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에 자리를 내준 프랑스 예술학교, Massy Conservatoire

파리 남쪽 근교 도시 마시(Massy)에 들어선 프랑스 예술학교 Dance, Music and Theatre Conservatoire in Massy, 줄여서 Massy Conservatoire는 처음부터 눈에 잘 띄지 않는다. 음악·무용·연극을 함께 가르치는 이 시립 컨서바토리는 Opéra de Massy와 공원을 잇는 Rue des Canadiens를 한참 걸어 들어가야 그제야 모습을 드러낸다. 양옆의 고층 아파트가 슬쩍 뒤로 물러나 자리를 비켜준 듯한 땅, 거기에 벽돌빛이 도는 오렌지 톤 콘크리트 큐브 하나가 서 있다.

겉모습은 입을 꽉 다문 상자에 가깝다. 그런데 안으로 들어서면 사정이 완전히 달라진다. 곡면 벽이 층을 파고들고, 바닥에 뚫린 초승달 모양 구멍 위로 지붕 천창이 걸리고, 건물 한가운데서는 순백의 계단 두 개가 서로 엇갈리며 4개 층을 오른다. 층고도, 방음도, 바닥 조건도 제각각인 세 장르를 동네 학교 크기의 아담한 덩어리 하나에 담아낸 학교다. 설계는 스트라스부르를 기반으로 하는 Dominique Coulon & associés가 맡았다.

가죽나무 한 그루 뒤로 안쪽으로 휘어 들어간 Massy Conservatoire 정면 파사드
© Eugeni Pons

가죽나무 한 그루가 파사드를 밀어냈다

대지에는 원래 가죽나무(ailanthus) 한 그루가 서 있었다. 설계팀은 이 나무를 베는 대신 건물 정면을 안쪽으로 휘어, 무성한 가지가 뻗을 자리를 내줬다. 그래서 이 건물은 반듯한 큐브인데 나무를 마주한 면만 움푹 패어 있다. 설계팀의 표현을 빌리면 “나무가 건축을 이긴 것 같은” 역설적인 인상이다.

실제로 정면에 서 보면 누가 누구를 피해 간 건지 헷갈릴 정도다. 보호수 주변은 자연스럽게 넉넉한 앞마당이 됐고, 수업을 마친 아이를 기다리는 부모들이 이 나무 그늘 아래 모인다. 건물 뒤편 숲의 나무도 한 그루도 베지 않고 모두 남겼다. 학교 하나를 지으면서 땅에 있던 것을 지우지 않고 오히려 주인공으로 세운 셈이다.

고층 아파트 사이에 선 테라코타 톤 오렌지 콘크리트 큐브 Massy Conservatoire 측면 외관
© Eugeni Pons

무거운 상자를 유리 받침 위에 띄웠다

외벽은 안료를 섞은 착색 콘크리트로, 벽돌과 테라코타 사이 어디쯤의 오렌지 톤이다. 창은 꼭 필요한 만큼만 냈다. 거의 불투명한 덩어리인데, 입구 쪽에서만 이 덩어리가 위로 들려 올라가며 그 아래 통유리 1층과 리셉션 홀의 분주한 풍경을 드러낸다. 들린 매스 아래는 그대로 비를 피하는 처마 공간이 된다.

설계팀이 그린 매스 다이어그램을 보면 의도가 더 선명하다. 3개 층 높이의 무거운 상자를 투명한 저층부 위에 얹어, 거리와 건물 사이의 문턱을 낮추는 구성이다. 주변이 밀키 화이트 톤의 판상형 아파트로 가득한 동네라, 오렌지 매스와 가죽나무의 그린이 서로의 색을 밀어 올리며 풍경을 만든다. 직교 격자 일색인 동네에서 곡면 하나로 ‘여기는 공공건물’이라고 말하는 셈이다.

숲 쪽으로 가로 창이 뚫린 Massy Conservatoire 후면 외관
© Eugeni Pons

뒤편 창은 숲의 높이에 맞췄다

광장을 마주한 정면이 닫혀 있다면, 숲을 향한 후면은 정반대다. 가로로 긴 창들이 줄지어 뚫려 있고, 위층 연습실 안에서 보면 창밖이 온통 나뭇잎이다. 설계팀은 학생과 교사가 나무 꼭대기에서 일하는 것 같은 감각을 노렸다고 설명한다. 기존 숲을 통째로 남긴 이유도 여기에 있다.

창의 높이와 묶음이 층마다 조금씩 어긋나 있는 것도 눈여겨볼 만하다. 이 엇갈림은 안쪽 방들의 크기와 쓰임이 제각각이라는 사실을 바깥으로 슬쩍 내비치는 것으로 읽힌다. 정면은 침묵하고 후면은 수다스러운 건물, 같은 상자라도 어느 쪽에서 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표정이다.

오렌지 천장과 통유리로 둘러싼 Massy Conservatoire 1층 리셉션 홀
© Eugeni Pons

오렌지 천장이 저녁의 등불이 된다 — 리셉션 홀의 조명

1층 리셉션 홀에 들어서면 먼저 천장이 눈에 들어온다. 천장 전체가 오렌지로 칠해져 있고, 그 사이에 작은 다운라이트와 둥근 천창이 박혀 있다. 이 천장은 조명 기구라기보다 거대한 반사판에 가깝다. 빛은 색이 있는 면에 한 번 튕기면 그 색을 머금고 퍼지기 때문에, 그레이 톤의 콘크리트 바닥과 벽까지 홀 전체가 따뜻한 쪽으로 물든다.

해가 지면 이 효과가 바깥으로 넘친다. 통유리 1층에서 새어 나온 웜톤 빛이 오렌지 천장과 들린 매스 밑면을 비추면서, 설계팀 말처럼 오렌지 입면이 등불처럼 빛난다. 이 건물이 동네의 랜드마크가 되는 건 높이 덕이 아니라 이 저녁 빛 덕분이다.

공간에 옮겨 볼 만한 포인트도 여기 있다. 조명 기구를 통째로 바꾸기 어렵다면 천장이나 벽 한 면의 색만 바꿔도 공간의 빛 온도가 달라진다. 라운지·카페처럼 머무는 공간이라면 2700~3000K 웜톤 전구에 따뜻한 색 천장을 겹쳐 분위기를 진하게 만들고, 작업 공간이라면 천장은 화이트로 두고 4000K 안팎의 빛을 쓰는 편이 낫다. 다운라이트 몇 개로 바닥만 비추기보다 천장과 벽을 함께 밝히는 간접 조명을 한 겹 더하면 같은 와트로도 공간이 훨씬 넓어 보인다.

1층 유리 갤러리에서 내려다본 지하 오케스트라 연습실
© Eugeni Pons

복도에서 오케스트라를 내려다보는 예술학교 — 조닝과 동선

이 학교의 조닝은 소리의 무게 순서대로 쌓인 것으로 읽힌다. 가장 큰 소리를 내는 오케스트라 연습실은 지하에, 음악 수업은 1~2층에, 무용은 3층에 둔다. 단면도를 보면 지하 연습실은 곡면 천장을 가진 큰 볼륨으로 땅속에 묻혀 있어, 위층 수업과 소리가 섞일 걱정을 덜었다.

그렇다고 이 연습실을 감추지는 않았다. 1층 복도의 작은 유리 갤러리가 지하 연습실 위로 튀어나와 있어서, 지나가던 학생들은 동료 학생들과 Opéra de Massy 오케스트라가 연습하는 장면을 위에서 내려다볼 수 있다. 입구 홀 반대편 창으로는 아래층 레드룸에서 진행되는 타악기 수업이 보인다.

방음은 지키되 시선은 연다. 음악학교에서 흔히 보는 ‘문 닫힌 방이 끝없이 늘어선 복도’를 뒤집은 해법이다. 무용을 배우러 온 아이가 오케스트라를 구경하고, 타악기를 치던 학생이 무용실로 올라가는 계단에서 다른 장르를 엿본다. 세 장르를 한 건물에 모아 놓은 이유를 동선이 직접 설명하는 셈이랄까.

곡면 벽과 초승달 모양 바닥 개구부가 겹친 Massy Conservatoire 2층 아트리움 홀
© Eugeni Pons

이 형태는 어디서 왔나 — 덩어리를 파낸 아트리움

이 건물의 심장은 한가운데가 아니라 한쪽으로 비켜 선 오프센터 아트리움이다. 이 아트리움이 층마다 다른 모양의 둥근 빈 공간을 뚫으며 위로 올라가고, 그 바람에 평면 전체가 뒤틀린다. 2층의 넓은 홀은 설계팀 말대로 모래 동굴 같고, 3층에는 바닥이 초승달 모양으로 도려내져 있어 그 틈으로 빛이 쏟아진다. 1층에서 고개를 들면 2층의 원형 창 너머로 지붕의 원형 천창이 겹쳐 보이는데, 두 원이 포개진 장면은 일식을 올려다보는 것처럼 천문학적이다.

건축사로 보면 꽤 오래된 문법이다. 고대 로마의 판테온은 돔 꼭대기에 뚫은 원형 구멍, 오쿨루스 하나로 내부 전체의 빛을 다스렸다. 프랑스 보자르(Beaux-Arts) 전통에서는 평면도에서 벽체처럼 꽉 찬 덩어리를 까맣게 칠해 ‘포셰(poché)’라 불렀고, 두꺼운 덩어리 속을 파내 만든 공간도 같은 말로 부른다. 1960년대 Robert Venturi(로버트 벤투리)는 이 개념을 다시 끄집어내 겉과 속이 서로 다른 건축의 풍부함을 옹호했다.

Massy Conservatoire의 아트리움은 이 계보에 가깝게 읽힌다. 바깥은 단순한 상자, 안은 조각칼로 파낸 듯한 곡면이다. 겉만 보고는 속을 짐작할 수 없게 만드는 ‘압축된 덩어리’가 이 건물의 전략이다. 이 사무소는 앞서 파리 근교 몽티니르브르토뇌(Montigny-le-Bretonneux)의 음악·무용·연극 학교 Forum des Arts Charles Aznavour에서도 Le Corbusier(르 코르뷔지에)의 ‘빛의 대포’를 닮은 천창으로 아트리움에 빛을 떨어뜨렸다. 같은 유형의 학교를 다시 풀면서, 이번엔 빛의 통로를 훨씬 더 조각적으로 깎아낸 셈이다.

레드로 마감한 타악기 연습실에서 드럼을 치는 학생
© Eugeni Pons

벽을 일부러 기울인 음악학교 연습실 — 평행하지 않은 벽의 음향학

1~2층 음악층의 방들은 묘하게 비뚤다. 벽과 벽이 평행하지 않고, 단면도에서도 천장과 벽이 사선으로 꺾여 있다. 이유는 소리다. 마주 보는 두 벽이 평행하면 소리가 그 사이를 탁구공처럼 오가며 ‘플러터 에코(flutter echo)’라 불리는 떨리는 잔향을 만든다. 작은 연습실일수록 이 현상이 도드라져 악기 소리가 실제보다 지저분하게 들린다.

벽을 몇 도만 틀어도 반사음이 흩어지면서 소리가 한결 깨끗해진다. 음향 설계는 DB Silence가 맡았다. 사진 속 타악기 연습실은 벽과 천장을 온통 레드로 감쌌는데, 가장 시끄러운 방에 가장 강렬한 색을 입힌 건 꽤 위트 있는 선택이다. 탈의실 같은 부속 공간까지 레드로 칠해, 이 학교에서 레드는 장식이라기보다 하나의 구역 표시처럼 쓰인다.

앞서 소개한 석탄 발전소에 들어선 600석 공연장 Apple Music Hall이 큰 홀 하나의 음향을 다뤘다면, 이 학교는 크기도 쓰임도 다른 여러 개의 작은 방에서 같은 문제를 하나씩 푼다. 공연장의 음향이 ‘잘 울리게’의 문제라면, 연습실의 음향은 ‘정직하게 들리게’의 문제다.

블랙 천장에 사선 라인 조명을 단 Massy Conservatoire 무용 연습실
© Eugeni Pons

핑크·화이트·블랙, 방마다 색이 다른 무용 연습실

3층은 무용 전용이다. 연습실마다 색 체계가 다르다. 핑크 방, 화이트 방, 블랙 방. 몰입형 색채라는 설계팀 설명대로, 방 안에 들어서면 벽과 천장이 한 가지 색으로 몸을 감싼다. 공통점은 모두 자연광이 부드럽게 든다는 점이다. 큰 통창이 있거나, 천장 높이 박힌 기하학적 창이 위에서 빛을 떨어뜨린다.

사진 속 블랙 연습실은 조명이 특히 흥미롭다. 짙은 블랙 마감은 빛을 먹기 때문에 같은 밝기의 조명을 달아도 훨씬 어둡게 읽힌다. 그래서 이 방은 천장에 긴 라인 조명을 여러 줄 그어 빛의 양을 채우는 동시에, 거울 벽을 따라 뻗는 선으로 공간의 방향을 잡아 준다. 핑크 방은 원형 천창 주변까지 핑크로 물들어 빛 자체가 색을 띠고, 화이트 방은 천창 빛이 바닥까지 고르게 깔린다.

색이 다른 방을 오가며 연습한다는 건, 같은 동작을 매번 다른 무대 위에서 해 본다는 뜻이기도 하다. 블랙 방은 블랙박스 극장을, 화이트 방은 밝은 갤러리를 닮았다. 집에서 짙은 색 벽을 쓰고 싶다면 이 방처럼 천장 쪽에 라인 조명이나 간접 조명을 한 겹 더하고 바닥은 밝게 두는 것이 요령이다. 다크 톤 공간은 조명 계획 없이 칠부터 하면 금세 동굴이 된다.

화이트로 마감한 가위 계단이 위아래로 엇갈리는 계단실
© Eugeni Pons

건물 한가운데 숨은 예배당, 순백의 가위 계단

어두울 거라 예상한 건물 한복판에서 가장 큰 반전이 기다린다. 순백의 가위 계단이 4개 층을 꿰뚫고 오른다. 가위 계단(scissor staircase)은 두 개의 계단이 한 계단실 안에서 X자로 엇갈리며 오르내리는 형식으로, 원래는 좁은 면적에 피난 경로 두 개를 확보하려고 고층 건물에서 쓰는 실용적인 장치다. 이 학교는 그 기능적인 장치를 예배당 같은 공간으로 바꿔 놓았다. 계단실 꼭대기에는 높은 창들이 자유롭게 흩어져 박혀 있는데, 설계팀은 이 배치가 악보를 벗어난 음악의 당김음(싱코페이션)을 떠올리게 한다고 설명한다.

올라가는 길과 내려가는 길이 서로 보이지 않게 엇갈리다 보니, 계단을 오르는 사람은 위아래 감각을 잠시 잃는다. M.C. Escher(에셔)의 판화로 유명한 펜로즈 계단, 끝없이 오르기만 하는 그 불가능한 계단이 떠오르는 이유다. 소리도 다르다. 교실과 복도는 흡음으로 잔향을 바짝 말려 두었지만, 이 계단실만은 교회처럼 소리가 울린다. 누군가 계단에서 노래 한 소절을 부르면 소리가 부풀어 올라 공간을 가득 채운다.

레드 나선계단이 파사드가 된 방콕 카페 Harudot Thonburi가 계단을 거리의 간판으로 꺼내 놓았다면, 이 학교는 계단을 가장 깊숙한 곳에 숨겨 무대로 만들었다. 공연 연출에 쓸 잠재력이 크다는 설계팀의 말이 과장으로 들리지 않는다. 가죽나무에 자리를 내준 바깥과 소리를 키우는 안쪽, 이 프랑스 예술학교는 처음부터 끝까지 무언가에 자리를 내주는 방식으로 완성됐다.

ArchitectsDominique Coulon & associés
PhotosEugeni Pons
Category문화시설, 교육시설
Country프랑스
Materials착색 콘크리트(오렌지 톤), 유리
Location4 Rue des Canadiens, Massy
Area연면적 2, 500m²
Year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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