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아파트 커뮤니티라고 하면 떠오르는 그림이 대체로 정해져 있다. 수십 층 타워 발치의 포디움 안에 수영장과 헬스장, 연회장을 한꺼번에 몰아넣은 ‘클럽하우스’다. 타이와이(Tai Wai)의 대단지 Pavilia Farm은 이 공식을 거꾸로 풀었다. 부대시설을 한 덩어리로 모으는 대신 네 채의 작은 집으로 쪼개 옥상 정원 곳곳에 흩어 놓고, 그 사이를 텃밭과 놀이터로 채웠다.
설계는 Snøhetta(스노헤타)가 맡았다. 2017년 개발사 New World Development의 의뢰를 받았고, 2022년 Tea House·Well House·Farm House가 먼저 문을 열었다. 그리고 올해 마지막 한 채인 Sky House가 완성되면서 네 동, 합계 5,650m²의 구상이 마침내 끝났다. 앞선 세 동이 문을 연 뒤에도 4년에 걸쳐 공용 공간을 계속 덧붙여 왔다는 것 자체가 이 프로젝트의 첫 번째 읽을거리다. 분양이 끝나면 손을 떼는 게 보통 개발의 셈법이니까.

세계에서 가장 빽빽한 도시, 아파트 옥상에 깐 계단식 농장
Pavilia Farm은 MTR 타이와이역 위에 올라탄 역세권 복합개발이다. 주거 타워 일곱 동과 4층짜리 쇼핑몰, 칼리지가 한 부지에 얽혀 있고 3,090세대가 산다. 이 거대한 덩어리를 받치는 포디움의 옥상이 통째로 계단식 정원이 됐다. 층층이 깎은 화단은 주변 산자락과 다랑논을 닮았고, 실제로 그 일부에서 쌀과 사과, 알로에를 기른다.
사진 속 장면이 묘하게 비현실적인 건 배경 때문이다. 수십 층 타워가 병풍처럼 둘러선 바로 발밑에서 벼가 자란다. 땅값이 세계에서 가장 비싼 축에 드는 도시에서 이만한 면적을 ‘농사’에 내준다는 건 꽤 대담한 결정이다. 설계팀이 이 옥상을 두고 ‘도시 속 허파’라고 부르는 것도 과장만은 아닌 셈이다.

도시의 속도를 늦추는 입구, Tea House
네 동은 각자 맡은 역할과 분위기가 뚜렷하다. Tea House는 단지로 들어서는 첫 관문, 말하자면 도착의 집이다. 설계팀은 이곳을 번잡한 도시를 뒤로하고 고요 속으로 ‘올라가는’ 경험으로 설명한다. 한쪽엔 수영장이, 반대쪽엔 인공 폭포가 있어 떨어지는 물소리가 건물의 배경음이 된다.
유리 상자 같은 파빌리온은 계단식 정원의 가장자리 너머로 몸을 쑥 내밀어 아래 풍경을 굽어본다. 찻집이라는 이름이 왜 붙었는지 여기서 읽힌다. 차 한 잔 마시며 숨을 고르는 자리처럼, 바쁜 출퇴근 동선 한가운데 ‘감속 구간’을 하나 끼워 넣은 것이다. 집에 오자마자 엘리베이터로 직행하는 대신 물소리를 한 번 듣고 올라가게 만드는 장치랄까.

반쯤 땅에 묻힌 몸의 집, Well House
Tea House와 곧장 이어지는 Well House는 몸을 돌보는 집이다. 헬스장과 스파, 사우나, 실내 수영장에 배드민턴 코트까지 들어 있다. 흥미로운 건 높이다. 네 동 가운데 Well House만 기준면 아래에 자리를 잡았고, 스파와 수영장은 반쯤 땅속에 들어가 있다. 정원 위로 덩치를 드러내기보다 지형 안쪽으로 몸을 낮춘 셈이다.
통유리 파사드는 건물과 조경의 경계를 흐리기 위한 장치다. 물가에서 바라보면 무거운 화이트 매스 아래로 유리면이 길게 깔려 건물이 수면 위에 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운동하는 사람의 시선이 거울 속 자기 모습이 아니라 물과 나무에 닿는다는 점이 중요하다. 헬스장이라는 가장 흔한 아파트 커뮤니티 시설을 이렇게까지 풍경 속에 묻어 둔 경우는 드물다.

레일 위를 미끄러지는 식탁, Farm House
텃밭 한가운데 놓인 Farm House는 Pavilia Farm의 심장이다. 주방이 세 개, 그 앞으로 길게 공용 식탁이 이어진다. 이 식탁이 재미있다. 바닥에 깔린 레일을 따라 움직여서 모임 규모에 따라 붙였다 떼었다 할 수 있다. 몇 가족이 모인 저녁이면 한 토막, 단지 행사라면 길게 이어 붙이는 식이다.
텃밭에서 거둔 것을 바로 들여와 다듬고, 요리하고, 같은 테이블에서 나눠 먹는다. ‘밭에서 식탁까지’를 건물 한 채에 압축한 구성이다. 설계팀은 집집마다 있는 식탁처럼 이 테이블이 대화와 웃음이 오가는 중심이 되길 바랐다고 말한다. 식구(食口)라는 말이 원래 함께 밥 먹는 사람을 뜻한다는 걸 떠올리면, 이웃을 식구로 만드는 가장 오래된 방법을 건축으로 옮긴 셈이다.
마감도 이 따뜻한 목적에 맞췄다. 콘크리트 구조체 위에 점토 플라스터를 한 겹 입혀 벽면이 매트하고 부드럽고, 실내외 바닥은 열대 기후에서도 잘 버티는 Accoya 목재로 깔았다. 우드 판재로 덮은 박공 천장을 따라 블랙 라인 조명이 길게 뻗어 시선을 식탁 끝 정원 쪽으로 끌고 간다. 집에 옮겨 볼 포인트라면 ‘긴 식탁 하나’다. 거실 한복판에 6인 이상 앉는 긴 테이블을 두면 식사와 작업, 손님맞이가 한자리에 모이고, 집의 중심이 TV에서 사람으로 옮겨 간다.

클럽하우스는 원래 한 덩어리였다 — 아파트 커뮤니티의 타이폴로지
홍콩에서 클럽하우스는 고층 주거의 기본 옵션이다. 땅이 좁아 세대 안을 넓히기 어려우니, 단지가 공용 거실과 운동장을 대신 내주는 구조다. 형식도 거의 굳어 있다. 포디움 위 파빌리온이나 꼭대기층 펜트하우스 라운지에 수영장·헬스장·연회장을 한꺼번에 모아 넣는다. 관리하기 쉽고 분양 홍보물 한 장에 담기 좋은, 철저히 효율의 논리다.
Pavilia Farm은 그 한 덩어리를 풀어 헤쳤다. 네 동은 지형을 따라 한 줄로 꿰어지는데, 설계팀은 이를 ‘인터랙티브 스트링(interactive string)’이라 부른다. 18세기 영국 풍경식 정원이 산책로를 따라 작은 정자(폴리)를 흩어 놓고 걷는 사람이 하나씩 발견하게 만들던 방식을 떠올리게 한다. 동선은 길어지지만 그만큼 주민들은 운동하러, 밥 먹으러, 아이 데리러 가는 길에 서로 마주친다. 효율 대신 마주침을 고른 것이다.
국내 아파트 커뮤니티와 나란히 놓으면 차이가 더 선명하다. 한국 신축 단지는 피트니스, 골프연습장, 독서실, 사우나를 지하나 별동 한 곳에 몰아넣고, 요즘은 앞서 소개한 〈아파트에 아이스링크·오페라하우스 — 반포 재건축 커뮤니티 경쟁〉처럼 시설의 종류와 크기로 경쟁한다. Pavilia Farm이 던지는 질문은 결이 다르다. 무엇을 더 넣을지가 아니라, 이미 있는 시설을 어디에 어떻게 흩어 놓아야 사람이 서로 만나는가다.

땅을 접어 건물로 만드는 Snøhetta의 문법
Snøhetta는 건축과 조경을 한 사무실에서 함께 다루는 회사로 유명하다. 대표작인 Oslo Opera House(2008)는 지붕 전체가 바다에서 비스듬히 솟아오른 광장이라 시민들이 지붕 위를 산책하듯 걸어 올라간다. 건물을 땅 위에 올려놓는 대신 땅을 접어 올려 건물로 만드는 것, 조경 일체형 설계라 부르는 이 태도가 사무소의 오랜 어휘다.
Pavilia Farm에서 이 문법은 고밀 아시아 단지의 포디움 위로 옮겨 왔다. 네 동은 각자 지형과 다른 관계를 맺는다. Well House는 기준면 아래로 파고들고, Farm House는 테라스 위에 올라앉으며, Tea House는 가장자리 너머로 몸을 내민다. 그리고 가장 높은 곳에 Sky House가 선다. 파고들고, 올라앉고, 넘어서고, 꼭대기에 서는 네 가지 자세가 하나의 인공 지형 위에서 차례로 펼쳐지는 셈이다. 조경은 Ohtori Consultants Environmental Design Institute가, 협력 설계는 Ronald Lu & Partners가 맡았다.

단지에서 가장 높은 자리에 놀이터를 올리다, Sky House
마지막으로 완성된 Sky House는 단지에서 가장 높은 지점에 있다. 2층 건물로 면적은 약 1,129m²(12,150 sq ft)다. 당초 2023년 말 완공 예정이었지만 2026년에 와서야 네 번째 퍼즐로 맞춰졌다. 이 집의 주제는 놀이다. 바깥 놀이터에는 높이가 제각각인 미끄럼틀과 플랫폼이 언덕처럼 굽이치고, 그 지형이 그대로 건물 1층 안까지 흘러 들어간다.
보통 키즈 공간은 단지 구석이나 커뮤니티 동 지하 한쪽으로 밀려나기 일쑤다. 시끄럽고, 분양 홍보 사진 속에서 우아해 보이지 않으니까. Sky House는 그 놀이터를 단지 꼭대기, 산과 강이 내다보이는 가장 좋은 자리에 올려놓았다. 무엇을 우선하는지가 배치에서 곧바로 드러난다. 나무를 휘감고 오르는 나선형 미끄럼틀 타워가 멀리서도 눈에 들어오는 것도 그 때문이다.

놀이기구가 건물의 코어가 됐다 — 돔 천창과 로프 타워
Sky House 한가운데에는 두 개 층 높이의 로프 클라이밍 타워가 수직으로 꽂혀 있고, 그 끝은 지붕의 돔 천창에서 멈춘다. 아이들은 그물을 타고 올라가 하늘에 닿고, 천창으로 쏟아진 낮빛은 타워를 타고 1층 놀이방과 교실까지 내려간다. 놀이기구가 채광 장치이자 두 층을 잇는 연결 장치, 건물 전체를 정리하는 중심축을 겸하는 것이다. 보통 그 자리에 계단과 엘리베이터 코어가 들어선다는 걸 생각하면 꽤 과감한 설계다.
둥근 천창 아래 원형 보이드라는 구성은 고대 로마 판테온의 오쿨루스(oculus, 돔 꼭대기에 뚫린 둥근 구멍)를 떠올리게 한다. 신전 안을 비추던 하늘빛이 여기서는 놀이터를 비추는 셈이다. 조명도 이 형태를 따른다. 돔 가장자리를 따라 웜톤 간접 조명이 링처럼 둘러 있고, 천장에는 원형 매립등이 점점이 박혀 해가 진 뒤에도 빛이 돔의 곡면을 타고 번진다.
광원을 숨기고 빛을 천장면에 한 번 튕기면 눈부심이 사라지고 공간이 실제보다 높아 보인다. 간접 조명이 바탕을 깔고, 매립등이 필요한 곳을 비추고, 천창이 낮 시간의 주연을 맡는 세 겹 구성이다. 집에서도 거실 천장에 우물천장이나 커튼박스를 만들고 그 안에 2700~3000K 웜톤 라인 조명을 숨기면 비슷한 효과를 낼 수 있다. 디머 스위치를 하나 달아 두면 저녁의 밝기를 따로 고를 수 있어 더 좋다.

무엇을 하라고 정해 주지 않는 동굴
돔이 Sky House라는 이름을 줬다면, 1층은 동굴이다. 설계팀이 말하는 동굴은 진짜 바위굴이 아니라 쓰임을 정해 두지 않은 놀이 환경이다. ‘이건 이렇게 타는 것’이라고 정해진 기구 대신 물결치는 바닥과 버섯 모양 기둥, 바닥에 뚫린 구멍과 언덕이 펼쳐진다. 어디로 오를지, 어디에 숨을지는 아이가 정한다. 지형 자체를 놀이터로 삼는다는 점에서 Isamu Noguchi(이사무 노구치)가 1930년대에 구상한 ‘놀이 산(Play Mountain)’을 떠올리게 한다.
바닥의 색과 질감도 계산된 장치다. 테라코타, 오렌지, 샌드 톤의 바닥이 굽이치면서 창으로 들어온 햇빛을 받아들이는 정도가 자리마다 달라진다. 같은 빛이라도 언덕 위는 밝고 골짜기는 아늑하게 읽히는 이유다. 천장의 곡선 홈마다 숨겨 둔 웜톤 간접 조명은 이 흙빛 팔레트와 맞물려 공간 전체를 노을처럼 덮는다. 짙은 웜톤 마감은 빛을 먹기 때문에, 광원은 감추되 빛의 양은 넉넉히 둔 선택으로 읽힌다.
앞서 소개한 〈미끄럼틀로 층을 잇는 어린이집, Kinderoase an der TUM〉과 나란히 보면, 아이 공간을 ‘기구의 집합’이 아니라 ‘지형’으로 설계하는 흐름이 요즘 얼마나 뚜렷한지 실감할 수 있다. 아이에게 필요한 건 정답이 정해진 놀이기구보다, 매번 다르게 놀 수 있는 땅이라는 생각이다.

위층엔 시니어, 아래층엔 아이 — 세대를 섞는 아파트 커뮤니티
Sky House 2층은 시니어 입주민을 위한 라운지와 피트니스, 야외 운동 공간이다. 아이들 놀이터 바로 위에 어르신 운동 공간을 얹은 배치는 의도된 것이다. Snøhetta 홍콩 스튜디오의 Emily Yan 디렉터는 아이들이 곁에 있을 때 노년의 활력이 눈에 띄게 좋아진다는 걸 연구와 경험으로 확인해 왔다고 설명한다. 그래서 세대를 다른 건물로 나누는 대신 서로 보이고 들리는 한 지붕 아래 둔다. 두 층을 관통하는 원형 보이드와 로프 타워가 위아래를 이어 주는 덕에, 2층에서도 유리 난간 너머로 아래층 아이들의 소리와 움직임이 그대로 전해진다.
세대 통합(intergenerational) 설계는 고령화를 먼저 겪는 동아시아 도시들이 함께 붙든 숙제다. 한국 아파트 커뮤니티에도 경로당과 키즈카페가 다 있지만, 대개 다른 층, 다른 동에 따로 놓여 서로 마주칠 일이 없다. Pavilia Farm의 네 동은 각각 도착과 몸, 식탁과 놀이를 맡지만 결국 한 가지 이야기로 묶인다. 집은 각자 소유하되, 함께 쓰는 공간이 단지의 성격을 정한다는 것이다.
Snøhetta는 이 프로젝트 내내 ‘집단적 소유(collective ownership)’라는 말을 놓지 않았다. 누구의 것도 아니면서 모두의 것인 공간이라는 뜻이다. 물론 이곳은 입주민을 위한 시설이고, 도시 전체에 열린 공원은 아니다. 그보다는 3,090세대가 함께 쓰는 커다란 거실에 가깝다. 다만 세계에서 가장 빽빽한 도시에서 그 거실을 텃밭과 놀이터로 채웠다는 사실은, 아파트가 무엇으로 경쟁해야 하는지에 대해 꽤 다른 답을 내놓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