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애드미럴티(Admiralty) 한복판, 왕복 여러 차선 도로 위로 레드 택시가 줄지어 선 그 뒤편에서 유리 타워 두 동이 하늘을 향해 솟는다. 팔각형 단면의 몸통 곳곳에서 캔틸레버로 튀어나온 상자들이 층층이 엇갈려 있어서, 처음 보는 사람은 이게 오피스 빌딩인지 조형물인지 헷갈릴 정도다. 이 건물의 이름은 Lippo Centre, 1988년 문을 연 홍콩의 오피스타워인데 벌써 준공 38년째다.
신기한 건 세월이 이 건물 편이라는 점이다. 같은 시기에 지어진 유리 마천루 대부분이 지금 보면 어딘가 촌스럽거나 늙어 보이는데, Lippo Centre는 사진만 보면 준공 연도를 가늠하기 어렵다. 그 비밀을 풀려면 이 건물을 그린 미국 건축가 폴 루돌프(Paul Rudolph)와, 그가 홍콩에서 완성한 마지막 도전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본드 센터에서 Lippo Centre까지, 이름부터 파란만장했다
애드미럴티 89번지, 퀸즈웨이 대로에 접한 이 자리에 처음 타워를 올리려 한 건 싱가포르를 기반으로 한 Kwee Liong Tek 가문 컨소시엄이었다. 공사가 절반쯤 진행됐을 때 지분 대부분을 사들인 건 영국 태생의 호주 사업가 Alan Bond였고, 그의 이름을 따 1987년 말 Bond Centre라는 이름으로 문을 열었다. 그런데 완공 4년 만에 Bond Corporation이 통째로 무너지면서 소유주가 바뀌었고, 이후로도 이 건물의 소유권은 몇 차례나 굴러다녔다 — 다음 주인이었던 Peregrine Investments Holdings마저 재정 위기로 손을 뗐고, 결국 인도네시아 자본의 Lippo Group(리포그룹)이 최대 지분을 확보하며 지금 이름을 얻었다. 흥미로운 건 이 건물의 별명이다. 8각형 몸통에서 캔틸레버로 삐져나온 상자들이 마치 코알라가 나무를 타고 오르는 모습 같다고 해서 현지에서는 오래전부터 ‘코알라 트리’로 불려왔고, 한때는 이 형태 때문에 풍수가 나쁘다는 소문까지 돌았다 — 정작 소유주였던 Peregrine이 의뢰한 풍수 컨설턴트는 아무 문제 없다는 결론을 냈지만 말이다.

유행 대신 매스로 승부했다
1980년대 후반에서 1990년대 초 사이에 지어진 오피스 타워 대부분은 지금 보면 유행에 갇혀 있다. 포스트모더니즘이 한창이던 그 시절, 많은 건축가들이 고전 건축의 몰딩이나 페디먼트를 유리 타워 꼭대기에 장식처럼 얹어 시대의 스타일을 표시했고, 그 장식이 지금은 오히려 촌스러움의 증거로 남았다. Lippo Centre는 정반대 전략을 택했다. 표면에 무언가를 덧붙이는 대신 매스 자체를 깎고 밀어내는 방식으로 형태를 완성했고, 그 결과 나온 것이 지금도 낯설게 느껴지는 8각형 상자들의 적층이다. 나선형 하나로 조형과 구조를 동시에 푼 헬릭스 타워처럼, 오피스타워의 개성은 결국 매스 그 자체에서 나온다는 걸 이 건물도 보여준다.

브루탈리즘의 거장, 왜 홍콩까지 왔나
이 건물을 설계한 폴 루돌프는 1960~70년대 미국 브루탈리즘을 대표하던 건축가다. 예일대 건축대학 학장을 지내며 거친 콘크리트를 그대로 드러내는 건축으로 이름을 알렸지만, 1970년대 들어 브루탈리즘에 대한 대중적 반감이 커지면서 본국에서의 일감은 급격히 줄었다. 그가 다시 활로를 찾은 곳이 홍콩과 싱가포르, 자카르타였다 — 고국에서 밀려난 건축가에게 마천루를 지어보고 싶다는 오래된 꿈을 실현할 무대가 아시아에서 열린 셈이다. Lippo Centre는 그렇게 나온 아시아 후기작 중 사실상 유일하게 완공까지 이어진 프로젝트였고, Wong & Ouyang의 디자인 컨설턴트 자격으로 참여했다. 루돌프 본인은 1988년 이 건물에 대해 멀리서도 중간 거리에서도 가까이에서도 존재감을 갖게 하면서 동시에 시시각각 변하는 빛을 반사해 하늘에 녹아들게 하려 했다고 설명한 바 있다. 미술관을 경매장으로 바꾼 소더비의 새 집 브로이어 빌딩처럼, 한 시대를 대표한 건축 언어가 새 쓰임과 만나 오히려 지금 더 도드라지는 사례는 이 타워 말고도 여럿이다.

유리 뒤에 숨은 콘크리트의 감각
루돌프의 커리어를 아는 사람이라면 Lippo Centre의 유리 파사드가 낯설게 느껴질 수 있다. 그는 평생 커튼월을 거의 쓰지 않은 건축가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건물의 매스를 자세히 뜯어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 유리로 감싼 덩어리들을 마치 고체 콘크리트처럼 다루는 방식이 그의 중기 콘크리트 건축과 그대로 이어져 있고, 그래서 이 타워는 루돌프가 처음으로 커튼월에 진지하게 손을 댄 작품이자 동시에 겉감만 바뀐 브루탈리즘으로도 읽힌다. 그가 반사유리를 고른 이유도 장식이 아니라 기능이었다 — 홍콩 특유의 시시각각 바뀌는 빛을 표면에 그대로 받아들여, 건물이 하늘 속으로 녹아드는 듯한 효과를 노린 선택이었다. 실내로 들어가면 이 빛에 대한 집착이 한 번 더 드러나는데, 이는 다음 대목에서 다룬다.

지하철과 전화국을 끌어안은 옥타곤 평면
Lippo Centre의 평면이 유별나게 복잡해 보이는 데는 이유가 있다. 루돌프는 이 부지에 2개 층, 약 4,200㎡ 규모의 전화 교환국과 지하철 매표 시설을 함께 욱여넣어야 했고, 그러면서도 퀸즈웨이 대로와 주변을 잇는 다층 보행 네트워크와 매끄럽게 연결돼야 했다. 그가 찾은 답은 정문을 대지의 좁은 북쪽 끝, 지면보다 한 층 높은 위치에 두고 그대로 고가 보행로와 이어버리는 것이었다 — 자동차가 아니라 보행자의 동선을 기준으로 건물의 얼굴을 정한 셈이다. 타워 두 동은 경사진 지면에 직접 닿지 않고 거대한 원형 기둥 위에 들어 올려져 있는데, 이 기둥들이 마치 피스톤처럼 보인다고 해서 곧잘 비교 대상이 되고, 화강암으로 마감한 발코니와 계단이 이 기둥들 사이를 가로지르며 저층부에 역동감을 더한다. 두 타워를 스카이브리지로 층마다 잇는 구상까지 있었지만 이건 실현되지 않았고, 지금 남은 건 저층 로비뿐이다.

그레이 일곱 톤으로 조율한 인테리어
외피만큼이나 공들인 곳이 로비 인테리어다. 벽면을 채운 대형 부조 벽화는 홍콩 만다린 오리엔탈 호텔의 벽화 작업으로도 알려진 작가 Gerard D’Alton Henderson이 맡았고, 거친 질감의 조각이 매끈한 대리석 바닥과 대비를 이루며 로비에 무게감을 준다. 루돌프가 실내에서 특히 신경 쓴 건 색이 아니라 톤이었다 — 그는 로비와 공용부 곳곳에 미묘하게 다른 일곱 가지 그레이 톤을 배치해, 자연광과 인공조명이 시간대별로 어떻게 스며드는지를 세밀하게 조율했다고 전해진다. 층고를 시원하게 뽑은 아트리움형 로비는 외부의 각진 매스와 달리 안에서는 오히려 유려하게 흐르는 느낌을 주는데, 이 반전이 이 건물을 실제로 걸어본 사람들이 종종 꼽는 인상이다. 지금은 에스컬레이터와 리테일 포디움이 더해지며 초기 인테리어와는 다소 달라졌지만, 대형 벽화와 그레이 톤의 뼈대는 여전히 남아 있다.

38년째, 왜 아직도 안 낡았나
Lippo Centre가 지금 봐도 낡아 보이지 않는 이유를 한 문장으로 줄이면, 유행을 따라간 적이 애초에 없기 때문이다. 매스 자체로 개성을 만든 건물은 장식이 유행에서 밀려나도 잃을 게 없고, 옥타곤 평면과 캔틸레버 상자들은 여전히 어느 시대의 것이라고 딱 잘라 말하기 어려운 형태로 남아 있다. 홍콩 건축가 Nora Leung은 이 건물이 여러 소유주를 거치며 구획별로 쪼개 팔린 탓에 통째로 매입해 재개발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고 전한 적이 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그 복잡한 소유 구조가 이 건물을 철거나 리모델링의 위협에서 지켜준 셈이 됐다. 루돌프는 이 건물을 완공한 지 10년 만인 1997년 세상을 떠났고, Lippo Centre는 그가 남긴 아시아 후기작 중 유일하게 완성된 형태로 지금도 애드미럴티의 스카이라인을 지키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