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 같은 집 인테리어의 재료·컬러 공식, Black Diamond

‘호텔 같은 집 인테리어’를 원한다는 사람은 많다. 그런데 막상 호텔의 무엇이 좋았냐고 물으면 대답이 흐려진다. 넓은 침대였나, 창밖 풍경이었나, 아니면 체크인하는 순간 몸이 풀리던 그 공기였나. 시드니 항구를 내려다보는 모스만(Mosman)의 3층 주택 Black Diamond는 그 질문에 꽤 구체적인 답을 내놓는 집이다.

건축주가 YSG에 건넨 주문은 한 줄이었다. “장식은 덜고 밀도는 높인, 화려하지만 고요한 부티크 호텔 같은 집.” 원래 이 집은 칙칙한 그레이 벽과 어정쩡한 칸막이벽 탓에 방들이 제각각 놀았다. 스튜디오를 이끄는 Yasmine Ghoniem은 벽을 덜어내고 층마다 천장·바닥·벽의 재료와 색을 다르게 짜서 집 전체를 하나의 Sequence(시퀀스)로 묶었다. 팬데믹이 겹쳐 공사는 3년 가까이 걸렸고, 결과물은 호주 디자인 어워드 IDEA 2023 컬러 부문 수상작이 됐다. 장면을 하나씩 따라가다 보면 천장 플라스터부터 유리 블록, 러그 치수, 바 스툴 높이까지 우리 집에 옮겨 올 수 있는 원리가 꽤 선명하게 보인다.

블랙 모자이크 벽난로와 라일락 소파가 있는 Black Diamond 거실
© Anson Smart

호텔 같은 집의 첫 조건, 층마다 다른 ‘공기’를 설계하라

Ghoniem은 세 개 층의 분위기를 바닥과 천장 마감으로 조율했다고 설명한다. 맨 위 침실층은 캐러멜과 위트 톤으로 가라앉히고, 가운데 거실층은 짙은 토피 천장과 어두운 목재 바닥으로 해 질 녘처럼 몽롱하게 잠기게 했다. 아래층은 크림 벽과 테라코타 타일 위에 그린·블루를 얹어 다시 환하게 떠오른다. 호텔이 로비와 객실, 바를 서로 다른 조도와 색으로 갈라 기분을 바꾸듯, 계단을 오르내릴 때마다 공기가 바뀌는 구조다.

집 전체를 한 가지 톤으로 맞추면 정돈돼 보인다. 대신 방마다 해야 할 행동이 다르다는 사실이 지워진다. 쉬는 방, 모이는 방, 집중하는 방이 같은 색이면 몸도 하루 종일 같은 모드에 머문다. 이 집이 호텔처럼 느껴지는 건 비싼 마감재 때문이라기보다, 공간이 사람에게 ‘여기서는 이렇게 지내라’고 말을 걸기 때문이다.

우리 집에 옮긴다면 방 전체를 뜯을 필요는 없다. 천장 색 하나, 러그 하나, 전구 색온도 하나로 공간의 모드를 구분하는 것부터 시작하면 된다. 특히 거실과 침실 사이의 명도와 색온도 차이를 의도적으로 벌려 두면, 방문을 넘는 순간 몸이 먼저 쉴 준비를 한다.

토피 플라스터 천장 아래 거실과 다이닝이 이어지는 Black Diamond 내부
© Anson Smart

천장은 다섯 번째 벽, 토피 플라스터로 낮게 감싸라

거실 천장은 Bishop’s Waterstone Plaster로 마감한 토피 컬러다. 흙손 자국이 얼룩처럼 남은 표면이 벨벳처럼 보드랍고, 빛을 받는 각도에 따라 은근하게 번들거린다. 침실 천장에는 Porter’s Paints의 French Wash(프렌치 워시)로 크리미한 캐러멜을 입혔다. 주거 공간에서 천장은 화이트로 비워 두는 게 공식처럼 굳어 있는데, 이 집은 거꾸로 천장을 가장 적극적인 색면으로 쓴다.

천장을 벽보다 어둡게 칠하면 시각적으로 내려와 보인다. 방이 낮고 아늑하게 감싸이는 느낌은 여기서 온다. 영국 지리학자 Jay Appleton이 1975년 내놓은 ‘Prospect-refuge(조망-은신)’ 이론에 따르면, 사람은 바깥을 내다볼 수 있으면서 등 뒤와 머리 위가 보호받는 자리에서 편안함을 느낀다. 항구 전망이라는 조망을 가진 거실에 짙은 천장으로 은신을 덧댄 셈이다. Ghoniem도 햇빛이 충분히 들기 때문에 이 정도의 어두운 톤이 가능했다고 말한다.

천장은 색만큼 높이도 마음에 작용한다. 2007년 미국 미네소타대 Joan Meyers-Levy 연구팀은 천장 높이만 약 2.4m(8피트)와 약 3m(10피트)로 달리한 방에서 실험했는데, 높은 천장 아래 사람들은 ‘자유’와 관련된 개념을 더 쉽게 떠올리고 생각을 넓게 연결하는 쪽으로, 낮은 천장 아래 사람들은 ‘제약’을 떠올리며 세부를 꼼꼼히 따지는 쪽으로 기울었다. 2015년 Oshin Vartanian 연구팀의 뇌영상 실험에서도 사람들은 천장이 높은 방을 더 아름답다고 평가하는 경향을 보였다.

공간의 성격도 갈린다. 높은 천장은 개방감을 주지만 소리가 울리고, 데워진 공기가 위로 몰려 냉난방 효율이 떨어지며, 가구가 적으면 휑하고 차갑게 느껴진다. 낮은 천장은 대화와 몰입에 좋은 아늑함을 주는 대신 조명이 부족하거나 마감이 무거우면 곧바로 짓누르는 압박감이 된다. Frank Lloyd Wright가 즐겨 쓴 Compression and release(압축과 해방) 수법처럼 낮은 곳을 지나 높은 곳에 들어서면 실제보다 넓게 느껴지니, 층마다 공기를 바꾸는 이 집의 시퀀스도 결국 높이와 색의 체감을 함께 조율한 결과다. 모이고 머무는 방에는 감싸는 높이가, 현관 홀이나 계단실처럼 지나가는 공간에는 트인 높이가 어울린다.

마감재 선택도 짚어 둘 만하다. 석회 기반 Lime plaster(라임 플라스터)는 이탈리아식 Marmorino(마르모리노)·Venetian plaster(베네치안 플라스터) 계열로, 흙손으로 여러 겹 바르고 눌러 광을 내는 방식이라 페인트로는 나오지 않는 깊이가 생긴다. 알칼리성이라 곰팡이에 강한 편이지만, 결과가 숙련공 손에 달려 있고 시공비가 페인트보다 훨씬 높으며 부분 보수하면 경계가 드러나기 쉽다. 페인트는 싸고 다시 칠하기 쉬운 대신 표면이 평평하다. 벽지는 패턴과 질감 선택지가 가장 넓지만 천장에 쓰면 이음매가 빛에 드러나고 습기에 들뜰 수 있다.

국내 아파트는 사정이 다르다. 주택건설기준 등에 관한 규칙은 공동주택 거실·침실의 반자높이를 2.2m 이상으로 정하고 있고, 실제 아파트 천장고는 2.3m 안팎이 흔하다. 북향이거나 이 정도 높이라면 같은 토피가 답답함으로 뒤집힌다. 이럴 땐 천장 전체 대신 우물천장 안쪽만 칠하거나, 벽보다 한두 단계만 어두운 톤으로 타협하는 쪽이 안전하다. 플라스터 질감이 탐나지만 예산이 빠듯하다면 Lime wash(라임 워시) 같은 석회 페인트나 텍스처 도료가 그 느낌의 절반쯤은 가져다준다.

낮은 천장을 높아 보이게 하려면 반대로 간다. 천장은 벽보다 밝게, LRV(광반사율)가 높은 화이트 계열로 두고, 커튼은 천장 바로 밑에서 바닥까지 떨어뜨려 세로선을 길게 만든다. 가구는 낮은 것을 골라 머리 위 여백을 늘리고, 커튼박스나 몰딩 위에 숨긴 간접조명으로 천장 면을 띄우면 실제보다 높게 읽힌다. 거꾸로 천장이 높아 휑한 방이라면 이 집처럼 천장을 벽보다 어둡게 칠하거나 Pendant(펜던트)를 길게 내려 빛의 높이를 사람 쪽으로 끌어내리면 아늑함이 돌아온다.

Black Diamond 층별 컬러 팔레트 도해
이미지: PHM ZINE

층별 컬러 스킴, 웜 뉴트럴·토피×틸·크림×그린으로 나눠라

사진에서 읽어 낸 색을 층별 Color scheme(컬러 스킴)으로 늘어놓으면 설계 의도가 더 또렷해진다. 위층은 크림·위트·오트밀·캐러멜처럼 색상환에서 이웃한 Warm neutral(웜 뉴트럴)끼리 묶은 유사색 배색이다. 대비가 작아 눈이 쉬기 좋고, 그래서 침실에 맞는다. 문턱에 쓴 Rosso travertine(로쏘 트래버틴)의 짙은 레드 브라운만이 유일한 Accent(액센트)다.

가운데층은 성격이 다르다. 오렌지를 어둡게 누른 토피와 블루그린 계열인 틸은 색상환에서 거의 반대편에 놓인 보색 관계라, 함께 두면 서로를 더 진하게 보이게 한다. 여기에 집을 둘러싼 자카란다 꽃에서 따온 라일락, 그리고 이 집 이름이 된 블랙이 얹힌다. 흔히 쓰는 60-30-10 법칙(바탕 60, 보조 30, 강조 10)에 대입하면 토피 천장과 짙은 목재 바닥이 60, 라일락 소파와 블랙 아일랜드가 30, 틸 커튼과 앰버 유리 블록이 10쯤 된다. 아래층은 크림 바탕에 시 그린과 오션 블루를 써서 공기를 다시 식힌다.

가족 구성에 따라 이 팔레트를 고쳐 쓸 수 있다. 어린 자녀가 있는 집이라면 오염이 덜 드러나는 오트밀·토피 같은 Mid-tone(미드톤)을 바탕에 깔고, 진한 색은 교체가 쉬운 쿠션과 러그로 넘기는 편이 오래간다. 고령 가족이 있다면 색보다 명도 대비가 먼저다. 영국 접근성 기준(BS 8300) 같은 가이드는 바닥과 벽, 문과 벽처럼 맞닿은 면의 LRV(광반사율) 차이를 30포인트 이상 두라고 권한다. 이 집처럼 옅은 계단이 짙은 계단으로 바뀌는 명도 전환은 미관이면서 안전장치이기도 하다.

원룸이나 작은 집이라면 층 대신 구역으로 나누면 된다. 침대 쪽은 유사색으로 낮게, 식탁 쪽은 보색 악센트 하나로 깨우는 식이다. 배색 원리를 더 짚고 싶다면 앞서 소개한 〈컬러 조합도 공식이 있다?! 인테리어 컬러 선택 방법〉을 함께 보면 좋다.

레더 마감 블랙 대리석과 모자이크로 감싼 Black Diamond 주방 아일랜드
© Anson Smart

블랙 주방이 답답하지 않으려면 광택을 섞어라

Black Diamond라는 이름이 나온 곳이 바로 이 주방이다. 아일랜드는 Leathered(레더) 마감한 블랙 대리석과 반짝이는 블랙 모자이크로 감쌌고, 같은 모자이크가 거실 바닥 일부와 벽난로 벽까지 이어진다. 원래 이 자리에는 거추장스럽게 내려온 Bulkhead(벌크헤드), 곧 천장 단차와 아침 식사용 아일랜드를 가두던 칸막이벽 두 개가 있었는데, 모두 걷어냈다. 블랙 위에 블랙을 겹쳤는데도 덩어리가 무겁게 뭉개지지 않는다.

블랙은 빛을 거의 돌려주지 않는 색이라 광반사율이 한 자릿수에 머문다. 한 가지 블랙으로 다 덮으면 형태의 윤곽이 사라진다. 그래서 같은 블랙 안에서 광택의 단계를 바꾼다. 손에 닿는 쪽은 무광에 가까운 레더 마감 대리석, 측면은 유광 모자이크, 다리는 금속. 빛이 닿는 각도마다 반응이 달라서 덩어리의 모서리가 살아난다. 모자이크가 바닥으로 흘러내려 발코니 쪽 유리문까지 길처럼 이어지는 것도 계산된 장치다. 사람은 바닥 마감이 바뀐 선을 따라 걷는다. 벽 없는 Open plan(오픈 플랜)에서 바닥 Inlay(인레이)가 벽 대신 동선을 그리는 셈이다.

대리석 표면 가공은 쓰임에 따라 고른다. Polished(폴리시드, 유광)는 색과 무늬가 가장 진하게 보이지만 긁힘과 물자국이 잘 드러난다. Honed(혼드, 무광)는 차분한 대신 기름 얼룩이 스며들기 쉽다. 레더 마감은 브러시로 표면에 가죽 같은 미세한 요철을 낸 것이라 지문과 물자국이 덜 보이고 손에 닿는 감촉이 좋다. 다만 대리석은 탄산칼슘 성분이라 가공과 상관없이 레몬즙이나 식초 같은 산에 표면이 부식된다. 주방 상판이라면 정기적인 Sealing(실링)이 필수다.

그 관리가 부담스럽다면 같은 블랙 무늬의 Ceramic slab(세라믹 슬랩)이나 Quartz(쿼츠)가 현실적인 대안이다. 상판 재료별 장단점은 〈욕실, 주방 작업대를 바꾸고 싶다면 주목해야 할 재료 7가지〉에 정리해 두었다.

버건디 가죽 바 스툴과 블랙 모자이크 아일랜드, Black Diamond 주방
© Anson Smart

아일랜드는 통로 폭부터, 스툴은 등받이 있는 가죽으로

아일랜드 앞에는 원목 대신 그레이프 톤 가죽을 씌운 스툴이 놓였다. Ghoniem은 오래 앉아도 편하도록 일부러 딱딱한 나무를 피했다고 말한다. 아일랜드는 한쪽이 묵직한 덩어리, 다른 쪽은 넓은 테이블 다리가 받치는 가벼운 구조로 바뀌면서 자연스럽게 앉는 자리가 생겼다. 발코니 바비큐와 주방 뒤편을 잇는 Pass-through(패스스루) 창도 새로 냈다. 요리하는 사람과 밖에서 굽는 사람이 한 동선 안에 묶인다.

아일랜드는 크기보다 둘레가 먼저다. 미국주방욕실협회(NKBA) 권장치는 혼자 쓰는 주방의 작업 통로를 107cm 이상, 두 사람이 동시에 쓰면 122cm 이상으로 잡는다. 이 폭이 안 나오는 주방에 아일랜드를 욱여넣으면 서랍과 오븐 문이 서로를 막는다. 앉는 쪽은 스툴 1개당 폭 60cm 정도, 앉은 사람 뒤로 사람이 지나간다면 110cm 이상 비워 두는 게 일반적인 가이드다.

주방 아일랜드와 바 스툴 치수 가이드 도해
이미지: PHM ZINE

높이 계산도 간단하다. 상판이 90cm 안팎이면 스툴 좌면은 61~66cm, 상판 밑면과 좌면 사이에 25~30cm가 남아야 허벅지가 끼지 않는다. 무릎이 들어갈 Overhang(오버행)은 30~38cm 정도. 국내 주방에 흔한 85cm 안팎 상판이라면 스툴도 그만큼 낮춰야 한다. 15분 이상 머무는 자리라면 등받이가 있는 쪽이 낫고, 주방이라면 패브릭보다 닦기 쉬운 가죽이나 인조가죽이 오래 버틴다.

유리 블록 파티션과 원목 다이닝 테이블이 있는 호텔 같은 집 인테리어, Black Diamond
© Anson Smart

벽 대신 유리 블록, 빛은 들이고 시선은 거른다

다이닝 옆 칸막이는 스모크 톤 유리 블록이다. 원래 이 자리에는 막힌 벽이 서 있었는데, YSG는 그 벽을 걷어내고 스틸 기둥 세 개가 구조를 대신 받치게 한 뒤 기둥 둘레에 유리 블록을 쌓았다. 덕분에 거실과 다이닝은 서로를 흐릿하게 비추며 이어지고, 빛을 받으면 스모크 톤 블록이 앰버빛으로 은은하게 달아오른다. 중앙에는 타원형 원목 다리가 받치는 커스텀 원목 테이블이 놓였다.

유리 블록은 속이 빈 유리 두 장을 붙여 만든 블록이라 빛은 통과시키되 형태는 흐릿하게 거른다. 일반 판유리보다 단열과 차음에도 유리한 편이다. 다만 자기 무게 외의 하중은 받지 못하는 비내력 마감이라, 구조벽을 대신할 수는 없다. 이 집이 스틸 기둥을 먼저 세운 이유다. 가장 흔한 규격은 190×190×80mm이고, 결과물의 완성도는 줄눈 폭을 얼마나 일정하게 맞추느냐에 달려 있다. 넓은 면적이라면 보강근과 신축 줄눈이 필요하므로 전문 시공을 맡기는 게 맞다.

식탁 주변 치수도 함께 보자. 1인당 테이블 폭은 60cm 정도, 테이블 끝에서 벽이나 가구까지는 의자를 빼고 앉는 데 최소 90cm, 그 뒤로 사람이 지나가려면 110~120cm가 필요하다는 게 통용되는 기준이다. 이 집은 내부 면적을 조금 포기하고 발코니를 넓히는 대담한 선택을 했는데, 그 대가로 바깥에 큰 식탁 하나를 더 얻었다.

국내 아파트라면 현관과 거실 사이 중문, 혹은 창이 없는 욕실의 한쪽 벽에 유리 블록을 써 볼 만하다. 시선은 막고 빛만 나눠 갖는 벽이라, 좁은 집일수록 효과가 크다.

옐로우 유리 블록 줄과 옅은 목재·에보니 계단이 만나는 Black Diamond 계단
© Anson Smart

계단에서 층이 바뀐다는 신호는 재료가 준다

계단실은 새로 낸 유리 블록 Facade(파사드) 덕분에 자연광이 쏟아진다. 그 가운데 한 줄은 ‘Poesia Golden Amber’ 옐로우 유리 블록으로, 바닥부터 천장까지 이어지는 빛 기둥처럼 서 있다. Ghoniem은 이 집의 ‘밝은 기질’을 담고 싶었다고 설명한다. 계단을 오르내리다 보면 단의 재료도 바뀐다. 위쪽 단은 옅은 목재, 거실층으로 이어지는 아래쪽 단은 흑단처럼 짙게 착색한 Ebony(에보니) 마감이다.

침실 입구에는 두툼하게 깊이를 준 로쏘 트래버틴 문턱이 있다. 문틀이 아니라 하나의 관문처럼 읽힌다. 호텔이 로비, 복도, 객실로 갈 때마다 바닥재와 조도를 바꿔 ‘지금 다른 영역에 들어섰다’는 신호를 보내는 것과 같은 수법이다. 사람은 이런 전환을 지나며 무의식적으로 행동 모드를 바꾼다. 거실의 소란이 침실 안까지 따라 들어오지 않는 이유가 여기 있다.

우리 집에서는 현관 타일과 거실 마루의 경계, 침실 문틀 안쪽만 다른 색으로 칠하기, 문턱 대신 폭 10cm 남짓한 다른 바닥재 띠를 넣는 정도로 같은 효과를 낼 수 있다. 계단이나 단차가 있는 집이라면 단마다 명도 차이를 두는 것이 미관이자 낙상 예방책이 된다.

라일락 소파 앞 보이즌베리 무늬 대리석 커피테이블, Black Diamond 거실
© Anson Smart

라일락 소파와 러그, 거실 배치는 치수가 정한다

거실 소파는 알파카와 울을 섞어 Herringbone(헤링본)으로 짠 원단을 씌운 L자형이다. 색은 집을 둘러싼 자카란다 꽃과 같은 라일락. 옆의 Swivel chair(스위블 체어)는 오돌토돌한 울 직조를 입었고, 그 앞에는 보이즌베리 빛 물결무늬가 흐르는 커스텀 대리석 커피테이블이 있다. 계단참에서 처음 마주치는 David Bradley의 대형 캔버스는 파스텔 소용돌이로 이 층의 ‘물속 같은’ 분위기를 미리 알린다.

색이 한 계열로 모일수록 깊이는 질감이 만든다. 매끈한 대리석, 보송한 알파카, 까슬한 울, 반짝이는 모자이크가 한 장면에 겹쳐 있어서 라일락과 토피만으로도 지루하지 않다. 손바닥이 닿는 소재를 서로 다르게 고르는 것, 그게 이 거실이 비싸 보이는 진짜 이유다.

거실 러그·소파·그림 걸기 치수 가이드 도해
이미지: PHM ZINE

배치에는 통용되는 치수 가이드가 있다. 러그는 소파와 의자의 앞다리가 모두 올라갈 만큼 크게 고르고, 소파 양 끝보다 15~20cm씩 넓게, 벽과의 사이에는 바닥이 30~45cm 보이게 둔다. 커피테이블은 소파 길이의 약 2/3, 소파와는 40~45cm 떨어뜨려야 무릎이 편하고 손도 닿는다. 그림은 중심이 바닥에서 145~152cm, 소파 위라면 등받이에서 20~25cm 띄우고 폭은 소파의 약 2/3로 맞춘다. 여러 점을 묶어 거는 Gallery wall(갤러리월)이라면 액자 간격을 5~8cm로 일정하게 두고 묶음 전체를 한 장의 그림처럼 다룬다.

가장 흔한 실수는 러그를 너무 작게 사는 것이다. 소파 앞에 섬처럼 떠 있는 러그는 거실을 오히려 좁아 보이게 만든다. 예산이 한정돼 있다면 러그 크기를 먼저 확보하고 소재 등급을 낮추는 편이 결과가 낫다.

방 한가운데 놓인 침대가 항구 쪽 창을 향한 Black Diamond 침실
© Anson Smart

침대를 방 한가운데로, 눈 뜨면 항구가 보이게

맨 위층 침실에서 YSG는 침대를 벽에서 떼어 방 한가운데로 옮겼다. 침대 뒤에 낮은 파티션 벽, 곧 Pony wall(포니 월)을 새로 세워 헤드보드 겸 지지대로 쓰고, 그 덕에 누운 자리에서 발코니 너머 항구를 정면으로 마주한다. 파티션 뒤편에는 수납을 더하고 드레스룸으로 들어가는 출입구를 새로 냈다. 예전에는 욕실을 거쳐야만 드레스룸에 들어갈 수 있었다.

침대를 벽에 붙이는 건 공간 효율 때문이지 정답이라서가 아니다. 방 가운데 놓인 침대는 스위트룸처럼 방의 주인공이 되고, 양옆에서 오르내릴 수 있어 2인 침실의 동선도 편해진다. 대신 통로가 필요하다. 침대 양옆과 발치에 최소 60cm, 여유 있게는 75~90cm를 확보하는 것이 일반적인 기준이다.

공간이 사람의 하루를 바꾸는 지점도 여기 있다. 눈을 뜨자마자 시선이 벽이 아니라 바깥의 빛과 풍경으로 향하면 몸은 자연스럽게 아침을 인식한다. 침실이 작은 국내 아파트라면 침대를 가운데로 옮기는 대신, 창을 향하도록 방향만 바꾸거나 헤드보드 자리에 낮은 수납장을 두어 같은 구조를 축소해 볼 수 있다.

라피아 벽지를 붙인 Black Diamond 드레스룸 붙박이장 문
© Anson Smart

옷장 문에 벽지를 붙인다면, 라피아와 엠보싱 비닐을 구분하라

드레스룸 붙박이장 문 전면에는 기하학 패턴의 Raffia(라피아) 직조 벽지와 Embossed vinyl(엠보싱 비닐) 벽지가 붙어 있다. 문짝이 가구가 아니라 하나의 벽면처럼 읽히고, 손끝으로 쓸어 보고 싶어지는 표면이 된다. Ghoniem은 원단과 마감을 고를 때마다 촉감을 가장 앞에 두었다고 말한다.

라피아는 야자잎 섬유를 엮은 천연 소재라 질감이 깊고 소리를 부드럽게 먹는다. 반면 물과 오염에 약하고, 직사광선에 오래 노출되면 바래며, 이음매가 눈에 보이는 것이 제품의 특성이다. 엠보싱 비닐은 표면에 요철을 찍은 비닐 벽지로, 물걸레질이 되고 마찰에도 강하다. 그래서 손이 자주 닿는 곳에는 비닐, 눈으로 즐기는 면에는 라피아로 나누는 게 실무의 정석이다.

페인트로 마감한 문은 흠집이 나도 다시 칠하면 되지만 표면이 평평하다. 벽지 문은 질감이 풍부한 대신 손잡이 주변과 모서리부터 들뜬다. 문짝에 벽지를 쓴다면 가장자리를 목재 테두리로 감싸거나, 손잡이 쪽만 오염에 강한 소재로 바꾸는 식의 보완이 필요하다.

곡면 창가를 따라 휘어진 부클레 붙박이 벤치가 있는 Black Diamond 침실
© Anson Smart

곡면 창가엔 붙박이 벤치, 부클레는 몸이 닿는 곳에

침실에서 이어지는 곡면 유리 Alcove(알코브)는 원래 가구가 뒤엉켜 있던 자리였다. 지금은 원목 책상과 함께, 창의 바깥 둘레를 따라 휘어지는 붙박이 벤치가 들어섰다. 아이보리 Bouclé(부클레)로 감싼 베이스 위에 그린과 딥 블루 원단을 올렸고, 두 사람이 나란히 다리를 뻗을 수 있을 만큼 넉넉하다.

곡면 벽 앞에 일반 가구를 놓으면 직선과 곡선 사이에 쓸모없는 틈이 생긴다. 붙박이로 곡률을 그대로 따라가면 남는 땅이 없다. 버려지던 자리가 집에서 가장 오래 머물고 싶은 자리로 바뀐 이유다. 좌면 높이는 일반 의자처럼 45cm 안팎이 기본이고, 기대어 눕는 용도라면 좌판을 그보다 깊게 잡는다.

부클레는 고리 모양으로 꼬인 실로 짠 원단이라 손에 닿는 감촉이 포근하고 시각적으로도 부드럽다. 대신 고리가 걸려 올이 뜯기기 쉽고 반려동물 발톱에 약하다. 국내 아파트의 확장 발코니 창가처럼 애매하게 남는 자리에 붙박이 벤치를 짜 넣는다면, 앉는 면만 부클레로 하고 등받이 쿠션은 커버를 벗길 수 있게 만드는 편이 관리가 쉽다.

핑크 톤 Tiberio 대리석 세면대와 모자이크 벽의 Black Diamond 파우더룸
© Anson Smart

파우더룸은 작으니까 과감해도 된다

파우더룸은 위아래를 핑크빛 Tiberio 대리석으로 감쌌다. 세면대는 비스듬히 깎았고, 벽은 같은 계열의 모자이크 타일로 채웠으며, 거울은 블랙과 화이트 줄무늬 테두리의 원형이다. 집에서 가장 작은 방이 가장 화려하다.

파우더룸은 머무는 시간이 짧고 주로 손님이 쓰는 방이라, 과감한 색과 패턴을 실험하기에 가장 안전한 곳이다. 벽과 천장, 세면대까지 한 가지 색으로 감싸는 ‘Color drenching(컬러 드렌칭)’ 방식으로 마감하면 모서리의 경계가 흐려져서 작은 방이 오히려 덜 갑갑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대리석 욕실이 부담스럽다면 같은 핑크 계열의 Terrazzo(테라조)나 Porcelain tile(포셀린 타일)로 비슷한 인상을 낼 수 있다. 진짜 대리석을 고집한다면 산성 세정제를 피하고, 물이 자주 닿는 세면대 주변은 실링 주기를 짧게 가져가야 한다.

탠저린 아크릴 원형 창을 낸 Black Diamond 와인 셀러 도어
© Anson Smart

원형 모티프를 반복하면 집에 리듬이 생긴다

이 집에는 동그라미가 자꾸 나온다. 현관 원목 문에는 원형 홈이 파여 있고, 와인 셀러 문에는 탠저린 아크릴 원형 창이 박혀 안쪽 와인병을 살짝 보여 준다. 서재 벽에는 원형 창이 셋, 드레스룸에는 타원 거울, 벽등도 둥글다. 현관의 오렌지 아크릴 콘솔은 노을빛을 받아 셀러 문의 탠저린과 호응한다.

반복은 디자인의 가장 기본적인 원리다. 같은 형태가 크기와 재료를 바꿔 되풀이되면 우연이 아니라 그 집의 언어로 읽힌다. 곡선이 주는 인상도 있다. 2006년 심리학자 Moshe Bar와 Maital Neta의 연구에서 사람들은 같은 사물이라도 각진 버전보다 곡선 버전을 더 선호했다. 날카로운 모서리가 무의식적으로 위협 신호로 읽히기 때문이라는 해석이다.

우리 집에서는 둥근 거울, 원형 펜던트, 아치형 문틀처럼 곡선 요소를 세 군데 이상 반복해 보자. 한두 번은 소품이지만 세 번부터는 의도로 읽힌다. 셀러 문처럼 아크릴을 쓴다면 유리보다 가볍고 잘 깨지지 않는 대신 긁힘에 약하다는 점을 기억해 둘 것.

브라스 벽등과 샹들리에, 부클레 벤치가 보이는 Black Diamond 침실
© Anson Smart

천장이 어두울수록 조명은 세 겹으로 깔아라

조명도 꽤 많다. 토피 천장에는 작은 매입 Downlight(다운라이트)가 박혀 있고, 거실에는 가는 막대형 펜던트가 내려와 있다. 침실에는 유리 조각을 층층이 매단 샹들리에와 벽에서 길게 뻗어 나온 대형 Brass(브라스) 접시형 벽등이 함께 있고, 계단실은 세로로 긴 선형 벽등이, 서재와 침실은 원형 벽등과 구형 천장등이 맡는다. 거실 뒷벽에는 Burl(버) 무늬 목재 수납장 사이로 거울 문을 끼워 넣어 자연광과 항구 풍경을 실내 깊숙이 되튕긴다. 빛은 대부분 웜톤 쪽이다.

조명 설계의 기본은 Ambient(앰비언트, 전반)·Task(태스크, 작업)·Accent(액센트, 연출) 세 겹을 겹쳐 까는 것이다. 이 집은 다운라이트로 바닥을 깔고, 펜던트와 벽등으로 작업과 분위기를 나눈다. 짙은 마감은 빛을 먹기 때문에 같은 밝기의 조명이라도 화이트 천장보다 훨씬 어둡게 읽힌다. 그래서 어두운 천장일수록 천장을 비추는 것보다 벽을 비추는 빛이 효율적이고, 플라스터의 은은한 광택은 위로 쏘는 Uplight(업라이트)를 받을 때 가장 살아난다. 휴식 공간은 2700~3000K 웜톤, 책상처럼 집중이 필요한 자리는 4000K 이상 주백색이 맞는다.

짙은 천장을 따라 했다면 다운라이트 개수를 늘리기보다 플로어 스탠드나 벽등을 한두 개 더하는 쪽이 낫다. 커튼박스에 라인 조명을 숨겨 Cove lighting(코브 조명)을 만들면 천장이 은은하게 떠 보이고, Dimmer(디머) 스위치 하나만 달아도 하루를 한 가지 밝기로 버티지 않아도 된다. 전구를 2700K로 바꾸는 것만으로도 이 집의 저녁 공기에 꽤 가까워진다.

원형 창과 시 그린 가구, 스트라이프 러그가 있는 Black Diamond 서재
© Anson Smart

서재는 시 그린, 집중이 필요한 방엔 채도를 낮춘 그린

아래층에서는 남는 침실을 서재로 바꾸고 시 그린 가구를 들였다. 바닥에는 그린과 블랙 줄무늬 러그, 벽에는 원형 창 세 개가 나란히 뚫려 있다. 같은 층의 아이 놀이방은 일부를 줄여 다용도실을 넓혔다. 위층의 웜 뉴트럴과 가운데층의 토피가 이 층에서 서늘한 그린과 블루로 반전되는 셈이다.

그린은 자연을 연상시키는 색이라 오래 머무는 작업 공간에 자주 추천된다. 다만 채도가 높은 그린은 오히려 눈을 자극하니, 이 집처럼 그레이를 섞어 채도를 누른 톤이 무난하다. 책상은 창을 정면으로 마주하기보다 창과 직각으로 놓아야 화면과 눈에 역광이 들지 않는다.

공부방이나 재택근무 공간이라면 벽 전체를 칠하기보다 책상·하부장·수납장 같은 가구 면에 그린을 쓰는 쪽이 부담이 적다. 화상회의가 잦다면 등 뒤 벽은 너무 밝지도 어둡지도 않은 중간 명도가 얼굴을 가장 자연스럽게 살린다.

공사 기간 내내 현장을 한 번도 보지 못했던 건축주의 아내는 완공 날 눈가리개를 풀고 집을 처음 마주한 순간 울음을 터뜨렸다고 한다. 호텔 같은 집이란 결국 매일 체크인하고 싶은 집이라는 뜻일 테다.

DesignerYSG (Yasmine Ghoniem)
PhotosAnson Smart
ContractorPromena Projects
Category단독주택 인테리어 리노베이션
Country호주
Materials석회 플라스터, 블랙 모자이크 타일, 레더 마감 대리석, 유리 블록, 로쏘 트래버틴, Tiberio 대리석, 라피아 벽지
LocationMosman, Sydney
Area345m²
Year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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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예나
김예나
인테리어와 공간에 대한 모든 것! 집을 사랑하고, 공간을 사랑하는 인테리어 디자이너. Think out side of the box. It makes your world bigger! 호주 퍼스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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