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과 한집에 살 수 있을까. 에콰도르 주택 Casa Ortega는 이 오래된 질문에 “한 채 안에 두 집”이라는 답을 내놓는다. 키토 남동쪽 근교 도시 상골키(Sangolquí)에 2017년 완공된 507m² 규모의 두 세대 주택으로, 아들 Raúl Ortega가 자신과 앞으로 꾸릴 가족, 그리고 부모님이 함께 살 집으로 의뢰했다.
설계는 Ana María Durán Calisto와 Jaskran Kalirai가 함께 이끄는 Estudio A0가 맡았다. 재료는 벽돌과 철골, 유리 정도로 평범하다. 그런데 완성된 집을 보면 공장과 시골 벽돌집, 요새와 놀이터가 한 몸에 섞여 있다. Durán Calisto는 “누군가의 집을 설계하는 일은 그 사람의 초상화를 그리는 일”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이 초상화 속 인물은 어떤 사람일까.

부모와 아들, 독립했지만 떨어지지 않은 두 집
건축주의 주문은 분명했다. 한쪽 동은 Raúl과 그가 언젠가 꾸릴 가족의 몫, 다른 한쪽은 부모의 몫. 서로 독립돼 있으면서도 이어져 있는 두 집이어야 했다.
요즘 한국에서도 부모 세대와 자녀 세대가 한 필지에 모여 사는 “따로 또 같이” 주택에 관심이 많은데, 늘 걸리는 게 거리 조절이다. 너무 붙이면 사생활이 사라지고, 너무 떼면 굳이 한 땅에 살 이유가 없어진다. Casa Ortega는 이 거리를 공간의 성격으로 나눠 해결한다. 주방·다이닝·메인 거실 같은 공용 공간은 함께 쓰고, 침실과 각 세대의 거실, 욕실은 철저히 갈라놓았다. 건축가의 표현을 빌리면 “매듭을 끊지 않고 풀어주는 방법은 각자에게 제 몫의 공간을 주는 것”이다.
한 가족이 여러 채로 흩어져 사는 〈마당 하나를 네 채가 둘러쌌다, Georgica Cove〉가 한 집을 쪼갠 경우라면, 이 집은 두 가족을 한 채로 묶은 경우다. 방향은 반대지만 두 집 모두 “얼마나 떨어져 있어야 편한가”라는 같은 질문에서 출발한다.

하늘에서 보면 누운 8자, 두 개의 C가 맞물린 평면
위에서 내려다보면 집의 형태가 한눈에 읽힌다. 모양은 같고 크기만 다른 두 개의 C자 매스가 서로 반대 방향으로 맞물려 있다. 하나는 Raúl 가족의 마당을 품고, 뒤집힌 다른 하나는 부모의 마당을 품는다.
건축가는 이 모양을 옆으로 누운 8자, 그러니까 무한대 기호에 빗댄다. 끝없이 되돌아오는 고리, 끊어지지 않는 가족이라는 뜻이다. 상징은 꽤 낭만적인데 실제 효과는 훨씬 현실적이다. 세대마다 자기 마당이 하나씩 생기니, 같은 땅에 살아도 각자의 거실 앞 풍경이 겹치지 않는다.
두 매스를 어긋나게 붙여 마당을 만드는 발상은 앞서 소개한 〈헛간 두 채를 어긋나게 붙였더니 마당이 생겼다, Heatherhill Beach House〉와도 통한다. 다만 Casa Ortega는 그렇게 생긴 마당을 둘로 나눠 세대마다 하나씩 나눠줬다는 점이 다르다. 마당이 곧 세대 간의 완충지대가 된 셈이다.

아들의 마당은 산맥을, 부모의 마당은 아침 해를 본다
두 마당은 바라보는 방향도 다르다. Raúl 쪽 C는 오후 해를 받아들이며 지평선에 늘어선 안데스 산맥 쪽으로 열린다. 부모 쪽 C는 아침 해를 받으며 집 안쪽으로 몸을 접는다.
항공 사진을 보면 이 땅이 어떤 곳인지 바로 드러난다. 나지막한 주택들이 흩어진 동네 뒤로 화산 봉우리들이 겹겹이 서 있다. 이런 풍경을 젊은 세대의 마당 쪽으로 열어준 건, 바깥 세상을 향해 사는 사람과 집 안의 고요를 아끼는 사람을 구분한 결정으로 읽힌다.
같은 땅에서 해가 드는 시간까지 나눠 가진 셈이다. 아침은 부모의 마당에서, 저녁 노을은 아들의 마당에서 시작된다.

공장과 벽돌 가마 사이, 벽돌 주택의 재료를 고르다
재료는 어디서 왔을까. Raúl은 아버지와 함께 공장 두 곳을 운영한다. 하나는 목재 부품을 만들고, 다른 하나는 병원에서 쓰는 플라스틱 용기를 압출 성형한다. 목재 공장은 Raúl이 직접 지은 밝고 커다란 창고이고, 플라스틱 공장은 차라리 화학 실험실에 가깝다. 건축가는 두 공장을 둘러본 경험이 잊히지 않았다고 말한다.
그래서 이 집에는 산업적인 성격이 들어가야 했다. 문제는 Raúl이 공장에서 살고 싶어 하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그가 자란 상골키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벽돌 가마가 점점이 박힌 농업 지대였다. 가마에서 구운 벽돌 표면에 부풀어 오른 블랙 기포가 이 지역 담장 특유의 무늬를 만들었다.
결국 집은 공장과 시골 벽돌집의 혼혈이 됐다. 철골, 벽돌, 유리, 잔디, 그리고 아직 자라는 중인 나무들. 새 집을 동네의 맥락 안에 앉히는 일, 그리고 Raúl의 미래를 그의 현재 안에 들여놓는 일이 같은 재료 선택 안에서 이뤄졌다.

철골은 조립하고 벽돌은 쌓았다
산업적인 성격은 구조에서 시작한다. 뼈대는 철골이고, 짓는 방식도 쌓기보다 조립에 가깝다. 가는 블랙 스틸 프레임이 커다란 유리를 끼우고, 지붕 슬래브는 얇은 판처럼 밖으로 길게 뻗어 처마를 만든다.
그 프레임 사이사이에 두툼한 벽돌 매스가 박혀 집의 무게중심을 잡는다. 가볍고 투명한 것과 무겁고 거친 것이 번갈아 나오니, 한 가지 재료로 밀어붙인 집보다 리듬이 훨씬 풍부하다. 공장의 정밀함과 가마의 손맛이 한 입면 안에서 교대로 등장하는 셈이다.
바닥에는 원목 데크를 넓게 깔았다. 유리문을 열면 거실이 데크로, 데크가 다시 잔디로 이어진다. 실내와 마당 사이에 신발을 신을지 말지 애매한 중간 지대가 하나 생긴 것인데, 아이들이 뛰어놀기엔 이런 경계가 가장 좋은 무대다.

2층이 1층보다 넓은 집, 경사면이 그 차이를 메운다
두 세대가 한 집에 살다 보니 면적 계산에서 흥미로운 일이 생겼다. 침실과 각자의 거실, 욕실 같은 사적 공간이 함께 쓰는 공용·반공용 공간보다 넓어진 것이다. 사적 공간은 2층에, 공용 공간은 1층에 있으니 자연히 위층이 아래층보다 커졌다.
그래서 집 곳곳에서 2층 볼륨이 1층 밖으로 밀려 나와 잔디 위에 떠 있는 장면이 생긴다. 일반적인 집이라면 1층이 넓고 2층이 좁은 게 보통인데, 이 집은 그 순서가 뒤집혀 있다. 가족이 둘이라 “혼자 있을 자리”가 “함께 있을 자리”보다 더 많이 필요했다는 사실이 형태로 드러난 셈이다.
건축가는 이 위아래 면적 차이를 비스듬히 기운 두 개의 벽으로 이어 붙였다. 구조적인 처리로 끝날 수도 있던 부분인데, 이 집에서는 그 경사면이 오히려 가장 재미있는 공간이 된다.

기울어진 벽이 계단식 서재가 되고, 화분 정원이 됐다
경사면 하나는 Raúl을 위한 계단식 서재가 됐다. 비스듬한 면을 따라 단을 쌓고, 단마다 책장과 앉을 자리를 만들었다. 계단이면서 책장이고, 동시에 소파다. 레드와 베이지 쿠션이 단 위에 흩어져 있어 어느 높이에 앉아 책을 펼쳐도 괜찮다는 신호를 준다.
다른 경사면은 어머니를 위한 실내 정원이 됐다. 화분을 층층이 올려, 정원이 단을 따라 아래로 쏟아져 내리는 구성이다. 같은 구조적 해법이 아들에게는 책을, 어머니에게는 식물을 안겨준 셈이다. “집은 초상화”라는 건축가의 말이 가장 구체적으로 드러나는 대목이다.
단은 높이 차이만 만들어도 사람의 자세를 바꾼다. 앉고, 기대고, 눕고, 걸터앉는다. 서재를 문 달린 방이 아니라 거실 옆의 단으로 만들면, 책 읽는 일이 가족이 오가는 공간 한가운데로 나온다. 집에서 써먹는다면 거실 한쪽에 두세 단짜리 평상형 단을 짜 넣고 그 옆면을 책장으로 쓰는 것만으로도 비슷한 효과를 볼 수 있다.

함께 쓰는 거실은 두 개 층 높이로 열었다
공용 공간의 중심은 두 개 층 높이로 트인 거실이다. 한쪽은 벽돌 벽이 바닥에서 지붕까지 곧게 올라가고, 반대쪽은 통유리라 마당과 산이 그대로 들어온다. 그레이 패브릭 소파 위의 레드 쿠션, 그리고 레드 암체어 두 개가 블랙 스틸과 브라운 벽돌 사이에서 선명한 포인트를 찍는다.
천장이 높은 공간은 사람을 모으기도 하지만 흩어놓기도 한다. 높이만 있고 기준선이 없으면 썰렁해지기 쉬운데, 이 거실에서는 2층 복도의 난간이 중간에서 높이를 한 번 끊어준다. 위층을 지나가는 가족과 아래층에 앉은 가족이 자연스럽게 서로를 내려다보고 올려다볼 수 있다.
따로 살되 서로의 기척은 느끼게 하는 장치랄까. 두 세대 주택에서 이 “기척”은 꽤 중요하다. 얼굴을 매번 마주치지 않아도, 위층에서 들리는 발소리나 아래층의 불빛만으로 가족이 거기 있다는 걸 안다.

조명 설계는 건축주가 직접 했다
이 집의 조명 설계 크레딧에는 건축주 Raúl Ortega의 이름이 올라 있다. 가장 눈에 띄는 건 두 개 층 높이 거실이다. 철골 트러스 천장에서 가는 전선이 여러 가닥 내려오고, 끝에 갓 없는 전구가 제각각 다른 높이로 매달려 있다. 나무 천장 구간에는 매립 다운라이트를, 정원 쪽에는 벽돌 벽과 잔디 가장자리를 비추는 업라이트를 썼다.
층고가 높은 공간은 천장 조명 하나로 바닥까지 밝히기 어렵다. 빛이 한 점에 몰리면 공간이 오히려 동굴처럼 깊어 보인다. 높이를 나눠 매단 펜던트는 광원을 사람 눈높이 가까이로 끌어내려 허공을 채우는 효과가 있다. 여기에 다운라이트(전반), 펜던트(연출), 정원의 업라이트(외부 액센트)가 겹치면서 낮과 밤의 집이 전혀 다른 얼굴을 갖게 된다. 다만 맨 전구는 눈부심이 생기기 쉬우니, 2700K 안팎의 웜톤 필라멘트 전구에 디머를 함께 다는 편이 저녁 시간을 훨씬 편안하게 만든다.
집에서 따라 해본다면 복층 거실이나 계단실처럼 층고가 높은 곳에 펜던트 서너 개를 높이를 달리해 한 묶음으로 달아보자. 벽돌이나 노출 콘크리트처럼 질감이 있는 벽에는 벽을 위아래로 쓸어 비추는 월워셔 조명을 더하면, 줄눈과 요철의 그림자가 살아나 벽 자체가 장식이 된다.

벽돌 벽에 매달린 캔틸레버 계단
계단은 벽돌 벽에 캔틸레버로 박혀 있다. 원목 디딤판이 벽에서 그대로 튀어나와 있을 뿐, 챌판도 받침 기둥도 없다. 위쪽 지붕 틈으로 들어온 햇빛이 벽돌 면을 비스듬히 쓸어내리며 벽돌 하나하나의 요철을 드러낸다.
건축가가 말한 상골키의 벽돌 가마, 그 기억이 실내로 들어온 장면이다. 블랙 스틸 손스침 한 줄만 벽을 따라 사선으로 달려 있어 계단이 거의 조각처럼 보인다.
아쉬운 점도 있다. 벽 반대편이 그대로 열려 있어, 어린아이가 있는 집이라면 신경이 쓰일 수 있다. 아직 오지 않은 아이들을 상상하며 지은 집이니, 나중에 투명한 유리 난간이나 가는 스틸 와이어를 덧대도 계단의 가벼운 인상은 크게 해치지 않을 것이다.

두 세대가 함께 밥을 먹는 주방
공용 공간의 또 다른 축은 주방이다. 계단 옆으로 블랙 하부장과 아일랜드가 놓이고, 2층 바닥 아래로 주방과 다이닝이 이어진다. 벽돌, 블랙 스틸, 원목, 짙은 그레이 바닥까지 이 집의 재료 목록이 주방에서도 그대로 반복된다.
Raúl의 가족과 부모가 함께 쓰는 공간이 바로 이 주방과 다이닝이다. 잠은 따로 자도 밥은 같이 먹는다는 설정인데, 한국어의 “식구(食口)”라는 말에 가장 가까운 구성 아닐까. 두 세대 주택을 계획한다면 무엇을 나누고 무엇을 함께 쓸지부터 정해야 하는데, 이 집은 그 선을 “부엌은 공유, 욕실은 분리”로 그었다.
짙은 하부장과 벽돌의 조합은 손때와 얼룩을 덜 드러내는 장점이 있다. 대가족이 쓰는 주방이라면 밝은 하이글로시보다 이런 무광의 짙은 마감이 관리 면에서 훨씬 현실적이다.

2층은 각자의 방, 창은 산맥을 향한다
2층으로 올라가면 분위기가 확 달라진다. 밝은 원목 마루와 원목 천장, 통유리 너머로 마을 지붕과 산맥이 펼쳐진다. 침실과 각 세대의 독립 거실, 욕실이 이 층에 모여 있다.
유리가 이렇게 많으면 사생활은 괜찮을까. C자 매스가 각자의 마당을 품고 있어서 시선은 주로 자기 마당이나 멀리 산을 향하게 된다. 다른 세대의 창과 정면으로 마주 보는 일이 적도록 형태가 먼저 시선을 정리해 둔 것이다.
1층이 벽돌과 블랙으로 무게를 잡았다면 2층은 원목과 유리로 가볍게 떠 있다. 함께 있는 층은 단단하게, 혼자 있는 층은 밝고 가볍게. 두 세대 주택의 위아래가 이렇게 다른 온도를 갖는다.

“여자와 아이도 행복한 집”을 주문한 건축주
이 집에는 숨은 주문서가 하나 더 있었다. Raúl은 집에 “여성적인 손길”이 담기기를 바랐다. 남자 건축가와 일하면 남자들의 집, 양(陽)의 기운만 넘치는 집이 될 것 같다는 이유였다. 여자와 아이들도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집을 원했던 그는 처음부터 여성 건축가에게 설계를 맡기기로 마음먹고 Durán Calisto에게 연락했다.
Durán Calisto는 이 대목이 가장 흥미로웠다고 돌아본다. Raúl은 자기 자신보다 다른 사람, 그러니까 부모와 언젠가 만날 아내와 아이들을 먼저 생각하며 집을 그렸다. 마지막으로 집을 찾았을 때 그녀는 자기 아이들을 데리고 갔다. 아이들은 이 집을 숨을 구석과 굴이 가득한 요새처럼 여기며 뛰어다녔고, 집은 햇빛과 소란으로 가득 찼다고 한다.
계단식 서재, 높이가 다른 데크와 마당, 2층 아래로 생긴 틈 같은 공간들이 아이들 눈에는 전부 놀이터였던 셈이다. 아직 오지 않은 가족을 상상하며 지은 집이, 남의 집 아이들 덕분에 먼저 합격점을 받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