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를 떠나 전원주택에서 살아볼까. 대도시에 사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해보는 상상이고, 막상 짐을 싸려는 순간 가장 겁나는 질문이기도 하다. 미국 뉴욕주 더치스 카운티(Dutchess County)의 호숫가 목초지에 선 Dutchess County Studio는 그 질문에 꽤 현실적인 답을 내놓은 집이다. 큰 집부터 짓지 말고, 작은 집에서 먼저 살아보자는 것.
맨해튼에서 차로 두 시간이 채 안 걸리는 9.7ha(24에이커) 땅이다. 설계는 브루클린의 GRT Architects가 맡았다. 74m²(800 sq ft)짜리 원룸 스튜디오 한 채가 본채·작업장·수영장·부두까지 그려 넣은 마스터플랜의 첫 조각으로 먼저 땅에 앉았다. 말하자면 ‘시골살이 체험판’인데, 체험판치고는 디테일이 꽤 집요하다.

본채를 짓기 전에 작은 집에서 먼저 살아본다
건축주 부부의 이력부터 흥미롭다. 두 사람은 Frank Lloyd Wright(프랭크 로이드 라이트)가 계획한 주거 공동체 Usonia에서 아이들을 키웠고, 아이들이 독립하자 맨해튼으로 거처를 옮겼다. 그리고 은퇴와 손주들을 떠올리며 호수를 낀 목초지를 샀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땅은 마음에 드는데, 도시 생활을 완전히 접고 이곳으로 옮겨 올 자신은 아직 없었던 것이다.
GRT Architects의 공동대표 Tal Schori가 내놓은 제안은 단순했다. 본격적으로 일을 벌이기 전에 작은 스튜디오부터 지어, 이 땅이 어떤 곳인지 몸으로 먼저 느껴보자는 것. 참고로 Tal Schori에게 이 건축주는 남이 아니라 부모님이다. 아들이 부모의 은퇴 계획에 ‘일단 살아보고 정하시라’는 안전장치를 달아준 셈이다.
요즘 말로 하면 ‘한 달 살기’를 아예 건물로 지은 경우다. 집은 덩치가 커질수록 되돌리기 어렵다. 방 셋짜리 본채를 먼저 지었다가 시골의 겨울이 맞지 않는다는 걸 깨달으면, 그 비용과 후회는 고스란히 남는다. 작은 집 한 채로 사계절을 겪어보고 나서 큰 집의 크기와 방향을 정하겠다는 순서는, 이주를 고민하는 사람에게 생각보다 큰 심리적 여유를 준다.

전망을 갖되, 전망이 되지는 않는 자리
작은 스튜디오 한 채인데도 설계는 마스터플랜부터 시작했다. 스튜디오를 어디에 앉힐지 정하려면 나중에 들어설 것들의 자리를 먼저 알아야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침실 세 개짜리 본채, 작업장, 수영장, 파이어핏, 부두까지 기본 설계를 미리 그리고, 진입로·정화조·우물·전기 인입선을 이 모든 건물이 함께 쓸 수 있는 규모로 계획했다.
그 결과 스튜디오가 차지한 자리를 Tal Schori는 이렇게 설명한다. “전망은 갖되, 스스로 전망이 되지는 않는 곳에 두었다.” 첫 건물이 언덕 꼭대기 명당을 차지해버리면 정작 본채가 갈 곳이 없어지고, 호수에서 올려다보는 풍경에도 건물이 끼어든다. 사진 속 스튜디오가 너른 구릉 한쪽에 작게 웅크린 모습으로 보이는 건 그래서다.
땅에 들어서는 경험도 계산돼 있다. 나무가 드문드문 선 언덕을 굽이굽이 오르는 진입로 끝에서, 말 울타리 옆에 선 다면체 건물이 불쑥 모습을 드러내고 그 아래로 호수가 펼쳐진다. “풍경과 경험이 조금씩 펼쳐지도록, 천천히 보여주는 걸 좋아한다”는 Tal Schori의 말 그대로다.

바람개비처럼 돌려 붙인 세 개의 매스
평면은 이 전원주택의 핵심이다. 크기가 같은 직사각형 매스 세 개를 바람개비(pinwheel)처럼 한 점을 중심으로 돌려 맞물렸다. 세 매스는 모두 같은 모양의 지붕을 이고 있고, 지붕 아래에는 새 부리처럼 앞으로 툭 튀어나온 삼각형 고측창이 달렸다.
같은 부품을 세 번 쓰면서도 집이 기계적으로 보이지 않는 건, 땅에 맞춰 일부러 비대칭을 섞었기 때문이다. 매스마다 놓인 높이와 방향이 조금씩 달라 어느 쪽에서 보느냐에 따라 집의 인상이 확 바뀐다. 정면에서는 지붕 두 개가 겹친 산 모양으로, 측면에서는 부리 하나가 하늘을 향해 치켜든 모습으로 읽힌다.
앞서 소개한 〈세 개의 몸에 삼나무 한 벌을 입혔다, 퀘벡 워터하우스〉도 덩어리를 셋으로 나눈 집이지만, 이쪽은 세 매스를 나란히 놓지 않고 한 점에서 비틀어 맞물렸다는 점이 다르다. 세 갈래로 뻗은 덕분에 매스마다 서로 다른 방향의 풍경을 하나씩 나눠 갖게 됐다.

빛에 따라 납작해지는 블랙 벽돌 외피
외벽은 표면이 거친 블랙 벽돌로 쌓았다. 설계팀은 이 재료가 빛에 따라 착시를 일으킨다고 설명한다. 해가 비스듬히 들 때는 벽돌 하나하나의 요철이 살아나 매스의 꺾임이 또렷하지만, 흐린 날이나 해 질 녘에는 복잡하게 맞물린 덩어리가 한 장의 평면처럼 납작하게 보이기도 한다.
너른 목초지 한가운데에 블랙 건물이라니, 튈 것 같지만 실제로는 반대다. 블랙은 풍경 속에서 그림자처럼 뒤로 물러나는 색이고, 가을이면 주변 단풍의 옐로우와 오렌지를 오히려 더 선명하게 받쳐준다. 〈농가 리모델링에 블랙 헛간을 붙였다, Shadow Barn〉처럼 시골 풍경 속에 블랙 외피를 두르는 사례가 자주 보이는 것도 같은 이유다.
목재 대신 벽돌을 고른 것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벽돌은 무게감이 있고 손이 덜 가며 오래 버틴다. 시험 삼아 짓는 집이라고 해서 가볍게 짓지 않았다는 뜻이고, 이 작은 집이 본채가 들어선 뒤에도 오래 쓰일 건물이라는 계산이 깔려 있다.

시더 셰이크 지붕에 코퍼 트림을 두른 이유
지붕은 자연 그대로의 시더(삼나무) 셰이크로 덮고, 가장자리를 코퍼(구리) 트림으로 마감했다. 블랙 벽돌만으로는 자칫 무겁고 차가워질 수 있는 인상에 따뜻한 기운을 더하려는 선택이라고 설계팀은 설명한다.
이 두 재료는 시간이 지나면서 색이 변한다. 시더 셰이크는 비바람을 맞으며 차츰 실버 그레이로 바래고, 코퍼는 산화하면서 브라운을 거쳐 그린 계열의 녹청으로 옮겨 간다. 준공 때의 모습이 완성이 아니라, 몇 년에 걸쳐 풍경 쪽으로 조금씩 물들어 가는 지붕인 셈이다.
현관 쪽 사진을 보면 이 조합이 더 잘 읽힌다. 꽃밭 사이 디딤돌을 따라가면 블랙 벽돌 벽에 밝은 목재 문이 하나 박혀 있고, 그 위로 셰이크 지붕과 고측창이 겹친다. 무거운 벽, 가벼운 지붕, 반짝이는 테두리. 재료마다 맡은 일이 분명하다.

천장 한가운데, 스틸 보 세 개가 만나는 점
안으로 들어서면 시선은 자연스럽게 천장으로 올라간다. 세 매스가 만나는 중심점에서 블랙 스틸 보 세 개가 바람개비 모양으로 교차하고 있기 때문이다. 바깥에서 본 평면의 논리가 실내 천장에 그대로 그려진 셈이다.
이 교차점 아래가 주방이다. 집의 한가운데이자 세 갈래 공간이 모두 바라보는 자리에 요리하는 곳을 둔 것이다. 원룸형 집에서는 이런 ‘중심’이 생각보다 중요하다. 벽이 없는 공간일수록 사람은 어디가 집의 무게중심인지 찾으려 하고, 그 지점이 또렷하면 넓은 원룸에서도 방향을 잃지 않는다.
밝은 목재 천장 위를 가로지르는 블랙 보는 구조 부재이면서 동시에 이 집에서 가장 강한 그래픽 요소다. 따로 장식을 걸지 않아도 천장 자체가 볼거리가 된다.

벽 대신 가구가 방을 나눈다
74m² 원룸 스튜디오 안은 사실상 세 개의 ‘보이지 않는 방’으로 나뉜다. 세 매스가 각각 요리, 거실, 잠자리를 맡고, 저마다 다른 방향의 풍경을 바라본다. 그런데 이 방들 사이에는 벽이 없다.
벽이 하던 일을 대신하는 건 붙박이 가구다. 허리 높이의 화이트 오크 수납장이 주방과 거실의 경계를 긋고, 키 큰 붙박이장이 잠자리를 가려준다. 공간은 하나로 트여 있으면서도,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는 분명하게 갈린다.
이 방식은 국내 소형 주택이나 원룸 오피스텔에도 그대로 가져올 만하다. 좁은 집에 가벽을 세우면 좁은 방 여러 개가 생길 뿐이지만, 낮은 수납장으로 영역만 나누면 넓은 방 하나에 장면이 여러 개 생긴다. 수납장 높이를 허리선(90cm 안팎)에 맞추면 시선은 건너편 창까지 이어지고, 수납량은 오히려 늘어난다.

테라조 상판, 삼각형 모티프의 연장
주방 카운터는 커스텀 테라조로 만들었다. 제작은 GRT Architects의 콘크리트 타일 라인 Flutes & Reeds를 생산하는 Kaza Concrete가 맡았다. 크고 작은 돌 알갱이가 박힌 테라조 상판 아래로 밝은 화이트 오크 수납장이 길게 받치고, 바닥은 매끈한 콘크리트다.
화이트 오크, 테라조, 콘크리트. 이 조합이 차갑게 느껴지지 않는 데는 이유가 있다. 세 재료 모두 표면에 결이나 알갱이가 살아 있어서, 같은 무채색 계열이라도 빛을 받으면 질감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매끈한 하이글로시 상판과 무늬 없는 도장 문짝으로 같은 주방을 만들었다면 훨씬 밋밋했을 것이다.
작은 주방에 테라조를 고민한다면 상판처럼 손이 자주 닿는 면 한 곳에만 쓰는 걸 권한다. 바닥까지 테라조로 덮으면 공간이 산만해지기 쉽고, 상판 하나에만 써도 주방 전체의 인상이 충분히 달라진다. 이 집이 테라조를 주방 상판과 욕실 바닥에만 쓴 것도 같은 절제다.

지형 따라 한 단 내려앉은 선큰 공간
남쪽 매스는 땅의 경사를 따라 한 단 낮게 내려앉았다. 콘크리트 계단 몇 단을 내려가면 잠자리와 장작 난로가 놓인 선큰 공간이 나온다. 대지를 깎아 평평하게 고르는 대신 건물이 지형에 맞춰 몸을 낮춘 결과다.
바닥 높이가 달라진다는 건 생각보다 강력한 칸막이다. 문 하나 없어도 계단을 내려서는 순간 ‘여기서부터는 다른 방’이라는 신호가 몸으로 전해진다. 천장은 상대적으로 높아지고 시선은 창밖 호수 쪽으로 낮게 깔리니, 같은 원룸 안에서도 이 구역만은 한결 아늑하게 느껴진다.
창의 크기와 위치도 꼼꼼히 조율했다. 풍경을 향해서는 크게 열고, 진입로나 이웃 시선이 닿는 쪽은 작게 줄여 전망과 사생활 사이 균형을 맞췄다는 것이 설계팀의 설명이다.

손님이 오면 벽에서 침대가 내려온다
손주들이 놀러 오면 어디서 재울까. 방 하나짜리 집에서 가장 현실적인 고민이다. 이 집의 답은 거실 벽면 수납장 안에 숨긴 머피 침대다. 평소엔 선반과 붙박이장이 이어진 벽처럼 보이다가, 손님이 오면 침대를 펼쳐 거실을 게스트룸으로 바꾼다.
선큰 공간 쪽에 세운 키 큰 붙박이장은 또 다른 역할을 한다. 손님이 머무는 거실과 부부가 자는 공간 사이에 시선을 끊어주는 가림막이 되는 것이다. 문 달린 방이 없어도 하룻밤 정도는 서로 불편하지 않게 지낼 수 있는 거리를 가구로 만들어냈다.
게스트룸을 따로 둘 형편이 안 되는 집이라면 참고할 만하다. 1년에 며칠 쓰는 방에 면적을 통째로 내주는 대신, 평소 생활공간을 그날만 변신시키는 쪽이 작은 집에서는 훨씬 합리적이다.

화석연료 없이 데우고 식히는 작은 전원주택
이 스튜디오는 화석연료를 쓰지 않고 냉난방을 해결한다. 콘크리트 바닥 슬래브 안에 복사 난방을 깔았고, 에어컨은 집에서 유일하게 벽으로 닫힌 욕실 천장 위에 숨겼다. 거실 어디에서도 실내기가 보이지 않는 이유다.
선큰 공간의 장작 난로는 Buntfires의 Flores 8로, 유해 배출을 줄인 ‘클린 버닝’ 제품이다. 큰 유리창 앞에서 난로가 타고 반려견이 볕을 쬐며 누운 사진 한 장이, 이 집이 그리는 시골살이가 어떤 장면인지 말없이 보여준다.
복사 난방은 바닥 전체를 은근히 데우기 때문에 콘크리트 바닥에 맨발로 서도 차갑지 않다. 우리에게 익숙한 온돌과 원리가 닮았다. 차가운 재료를 따뜻하게 쓰는 비결이 마감이 아니라 설비에 있다는 걸 보여주는 대목이다.

유일하게 벽으로 닫힌 방, 핑크 타데락트 욕실
벽과 문으로 온전히 닫힌 방은 욕실 하나뿐이다. 그래서인지 설계팀은 이 방에 색을 몰아줬다. 벽은 핑크 빛이 도는 모로코 전통 방수 미장 타데락트(tadelakt)로 마감했고, 레드 톤 세면대와 골드 수전, 따뜻한 목재 선반이 그 위에 얹혔다.
바닥에는 커스텀 테라조 타일을 깔아 집 전체를 관통하는 삼각형 모티프를 이어갔다. 바람개비 평면, 부리 같은 고측창, 그리고 욕실 바닥 타일까지. 같은 도형이 크기를 바꿔가며 반복되니 작은 집인데도 디자인이 한 목소리로 읽힌다.
화이트 벽과 밝은 목재로 차분하게 정리한 원룸 한쪽에서, 문을 열면 핑크와 레드가 확 번지는 방이 나타난다. 작은 집에서 색을 쓰는 좋은 방법이 바로 이것이다. 넓은 공간에 여러 색을 흩뿌리기보다 닫힌 방 하나에 진하게 몰아주면, 공간 전체는 차분함을 지키면서도 강한 인상을 남긴다.

낮에는 고측창, 밤에는 벽 조명이 맡는다
조명도 짚어볼 만하다. 낮에는 부리처럼 튀어나온 고측창이 주 조명이다. 높은 곳에서 들어온 빛이 밝은 목재 천장과 화이트 벽을 타고 실내 깊숙이 번지고, 시간에 따라 벽 위에 삼각형 빛 조각을 그린다. 높은 창은 사생활을 지키면서 빛만 들일 수 있어 원룸형 집에 특히 유리하다.
해가 지면 역할이 바뀐다. 주방 벽과 침대 머리맡에는 블랙 원뿔형 갓을 단 스윙암 벽 조명이 붙어 있고, 천장에서 막대로 내려뜨린 스폿 조명이 작업 테이블과 현관을 비춘다. 손이 가는 자리마다 국부 조명을 정확히 짚어준 구성이다.
아쉬운 건 천장이다. 조명 설계는 전반(앰비언트)·국부(태스크)·연출(액센트) 세 겹이 겹쳐야 깊이가 생기는데, 이 집은 밤이 되면 높은 경사 천장을 비추는 빛이 거의 없어 윗부분이 어둡게 가라앉기 쉽다. 스틸 보 윗면을 따라 2700~3000K 웜톤 라인 간접 조명을 숨기고 디머를 달면, 목재 천장이 은은하게 살아나 낮의 고측창이 하던 일을 밤에도 이어받을 수 있다.

체험판의 결론, 본채 공사가 시작됐다
스튜디오 앞 언덕에는 큼직한 돌계단이 놓였고, 그 길을 따라 내려가면 마스터플랜에 그려둔 수영장이 나온다. 부두와 작업장도 같은 계획 안에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시험의 결과가 나왔다. 부부는 이 작은 집에서의 생활을 무척 즐겼고, 마스터플랜의 나머지를 진행해달라고 요청했다. 스튜디오가 완성된 2020년 당시 이미 279m²(3,000 sq ft) 규모 본채의 공사가 시작된 상태였다.
74m² 원룸에서 먼저 살아본 경험은 이제 본채 설계의 가장 확실한 자료가 됐다. 어느 창으로 해가 들고, 겨울바람이 어디서 불고, 손주들이 오면 어디서 노는지를 부부는 이미 알고 있다. 도면 위의 상상이 아니라 직접 살아본 기억으로 큰 집을 짓게 된 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