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조개껍데기를 귀에 대본 적 있을 것이다. 파도 소리 같은 게 들려서, 저 안쪽 어딘가에 바다로 통하는 구멍이라도 있는 건 아닐까 상상했던 기억. Akio Isshiki Architects가 일본 Akashi의 50년 된 집을 고칠 때만 해도 이런 이야기를 염두에 둔 건 아니었다고 한다. 그런데 공사를 마치고 완성된 집 안에 들어선 순간, 정작 설계한 본인이 조개껍데기 속에 들어와 있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는 게 이 집의 재미있는 지점이다.
처음부터 정해둔 테마가 있었던 건 아니다. “이렇게 하면 더 편하지 않을까”, “이게 더 매력적이지 않을까” 싶은 조각들을 하나씩 붙여나가다 보니 완성된 집이라고 한다. 구조나 예산 문제가 생기면 그때그때 맞춰 조정했을 뿐인데, 그 과정에서 곡선진 벽과 반원으로 뚫린 낮은 천장, 옛 후스마에서 떼어낸 미닫이문 같은 것들이 자연스럽게 남았다.

아카시 바닷가 언덕, 50년 된 집에 새 레이어를 얹다
Akashi는 고베 옆, 아카시해협을 마주보는 항구 도시다. 이 집은 그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언덕 골목에 50년 가까이 자리를 지켜온 단독주택이었다. Akio Isshiki Architects는 기존 골격을 허물어내는 대신 그 위에 새로운 레이어를 얹는 쪽을 택했다. 낡은 지붕과 외벽은 그대로 두고, 내부만 완전히 다시 짰다. 겉에서 보면 여느 동네 주택과 다를 게 없어 보이지만,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완전히 다른 공간이 펼쳐진다.

현관에 들어서자 시작되는 곡선
문을 열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게 천장에 뚫린 타원형 구멍이다. 반듯했던 옛 천장 한쪽을 도려내 위층으로 시선이 트이게 만들었는데, 그 모양이 마치 조개 안쪽을 들여다보는 듯한 인상을 준다. 좁고 긴 복도를 따라 걷다 보면 목재 루버로 마감한 문이 나오고, 그 안쪽으로 은은한 빛이 새어 나온다. 신발을 벗고 들어서는 그 짧은 동선 하나에도 옛집의 흔적과 새로 얹은 레이어가 겹쳐 있는 셈이다.

정해진 테마 없이, 조각을 맞추듯 완성한 집
이 집을 만든 방식은 조금 독특하다. 보통 리노베이션이라면 하나의 컨셉을 정해두고 그 아래 세부 요소를 채워나가기 마련인데, 여기서는 순서가 반대였다. 배관을 감추기 위한 곡선 벽, 반원으로 도려낸 낮은 천장, 이 오목한 천장 디테일도 그렇게 즉흥적으로 쌓아올린 결과 중 하나다. 정해둔 청사진 없이 조각을 하나씩 맞춰나간 덕분에, 오히려 예측할 수 없는 유기적인 형태들이 곳곳에서 튀어나온다. 합판을 그대로 노출한 벽과 매끈하게 마감한 천장이 나란히 붙어 있는 것도 그 즉흥성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옛 후스마를 재활용한 미닫이문, 경계를 흐리다
오래된 후스마에서 떼어낸 손잡이를 새로 바른 미닫이문에 그대로 옮겨 달았다. 겨자색 종이와 검은 테두리는 옛집이 쓰던 것과 비슷한 톤으로 맞췄지만, 자세히 보면 새로 짠 목재 프레임이라는 걸 알 수 있다. 낡은 것과 새것의 경계를 일부러 흐릿하게 만든 셈이다. 문을 열어젖히면 방과 방 사이가 하나로 이어지는 루프 형태가 되고, 닫으면 다시 개별 공간으로 나뉜다. 이 미닫이문 하나로 공간이 열리고 닫히는 리듬 자체가 이 집을 도는 재미가 된다.

낡은 목조 골조와 새 곡선이 만나는 계단
계단실을 올려다보면 이 집의 시간차가 한눈에 드러난다. 50년 묵은 통나무 보와 살짝 뒤틀린 옛 골조는 그대로 남겨뒀고, 그 위로 새로 짜넣은 합판 곡선 벽과 손잡이가 겹쳐진다. 직선적이고 다소 투박했던 원래 구조에 부드러운 곡선과 사선이 더해지면서, 뼈대만 남았던 공간에 유기적인 인상이 생겼다. 계단을 오르내릴 때마다 낡은 목재의 진한 색과 새 합판의 밝은 결이 번갈아 시선에 걸린다.

쇼지 스크린 사이로 스며든 빛, 바다를 향한 창
거실 겸 다이닝 공간은 낮은 소파와 목재 테이블을 중심으로 차분하게 정리돼 있다. 창에는 원목 프레임에 화지를 바른 쇼지 스크린을 달아, 밖에서 들어오는 빛을 한 번 걸러낸다. 낮 동안에는 이 빛이 곡선 벽을 타고 흐르다 방 안쪽 깊은 곳에서 서서히 사라지는데, 그 과정에서 수직과 수평, 옛것과 새것의 대비가 자연스럽게 녹아든다. 티브이 옆으로 살짝 열린 창 너머에는 바다가 걸려 있어, 앉은 자리에 따라 풍경이 달라 보이는 것도 이 집의 소소한 재미다.

창을 열면 들려오는 바닷마을의 소리
이 집이 가진 진짜 무기는 사실 창이다. 창을 열면 바닷바람과 함께 멀리서 들려오는 배 뱃고동 소리, 새소리, 오후 5시를 알리는 마을 종소리 같은 것들이 그대로 들어온다. 몬스테라 화분이 놓인 창가 쪽에서는 지붕 너머로 아카시해협이 한눈에 들어오는데, 전깃줄과 지붕선이 겹치는 이 동네 특유의 풍경도 그대로 살렸다. 소리와 바람, 빛 같은 손에 잡히지 않는 것들이 이 공간을 채우고, 시간이 지나며 계속 다르게 변한다는 점이 이 집이 노린 지점이다.

50년의 기억을 품은 목재 보 아래 식탁
다이닝 공간 한가운데는 둥근 원목 테이블과 위시본 체어가 자리 잡았다. 그 위로는 삼각형 모양의 초록색 펜던트 조명이 낮게 내려와 있고, 천장에는 50년 전 그대로의 통나무 보가 가로지른다. 새로 들인 가구와 낡은 목재 보가 한 프레임 안에 자연스럽게 섞이는 장면이다. 이 식탁에 둘러앉아 밥을 먹는 가족의 일상 위로, 반세기 동안 이 집을 지탱해온 나무의 시간이 겹쳐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