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씨가 창틈으로 스며든다 — 캘리포니아 산불 방재건축

화염이 아니라 불씨였다. 캘리포니아의 산불이 집을 태우는 방식을 들여다보면, 벽을 통째로 삼키는 불길보다 창틈이나 환기구로 스며드는 작은 불씨 쪽이 더 위협적이라는 사실이 드러난다. 바람이 불씨를 불길보다 훨씬 앞서 실어 나르고, 그 불씨가 벽 틈에 쌓이거나 환기구를 타고 넘어가면 집 안에서부터 불이 시작된다.

미국 보험연구소(Insurance Institute for Business & Home Safety)는 산불로 인한 주택 화재의 최대 90%가 이런 불씨 때문이라고 추정한다. 미국 국립표준기술연구소(NIST) 역시 도시-자연 경계지역(Wildland-Urban Interface) 화재에서 구조물 손실 대부분의 원인으로 불씨를 지목한다. 2025년 1월 로스앤젤레스를 덮친 팰리세이즈(Palisades)·이튼(Eaton) 산불은 두 지역에서 1만6000여 채의 건물을 태웠는데, 그 잿더미 옆에 멀쩡히 서 있는 집 몇 채가 화제가 됐다. Chansen Architecture가 2024년 지은 퍼시픽 팰리세이즈(Pacific Palisades)의 집, 말리부의 콘크리트 해변 주택 등이다. 다만 이 생존은 설계만이 아니라 바람의 방향과 소방 대응이 겹친 결과에 가깝다.

불씨가 먼저 도착한다

CAL FIRE(캘리포니아 산림소방국)는 처마 틈을 메우고 방염 환기구를 쓰라고 권고한다. 캘리포니아주는 산불 관련 건축기준을 하나로 묶어 ‘도시-자연 경계지역 건축기준(Wildland-Urban Interface Code)’을 2026년 초부터 시행하고 있다. 두꺼운 콘크리트 벽은 열을 버텨도 그 옆의 작은 틈 하나가 집 전체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는 뜻이다. 지붕의 형태, 데크와 벽이 만나는 이음매, 창문 바로 앞의 화단까지 방재건축의 대상이 된다.

콘크리트 위에 삼나무 입힌 방재건축

Mork-Ulnes Architects의 Frame House는 이 발상을 눈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소노마(Sonoma)의 이 부지에는 원래 작은 콘크리트 게스트하우스 세 채가 있었는데, 2017년 넌스 산불(Nuns Fire)이 지나가면서 본채는 크게 파손됐지만 콘크리트 게스트하우스들은 살아남았다. 집주인은 그 경험을 안고 Mork-Ulnes Architects에 새 집을 의뢰했다. 완성된 집은 노출 콘크리트 구조에 금속 프레임 창호와 불연 지붕재를 얹고, 그 위에 웨스턴 레드 시더(Western red cedar) 패널로 외피를 씌웠다.

이 사무소를 이끄는 Casper Mork-Ulnes는 이 목재층을 ‘희생층(sacrificial layer)’이라 부른다. 불이 나면 겉의 나무는 타 없어지더라도 안쪽 콘크리트가 다시 한번 막아준다는 뜻이다. 국내에서도 화재 부산물을 다시 건축 재료로 되돌리는 시도가 있다. 탄소저장 신소재 MO6처럼 타고 남은 것을 구조의 일부로 되살리는 발상은, 건물의 일부를 잃는 것을 전제로 설계하는 이 방재건축의 태도와 닮아 있다.

노출 콘크리트에 삼나무를 덧댄 Frame House 산불 방재건축
사진: Bruce Damonte

지붕을 방화 담요로 만든 산불 방재건축

더 남쪽인 토판가(Topanga)에서는 Deegan-Day Design & Architecture의 4/Way House가 같은 문제를 다른 방식으로 풀었다. 부지는 1993년 올드 토판가 산불(Old Topanga Fire)이 휩쓸고 간 산타모니카 산맥(Santa Monica Mountains) 자락, 스카이호크 레인(Skyhawk Lane)에 있다. Joe Day와 Nina Hachigian이 땅을 사들인 뒤 설계와 시공을 거치며 산불은 점점 이 집의 핵심 조건이 됐다.

강판 트러스 위에 접힌 형태의 아연 지붕(standing-seam zinc)이 지붕부터 벽 일부까지 감싸는데, Day는 이를 ‘방화 담요(fire blanket)’라 부른다. 집 둘레의 테라스는 쉬는 공간이면서 동시에 건물과 주변 식생 사이의 완충지 역할을 하고, 그 아래는 콘크리트 옹벽이 한 번 더 받친다. 능선 위쪽 집들보다 낮은 자리에 있다 보니, 소방대가 진입해 윗집을 지킬 공간까지 설계에 포함됐다.

아연 지붕으로 불씨를 막는 4/Way House 방재건축
사진: Deegan-Day Design & Architecture 제공

규제는 건물 바깥으로도 번지고 있다. 2026년 8월 캘리포니아주 산림·화재보호위원회(Board of Forestry and Fire Protection)는 건물 반경 약 1.5m(5피트) 안쪽을 불씨에 강한 공간으로 만드는 ‘존 제로(Zone 0)’ 규정을 통과시켰다. 이 규정은 8월 28일 행정법무국(Office of Administrative Law)에 제출됐고, 9월 8일 기준 주 전역 시행을 위한 심사가 진행 중이다. 식물이 외벽에 닿아 타거나 가연성 울타리가 벽에 붙어 있으면 그 자체로 불씨의 통로가 된다는 논리다. 마당의 방재건축은 건물 바로 앞 1.5m를 자갈이나 포장재로 비워두고, 그 너머부터 식재 간격을 넓혀 관리하는 방식으로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

어떤 집도 완전히 안전하지는 않다. 과거 캘리포니아 산불 연구에서는 이웃한 건물끼리 불을 옮겨붙인 사례도 확인됐고, 바람의 방향이 바뀌거나 소방 인력이 다른 구역에 몰리면 상황은 얼마든지 달라진다. 그래서 이번에 언급한 집들도 요새처럼 밀폐하는 대신 목재를 그대로 쓰고, 마당과 테라스로 풍경을 향해 열어둔 채로 설계됐다. 달라진 건 집과 땅 사이의 경계선이 그어지는 위치, 그뿐이다.


이 기사는 아래 원문 보도를 참고해 PHM ZINE이 새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사진과 자세한 내용은 원문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출처 : designboom — how do california architects design a house to live with wildfi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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