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저우 사옥 하나의 연면적이 582,162m²다. 축구장 80개를 깔고도 남는 넓이인데, 디지털 헬스케어 기업 WeDoctor가 항저우 샤오산 경제기술개발구에 세운 본사 단지 WeDoctor Green Valley 이야기다. 2025년 준공했고, 설계는 항저우에 본거지를 둔 gad가 맡았다.
이 정도 덩치의 기업 사옥이라면 보통 출입 게이트와 보안 데스크부터 떠오른다. 그런데 설계팀이 이 단지를 설명하며 맨 앞에 세운 단어는 뜻밖에도 ‘공공성’이다. 회사 본부를 담장 안에 가두지 않고 도시가 함께 쓰는 장치로 만들겠다는 선언인 셈이다. 58만m² 규모에서 공공성은 브로슈어 문구로 끝나기 쉽다. 그 말이 배치와 저층부, 다리와 정원 어디에 실제 증거를 남겼는지 하나씩 따라가 볼 만하다.

온라인 진료 기업은 왜 58만m² 오피스 단지를 지었나
WeDoctor는 2010년 진료 예약 플랫폼 Guahao.com으로 출발해 온라인 진료와 디지털 의료 서비스로 몸집을 키운 항저우 기업이다. 서비스는 화면 속에서 돌아가는데 본사는 이렇게 거대하다는 것부터가 흥미로운 대목이다. 다만 이 단지는 WeDoctor 한 회사의 집무실이 아니다. 본사와 함께 디지털 헬스케어 관련 기업들을 한데 모으는 산업 클러스터로 기획됐고, 정식 명칭이 微医国际数字健康中心(WeDoctor International Digital Health Center)인 것도 그래서다.
부지는 IT 기업들이 모여 있는 정보항(Information Port) 지구에 있고, 빈장과 첸장 세기성 핵심부까지 2km 남짓이다. 원격의료가 급부상하던 2020년에 설계를 시작해 2025년에 완공했다. 메인 타워 꼭대기에 걸린 로고는 이 단지가 결국 한 기업의 얼굴이라는 사실을 숨기지 않는다. 층별로 연구·임상·데이터 설비가 얼마나 들어갔는지는 공개 자료에 나와 있지 않다.

회사 로고를 그대로 평면으로 옮긴 ∞자 오피스 배치
단지는 서로 맞닿은 네 개 필지를 한 번에 개발했다. 대지면적은 97,177m², 용적률은 필지에 따라 3.0과 4.5로 나뉜다. 연면적을 대지면적으로 나누면 6배에 가까운데 용적률이 그보다 한참 낮다는 건, 용적률 계산에 들어가지 않는 지하 공간이 상당하다는 뜻으로 읽힌다.
동쪽 오피스 구역은 WeDoctor 로고인 ‘∞’를 그대로 평면으로 옮겼다. 메인 타워 두 동과 나머지 여섯 동이 남북 중심축을 따라 대칭으로 서서, 남북으로 이어진 두 개의 고리를 만든다. 서쪽에는 헬스케어·웰니스 레지던스 구역이 두 개의 ‘L’자 매스로 정보항 공원을 향해 열려 있다.
건축 이론에는 ‘덕(duck)’이라는 말이 있다. 로버트 벤투리와 데니스 스콧 브라운이 1972년 『라스베이거스의 교훈(Learning from Las Vegas)』에서 오리 모양 가게를 예로 들며, 건물의 형태 자체가 간판이 되는 경우를 그렇게 불렀다. ∞자 배치는 말하자면 하늘에서만 보이는 오리다. 땅을 걷는 사람에게 로고는 읽히지 않고, 대신 두 개의 원형 중정과 그 사이를 가로지르는 다리로 체감된다.

산을 닮은 스카이라인, 항저우가 품은 산수도시라는 숙제
멀리서 보면 타워들의 높이가 고르지 않다. 설계팀은 매스를 계단처럼 물리고, 엇갈리게 놓고, 비스듬히 잘라내는 방식으로 산 능선 같은 실루엣을 만들었다고 설명한다. 여기에는 서호를 산이 둘러싼 항저우의 정체성이 깔려 있다. ‘산수도시(山水城市)’는 1990년 과학자 첸쉐썬(錢學森)이 제안한 뒤 중국 도시계획과 건축 담론에 꾸준히 등장해 온 개념이다.
다만 고층 오피스 여러 동으로 산을 흉내 내는 건 은유에 가깝다. 실제 효과는 ‘산’이라기보다, 같은 높이의 박스가 줄지어 섰을 때 생기는 압박감을 덜어 내는 쪽에 있다. 58만m²가 하나의 거대한 벽처럼 보이지 않게 하려는 전략이라고 보는 편이 정확하다.

기업 캠퍼스는 원래 담장의 건축이었다
기업 캠퍼스라는 타이폴로지(건물 유형)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 교외에서 자리를 잡았다. Eero Saarinen(에로 사리넨)이 설계해 1962년 완공한 뉴저지의 Bell Labs Holmdel처럼, 회사는 도심을 떠나 넓은 잔디밭 한가운데 건물을 놓고 연구원들을 그 안에 모았다. 2017년 문을 연 Apple Park의 거대한 고리 역시 안쪽을 향해 닫힌 원이다.
중국에서는 지난 10여 년 사이 테크 기업 본사 단지가 하나의 유형으로 굳었고, 항저우 시시(Xixi)에 자리한 알리바바 본사가 대표적이다. 이런 캠퍼스는 직원에게는 쾌적하지만, 담장 밖 도시 입장에서는 거대한 섬이다. 이 항저우 사옥은 처음부터 도시 도로로 쪼개진 네 필지 위에 앉아 있어서 섬이 될 수 없다는 조건을 안고 출발했다.
서쪽 레지던스 구역이 공원 쪽으로 계단식 테라스를 내려놓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설계팀은 건물을 공원의 경계가 아니라 공원의 연장으로 만들고 싶었다고 말한다. 〈후쿠오카 오피스 속 공원, Tenjin Business Center II〉가 한 동의 건물 안에서 던진 질문을, 이곳은 도시 블록 네 개 단위로 던지는 셈이다.

밖은 단단하게, 안은 느슨하게 — 오피스 저층부의 동선 설계
설계팀이 내세우는 공간 전략은 ‘외긴내송(外緊內鬆)’, 밖은 조이고 안은 푼다는 원칙이다. 도로를 따라서는 건물이 끊김 없이 이어져 반듯한 가로면을 만들고, 안쪽에서는 매스를 물리고 잘라 중앙의 그린 밸리를 비워 낸다. 사진 속 협곡처럼 깊은 중정이 그렇게 생겼다.
1층 평면도를 보면 이 원칙이 동선으로 어떻게 번역됐는지 보인다. 고리를 따라 오피스 로비와 상업 공간이 번갈아 놓이는데, 상점은 바깥 도로를 향하는 줄과 안쪽 중정을 향하는 줄로 나뉜다. 설계팀은 이를 ‘외부 거리–내부 거리’의 이중 고리라고 부른다. 바깥 고리는 지나가는 시민을, 안쪽 고리는 입주 기업 직원과 단지 안으로 들어온 사람들을 상대하는 구조다.
오피스 출입구는 도로 쪽에 따로 내어 출근 동선과 쇼핑 동선이 엉키지 않게 했고, 한쪽 고리 중정에는 원형 강당을 넣어 행사와 모임의 무게중심도 하나 만들어 뒀다. 퍼블릭(바깥 상점)–세미퍼블릭(안쪽 중정)–프라이빗(오피스 층)으로 이어지는 위계가 평면에서 꽤 또렷하다. 제인 제이콥스가 1961년 『미국 대도시의 죽음과 삶』에서 말한 ‘거리의 눈’처럼, 1층에 가게와 사람이 있어야 거리가 산다는 오래된 원칙을 오피스 단지 저층부에 그대로 적용한 셈이다.

도로 위에서 X자로 교차하는 보행 다리
두 고리가 만나는 ∞의 허리에서 단지는 도로를 건너야 한다. 이곳에 대형 스팬의 보행 다리가 X자로 교차하며 남북 두 동 무리를 잇는다. 다리는 강철 구조이고, 아치형 경사 버팀재를 넣어 실제로 받쳐야 하는 경간을 줄였다. 덕분에 개방감을 지키면서 공사비도 통제했다는 게 설계팀 설명이다.
네 필지는 이 X자 다리 말고도 공중 브리지, 1층 통로, 지하 연결로로 겹겹이 이어져 있다. 홍콩 센트럴의 고가 보행 데크처럼, 공중 보행로는 도로가 끊어 놓은 도시를 다시 꿰매는 장치다. 반대로 사람들을 거리 위로 끌어올려 정작 길바닥을 비게 만드는 부작용도 함께 지닌다.
그래서 이 다리가 시민에게 언제, 어떤 방식으로 열려 있는지가 중요하다. 설계 의도는 ‘도시의 보행 흐름을 단지 안으로 끌어들인다’인데, 실제 개방 시간과 출입 방식은 공개 자료로 확인되지 않는다. 공공성의 진짜 시험대가 바로 여기다.

39m 로비와 비행접시, 구조가 공공성을 떠받친다
동쪽 메인 타워 아래에는 기둥 없이 39m를 가로지르는, 여러 층이 트인 로비가 있다. 정면 유리벽은 단층 케이블넷 커튼월이다. 테니스 라켓 줄처럼 팽팽하게 당긴 가는 케이블에 유리를 매다는 방식이라, 굵은 멀리언(창틀 기둥) 없이 거의 투명한 벽을 만들 수 있다.
문제는 그 위에 얹힌 오피스 층들의 무게다. 설계팀은 건물 외형에 맞춰 세 겹의 아치형 전이 구조를 넣었다. 위층 기둥이 로비까지 내려오지 못하니, 아치가 그 하중을 옆으로 흘려 축력으로 바꿔 땅에 전달하는 식이다. 로비 입면에 드러난 아치 곡선이 바로 그 힘의 길이다.
중심축 위 두 타워 사이에는 ‘비행접시’라 불리는 공중 연결체가 떠 있다. 곡면 공간 트러스로 짜서 아래층 구조에 기대지 않고 크게 캔틸레버로 뻗어 나가는데, 덕분에 도시 쪽 풍경과 안쪽 중정 사이 시야가 그대로 뚫린다. 구조가 그저 버티는 역할을 넘어 열린 공간 자체를 가능하게 하는 셈이다.

바깥은 실버, 안쪽은 웜톤 메탈 — 인테리어로 스케일을 바꾸다
재료도 안팎을 다르게 썼다. 도로를 향한 바깥 면은 실버 화이트 알루미늄 패널과 대형 유리 커튼월, 곧게 떨어지는 세로 줄눈으로 단정하게 정리했다. 멀리서 큰 덩어리의 변화를 읽게 하는 언어다. 중정 쪽으로 들어오면 분위기가 달라진다. 캐노피와 데크 하부, 난간에 웜톤 금속 부재가 촘촘히 붙고, 버섯처럼 위로 퍼지는 기둥이 곡면 지붕을 받친다.
같은 금속이라도 차가운 실버는 거리를 두고 보는 재료이고, 브론즈 계열의 웜톤은 손이 닿고 몸이 머무는 높이에 놓일 때 효과가 크다. 설계팀이 말하는 ‘스케일의 전환’이 바로 이것이다. 거대한 단지 안에서 사람이 ‘내 크기’라고 느끼는 지점을 재료로 만들어 주는 것이다.
실내는 Yinshi (Hangzhou) Space Design이 맡았다. 아트리움에서는 부채꼴 천창 아래로 에스컬레이터가 층을 가로지르며 자연광을 깊숙이 끌어들인다. 작은 상업 공간에 옮겨 본다면, 파사드는 무채색으로 절제하고 출입구 캐노피 하부나 손잡이·카운터처럼 몸에 닿는 부분에만 웜톤 금속을 쓰는 조합이 같은 효과를 낸다.

공원에서 옥상, 구름 데크까지 세 겹의 그린 밸리
‘Green Valley’라는 이름은 조경 계획에서 나온다. 설계팀은 서쪽 정보항 공원의 녹지를 단지 안으로 끌어들여 중앙의 그린 밸리와 이어 붙이고, 이를 세 개의 층위로 쌓았다. 첫째는 공원과 중앙 그린 밸리로 이뤄진 지상층으로, 단지 전체의 공공 바닥 역할을 한다. 둘째는 레지던스 구역과 상업 저층부가 뒤로 물러나며 생긴 옥상 정원이다. 셋째는 오피스 타워 사이에 걸린 ‘운대(云台)’, 말하자면 구름 데크라는 공중 플랫폼이다.
〈오피스 네 개 층을 통째로 내준 마천루 정원, CapitaSpring〉이 한 동의 타워 안에 녹지를 수직으로 쌓았다면, 이곳은 그 수직 녹화를 단지 전체에 펼친 셈이다. 조경은 필지 1~3을 China Academy of Art 산하 조경설계연구원이, 필지 4를 Hangzhou Wusen Landscape Planning and Design이 나눠 맡았다.
사진 속 중정은 데크와 화단이 계단식으로 겹쳐 협곡 바닥처럼 읽힌다. 다만 사방을 고층 매스가 둘러싼 만큼 바닥 정원에 하루 몇 시간 볕이 드는지는 따져 볼 대목이다. 그늘에 강한 수종을 골랐는지, 데크 높이별로 식재를 달리했는지가 이 정원의 10년 뒤 모습을 가를 것이다.

밤이 되면 링이 빛난다, 동선을 그리는 조명 설계
이 단지의 야경은 타워보다 저층부가 주인공이다. 해 질 녘 사진을 보면 타워 외벽은 대체로 차분하게 두고, 링 모양 데크의 가장자리와 하부, X자 다리의 바닥선을 따라 웜톤 라인 조명이 이어진다. 위에서 내려다보면 ∞자 동선이 빛으로 그려지는 셈이다. 캐노피 하부에는 라인 조명이 V자로 반복돼, 걸어갈 방향을 천장이 먼저 알려 준다. 기구 사양은 공개되지 않았다.
조명 설계의 기본은 전반(앰비언트)·국부(태스크)·연출(액센트) 세 겹을 나눠 까는 것이다. 이곳에서는 데크 하부를 비추는 간접광이 전반 조명을, 가장자리 라인 조명이 연출을 맡는다. 빛을 천장면에 한 번 튕기는 간접 조명은 눈부심 없이 면 전체를 밝혀 공간을 넓어 보이게 한다. 사람이 머무는 저층은 휴식에 어울리는 웜톤 계열로 보이고, 업무 공간의 주백색과 자연스럽게 갈린다.
동네 카페나 상가 1층에 옮긴다면 파사드 전체를 투광등으로 밝히기보다, 캐노피 하부에 라인 조명을 숨겨 넣고 난간과 계단 단에만 빛을 주는 쪽이 낫다. 밝기는 덜 쓰면서 사람의 발길은 더 잘 끌어당긴다. 디머를 달아 저녁과 심야의 밝기를 나눠 두면 주변 주거지로 새는 빛 공해도 줄일 수 있다.

공공성은 증명됐나, 남는 질문들
증거는 분명 있다. 도로 쪽으로 열린 상점 고리, 도로를 건너 시민을 단지 안으로 끌어들이는 X자 다리, 공원 쪽으로 계단처럼 내려앉은 테라스가 그렇다. 하지만 남는 질문도 있다. 뉴욕은 1961년 조닝 개정으로 건물 앞 광장을 시민에게 내주면 용적률을 더 얹어 주는 제도를 만들었는데, 이렇게 생긴 ‘민간 소유 공공 공간(POPS)’ 상당수가 이후 앉을 곳도 그늘도 없는 텅 빈 광장으로 남았다. 땅 주인이 하나인 공간에서 공공성은 결국 운영으로 판가름 난다는 교훈이다.
출입 통제 시간, 상가 임대 구성, 다리와 옥상 정원의 개방 여부는 공개된 자료로 확인되지 않는다. 중국 대도시 오피스 시장이 공급 과잉에 시달리는 지금, 바깥 고리의 상점이 채워지지 않으면 도시를 향한 얼굴이 가장 먼저 비어 버릴 수 있다. 끊김 없이 이어진 외곽 가로면 역시 보기에 따라선 잘 디자인된 또 하나의 담장이다. 그래서 이 항저우 사옥의 공공성은 준공 사진이 아니라, 앞으로 몇 년 동안의 평일 저녁 풍경이 증명하게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