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산업의 크기를 모르면 정책은 어디에 힘을 줘야 할지 알 수 없다. 건축이 그런 처지다. 국회입법조사처가 낸 보고서 〈건축정책 논의 20년, 성과와 과제〉는 건축산업의 설계비·기간·인력에 관한 통계가 사실상 없다고 진단했다.
건축 관련 자료는 건설업 조사와 한국표준산업분류로 대략 짐작하는 수준이다. 국토교통부가 세운 3차 건축정책기본계획(2021~2025)은 건축산업 통계를 국가승인통계로 만든다는 목표를 걸었지만 이뤄지지 않았다. 국토부가 예정한 실태조사도 실시되지 않았다.
건축산업 통계가 없으면 무엇이 안 보이나
입법조사처 국토교통해양과의 박인숙 입법조사관은 통계를 만들려면 건축산업의 개념과 범위부터 정해야 한다고 짚었다. 설계에서 시공, 유지관리까지 건물의 전 생애를 아우르는 정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건축은 여전히 건설산업의 일부라는 인식이 남아 있고, 그 탓에 불공정 계약과 부적정한 업무 관행이 이어진다는 진단도 나왔다.
설계 대가가 적정한지, 설계 기간이 충분한지를 따지려 해도 비교할 숫자가 없다는 뜻이다. 현장이 체감하는 문제가 정책의 언어로 번역되기 어려운 구조다. 대형 공모에서 해외 스타 건축가가 선호되고, 컨소시엄에 참여한 국내 건축가가 설계변경과 행정 업무를 대가 없이 떠안는 일이 잦다는 지적도 보고서에 담겼다. 앞서 소개한 공모 98%가 무제한 경쟁 — 공공건축 설계공모 판 바꾼다에서 다룬 설계공모 제도 논의와도 맞닿는 대목이다.
7억 9,500만 원에서 72억 원, 다시 28억 원대로
건축문화 진흥에 쓰는 정부 재정도 일정하지 않았다. 2018년 7억 9,500만 원이던 예산은 2021년 72억 원까지 늘었다가 2024년부터 28억 원대로 내려앉았다. 보고서는 이런 지원이 일회성에 그쳐 지속하기 어렵다고 비판했다. 대안으로는 네덜란드처럼 국가 재정을 건축 디자인과 연구·개발, 전문인력 양성 사업에 유연하게 쓰는 방식을 제시했다.
보고서의 처방, 업무 범위·대가·표준계약
처방은 제도 쪽에 몰려 있다. 건축사의 업무 범위와 대가 기준을 명확히 하고, 부당한 담합을 막고, 책임 소재를 분명히 하자는 것이다. 건축허가를 신청할 때 표준계약서를 설계도서와 함께 내도록 하는 방안도 담겼다. 지난 3월 건축사법이 개정돼 공공 사업에 한정됐던 업무 범위와 대가 기준이 민간 사업까지 넓어졌다. 보고서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계약 단계의 안전장치를 요구한 셈이다.
건축법 전체를 손보는 논의가 한창인 지금, 같은 시기에 나온 이 진단은 법의 틀과 별개로 산업의 기초체력을 어떻게 잴 것인가를 묻는다. 앞서 소개한 1962년 틀 갈아엎는다 — 건축법 전부개정 밑그림 나왔다가 건물을 규율하는 법의 이야기였다면, 이번 보고서는 건물을 만드는 사람들의 일터에 관한 이야기다.
건축기본법이 2007년 제정된 뒤에도 건축을 하나의 산업으로 읽는 숫자가 없다는 점은 아이러니다. 정책이 흔들릴 때마다 근거가 아니라 의견이 오가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이 기사는 아래 원문 보도를 참고해 PHM ZINE이 새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사진과 자세한 내용은 원문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