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 중심업무지구, 그것도 마켓 스트리트에서 가장 비싼 땅 위로 마천루 정원 하나가 솟아 있다. 오피스 한 개 층만 빼곡히 채워도 수백 명이 일할 자리가 나오는 자리에서, CapitaSpring은 그런 층을 무려 네 개나 통째로 비워 나무를 심었다.
280m, 51개 층짜리 이 타워는 BIG(비아이지)와 Carlo Ratti Associati(카를로 라티 아소치아티)가 함께 설계해 2022년 완공했다. 건축은 BIG, 공용공간과 디지털 경험은 CRA가 나눠 맡았다는 점도 이례적이다. 사무실 임대료로 따지면 상당한 금액을 정원에 내준 이유는, 이 건물 하나만 들여다봐서는 다 설명되지 않는다.

옛 주차장과 노점 자리에 들어선 오피스타워
CapitaSpring이 선 자리는 원래 골든슈 주차장(Golden Shoe Car Park)과 마켓 스트리트 호커센터가 있던 곳이다. 싱가포르 금융가 한복판에서 오랫동안 자동차와 노점이 차지하고 있던 땅을, CapitaLand Development(CLD)와 CapitaLand Integrated Commercial Trust, 일본 Mitsubishi Estate가 공동 개발사로 나서 4년간의 공사 끝에 새 타워로 바꿨다.
93,000㎡ 연면적에 오피스와 서비스드 레지던스, 식당가, 정원까지 얹은 복합 프로그램이다. BIG와 CRA는 공모전을 거쳐 함께 선정됐는데, Carlo Ratti(카를로 라티)는 프로젝트 소개에서 각자의 접근을 합쳐 대담한 결과를 내는 게 목표였다고 밝혔다 — 조경 건축가 한 팀이 아니라 서로 다른 철학의 두 사무소가 위아래로 역할을 나눠 그린 드문 사례다. 홍콩의 Lippo Centre처럼 완공한 지 수십 년이 지나도 화제가 되는 아시아 금융가의 오피스타워들과 비교해봐도, CapitaSpring은 등장부터 전혀 다른 화두를 던진 셈이다.

51개 층을 관통하는 알루미늄 핀 — 파사드가 숨 쉬는 법
CapitaSpring의 외피를 이루는 건 가늘고 긴 알루미늄 핀이다. 이 핀은 지상에서 옥상까지 51개 층을 끊김 없이 관통하며 타워 전체에 시각적 통일감을 준다. 이 파사드는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기후에 반응하도록 설계됐다.
사무실과 레지던스 층에서는 핀 간격이 촘촘해져 열대의 태양을 걸러내는 차양 역할을 한다. 반대로 정원이 들어선 층에서는 핀이 좌우로 벌어지며 통풍과 채광을 그대로 들인다. 닫아야 할 곳은 닫고 열어야 할 곳은 여는 식이다. 파사드 하나로 성능과 조형을 동시에 풀어내는 이런 접근은, 커튼월 뒤에 기계식 공조를 욱여넣던 20세기 오피스타워의 문법과는 다른 길이다.

사무실 네 개 층을 비우고 얻은 것 — Green Oasis
타워 중간, 지상에서 100여 미터 높이에 Green Oasis라 부르는 네 개 층짜리 개방형 정원이 있다. 하드스케이프로 마감된 사무실 구역과 레지던스 구역 사이에 끼워 넣은 이 정원은 35m 높이까지 뚫려 있고, 나선형 산책로가 그 사이를 휘감아 오른다. 일하다 잠깐 나와 걷거나, 운동을 하거나, 행사를 열 수도 있는 공간이다. 나선형 동선 하나로 조형과 프로그램을 동시에 푸는 방식은 헬릭스 타워에서도 볼 수 있는 접근이다.
식재도 아무렇게나 심지 않았다. 빛이 적게 드는 아래층에는 잎이 큰 음지식물을, 위로 갈수록 캐노피를 이루는 작은 잎의 나무들을 배치해 실제 열대우림의 수직 구조를 흉내 냈다. 건물 전체로 보면 이 정원 하나 때문에 사무실로 쓸 수 있었던 네 개 층이 통째로 사라진 셈인데, 싱가포르 금융가의 임대료를 감안하면 상당한 손해를 감수한 결정이다.

CapitaGreen에서 CapitaSpring까지 — 같은 회사가 다시 던진 질문
CapitaLand가 녹색 오피스를 실험한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14년 완공한 래플스 플레이스의 CapitaGreen은 Toyo Ito(토요 이토)가 설계를 맡았는데, 옥상에 꽃잎 모양 구조물을 얹어 바람을 빨아들이고 그 찬 공기를 코어를 따라 아래로 내려보내는 이른바 ‘그린 보텍스’ 방식을 썼다. 파사드 절반 이상을 식물로 덮었지만, 어디까지나 껍데기와 공조 시스템 안에서의 개선이었다.
CapitaSpring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간다. 파사드에 화분을 붙이거나 옥상에 통풍구를 얹는 대신, 실제로 임대할 수 있었던 층 자체를 정원에 내줬다. 밀라노의 Bosco Verticale(보스코 베르티칼레)이 발코니마다 나무를 매단 주거동이고, 후쿠오카의 ACROS(아크로스)가 계단식 지붕에 녹지를 얹은 문화시설이라면, CapitaSpring은 초고층 오피스타워 한복판, 사람이 일하고 쉬는 실제 사용 구역을 뚫어 정원을 심었다는 점에서 다르다. 조경을 얹는 게 아니라 건물의 단면 자체를 다시 짠 쪽에 가깝다.

그린 플롯 비율 140% — 싱가포르의 정원 도시 정책
이런 결정에는 정책적 배경도 있다. 싱가포르 도시재개발청(URA)은 2009년부터 LUSH(Landscaping for Urban Spaces and High-Rises)라는 제도를 운영하며, 개발로 사라진 녹지만큼을 건물 안에 다시 채워 넣도록 요구해왔다. 이 조경 대체 면적(Landscape Replacement Area) 기준은 입지에 따라 대지면적의 70~100%다.
CapitaSpring의 그린 플롯 비율은 1:1.4, 조경면적으로 환산하면 8,300㎡로 대지면적의 140%에 달한다. 기준을 채우는 정도가 아니라 크게 웃도는 수치다. 80,000그루가 넘는 식물이 이 건물 안에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정원은 규제를 통과하기 위한 구색이 아니라 이 프로젝트의 핵심 논지였다고 보는 게 맞다.

되살린 마켓 스트리트, 재현된 호커센터
1층으로 내려오면 이야기는 좀 더 동네 단위로 좁혀진다. CapitaSpring은 건물 앞 마켓 스트리트 일부를 차량 대신 보행자에게 돌려주고, 그 자리에 조경을 두른 광장을 만들었다. 타워 아래에는 18m 높이 City Room이라는 로비 공간이 있는데, 열대의 볕과 소나기를 가려주는 지붕 역할을 하며 오피스와 레지던스 로비, 식당가로 각각 이어진다.
옛 골든슈 주차장 자리에 있던 마켓 스트리트 호커센터도 2, 3층에 56개 노점 규모로 다시 들어섰다. 초고층 오피스타워 저층부에 이런 재래시장 성격의 공간을 그대로 옮겨 심은 건 흔치 않은 선택이다. 개발 이전부터 그 자리를 지키던 상권과 이용자를 밀어내지 않고 같은 건물 안으로 데려온 셈이다.

사무실 위 8개 층, Citadines 레지던스
타워 하단부 8개 층은 Citadines 브랜드의 서비스드 레지던스다. 수영장과 자쿠지, 조깅 트랙, 체육관, 소셜 키친, 라운지, 바비큐 시설까지 갖췄다. 파사드의 알루미늄 핀을 배경 삼은 수영장은 도심 한복판에서도 꽤 아늑한 인상을 준다.
로비와 복도는 우드톤 마감과 은은한 간접조명으로 차분하게 정리했다. 오피스타워 안에 통째로 얹힌 이 레지던스 구역은 출장과 장기 체류를 겸하는 하이브리드 워커를 겨냥한 구성인데, 일하는 층과 머무는 층, 걷는 층을 수직으로 쌓아 올린 이 건물의 구조를 생각하면 자연스러운 조합이다.

옥상의 도시 농장, 1-Arden Food Forest
맨 꼭대기 옥상 정원은 1-Group이 운영하는 도시 농장 1-Arden Food Forest다. 다섯 개 테마 구역에 과일과 채소, 허브, 꽃까지 150여 종을 심어 건물 안 레스토랑에 식자재를 공급한다. 싱가포르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한 도시 농장이라는 타이틀도 갖고 있다.
식재 하나 심는 데도 서사가 있다. 셰프가 직접 옥상까지 올라가 그날 쓸 채소를 수확하는 구조는, 건물 하나가 사무실이자 정원이자 작은 농장으로도 기능한다는 걸 보여주는 장면이다.

예약해야 들어갈 수 있는 정원
다만 이 정원이 처음부터 끝까지 활짝 열려 있던 건 아니다. 2023년 말부터는 인원 관리를 위해 홈페이지를 통한 사전 예약제로 운영되고 있다. 사유지 안에 놓인 공공적 공간이 늘 그렇듯, 얼마나 열어둘지는 결국 소유주의 재량에 달린 문제이기도 하다.
CapitaSpring은 싱가포르 건설청(BCA)으로부터 Green Mark 플래티넘과 유니버설 디자인 골드플러스 인증을 받았다. 165대 규모 자전거 거치대와 건물 둘레 600m 자전거도로까지 갖춰, 정원 못지않게 이동 수단 차원의 지속가능성도 함께 챙겼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