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루이자와 별장이라고 하면 대개 숲속 목조 산장을 떠올린다. 그런데 일본 나가노현 가루이자와의 숲 한복판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노출콘크리트 껍데기 두 개가 땅에서 살짝 떠 있다. 이름부터 Shell이다. Kotaro Ide가 이끄는 ARTechnic architects가 2008년에 완성한 개인 별장이다.
지은 지 18년이 된 집을 지금 다시 꺼내 보는 이유가 있다. “자연과 하나 되는 집”이 전원주택 광고의 단골 문구가 된 요즘, 이 집은 정반대 이야기를 한다. 숲에 녹아들려 애쓰지 말고 숲을 버텨내라는 것. 주말마다 오가는 세컨드하우스가 왜 몇 년 못 가 방치되는지, 그 답을 이 껍데기가 꽤 일찍 내놓았다.

숲 한가운데 내려앉은 우주선
처음 보는 사람은 한참을 들여다보게 된다. 바위와 나무 사이에 매끈한 그레이 튜브가 누워 있는데, 동굴처럼 자연이 빚은 것도 아니고 오래된 폐허도 아니다. 설계팀은 이 장면을 SF 영화에 빗댄다. 전혀 다른 곳에서 전혀 다른 목적으로 만든 거대한 우주선이 숲에 버려졌고, 마을 사람들이 그 안에 바닥을 깔고 벽을 세워 들어가 산다는 설정이다.
이야기에는 결말까지 붙어 있다. 세월이 흐르면 우주선 둘레로 나무가 자라 올라 결국 풍경의 일부가 된다는 것. 집 한 채를 설명하면서 시놉시스부터 깔고 들어가는 셈인데, 사진을 보고 나면 과장으로 들리지 않는다. 두 개의 타원 단면이 숲을 향해 입을 벌리고 있고, 그 입 안쪽이 통째로 유리라 집 속이 훤히 들여다보인다.

가루이자와 별장은 왜 썩어 가나
가루이자와는 오래된 피서지다. 기온이 낮고 습도가 높아 기후로만 보면 집에게 꽤 가혹한 땅이다. 전통 구법으로 지은 별장들이 이 습기를 못 이기고 하나둘 썩어 가는 중이다. 자연과 어울리는 집이냐고 묻는다면 그렇다고 할 수도 있다. 문제는 그 안에서 지내는 게 전혀 편하지 않다는 점이다. 불편하니 발길이 끊기고, 몇 년씩 비워 둔 집은 더 빨리 무너진다.
생활 패턴의 변화도 한몫했다. 옛 가루이자와 별장은 한 번 오면 최소 한 달은 머무는 손님을 위해 지어졌다. 그 정도 체류라면 하루 이틀을 청소와 수리에 써도 아깝지 않다. 그런데 신칸센이 놓이면서 도쿄에서 1시간 10분 거리가 됐고, 주말에 잠깐 다녀가는 게 표준이 됐다. 이틀 머무는 집에서 하루를 관리에 쓴다면 누가 가고 싶을까. 5도2촌을 꿈꾸며 시골집을 산 사람들이 풀 뽑고 곰팡이 닦다 주말을 다 보내는 이야기와 똑같은 구조다.

바닥을 1.4m 띄운 노출콘크리트 별장
그래서 이 집은 땅에서 몸을 뗐다. 바닥은 지면보다 1,400mm 높다. 타원형 셸의 아래쪽 절반이 바깥으로 크게 불룩 튀어나오면서 같은 높이의 테라스를 받쳐 준다. 습기가 올라오는 땅과 생활 공간 사이에 공기층을 두고, 그 위에 단단한 콘크리트 껍데기를 씌운 구성이다.
이 지역에서는 콘크리트를 잘 쓰지 않는다. 숲 속 별장이라면 목재가 정석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설계팀은 그 관습을 거꾸로 밟았다. Kotaro Ide는 자연과 보조를 맞춘다는 건 자연에 굴복하는 게 아니라 자연과 공존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구조물이 존재할 수 있는 건 자연을 견디는 힘 덕분이라는 말도 덧붙인다. 생활 공간을 야생에서 떼어 내고 피난처로서의 성능을 끌어올려야 집이 아껴지고 자주 쓰인다는 논리다.

3차원 곡면을 포기하고 얻은 두 개의 타원
첫 구상은 훨씬 과감했다. 3차원으로 휘어지는 곡면 셸을 만들고, C자 단면이 가운데 전나무를 감싸 돌면서 평면이 알파벳 J를 그리게 할 계획이었다. 일부 공간은 2개 층이 트인 볼륨으로 열 생각이었다. 그러나 예산과 공법, 마감을 따져 본 끝에 2차원 곡면으로만 이뤄진 셸로 계획을 낮췄다.
완성된 J자 매스는 크기가 다른 타원 실린더 두 개를 곡선으로 잘라 이어 붙인 것이다. J의 곧은 획이 작은 매스, 휘어진 획이 큰 매스다. 구조 요구를 맞추느라 벽 두께는 타원 꼭대기에서 350mm로 시작해 양옆으로 갈수록 750mm까지 두꺼워진다. 흥미로운 건 잘린 단면에서 자유 곡선과 비틀린 3차원 곡면이 언뜻 보인다는 점이다. 전체는 2차원 곡면뿐인데 절단선이 착시를 만든다. 예산 때문에 물러선 자리에서 짓기 쉬운 곡면으로 같은 인상을 낸 셈이다.

전나무 한 그루를 중심으로 J자 평면을 휘었다
배치의 출발점은 대지 한가운데 서 있던 커다란 전나무다. 집은 이 나무를 중심에 두고 휘어 돌고, 주된 조망은 늘어선 소나무 줄로 향한다. 나무를 베고 반듯한 땅을 만드는 대신 나무 둘레로 집을 감아 돌렸다.
J자의 안쪽은 원형 데크가 감싼 작은 중정이 됐다. 전나무 발치에는 둥글게 식재 공간을 남겼고, 데크는 계단식으로 낮아지며 원형 극장의 객석처럼 나무를 바라본다. 사람은 시선을 둘 곳이 하나 있을 때 오래 머문다. 거실에 앉아도, 데크에 나와도 눈길이 결국 이 나무로 모이니 집 전체가 한 그루를 위한 관람석처럼 작동한다.

에어컨 없이 숨 쉬는 껍데기
콘크리트 껍데기라고 해서 꽉 막힌 통은 아니다. 급기구와 배기구는 전부 창 새시 아래에 숨겼고, 공기는 테라스 하부의 목재 루버를 통해 밖으로 빠져나간다. 사진 속 테라스 밑을 감싼 가로 루버는 이 집의 숨구멍이기도 하다.
창은 고정창 대신 여닫을 수 있는 창으로 계획해 자연 환기를 최대한 끌어냈다. 그 덕에 일반 생활 공간에는 에어컨을 따로 두지 않았다. 여름 피서지라는 가루이자와의 원래 쓰임새를 생각하면 꽤 정직한 선택이다. 기계로 공기를 식히는 대신 숲의 서늘한 바람을 그대로 들이는 쪽을 택했다.

타원의 아래쪽 절반은 난방실이 된다
타원 실린더 안에 사는 건 공간 낭비 아닐까. 단면을 보면 위아래로 둥글게 남는 자리가 많아 보인다. 설계팀은 그 아래쪽 절반에 가구를 붙박아 넣었다. 소파와 수납이 곡면을 따라 놓이면서 버려질 법한 모서리가 앉을 자리가 된다.
평평한 바닥으로 타원을 가로지르면 그 밑에 활 모양의 빈 공간이 생긴다. 이곳이 배관으로 채운 열 챔버다. 자주 머무는 자리에서 따뜻한 공기를 불어 바닥을 데우고, 그 공기는 결국 창가의 슬릿으로 빠져나오며 찬 기운이 유리면을 타고 내려오는 콜드 드래프트를 막는다. 맞춤 제작한 이 바닥 난방은 곰팡이를 막는 데도 효과가 크다. 큰 유리창을 겁 없이 낼 수 있었던 것도 이 장치 덕분이다.

곡면 천장은 간접조명으로 밝힌다
실내 사진에서 눈여겨볼 건 천장에 다운라이트가 거의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상부장 위에 숨긴 조명이 곡면 천장을 쓸어 올리듯 비추고, 붙박이 소파 아래로는 라인 조명이 바닥에 따뜻한 띠를 깐다. 낮에는 천장에 뚫린 타원형 천창이 그 역할을 이어받는다. 거실 한가운데 매달린 블랙 행잉 벽난로까지 더하면 이 집의 빛은 대부분 벽과 천장에 한 번 부딪힌 뒤 눈에 닿는다.
이 방식이 통하는 이유는 조명 설계의 기본에 있다. 공간에 깊이를 주려면 전반 조명, 작업 조명, 연출 조명 세 겹을 겹쳐 깔아야 하고, 간접 조명은 빛을 면에 튕겨 눈부심을 없애면서 면을 넓어 보이게 한다. 2700~3000K 정도의 웜톤은 쉬는 공간에 맞는다. 짙은 목재 바닥은 빛을 먹기 때문에 천장을 밝히지 않으면 같은 밝기여도 훨씬 어둡게 읽힌다. 곡면 천장에 구멍을 숭숭 뚫기보다 면 전체를 빛으로 씻어 내는 편이 셸 구조의 논리에도 맞다.
아파트에서도 응용할 수 있다. 상부장이나 커튼박스 위에 코브 조명을 넣어 천장을 비추고, 붙박이 소파나 침대 하부에 라인 조명을 한 줄 숨기는 것만으로 밤 분위기가 달라진다. 여기에 디머 스위치를 달면 하나의 밝기로 저녁 내내 버틸 필요가 없다.

동굴 같은 질감의 비밀, 우레탄과 버미큘라이트
실내 곡면 천장이 매끈한 콘크리트 대신 거친 베이지 톤을 띠는 데는 이유가 있다. 타원 실린더 안쪽 벽에는 60mm 두께의 경질 우레탄폼을 붙였고, 표면 강도를 높이려고 버미큘라이트를 섞은 합성수지를 그 위에 직접 뿜어 마감했다. 원래 패널 뒷면에 흔히 쓰는 마감인데, 방화와 흡음, 단열과 방습에 두루 효율적이다. 가끔씩만 쓰는 별장이라 빨리 데워지고 습기에 강한 안쪽 껍질이 필요했다.
이 질감이 공간의 심리를 바꾼다. 매끈한 곡면은 차갑고 미끄럽게 느껴지지만, 손끝에 걸리는 거친 곡면은 동굴처럼 몸을 감싸는 느낌을 준다. 욕실은 그 감각을 가장 대담하게 쓴 곳이다. 곡면 유리벽 바로 옆에 화이트 욕조와 세면대가 놓여 숲을 마주 보고, 밤이 되면 블루 조명이 분위기를 통째로 바꿔 놓는다. 곡면 천장이 사람을 감싸는 효과는 앞서 소개한 〈고쳤을 뿐인데 조개 속에 들어와 있었다, House in Akashi〉에서도 확인된다.

버튼 세 개로 끝나는 별장 관리
이 집의 진짜 혁신은 눈에 잘 띄지 않는 곳에 있다. 기계·전기 설비 전체를 중앙 제어 시스템으로 묶어 버튼 세 개로 다룰 수 있게 했다. 출입은 생체 인식 잠금과 보안 시스템이 맡는다. 비워 둔 동안 기온이 어는점까지 떨어지면 자동 시스템이 배관 공간부터 데워, 훨씬 적은 에너지로 동파를 막는다. 제습과 환기 장치도 1년 내내 자동으로 돈다.
2008년이면 스마트홈이라는 말이 아직 낯설던 때다. 별장 주인을 괴롭히는 건 사실 불안이다. 집을 비운 사이 배관이 터지지 않았을까, 곰팡이가 피지 않았을까 하는 걱정이 쌓이면 별장은 쉼터 대신 숙제가 된다. 그 걱정을 버튼 세 개로 덜어 주자 사람은 더 자주 찾아온다. 공간이 사람의 발걸음을 바꾸는 힘이 꼭 형태에서만 나오는 건 아니다.

숲에 지지 않는 집, 시간이 입히는 노출콘크리트
설계팀은 앞으로의 유지보수까지 계산했다. 창 새시를 포함한 인테리어와 설비를 구조체와 완전히 분리해, 언젠가 속을 갈아 끼워도 껍데기는 그대로 남게 했다. 콘크리트는 그대로 노출하고 침투성 실러로만 마감했다. 구조체는 세월을 따라 주변에 스며들도록 두겠다는 계산이다.
설계팀은 사람의 삶과 자연의 경계를 흐릿하게 두는 것이 일본의 미덕이라는 점을 인정한다. 다만 그 이상은 매일 숲을 돌보는 손길이 있어야 성립하고, 매일 머무는 집이라면 몰라도 별장에서는 현실성이 없다고 본다. 별장이 줘야 하는 건 주말 동안 버틸 기능보다 좋은 휴식과 질리지 않는 풍경이라는 것이다. 숲 속 콘크리트 별장의 다른 해법은 〈짓는 과정이 설계가 된 콘크리트 별장, Capsule Retreat〉와 나란히 놓고 보면 더 선명해진다. 그 집이 땅에서 솟아난 듯 낮게 엎드렸다면 Shell은 땅에서 1.4m 떨어져 떠 있다.
설계팀의 결론은 의외로 소박하다. 자주 쓰이는 별장이 결국 주변과 어우러진다는 것. 숲을 닮으려 나무 옷을 입은 집은 비어 있는 동안 습기에 먹히고, 숲에 맞서 콘크리트 껍데기를 쓴 집은 사람이 계속 드나들며 숲의 일부가 돼 간다. 18년이 흐른 지금, 이 우주선 둘레의 나무들은 그만큼 더 자랐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