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ydney 동부, 무성한 Moreton Bay 무화과나무가 늘어선 헤리티지 거리에 1950년대 방갈로 한 채가 있다. 성장하는 가족을 위해 이 집을 고쳐달라는 의뢰를 받은 Sam Crawford Architects는 뜻밖의 선택을 했다. 벽을 허물고 새로 짓는 대신, 원래 있던 외벽과 평면을 거의 그대로 살리기로 한 것이다.
대신 건축가들은 집 한가운데에 계단 하나를 심었다. Waverley House라는 이름의 이 개조 프로젝트에서, 스포티드검 원목으로 짠 계단은 단순한 이동 수단이 아니라 집 전체를 하나로 묶는 중심축 역할을 한다.
1950년대 방갈로, 뼈대는 그대로 두고
대지는 완만하게 경사져 있다. 건축가들은 기존 건물의 외벽과 평면 배치를 유지하는 대신, 뒤쪽 1층 바닥을 정원 높이까지 낮추고 그 위로 두 개 층을 새로 얹었다. 거실 공간은 뒤뜰 정원과 눈높이를 맞추며 초록 속에 파묻히듯 자리를 잡았다. 기존 구조를 최대한 보존한 덕분에 철거 폐기물도 크게 줄었다고 건축가들은 설명한다.
계단 하나가 집의 중심이 됐다
“스포티드검 원목으로 짠 계단은 이 집의 심장과 같다”고 SCA 소속 건축가 Jarad Grice는 말한다. 각 공간을 이어주는 통로이면서 동시에 그 자체로 하나의 부피감 있는 공간이라는 뜻이다. 계단을 사이에 두고 공용 공간과 개인 공간이 자연스럽게 갈리고, 가족 구성원들은 이 계단을 오가며 서로 마주치거나 혹은 각자의 영역으로 흩어진다. 집 한가운데 서서 사방을 둘러보면 어느 방향에서든 초록이 눈에 들어온다는 게 건축가들이 가장 자주 언급하는 대목이다.
네 개 층으로 쪼갠 스킵플로어
이 집은 평평한 두 개 층 대신 네 개의 스킵플로어로 나뉜다. 층과 층 사이 높이차를 촘촘하게 쪼갠 덕분에, 공간마다 서로 겹치고 스쳐 지나가는 지점이 생겼다. 창가 벤치, 아늑한 틈새 공간, 그물 해먹처럼 잠깐 멈춰 앉을 자리들이 이 겹침 속에서 태어났다. 획일적인 오픈플랜을 포기한 대신, 가족 구성원 각자의 기분과 활동에 맞는 크고 작은 방들이 촘촘하게 들어섰다.
빛이 쏟아지는 계단실
계단 위쪽에는 채광창 하나가 뚫려 있다. 이 채광창을 타고 들어온 빛은 하루 종일 계단실 벽을 타고 움직이며 시시각각 다른 그림자를 만든다. 인공조명을 켜지 않아도 계단실 전체가 은은하게 밝은 이유다. 좁고 수직으로 뻗은 공간인데도 어둡다거나 갇힌 느낌이 들지 않는 건 이 빛 덕분이라고 봐야 한다.
그을린 목재로 감싼 증축부
새로 올린 1층 증축부는 그을린 목재로 전체를 감쌌다. 기존 건물에 남아 있던 흰색 팝콘 렌더(질감 마감) 외벽과는 확연히 다른 질감이다. 오래된 것과 새로운 것이 한 건물 안에서 대비를 이루도록 의도한 선택인데, 그러면서도 전체 형태는 주변 거리 풍경을 크게 거스르지 않는다. 낮에는 짙은 목재가 그림자를 삼키고, 저녁이 되면 창마다 흘러나오는 빛이 그 짙은 표면 위에서 오히려 도드라진다.
무화과나무 아래, 정원과 마주하다
이 집이 있는 거리는 오래된 Moreton Bay 무화과나무들로 유명한 헤리티지 경관 지역이다. 조경가 TARN과 함께 작업한 정원은 실내 곳곳에서 서로 다른 표정으로 스며든다. 실내 그린 코트야드 하나가 여러 공간에 정원 풍경과 빛을 끌어들이고, 작은 잔디밭 위에 뜬 듯 놓인 뒤뜰 데크는 거실 창가 자리에 앉은 사람 옆으로 나뭇가지가 스칠 만큼 가깝다. 어느 방에서 보든 창밖 나무 그늘이 걸려 있는 셈이다.
부엌은 다시 만남의 장소가 됐다
1층 평면은 뒤뜰 쪽에 주요 생활 공간을, 앞쪽에는 상대적으로 조용한 공간을 배치했다. 흰 벽 대신 흙빛에 가까운 톤을 골랐다는 게 이 집 재료 선택의 특징인데, 클라이언트가 처음부터 “밋밋한 흰 벽은 원하지 않는다”고 요청했기 때문이다. 부엌과 다이닝 곳곳에 쓴 호주산 원목과 타일, 테라조가 그 흙빛 팔레트와 자연스럽게 어우러진다. 천장 픽처레일과 타일 밴드가 공간을 가로지르며 눈길을 이어주는 것도 이 집만의 디테일이다.
그물 해먹이 놓인 틈새 공간
스킵플로어가 만들어낸 자투리 공간마다 건축가들은 저마다 다른 쓰임을 채워 넣었다. 그중 하나가 계단 옆에 매단 그물 해먹이다. 아이들은 이곳에서 함께 놀거나 숨고, 어른들은 책을 읽거나 잠깐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다. 클라이언트 가족은 “이 틈새들 덕분에 함께 있으면서도 각자의 시간을 가질 수 있게 됐다”고 말한다.
위층은 부모와 아이의 영역으로
새로 얹은 두 개 층은 계단을 오를수록 조금씩 물러나는 형태로 쌓였다. 이 단차가 부모의 공간과 아이의 공간을 자연스럽게 갈라놓는다. 지붕에는 잠망경처럼 솟은 환기구를 심어 더운 공기를 밖으로 내보내는 동시에 빛을 끌어들이도록 했다. 100퍼센트 전기로 작동하는 이 집은 태양광 패널과 배터리 저장 공간까지 갖춰, 오래된 뼈대 위에 꽤 미래지향적인 살림을 얹은 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