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석장 위 코르텐 주택, House for a Photographer

웨일스 남부의 버려진 채석장 한가운데, 코르텐 강판으로 감싼 직사각형 주택 한 채가 땅에서 떠 있다. 이름부터 직설적이다. House for a Photographer, 사진가를 위한 집이다.

런던에서 웨일스로 삶터를 옮기려던 한 사진가가 Hyde + Hyde Architects(하이드 앤 하이드 아키텍츠)에 의뢰한 집으로, 2010년 계획 허가를 받았다. 흥미로운 건 이 집이 세상에 알려진 방식이다. 지금까지 공개된 이미지는 전부 렌더링과 모형이고, 완공된 모습을 담은 실사진은 확인되는 범위에서 나온 적이 없다. 그런데도 10년 넘게 해외 건축·라이프스타일 매체를 돌며 꾸준히 회자된다. 사진가의 집이 정작 사진 한 장 없이 이미지로만 살아남았다니, 아이러니라고 해야 할까.

카포트 위로 길게 뻗은 House for a Photographer 측면 입면 렌더링
렌더링 © Hyde + Hyde Architects

버려진 채석장, 땅을 건드리지 않기로 했다

대지는 브레컨 비컨스(Brecon Beacons) 국립공원 가장자리, 폰티프리드(Pontypridd) 인근의 폐채석장이다. 돌을 캐내고 남은 얕은 분지에 자작나무가 다시 자라 들어왔고, 사방은 깎인 암벽이 둘러싸고 있다. 그림 같은 땅이지만 집을 짓기엔 까다로운 땅이다. 암벽에 기대 기초를 놓으면 공사가 복잡해지고 비용이 뛴다.

예산이 넉넉하지 않았던 설계팀은 답을 반대로 찾았다. 벽에 붙이지 말고 분지 한가운데에 물건처럼 띄워 놓자는 것이다. 건축가는 이 태도를 “땅을 가볍게 딛는다”고 표현한다. 거친 암벽과 매끈한 직육면체가 서로 닿지 않은 채 마주 보면서 생기는 긴장, 이 집의 첫인상은 거기서 나온다.

설계 전에 건축가가 먼저 한 일은 주변 농가와 헛간을 사진으로 기록하는 작업이었다. 웨일스 시골의 헛간은 장식 없이 단순한 직사각형 볼륨이다. 그 형태를 베끼지 않되, 단순하고 힘 있는 윤곽만 가져와 이 집의 뼈대로 삼았다.

코르텐 매스 옆으로 이어진 외부 브리지와 파이어핏 방향 전경 렌더링
렌더링 © Hyde + Hyde Architects

코르텐 외피, 녹이 슬수록 풍경이 되는 주택

외피의 대부분은 코르텐 강판이다. 표면에 일부러 녹을 피워 그 녹층이 안쪽을 보호하게 만드는 내후성 강판으로, 시간이 갈수록 색이 짙어진다. 설계팀은 이걸 레인스크린 파사드로 썼다. 비를 막는 겉껍질과 단열층 사이에 공기층을 두는 방식이다.

왜 하필 코르텐일까? 이 지역 농가 헛간의 함석 지붕이 비바람에 산화하며 레드와 오렌지 사이의 색으로 변해가는 모습에서 가져온 재료다. 초록 언덕과 녹슨 지붕의 대비가 웨일스 시골 풍경의 한 장면이라면, 이 집은 그 장면을 그대로 이어받는 셈이다.

모든 면이 코르텐인 건 아니다. 암벽을 등지고 있어 대지 안에서 보이지 않는 남쪽과 서쪽 입면에는 블랙 스틸 패널을 세로로 붙였다. 이 역시 헛간 건축에서 온 재료다. 보이는 쪽은 따뜻한 코르텐, 숨은 쪽은 차가운 블랙으로 나눈 판단이 깔끔하다.

매스 옆으로는 가느다란 철제 브리지가 뻗어 나간다. 사암을 깎아 만든 평평한 단으로 이어지는 다리이고, 그 끝 높은 곳에 파이어핏이 있다. 집 밖으로 나가서도 한 번 더 걸어 올라가야 닿는 불 피우는 자리, 일상에서 한 발 떨어진 의식의 장소랄까.

기둥 하나가 매스를 받치는 House for a Photographer 카포트와 현관 렌더링
렌더링 © Hyde + Hyde Architects

기둥 하나로 버티는 캔틸레버 주택

이 집에서 가장 대담한 부분은 아래층이다. 생활공간이 들어간 2층 매스가 현장 타설 콘크리트 슬래브에 얹혀 앞으로 길게 튀어나와 있고, 그 끝을 받치는 건 콘크리트 기둥 하나뿐이다. 그 아래는 카포트이자 현관이다. 차에서 내려 기둥 옆 문을 열고 들어가는 동선이다.

1층 벽은 웨일스 전통 농가의 두툼한 잡석 벽을 은유한다고 건축가는 설명한다. 다만 돌 대신 현장 타설 콘크리트를 썼고, 거푸집에 나무판을 대 표면에 나뭇결이 찍히도록 했다. 채석장 안에 자란 숲의 기억을 콘크리트에 새긴 셈이다.

집을 높이 띄운 이유 중 하나는 채광이다. 높이 올라갈수록 빛을 더 많이 받는다. 대신 거실까지 계단을 여러 번 오르지 않아도 되게 차가 올라가는 경사로를 넣었다. 땅을 덜 건드리는 캔틸레버 구조는 앞서 소개한 〈가지처럼 뻗은 기둥 위에 띄운 경사지 주택, Lua House〉와도 통하는 접근이다.

사다리로 오르는 라이브러리와 사진 작품이 걸린 2개 층 높이 거실 렌더링
렌더링 © Hyde + Hyde Architects

사진을 거는 벽, 사다리로 오르는 서재

매스 끝은 바닥부터 천장까지 통유리다. 그 안쪽이 2개 층이 트인 거실이고, 거실 한쪽 벽 위로 서재가 얹혀 있다. 서재로 오르는 건 계단이 아니라 오렌지 사다리 하나다. 책을 꺼내러 올라가는 동작 자체가 작은 놀이가 된다.

실내 마감은 일부러 덜 꾸몄다. 구조용 단열 패널(SIP)의 OSB 면을 그대로 드러내고 군데군데 석고보드를 섞었다. 건축가는 이 조합을 집주인의 사진 작품을 위한 추상적인 배경이라고 설명한다. 거친 나뭇조각 질감의 OSB 위에 흑백 인물 사진이 걸리면, 벽은 물러나고 사진이 앞으로 나온다.

조명은 눈여겨볼 만하다. 렌더링 속 실내 조명은 다이닝 테이블 위로 긴 팔을 뻗은 펜던트 하나 정도가 전부다. 낮에는 통유리가 들이는 자연광이 주인공이라는 뜻이겠지만, 사진을 거는 집이라면 해가 진 뒤가 더 중요하다. 2700~3000K 웜톤 간접 조명으로 거실 전체를 부드럽게 채우고, 사진 벽에는 연색성(CRI)이 높은 트랙 스포트라이트를 따로 겨누는 3단 구성이 정석이다. 여기에 디머를 달면 감상용 조명과 휴식용 조명을 한 스위치로 오갈 수 있다.

작품을 중심에 두고 집을 꾸리는 방식은 〈사진작가는 어떻게 집을 꾸밀까? 영국 주택 Mews House〉와 견줘 보면 차이가 선명하다. 그쪽이 컬러로 취향을 쌓았다면, 이 집은 재료를 비워 사진에 자리를 내준다.

액자처럼 뚫린 House for a Photographer 야외 테라스 렌더링
렌더링 © Hyde + Hyde Architects

액자처럼 뚫린 테라스, 집 전체가 카메라다

코르텐 외피 곳곳에는 구멍이 뚫려 있다. 창이기도 하고, 벽을 통째로 덜어낸 외부 테라스이기도 하다. 그 구멍마다 주변 숲이 서로 다른 각도로 잘려 들어온다. 사진가가 뷰파인더로 프레임을 고르듯, 집이 풍경을 골라 보여준다.

건축가가 직접 꺼낸 비유가 카메라 옵스큐라다. 어두운 상자에 작은 구멍을 뚫으면 바깥 풍경이 안쪽 벽에 맺히는, 사진기의 조상이다. 길쭉한 상자 한쪽 끝이 통유리로 열려 먼 풍경을 향해 뻗은 모습은 렌즈를 단 옛날 상자형 카메라와 정말 닮았다.

이런 프레임은 사는 사람의 시선 습관을 바꾼다. 사방이 뚫린 통유리 집에서는 풍경이 배경화면처럼 흘러가 버리지만, 구멍 몇 개로 잘라 보여주면 같은 나무도 매번 다시 보게 된다. 풍경을 덜 보여줄수록 더 오래 보게 되는 역설이다.

침실 4개는 거실 위층과 뒤쪽에 배치했고, 방마다 주변 숲을 향한 창을 냈다. 앞쪽은 극적으로 열고 뒤쪽은 조용히 닫는 구성이다. 통유리 거실이 손님을 위한 얼굴이라면, 침실은 나무만 마주하는 사적인 영역이다.

블랙 스틸 패널로 감싼 숨은 야외 시가룸 렌더링
렌더링 © Hyde + Hyde Architects

숨은 시가룸과 암실, 사진가의 집에 필요한 어둠

이 집에는 비밀스러운 방이 두 개 있다. 하나는 필름을 현상하는 암실이고, 다른 하나는 서재와 이어진 야외 시가룸이다. 블랙 스틸로 감싼 박스 안에 세로로 길게 낸 슬릿 창 하나, 그 앞에 의자 하나. 밖에서 보면 어디가 입구인지도 모를 만큼 숨겨져 있다.

통유리와 프레임으로 빛을 모으는 집이 한편으로는 철저한 어둠을 따로 품고 있다는 점이 재미있다. 암실은 빛을 완벽하게 통제해야 하는 공간이고, 시가룸은 사람들 틈에서 빠져나와 혼자 머무는 공간이다. 둘 다 밝고 열린 거실과 정반대의 성격이다.

사람은 열린 공간에서는 남을 의식하고, 닫힌 공간에서야 비로소 자기 생각에 집중한다. 집 전체가 풍경과 손님을 향해 열려 있을수록 숨을 곳 하나가 더 절실해진다. 거실은 밝게 열어 두고, 몰입이 필요한 일은 작고 어두운 방으로 보내는 배분이다. 집이 클 필요는 없다. 남는 방 하나, 혹은 테라스 한 귀퉁이만 이렇게 닫아도 충분하다.

채석장 지형과 함께 만든 House for a Photographer 화이트 모형
렌더링 © Hyde + Hyde Architects

렌더링으로 먼저 세상에 나온 코르텐 주택

건축가가 밝힌 공사비는 40만 파운드, 연면적은 외부 데크와 브리지, 파이어핏을 뺀 250m²다. 시공사 없이 건축주가 직접 짓는 셀프빌드 방식이었고, 계획 허가 이후 2014년 9월 착공해 14개월 동안 짓는다는 계획이 발표됐다. 단열 성능이 높은 SIP 패널과 열회수 환기장치를 짝지어 기밀성과 에너지 효율을 끌어올린 것도 설계의 한 축이다.

이 프로젝트는 2015년 RTF 어워드(Rethinking The Future Awards) 주거 부문 콘셉트 카테고리에서 2등상을 받았다. 상을 받은 것도, 지금까지 회자되는 것도 결국 이미지의 힘이다. 흐린 하늘, 자작나무 숲, 녹슨 상자를 담은 렌더링이 워낙 사진처럼 정교해서 실제로 지어진 집으로 소개되는 일도 잦다.

땅과 재료와 사람의 이야기가 이 정도로 또렷하면 실물 사진이 없어도 집은 충분히 읽힌다. 채석장을 건드리지 않으려는 구조, 헛간에서 빌려온 재료, 빛을 모으는 거실과 빛을 끊는 암실까지. 한 사람의 직업과 습관을 집의 형태로 번역한 설계 자체가 이 프로젝트의 진짜 결과물이다.

ArchitectsHyde + Hyde Architects
PhotosHyde + Hyde Architects (렌더링)
Contractor건축주 셀프빌드
Category단독주택
Country영국
Materials코르텐 강판, 블랙 스틸 패널, 현장 타설 콘크리트, SIP 패널, OSB
LocationPontypridd, Wales
Area연면적 250m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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