좁은 땅에 짓는 협소주택은 결국 빛과의 싸움이다. 베트남 북중부 도시 탄호아(Thanh Hoa)에 들어선 PAMA House는 폭 5m, 깊이 20m짜리 땅에 앉아 있고, 바깥으로 열린 면은 길에 면한 정면 하나뿐이다. 이 집이 꺼낸 카드는 지붕을 뚫는 스카이라이트였다. 집 한가운데와 계단 옆으로 하늘을 세로로 끌어내렸다.
이 집에는 사연도 있다. 장남이 부모에게 선물한 집이다. 평일에는 노부부가 조용히 노후를 보내고, 주말이면 흩어져 사는 가족이 모여 북적이는 집. 그러니 설계의 과제는 두 가지였다. 좁고 어두운 땅을 밝히는 것, 그리고 둘이 살기엔 아늑하고 온 가족이 모이기엔 넉넉한 집을 만드는 것. 설계는 LADD Architects Jsc.가 THREEPLUS Design과 함께 맡았고 2023년에 완공됐다.

폭 5m, 한쪽만 열린 땅에서 시작한 협소주택
베트남 도시에서 이런 필지는 낯설지 않다. 길에 닿는 폭은 좁고 안쪽으로 길게 파고드는 땅, 흔히 ‘튜브 하우스’라 부르는 필지다. 양옆은 이웃 건물과 바짝 붙어 옆으로 창을 내기 어렵고, 빛과 바람이 들어올 구멍은 앞면 하나뿐이다. 깊이 20m짜리 집이라면 한가운데에 서는 순간 대낮에도 불을 켜야 한다는 얘기다.
측면 사진을 보면 이 땅의 사정이 그대로 읽힌다. 창 하나 없는 그레이 벽이 길게 뻗어 있고, 집의 표정은 전부 정면에 몰려 있다. 한쪽만 열린 땅이라는 조건이 외관에서도 그대로 보이는 셈이다. 결국 이 집이 기댈 수 있는 건 정면, 그리고 하늘뿐이었다. 비슷한 조건을 다르게 푼 사례로는 삼면이 막힌 도심 빈 땅에 유리벽돌로 빛을 끌어들인 Glass Brick House가 있다. 벽을 빛나게 만든 그 집과 달리, PAMA House는 위를 열었다.

연의 곡선을 따온 오목한 파사드
정면 꼭대기 선이 활처럼 아래로 파여 들어간다. 위로 갈수록 오목하게 휜 이 윤곽이 집 전체의 인상을 정한다. 설계팀은 이 곡선을 베트남 전통 연의 형태에서 가져왔고, 자유와 우아함을 상징한다고 설명한다.
그 아래 가운데 부분에는 세로 골이 촘촘하게 진 화이트 패널이 곡면을 그리며 앞으로 나와 있고, 다크 그레이 메탈 프레임이 창을 감싸 액자처럼 툭 튀어나온다. 반듯한 상자형 협소주택이 늘어선 동네에서 이 곡선 몇 줄이 집의 인상을 통째로 바꾼다.
부모에게 드리는 집에 하필 연을 골랐다는 점도 곱씹어볼 만하다. 연은 하늘 높이 떠올라도 줄 끝은 누군가의 손에 쥐어져 있다. 떨어져 살아도 끈이 이어져 있는 가족, 이 집이 품은 관계를 그렇게 읽을 수도 있다.

수직 메탈 스크린이 정면 하나뿐인 창을 지킨다
창을 낼 수 있는 면이 정면뿐이라면 그 창은 클수록 좋다. 문제는 그 정면이 곧 길과 마주한 얼굴이라는 점이다. 크게 열면 집 안이 행인에게 훤히 보이고, 베트남의 강한 볕도 그대로 들이친다.
해법은 창 앞에 세운 수직 메탈 스크린이다. 세로 살이 일정한 간격으로 서서 시선은 비스듬히 끊고 빛은 잘게 썰어 들인다. 해가 움직이면 스크린 그림자와 외벽의 세로 골이 만드는 줄무늬도 함께 움직인다. 정면이 시간에 따라 표정을 바꾸는 그림처럼 보이는 이유다. 시선을 걸러주는 장치가 창 바깥에 있으니, 안에서는 커튼을 덜 치고도 지낼 수 있다.

현관을 열면 목재 벽이 먼저 맞는다
1층 맨 앞은 거실이다. 현관문 옆으로 천장 가까이 올라간 세로 살 창이 서 있고, 바깥 스크린을 한 번 거친 빛이 이 살을 다시 지나며 부드럽게 퍼진다. 한쪽 벽은 통째로 목재 붙박이장으로 짰다. 수납과 TV 자리, 그림을 거는 벽이 한 면에 정리돼 거실에 잡다한 가구가 나설 틈이 없다.
색은 절제했다. 그레이 타일 바닥, 웜 톤의 벽, 그 위에 짙은 브라운 목재가 리듬을 준다. 화려하진 않지만 손때가 묻을수록 깊어지는 조합이다. 노부부의 일상에는 사진 찍기 좋은 공간보다 오래 앉아 있어도 편한 공간이 필요하다. 이 거실은 정확히 그쪽을 택했다.

거실과 주방 사이, 집의 심장이 된 중앙 스카이라이트
거실을 지나 안쪽으로 시선을 옮기면 천장이 갑자기 뻥 뚫린다. 거실과 주방 사이에 끼워 넣은 중간 공간 위로 중앙 스카이라이트가 옥상까지 수직으로 관통한다. 깊이 20m 집에서 가장 어두웠어야 할 한가운데가 거꾸로 가장 밝은 자리가 됐다.
이 보이드가 하는 일은 채광만이 아니다. 위층 방들의 목재 창이 이 수직 공간을 향해 나 있어서, 방에 있어도 집 전체와 이어져 있다. 창을 열어 두면 아래층의 소리와 기척이 올라올 수 있고, 거실에 앉아 고개를 들면 위층 방 창이 보인다. 따로 떨어진 방들이 빛과 공기, 중앙 보이드로 묶여 하나의 집으로 느껴지게 한 구성이다.
노년의 집에서 이게 왜 중요할까? 방문을 닫으면 끊기는 구조의 집에서는 같은 지붕 아래 있어도 하루 종일 얼굴 한 번 못 보는 일이 생긴다. 보이드 하나가 가족 사이의 기본 거리를 ‘벽 하나’에서 ‘시선 하나’로 줄여 놓은 셈이다.

계단 몇 단을 의자로 쓰는 법
거실 쪽 바닥은 주방보다 몇 단 낮다. 그 높이 차를 잇는 계단은 단이 깊고 넓어 걸터앉기 좋다. 그냥 지나가는 계단이 아니라 앉고, 책을 펼쳐 두고, 소품을 올려 두는 단으로 쓰인다.
주말에 가족이 몰려드는 집이라는 점을 떠올리면 이 선택이 영리하다. 손님이 늘었다고 의자를 더 사서 좁은 집을 채울 필요가 없다. 사람이 많은 날은 단에 나란히 앉으면 되고, 평소에는 화분 하나, 책 몇 권 올려두는 진열대로 쓰면 된다. 가구를 늘리는 대신 바닥의 높이 차를 가구로 쓰는 방법은 우리 집 리모델링에서도 써먹을 만하다. 단 깊이를 넉넉히 잡고 모서리를 둥글게 다듬어 두면 앉기에도, 어르신이 오르내리기에도 편하다.

올려다보면 창들이 서로를 마주 본다
중앙 보이드 바닥에 서서 고개를 젖히면 풍경이 바뀐다. 화이트 벽 양쪽으로 목재 루버 덧창이 걸려 있고, 맨 위에서 떨어진 빛이 벽면을 타고 내려오며 시간마다 다른 모양의 빛 조각을 바닥에 놓는다. 유리블록 창과 작은 개구부가 벽 곳곳에 뚫려 있어 빛이 한 방향에서만 오지 않는다.
눈여겨볼 건 덧창이다. 열면 방이 보이드와 한 공간이 되고, 닫으면 다시 독립된 방이 된다. 함께 있고 싶은 날과 혼자 있고 싶은 날이 번갈아 오는 게 가족이다. 그 거리를 벽이 정해주는 게 아니라 사는 사람이 손으로 정하게 한 점, 이 집에서 가장 사려 깊은 디테일이다.

침실이 보이드를 향해 열린다
위층은 침실이 차지한다. 각 방은 조용한 쉼터로 설계됐지만 완전히 닫혀 있지 않다. 침실 한쪽 창이 보이드를 향해 열려 있어서, 침대에 기대 책을 읽다가 아래층 가족의 움직임을 내려다볼 수 있다.
창 안쪽에는 두꺼운 커튼과 목재 프레임이 겹쳐 있다. 혼자 있고 싶을 땐 커튼을 치면 그만이다. 이 이중 장치 덕분에 방은 개인 공간이면서도 집 전체의 일부로 남는다. 나이가 들수록 방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진다는 걸 생각하면, 방 안에서도 집의 공기와 빛을 느끼게 한 설계는 고립감을 덜어주는 쪽으로 작동한다.

스카이라이트를 따라 오르는 빛의 복도
계단은 한쪽 벽에 바짝 붙였다. 폭 5m 협소주택에서 계단을 가운데 두면 남는 방이 반쪽짜리가 된다. 벽에 붙이면 나머지 폭을 온전히 방에 줄 수 있다. 대신 이 집은 계단 위에 길고 좁은 스카이라이트를 하나 더 냈다.
1층부터 3층까지 계단을 오르는 동안 머리 위로 빛이 길게 따라온다. 짙은 그레이 벽 사이로 빛이 떨어지니 계단실이 깊은 협곡처럼, 혹은 세로로 세운 빛의 복도처럼 느껴진다. 좁은 땅에서 층을 잇는 방법으로는 10평 땅에 지은 스플릿 플로어 협소주택, Park & Tiny House처럼 층 자체를 어긋나게 쌓는 길도 있다. PAMA House는 층은 반듯하게 두고 계단 하나를 빛의 통로로 키웠다.

3층부터는 계단이 정원이 된다
3층에서 옥상으로 오르는 구간은 분위기가 확 달라진다. 계단 옆으로 화분이 층층이 놓이고, 고사리와 넓은 잎 식물이 난간 너머로 쏟아진다. 단면도에 ‘계단식 조경’이라고 적힌 바로 그 구간이다. 계단 옆 바닥에 깔린 유리판은 아래층으로 빛을 흘려보내는 천창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같은 층에는 조상을 모시는 제단방이 자리한다. 베트남 집에서는 제단방을 흔히 위층의 조용한 곳에 둔다. 가족의 뿌리를 모시는 방과 같은 층에서 계단이 식물로 뒤덮이며 하늘로 열리니, 이 계단은 기능을 넘어 의식처럼 오르는 길로도 읽힌다. 계단을 오르는 일이 지루한 노동이 아니라 산책이 되는 셈이다.

해가 진 뒤의 집, 조명은 벽을 타고 위아래로
낮의 주인공이 스카이라이트라면 밤에는 조명이 바통을 받는다. 거실과 주방 천장에는 매립 다운라이트가 일정한 간격으로 박혀 전반 조명을 맡고, 옥상 계단 벽에는 블랙 큐브형 벽부등이 붙어 빛을 위아래로 쏜다. 벽을 타고 번지는 빛이 계단 디딤판과 화분 잎을 비추며 밤의 계단에 그림자를 만든다.
조명은 전반, 국부, 연출의 세 겹이 겹쳐야 공간에 깊이가 생긴다. 이 집은 전반과 연출은 갖췄는데, 밤이 되면 낮의 주인공이던 보이드가 어두운 구멍으로 변할 수 있다. 보이드 상부 벽면에 라인 조명을 숨겨 빛을 벽에 한 번 튕겨 내리면 밤에도 집의 수직 축이 살아난다.
노부부의 집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하나 더 권하고 싶다. 계단 디딤판 아래나 벽 하단에 낮은 풋라이트를 깔아 두면 밤중에 물을 마시러 내려갈 때 천장 조명을 다 켜지 않아도 발밑이 보인다. 색온도는 2700~3000K 웜톤으로 맞추고 거실 다운라이트에 디머를 달면, 주말의 북적이는 저녁과 평일의 고요한 밤을 같은 조명으로 다르게 연출할 수 있다.

유리 지붕 아래 옥상정원, 주말의 거실이 되다
계단 끝에서 옥상정원이 열린다. 스틸 프레임에 유리를 얹은 지붕이 머리 위를 덮고, 양옆은 벽돌 마감 벽이 둘러싼다. 유리 지붕은 비를 막으면서 빛은 그대로 들인다. 비가 잦은 베트남에서 옥상을 날씨와 상관없이 쓰려면 꼭 필요한 장치다.
아래층 화분에서 시작된 식물의 행렬은 이곳에서 정원이 된다. 넓은 잎의 열대 식물과 고사리가 유리 바닥과 계단을 감싼다. 평일엔 노부부가 화분에 물을 주는 마당이 되고, 주말엔 온 가족이 둘러앉는 바깥 거실이 된다.
땅이 좁으면 마당을 포기하는 게 보통이다. 이 집은 마당을 지붕 위로 올리고, 그 마당까지 가는 계단을 정원으로 만들었다. 아들이 부모에게 건넨 건 방 몇 개가 아니라 하늘이 보이는 마당 하나였던 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