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자녀와 반려동물 두 마리를 키우는 맥두걸(McDougal) 가족은 샌프란시스코의 오래된 집에서 살고 있었다. 문제는 ‘어둡고 비좁은’ 구조였다. 이들은 무리한 비용을 들이지 않으면서도 빛이 가득한 집으로 바꿔줄 건축가를 찾았고, 그렇게 만난 사람이 BACH 아키텍처(BACH Architecture)의 베벌리 최(Beverly Choe)였다.
최가 내놓은 해법은 다소 낯선 이름의 구조물이었다. 바로 3개 층을 관통하는 거대한 수납 시스템, ‘메가캐비닛(Megacabinet)’이다.

빛이 들어오지 않던 낡은 집
리노베이션 전 이 집의 주요 생활공간은 자연광이 거의 들지 않는 구조였다. 오래된 샌프란시스코 주택 특유의 좁고 답답한 평면이 그대로 남아 있었던 셈이다. 가족은 벽을 헐고 새로 짓는 대신, 공간을 다시 조직하는 방식으로 문제를 풀어줄 건축가를 원했다. 이 지점에서 최의 접근은 단순한 확장이 아니라 ‘수납’이라는 요소를 공간 전체의 중심 장치로 삼는 쪽으로 향했다.

수납장이 아니라, 공간을 조종하는 장치: 메가캐비닛
최는 이 프로젝트를 설명하며 이렇게 말한다. “일반적인 캐비닛은 수동적인 존재다. 메가캐비닛은 다르다. 시야를 통제하고, 동선을 안내하고, 즐거움을 이끌어내는 능동적인 요소가 되고자 한다 — 물론 물건을 담는 역할도 하면서.” 이 아이디어는 미스 반 데어 로에의 파른스워스 하우스(Farnsworth House)에서 착안했다. 서비스 공간을 하나의 중심 볼륨으로 압축한 그 집의 방식을, 최는 수평이 아니라 수직 방향으로 새로운 계단 옆에 풀어냈다. “전형적인 건축 요소 여러 개를 캐비닛 하나에 압축해 넣어보고 싶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독서를 위한 비밀 공간이 패널을 열면 나타나는 것도 이 메가캐비닛이 품은 다층적 기능 중 하나다.

거대한 구조물이 부담스럽지 않은 이유
3개 층을 관통하는 캐비닛이라고 하면 자칫 위압적으로 느껴질 법하다. 하지만 실제로 마주하면 그런 느낌은 크지 않다고 해야 할까. 곳곳에 뚫린 리빌(reveal)과 작은 창들이 이 거대한 구조물을 사람의 눈높이로 끌어내리는 역할을 한다. 동시에 숨겨진 패널들은 시각적으로 어수선해 보이지 않으면서도 필요한 기능을 다 담아낸다.

반려동물을 위한 자리도 잊지 않았다
캐비닛의 한쪽 끝에는 반려견 럭키(Lucky)가 밥을 먹는 작은 공간이 마련돼 있다. 재미있게도 이 집 고양이 역시 이 자리를 낮잠 장소로 점찍었다고 한다. 가구 하나에 온 가족 구성원(사람은 물론 반려동물까지)의 자리를 배정한 셈이다. 사소해 보이지만, 메가캐비닛이 이 집에서 실제로 얼마나 촘촘하게 쓰이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장면이다.

2층의 책상과 와인냉장고
2층으로 올라가면 메가캐비닛은 책상과 뷔페장, 와인냉장고로 모습을 바꾼다. 바로 옆에는 수납공간을 숨긴 소파도 자리한다. 재택근무 공간이자 간이 바(bar) 역할까지 겸하는 셈인데, 이 모든 기능이 하나의 연속된 캐비닛 라인 안에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빛으로 채운 주방
리노베이션 후 주방은 이 집에서 가장 극적으로 달라진 공간이다. 룸앤보드(Room and Board)의 레오 바 스툴, 루이스 폴센(Louis Poulsen)의 두왑(Doo-Wop) 펜던트 조명, GE 모노그램(GE Monogram) 가전이 어우러져 밝고 정돈된 분위기를 완성한다. 리노베이션 전 사진과 비교하면 같은 집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달라졌다.

다이닝 공간
다이닝룸에는 크레이트앤배럴(Crate & Barrel)의 테이블과 디자인위드인리치(Design Within Reach)의 보테가(Bottega) 아이스 그레이 사이드 체어가 놓였다. 장식은 절제됐지만, 주방에서 이어지는 빛과 개방감 덕분에 공간 자체는 결코 밋밋하지 않다.

가전을 숨긴 커스텀 큐브
주방 한쪽에는 커스텀 제작한 캐비닛 ‘큐브’가 자리한다. 이 큐브는 가전제품을 감추는 동시에, 안쪽에 파우더룸까지 숨기고 있다. 메가캐비닛의 문법이 주방까지 확장된 사례라고 볼 수 있다.

칠판 문 뒤에 숨은 파우더룸
주방 유닛의 슬라이딩 도어를 열면 예상 밖의 공간이 나타난다. 겉으로는 칠판처럼 보이는 이 문 뒤에 파우더룸이 숨어 있는 것이다. 손님 눈에는 그저 벽의 일부로 보이지만, 필요할 때는 문 하나로 완전한 기능 공간이 열린다.

책장으로 위장한 또 다른 파우더룸
1층 오피스 옆 파우더룸도 같은 방식으로 숨겨졌다. 이번엔 책장으로 위장한 문이다. 집안 곳곳에 이런 ‘숨은 문’이 반복해서 등장하는데, 매번 다른 방식으로 위장돼 있어 찾는 재미까지 있다고 해야 할까. 최는 이 프로젝트를 이렇게 정리한다. “가정이라는 공간 안에서 캐비닛이라는 요소를 활기차고 사려 깊게 탐구함으로써, 일상에 즐거움을 엮어 넣는 것이 이 프로젝트의 목표였다.”
수납이라는 지극히 실용적인 기능을 공간 경험의 중심으로 끌어올린 프로젝트다. 벽을 트고 면적을 늘리는 대신 가구 하나의 역할을 재정의해 문제를 푼 방식은, 좁고 오래된 집을 가진 이들에게도 분명 참고할 만한 힌트가 될 것이다.
위치: 미국 샌프란시스코
시공: Blair Burke General Contractors, Go Build Studio(캐비닛 제작)
구조설계: SMWA Structural Engineers
인테리어·조명디자인: Steve Somogyi, Steve + Filip Design
분류: 주택 리노베이션·증축
사진: Mariko Re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