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거 위기 넘긴 미드센추리 주택, Hunt House

캘리포니아 말리부 해변, 파도가 거의 닿을 듯한 파일 기둥 위에 낮게 얹힌 목조 집 한 채가 있다. 1957년에 지어진 이 미드센추리 주택은 한때 철거 위기까지 갔다가, 이 집을 빌려 살던 건축가 부부의 손에서 극적으로 되살아났다.

지금은 미국 국가사적지에 이름을 올린 Hunt House 이야기다. 세입자로 시작해 소유주가 되고, 결국 이 집을 통째로 복원해낸 한 건축가의 20년 넘는 인연을 따라가 본다.

해변 파일 기둥 위에 떠 있는 Hunt House 전경, 미국 말리부
© Paul Bielenberg

캘리포니아 모더니즘의 축소판

건축가 Craig Ellwood가 1957년 설계했다. 원래 건축주였던 Hunt 박사 부부의 이름을 따 Hunt House라는 이름이 붙었다. 대지는 말리부 로드(Malibu Road) 24514번지, 태평양 백사장에 바로 접한 좁고 긴 필지다.

집은 해변 모래에 직접 박은 지름 30cm 콘크리트 기둥 위에 떠 있는 구조로, 5m 간격으로 놓인 보가 건물 전체를 지탱한다. 필리핀 마호가니 목재와 알루미늄 프레임 유리, 노출콘크리트를 조합해 마감했고 내부는 흰색 회벽으로 채웠다.

연면적은 130m²(1,400 sq ft) 남짓, 방 두 개짜리 작은 주말 별장 규모다. 1959년 Architectural Record가 뽑은 ‘올해의 집’에 선정됐고, 건축평론가 Reyner Banham과 Esther McCoy가 나란히 이 집을 다뤘다. Ellwood의 커리어를 상징하는 출발점으로 꼽히는 이유다.

바다를 마주한 Hunt House 외관, 미국 캘리포니아 모더니즘 주택
© Richard Powers

도로에서는 안 보이는 집

함께 복원 작업에 참여한 건축 디자이너 Barton Jahncke는 이 집을 ‘엘레강트한 미시안 박스가 종잇장처럼 얇게 표현된 사례’라고 설명한다.

실제로 말리부 로드 쪽 파사드는 짙은 블루 패널로 완전히 닫혀 있어 지나가는 사람은 안에 뭐가 있는지 짐작하기 어렵다. 반대로 바다 쪽은 통유리로 활짝 열려 있다.

밖에서는 안 보이게, 안에서는 다 보이게 만든 전형적인 캘리포니아 모더니즘 화법이다. 도로와 해변 사이 폭 좁은 대지의 한계를 오히려 프라이버시 장치로 바꿔낸 셈이다.

도로에서 본 Hunt House의 미니멀한 파사드, 조각 작품이 놓인 진입로
© Paul Bielenberg

우연히 발견한 말리부 주택

건축가 Diane Bald가 이 집을 처음 만난 건 순전히 우연이었다. 남편 Michael Budman과 함께 작은 해변 별장을 렌트하려고 말리부 로드를 지나던 중, ‘임대 또는 매매’라는 표지판과 함께 Ellwood라는 이름을 발견하고 차를 세웠다.

관리인의 안내를 받아 집 안으로 들어선 순간 다이앤은 남편 몰래 ‘이 집을 가져야 한다’고 속삭였다고 회상한다. 꾸미지 않은 날것의 상태 그대로도 완벽하다고 느꼈다는 것이다.

원래 살던 가구는 관리인이 창고에 고이 보관해뒀던 것들이었다. 조지 넬슨의 코코넛 체어, 오리지널 임스 소파, Ellwood가 직접 디자인한 다이닝 테이블과 임스 비키니 체어, Ellwood가 그린 헤드보드까지 하나씩 제자리로 돌아왔다.

Hunt House 진입 마당, 유리문과 조각 작품
© Paul Bielenberg

세입자에서 지킴이로

다이앤 가족은 이 집에서 4년을 세 들어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관리인이 집을 급하게 팔아버렸고, 새 주인은 이 집을 허물고 신축 별장을 지으려는 개발업자였다.

‘그때는 살 형편이 안 됐지만, 이 집을 지켜야 하는 사람이 나라는 건 알고 있었다’고 다이앤은 말한다. 개발업자는 인허가가 늦어지자 다이앤 가족에게 계속 살아도 좋다고 했고, 그렇게 다시 4년이 흘렀다.

결국 개발업자 스스로 손을 들었다. ‘당신이 이 집의 진짜 주인이다, 나는 원하는 걸 지을 수 없을 것 같다’고 그가 다이앤에게 말했을 정도다.

계단 위에서 바라본 Hunt House 데크와 태평양 전망
© Paul Bielenberg

8년이 지나자 집이 말을 걸었다

그렇게 8년이 흐르자 집은 눈에 띄게 낡아갔다. 다이앤은 계단과 데크의 구조적 안전성을 걱정할 정도였다고 한다.

리모델링을 고민할 때마다 결론은 하나였다. 이 집에 해줄 수 있는 건 새로 고치는 게 아니라 원래대로 복원하는 것뿐이라는 사실이었다.

다이앤은 Ellwood 건물을 네 채나 다뤄본 복원 전문가 Barton Jahncke, Ellwood 사무소에서 1960~70년대에 수석 디자이너로 일했던 Jim Tyler를 팀에 합류시켰다. 프로젝트 전체를 총괄한 건 다이앤의 시아주버니 Jim Budman이었다. ‘다이앤이야말로 이 집을 과거에서 미래로 데려온 빛이었다’고 그는 말한다.

Hunt House 리빙룸의 빈티지 이탈리아 가구와 바다 전망
© Paul Bielenberg

손잡이 하나까지 원래대로 되살린 복원

복원팀의 디테일은 집요했다. 오리지널 Crane 수전 세트 세 개를 그대로 살렸고, 목재 패널링은 이미 다른 Ellwood 주택 세 채를 다뤄본 목수 Tim Brooks가 뜯어내 재사용했다. 시공은 역시 Ellwood 건물 두 채를 경험한 Ramiro Nateras가 맡았다.

황동 손잡이와 조명, 목재 패널에 남은 세월의 흔적은 일부러 지우지 않았다. ‘새것과 오리지널이 자연스럽게 뒤섞이도록’ 하기 위해서였다고 다이앤은 설명한다.

주방은 Monogram과 협업했고, 색은 Farrow & Ball의 빈티지 팔레트로 다시 칠했다. 복원팀 전원이 Ellwood 특유의 디테일을 몸으로 알고 있었기에 가능했던 정밀함이다.

Hunt House 주방에서 바라본 태평양 전망
© Paul Bielenberg

규격까지 그대로 되살린 창

슬라이딩 도어와 잘루지창은 당시 규격 그대로 다시 짜 넣었다. 지붕도 원래 마감이던 자갈(pebble) 지붕으로 되돌렸다.

이 집에서 원형을 벗어난 곳은 딱 두 군데뿐이다. 오리지널 샤그 카펫 자리에 깐 코르크 바닥, 그리고 차고다.

나머지는 전부 Title 24 환경 기준을 충족시키면서도 원래의 매끈한 실루엣을 그대로 유지했다. 복원과 규제 준수가 서로 부딪히지 않도록 곳곳에서 타협점을 찾아낸 결과다.

Hunt House 주방과 다이닝이 이어지는 오픈 플랜, 바다 전망
© Paul Bielenberg

미스 반 데어 로에, 혹은 건축계의 캐리 그랜트

Craig Ellwood를 부르는 별명은 두 가지다. 캘리포니아의 미스 반 데어 로에, 아니면 건축계의 캐리 그랜트.

실제로는 정규 건축교육을 받지 않은 엔지니어 출신이었지만, 카리스마와 감각만으로 전후 캘리포니아 모더니즘을 이끈 인물이다.

다이앤은 ‘모든 요소가 구조에 완벽히 통합돼 하나의 덩어리로 읽힌다’며 ‘이 집에 들어설 때마다 숨이 막힌다’고 말한다.

Hunt House 침실, 옐로우 포인트 벽과 우드 패널링
© Paul Bielenberg

국가사적지가 된 해변 집

2020년 복원을 마친 Hunt House는 그해 주택설계 우수상(Residential Design Award of Excellence)을 받았고, 지금은 미국 국가사적지(National Register of Historic Places) 목록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철거 위기에서 살아남은 지 채 10년이 안 돼 벌어진 일이다.

좁은 대지, 낡은 목재, 세입자로 시작한 인연 하나가 20세기 캘리포니아 모더니즘의 원형 하나를 지켜낸 셈이다. 관련 기사로 런던 석탄창고 자리에 샤워실을 넣은 집, The Signal House계단 50개 대신 다리 하나, Hosono House도 함께 볼 만하다.

ArchitectsCraig Ellwood (Jerrold Lomax 협력설계)
DesignerBarton Jahncke, Jim Tyler (2018-2020 복원 설계)
PhotosPaul Bielenberg / Richard Powers
ContractorRamiro Nateras (복원 시공)
Category단독주택(해변 별장)
Country미국
Materials필리핀 마호가니, 노출콘크리트, 알루미늄 프레임 유리
LocationMalibu, California
Area130m²(1, 400 sq ft)
Year1957년 준공, 2020년 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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