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집 지으려면 일상을 먼저 계획하라

집짓기는 건축주와 건축가의 만남이 시작이다. 설계를 먼저 하고 공사를 나중에 하는 것이 당연한 순서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 집짓기 현실은 정반대다. 건축주와 시공업자의 만남이 대부분 시작이다. 즉, 집을 짓는 시공자를 먼저 만나 공짜 설계 도면을 받아 진행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건축가와 건축주의 만남은 여전히 어색하다. 만남이 어색하니 등 떠밀려 나온 맞선자리인 양 이야기가 겉돌기 마련이다. 한두 차례 만나면 결국 엊그제 인터넷 어딘가에서 보았던 집과 비슷하게 설계해달라는 식으로 마무리되기 일쑤이다. 내가 살고 싶은 집을 짓고 싶다면 필자는 건축가와 만날 것을 권한다. 최근 내가 만난 건축주를 소개한다. 이 글을 읽다보면, 건축가와 만남의 벽이 사라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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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의 쓰임새를 하나하나 기록한 건축주의 스케치. ⓒ바우건축 제공

 

어느 일간지 문화부 기자로부터 연락이 왔다. “후배 기자 부모가 집을 지으려고 하는데 이미 시공사를 만나 설계를 진행했다. 후배가 걱정이 되는지 의논을 하고 싶은데 워낙 집이 작아서 혹시 맡을 수 있는지?” 건축가 처지에서 건물의 크고 작음보다는 어떤 사람이 어떤 집을 짓고자 하는지가 더 중요한 관심이었기 때문에 연락처를 건네받았다. 건축주 노부부는 66㎡(20평)대 아파트에 살고 있었다. 평범하고 작은 집이지만 치장하지 않고 잘 정돈된 집의 모양새와 깨끗하게 빗어 넘긴 흰머리가 무척 인상적이었다. 자신들이 왜 집을 지으려는지 할머니가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무척이나 소박하고 대단할 것 없는 이야기였는데 여운이 매우 깊었다.

“우리가 이 정도 건강을 유지하면서 살 수 있는 여생이 한 10년쯤 될 것 같다. 그래서 남은 생은 땅을 밟고 살고 싶다. 아무래도 주변과 어울려서 지내기에는 주택이 좋을 것 같은데, 영감(할아버지)이 반대한다. 영감을 꼬드길 양으로 내가 영감 고향에 집을 짓자고 했다. 영감 고향이 인천이다. 땅을 보러 여러 곳을 다녔는데, 이 땅을 보게 되었을 때 내 집을 만난 듯한 묘한 느낌이 들었다.”

전화로 주소를 알려주신 덕에, 필자도 미리 땅을 본 뒤 만났다. 인천시 수봉공원 밑자락, 말 그대로 동네라는 표현이 꼭 맞는 곳이었다. 집이 들어설 땅의 전면(남쪽)으로 작은 공원이 인접해 있다는 점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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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은 38평인데, 주변에 그렇게 좋은 집들이 아니니, 새로 들어서는 우리 집이 표 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또 2층집이어야 한다. 1층은 동네 아이들이 공부하고 놀 수 있는 공간이 있었으면 좋겠다. 우리 영감도 여러 가지를 아이들에게 가르칠 수 있을 것 같다. 나도 아이들과 있으면 심심하지 않을 것 같다. 우리 영감이랑 내가 사용할 집은 2층에 있으면 좋겠고, 나이가 드니까 어수선한 것들을 보면 자꾸 치우게 되니 방이나 거실이 작을수록 좋겠다. 대신 수납장이 많이 필요하다.”

노부부는 허름해 보이는 동네 어귀 30년이 넘은 단층집이 있는 땅을 1억4000만원에 샀다. 준주거지역이라서 이곳에 지을 수 있는 규모는 4층 정도. 여러 인센티브를 받으면 330㎡(100평)가 넘게 지을 수 있는 땅이다. 대개 이런 땅에는 아래 3개 층을 지어 상가로 세를 주고 4층에 주거공간을 마련한다. 노부부 요구는 소박하고 담백했다. 넓은 집이 아니었다.

“옆집이 노인정이니 같이 마당에서 무언가를 나누어 먹을 일도 많을 것이다. 그래서 울타리도 없는 게 낫다. 아이들도 앞 공원에서 뛰놀게 하려면 시원하게 열려 있으면 좋겠다.”

 

1층은 동네 아이들이 놀 공간

한 달 동안 네 번을 만나서 건축주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네 번의 만남 속에서 건축주는 무척 쑥스러워하면서도 도면이기보다는 이 집에서의 삶을 그린 여러 장의 스케치를 보여주었다. 집의 모양을 짐작할 수 없지만 집의 작은 공간 하나하나의 쓰임새를 구체적으로 고민한 그림들이었다.

건축가로서, 누군가가 자신의 남은 생을 보낼 공간에 대한 애정을 들여다볼 수 있어, 내색하지 않았으나 무척이나 먹먹했다. 눈시울이 뜨거워져 건축주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천장을 슬쩍슬쩍 올려다보기도 했다.

왜 집을 지으려는지, 어떤 집을 지으려는지 물었던 치기어린 젊은 건축가의 상투적인 질문에 자신들의 남은 삶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 노부부에게 오히려 많은 것을 느끼고 배웠다.

이런 만남을 통해 필자의 노트에는 이미 많은 것이 그려지고 있다. 건축주의 스케치보다는 훨씬 현실적인 것과 극단적일 정도로 이상적인 내용이 중첩된다. 노부부를 위한 2층 공간은 33㎡(10평)가 조금 넘을 것으로 짐작된다. 아이들을 위한 1층 공간도 비슷하다. 무척이나 작은 집이지만 큰 생각을 가진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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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을 지으려는 많은 사람들이 인터넷에 올려진 화려한 집 사진에서 자신의 것을 찾기보다는 노부부처럼 그 집에서 일구어갈 작은 일상을 먼저 계획하라고 권하고 싶다. 하얀 대리석 마감을 고민하는 것보다는 가을 오후 아내와 차를 마실 툇마루나 여덟 살 우리 아이와 함께 뒹굴고 싶은 볕이 좋은 마당을 떠올리는 것이 훨씬 행복하기 때문이다.

다음에 만날 때는 이 건물의 모양새에 대해 처음으로 설명할 계획이다. 우리보다 오랜 시간 이 집을 상상했을 건축주의 반응도 궁금하다. 대지는 한정된 제약이 많아 운신의 여지가 거의 없을 정도지만, 조금 더 나은 쓰임과 모양을 위해 궁리하는 과정이 앞으로 두 달 이상 지속될 것이다.

이 과정에서 건축가로서 우리의 욕망과 건축주의 소망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때론 충돌할 것이고, 또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구분해야 한다. 집을 위한 합리적인 구조와 설비를 검토하고 적절한 재료를 결정해 나가야 한다.

그리고 건축은 노트 속의 그림이 아니라 현실의 물리적 실체로 구축되어야만 하는 존재이기에 이 모든 과정은 치열한 현장을 거쳐서 비로소 집으로 완성될 것이다. 남겨진 모든 일정이 항상 그렇듯 설렘이 절반이고, 걱정이 절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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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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