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비엘(Biel/Bienne)의 한 예술가 부부는 2020년 낡은 건물 한 채를 샀다. 처음 계획은 실내를 조금 손보는 정도의 가벼운 리모델링이었다. 그런데 현장을 살펴보던 중 지붕 구조가 심각하게 부실하다는 사실이 드러났고, 이 발견 하나로 프로젝트 전체의 방향이 바뀌었다.
Sara Gelibter Architecte가 맡은 이 스위스 리모델링 주택은 결국 지붕을 통째로 걷어내고 한 층을 통째로 얹는 증축으로 커졌다. 건물이 품고 있던 100년 넘는 이력과 예산 제약, 그리고 환경 부담을 줄이려는 건축주의 의지가 한데 맞물린 결과다.

사놓고 보니 지붕이 부실했다
지붕이 위태롭다는 사실은 무려 40년 넘게 아무도 몰랐다. 1980년대에 다락을 방으로 쓰기 위해 층고를 2.4미터까지 올리면서, 지붕 하중을 버티던 인장 로드를 끊어버린 탓이었다. 구조적 손상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고, 부부는 그 사실을 모른 채 건물을 사들였다.
설계팀은 현행 건축 규정을 다시 검토하는 과정에서 한 층을 더 올릴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부실한 지붕을 어차피 새로 짜야 한다면, 기존 형태를 그대로 복원하는 대신 완전히 다른 답을 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포도밭 창고에서 아연공장, 유스호스텔까지 100년
이 건물의 첫 모습은 비엘이 아직 농촌 마을이던 시절, 포도밭에 딸린 단순한 창고였다. 이후 금속 아연도금 공장으로 쓰이며 옆으로, 위로 몸집을 키웠고, 철도가 놓이면서 또 한 번 증축을 거쳤다. 별도의 건물 한 동이 더해져 약 50년간 산업 생산 시설로 쓰이다가, 1968년에는 유스호스텔로 용도를 바꿨다.
그 뒤로는 크고 작은 개조가 뒤섞이며 건물을 조금씩 갉아먹었다. 작은 방으로 쪼개지고 창문 배열이 흐트러졌으며, 1980년대에는 다세대 주택으로 개조되며 구조에 결정적인 손상까지 남겼다. 지금의 리모델링은 이 흔적들을 지우는 대신, 그 위에 다시 쌓아올리는 방식을 택했다.

철도가 정한 사다리꼴, 창은 알프스로만 열었다
증축부가 사다리꼴로 비스듬히 잘려나간 것도 우연이 아니다. 철도가 놓인 시점에 옆으로 넓히던 건물이 선로 경계에 걸리면서 생긴 형태로 추정된다. 지금도 건물은 선로에서 1미터가 채 안 되는 거리에 바짝 붙어 있다.
기차 소음을 막기 위해 선로 쪽으로 난 기존 창은 모두 막았고, 반대편으로는 통유리를 내 알프스 산줄기를 향해 완전히 열었다. 외벽에는 재활용 시멘트와 목섬유로 만든 파이버 시멘트 패널, 그중에서도 코랄레드 톤의 ‘Carat Coral’ 마감재를 골랐다. 무게는 가볍지만 차음성이 뛰어나 철길 소음을 막는 동시에 마을에서 눈에 띄는 색으로 건물의 새 정체성을 드러낸다.

헬리콥터가 하루 만에 얹은 새 지붕
새로 얹은 층은 목재 프리패브 방식으로 미리 짜서 만들었다. 좁은 골목에 크레인을 세우기 어려운 대지 여건 탓에, 완성된 목구조를 헬리콥터로 통째로 들어 옮기는 방법을 택했다. 헬리콥터가 마을 지붕들 위로 목구조 뼈대를 실어 나르고, 현장에서는 목수들이 곧바로 조립을 이어받아 단 하루 만에 새 지붕의 골격을 완성했다.

극장에서 온 계단, 층고에 꼭 맞았다
실내 계단은 새로 짜지 않고 통째로 가져왔다. 무대 디자이너로 일했던 남편의 아버지가 예전에 해체한 극장에서 나온 나선 계단인데, 공교롭게도 이 건물의 층고와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우연이라기엔 절묘한 이 디테일은 가족의 손을 거쳐 다시 쓰인 수많은 자재 중에서도 가장 상징적인 장면으로 남았다.
기존 주방에서 뜯어낸 부재는 새 리빙 공간에 다시 짜 넣었고, 지붕을 여는 동안 임시로 세웠던 방수 구조물의 자재는 나중에 실내 단열재로 재사용했다. 드라이월을 지지하는 구조도 금속 대신 목재를 택해 철거 후에도 다시 쓸 수 있게 했고, 남은 목재는 외부 퍼걸러와 가구로 이어졌다.

집 위에 집을 얹다, 방 두 개를 더한 증축
새로 얹은 층은 뼈대와 마감을 구조용 OSB 합판으로 그대로 노출했다. 박공지붕 아래로 다락이 트여 있고, 나선 계단이 아래층 거실과 곧바로 연결된다. 증축부는 건물 전체 부피와 바닥 면적을 늘렸을 뿐 아니라, 부부가 필요로 했던 방 두 개를 새로 확보해줬다.
기존 건물 위에 형태가 다른 집 한 채를 다시 얹은 듯한 이 실루엣은 벽도 복도도 없애다, Attic Above Garden처럼 다락을 증축해 집의 구조를 새로 짜는 접근과 맞닿아 있다. 마을에서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랜드마크가 됐다.

가족이 함께 완성한 새 다락
이 리모델링 주택이 남다른 또 하나의 이유는 건축주 부부가 시공에 직접 뛰어들었다는 점이다. 아래층 바닥재 시공과 도장, 드라이월, 미장, 가구 제작까지 상당 부분을 부부가 손수 맡았다. 남편의 아버지는 무대 조명과 세트를 다뤘던 경력을 살려 힘을 보탰고, 아내의 남동생은 전기 기사로서 배선 작업을 도왔다.
건축가가 도면만 넘기고 물러난 게 아니라, 건축주의 아이디어를 설계 과정에 계속 받아들이는 협업이 이어졌다. 다락 한쪽에 놓인 작업 공간은 지붕창을 통해 마을 지붕선을 그대로 내려다보게 설계됐다.

옛 다세대 주택의 흔적이 남은 아래층
1층과 2층은 1980년대 다세대 주택으로 개조됐던 골조를 그대로 쓴다. 검은색으로 도장한 철제 기둥들이 일정한 간격으로 늘어서 옛 산업 건물의 흔적을 드러내고, 그 옆으로 놓인 나선 계단은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화강암 마감이다. 빨간색 대신 파란색을 골랐다, Rinskopf가 산업 건물을 색으로 새로 정의했다면, 이 집은 옛 구조를 그대로 남겨 시간의 층위를 보여주는 쪽을 택했다.

구시가지 첨탑이 보이는 창
거실 겸 다이닝 공간의 통창은 비엘 구시가지의 첨탑들을 정면으로 담는다. 장작 난로 하나가 공간 전체를 데우고, 긴 테이블 위로는 다락에서 내려온 목구조가 그대로 노출돼 있다. 100년을 거치며 용도를 몇 번이나 바꾼 건물이지만, 지금은 그 모든 이력을 겹겹이 두른 채 다시 살림집으로 자리를 잡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