 기름 냄새가 나니 가급적 뒤로 물러나 있는 게 미덕이었다. 그런데 이 건물은 중부대로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도록 지어졌다. 정비라는 행위를 감추지 않고 도시 앞으로 끌고 나온 것, 그게 이 원통이 실제로 한 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