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화분들이 모여 파사드가 되다, 니혼바시 호텔 SOIL

Tokyo의 오래된 상업지구 Nihonbashi 뒷골목에 얼마 전 독특한 실루엣의 건물 하나가 들어섰다. 9층짜리 좁고 붉은 건물, SOIL Nihonbashi다. 이름 그대로 ‘흙’을 뜻하는 이 호텔은 골목 담벼락마다 놓인 화분들, 그러니까 정원 없는 동네가 만들어낸 즉흥적인 초록빛 풍경에서 출발한 프로젝트다. 건축가 Kiyoaki Takeda와 개발사 Staple의 디자인팀 Staple Studio가 손잡고 만든 이 14객실짜리 부티크 호텔은, 얼핏 보면 호텔이라기보다 거대한 화분 그 자체처럼 보인다.

재미있는 건 외벽을 뒤덮은 식물 대부분이 실제로 근처 주민들에게서 받은 것이라는 점이다. Nihonbashi에는 ‘구부와케(kubu-wake)’라 불리는, 화분을 나눠 기르는 오랜 문화가 있다. 설계팀은 이 문화를 그대로 건물에 옮겨와, 호텔이 동네와 무관한 낯선 시설이 되지 않도록 했다. 스카이스크래퍼와 수백 년 된 옻칠 가게, 이쑤시개 전문점이 뒤섞인 이 골목에서 SOIL은 그렇게 슬며시 동네의 일부가 됐다.

물결치는 골강판 파사드에 화분이 매달린 SOIL 니혼바시 전경

물결치는 골강판, 화분이 곧 파사드다

SOIL Nihonbashi의 가장 눈에 띄는 요소는 건물 전체를 감싼 붉은 골강판 외장이다. 물결치듯 굴곡진 이 강판은 니혼바시 곳곳에서 흔히 보이는 테라코타 화분과 흙빛을 그대로 옮겨온 색이다. Takeda는 이 붉은 톤이 “테라코타 화분과 이 지역 흙의 색을 그대로 반영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골강판 표면 곳곳에 자리 잡은 난초, 자스민, 관음죽 화분은 장식이 아니라 실제로 수년, 길게는 수십 년을 산 이웃집 식물의 분신들이다. 스틸 프레임 구조 덕분에 확보한 넓은 슬라이딩 창은 이 초록빛 외벽을 객실 안까지 끌어들인다.

1층 타일 벤치에 앉아 있는 사람들, SOIL 니혼바시 거리 풍경

타일 벤치, 사워도우 피자, 그리고 동네 사람들

1층 거리에는 건물을 빙 둘러싼 타일 벤치가 있다. 격식 차린 로비 대신 이 벤치가 SOIL의 실질적인 첫인상을 담당하는 셈이다. 벤치 옆으로는 사워도우 피자집 Pizza Tane이 자리해, 투숙객뿐 아니라 동네 주민도 아무렇지 않게 걸터앉아 피자 한 조각과 맥주를 즐긴다. 리셉션은 이 피자집 한켠에 작게 딸려 있을 뿐이다. 호텔과 동네 사이 경계를 최대한 흐리려는 의도가 읽히는 대목이다.

SOIL 니혼바시 호텔 객실 내부, 테라코타 톤 마감

14개뿐인 객실, 그러나 좁지 않은 이유

호텔이라고 해봐야 객실은 단 14개다. 하지만 방마다 벽 전체를 덮은 슬라이딩 창 덕분에 실제 면적보다 훨씬 넓게 느껴진다. 창을 열면 물결치는 골강판과 그 위 초록 식물이 방 안까지 이어지는 듯한 인상을 준다. 인테리어는 벽돌, 흙, 테라코타 색을 기본으로 하고 여기에 붙박이 가구와 패브릭까지 같은 톤으로 맞췄다. 흔한 ‘아늑함’이라는 클리셰 대신, 이 방은 그냥 골목의 흙빛을 그대로 옮겨온 느낌에 가깝다.

객실 창밖으로 보이는 초록 식물 파사드

창밖 풍경이 곧 이 호텔의 진짜 어메니티

SOIL의 객실에서 가장 값진 어메니티는 미니바도 스파도 아니라 창밖 풍경 그 자체다. 슬라이딩 창을 열면 방 바로 앞까지 다가온 화분들과 마주하게 된다. 옆방 투숙객이 아니라 이웃이 키우는 식물과 눈을 맞추는 셈이다. Takeda는 이런 구조를 통해 “내 화분에 물을 줬냐”는 대화가 자연스럽게 오갈 수 있길 바랐다고 말한다. 삭막해지기 쉬운 호텔 객실에 이보다 더 사적인 창밖 풍경을 만들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테라코타 타일과 우드톤으로 마감된 SOIL 니혼바시 객실

흙빛과 나무결이 만든 조용한 침실

다른 객실들 역시 같은 재료 팔레트를 공유한다. 이토이가와산 돌, 물살에 깎인 조약돌이 문손잡이와 벽걸이로 재활용되고, 침대 플랫폼까지 테라코타 타일로 마감했다. 화려한 장식 대신 마감재의 질감과 색으로 승부를 보는 방식이다. 좁은 대지 조건 안에서도 객실마다 조금씩 다른 채광과 뷰를 확보한 점도 눈에 띈다. 결과적으로 방마다 똑같이 찍어낸 듯한 느낌이 들지 않는다.

SOIL 니혼바시 객실 욕실

욕실까지 이어지는 소재의 일관성

욕실도 예외는 아니다. 벤치와 로비, 침실에 쓰인 것과 동일한 테라코타 타일이 욕실 벽과 바닥까지 그대로 이어진다. 자칫 기능적인 공간으로만 취급되기 쉬운 욕실을, SOIL은 전체 서사 안에 자연스럽게 녹여 넣었다. 작은 디테일이지만 이런 일관성이야말로 이 호텔을 흔한 콘셉트 호텔과 구분 짓는 지점이다. 재료 하나로 건물 전체를 관통하는 이야기를 만든다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객실에 마련된 빌트인 레코드 플레이어

스노보드 장인이 만든 소파, 커스텀 가구들

Staple Studio는 붙박이 가구 외에도 여러 신진 스튜디오와 협업해 커스텀 가구를 제작했다. 그러데이션이 들어간 와시 종이 조명, 스노보드 장인 Shinji Matsukawa가 만든 해먹 형태의 슬링 소파가 대표적이다. 시가라키 도자기 파편과 커피 찌꺼기를 재활용한 화분도 곳곳에 놓였다. 기성품 대신 로컬 장인들과의 협업으로 채운 이 디테일들은, 호텔 전체가 니혼바시라는 동네 이야기의 연장선에 있다는 인상을 강화한다.

객실 내 좌석 공간

객실 속 작은 거실

비좁을 법한 객실이지만 SOIL은 침대 옆에 작은 좌석 공간까지 챙겼다. 손님이 그냥 잠만 자고 나가는 게 아니라, 잠시 머물며 창밖 화분을 구경하길 바라는 설계 의도가 읽힌다. 실제로 Staple 측은 호텔이 입체적인 골목 정원이 된다면 손님들이 “내 화분에 물 줬어?”라고 묻기 시작할 거라며 이 공간의 목적을 설명한 바 있다. 단순히 잠자리를 파는 게 아니라 관계를 파는 셈이다.

옥상 정원 테라스

옥상엔 이웃들이 나눠준 화분이 자란다

꼭대기 층에서 작은 계단을 오르면 옥상 정원이 나온다. 이곳 화분들은 1층 피자집에서 쓸 허브를 기르는 동시에, 이웃들이 나눠준 식물이 계속 자리를 옮겨가며 자라는 공간이기도 하다. Staple은 이미 Nihonbashi 안에서 코워킹 스페이스, 베이커리, 와인바, Claesson Koivisto Rune가 설계한 K5 호텔까지 여러 시설을 운영해왔다. SOIL은 이 벨트의 최신작이자, 인구가 줄어드는 동네에 새로운 이유를 만든다는 회사의 오랜 실험이 쌓여 만들어진 결과물이다.

ArchitectsKiyoaki Takeda Architects
DesignerStaple Studio
CategoryHotel
CountryJap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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