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코니를 어긋나게 놓은 이유
정면에서 보면 발코니 난간이 곡선을 그리며 좌우로 흐르고, 그 곡선이 층마다 조금씩 위치를 달리한다. 그래서 어떤 집은 발코니가 앞으로 튀어나와 있고 바로 위층은 안으로 들어가 있다. 구리빛 알루미늄 마감이 햇빛을 받으면 이 굴곡이 명암으로 갈리면서 입면 전체가 일렁이는 것처럼 보인다. 보기에만 좋은 게 아니다. 발코니를 층마다 어긋나게 배치하면 위층 바닥이 아래층 시야를 가로막는 각도가 달라진다. 발코니가 정확히 겹쳐 쌓인 일반적인 아파트에서는 아래층일수록 하늘이 좁게 보이고, 옆집과 눈이 마주치기도 쉽다. 여기서는 그 각도를 흐트러뜨려 각 세대가 호수 쪽으로 조금씩 다른 시야를 갖게 만들었다. 국내 아파트에서도 발코니 확장 대신 이런 엇갈림을 시도해 볼 여지가 있는데, 문제는 우리 분양 구조가 모든 세대의 평면을 똑같이 찍어내는 쪽에 최적화돼 있다는 점이다.
두 개의 봉우리, 그 사이의 골짜기
Aqualuna는 한 덩어리가 아니라 두 개의 매스로 갈라져 있다. 각각 16층까지 올라가는데, 위로 갈수록 계단처럼 물러나면서 봉우리 두 개를 만든다. 그리고 그 사이가 낮게 파인 골짜기다. 이 구성의 목적은 명확하다. 뒤쪽 건물과 도시가 호수를 볼 수 있게 길을 터주는 것. 호수변에 판상형 건물 하나를 길게 세우면 앞줄만 전망을 독점하고 뒤는 벽만 보게 된다. 매스를 둘로 쪼개 가운데를 낮추면 시선과 바람이 통과한다. 가라앉힌 그 골짜기 부분은 주민 공용 공간으로 쓰인다. 전망이라는 자원을 어떻게 나눌 것인가라는 질문에 형태로 답한 셈인데, 수변이나 조망권이 걸린 곳에서 늘 반복되는 문제라 참고할 만하다.
1층을 도시에 내줬다
건물 앞으로는 단풍나무가 늘어선 산책로가 호수를 따라 이어진다. 벽돌을 깐 보행로 폭이 넉넉하고, 물가 쪽에는 난간과 벤치가 놓였다. 이 길은 단지 주민 전용이 아니라 누구나 걷는 공공 공간이다. Aqualuna의 저층부에는 리테일이 들어가고, 조정 클럽과 레스토랑, 카페가 자리 잡았다. 주거동이 1층을 담과 주차 진입로로 막아버리면 그 앞 거리는 죽는다. 반대로 상가와 시설을 넣으면 사람이 오간다. 국내 아파트 단지가 가장 인색한 부분이 정확히 여기인데, 담장을 두르고 단지 안으로만 시설을 배치하는 방식으로는 이런 거리 풍경이 나오지 않는다.
912호, 문을 열면
이제 안으로 들어가 보자. 9층의 912호는 침실 두 개에 욕실 세 개, 면적은 2,250~2,499제곱피트(약 209~232㎡) 구간으로 표기돼 있다. 현관에 들어서면 목재 결이 살아 있는 도어와 흰 벽, 오크 마루가 맞이한다. 왼쪽으로는 욕실이 열려 있고 오른쪽 벽에는 홈 오토메이션 패널이 붙었다. 눈여겨볼 건 현관이 그 자체로 하나의 방처럼 넓다는 점이다. 국내 아파트에서 현관은 신발을 벗는 최소한의 폭만 확보되는 경우가 많은데, 여기는 의자를 하나 놓을 만큼 여유가 있다. 이 여유가 없으면 문을 열자마자 거실이 그대로 보여서 집 전체가 한 번에 소비된다. 진입부에 한 걸음의 완충을 두는 것만으로 공간의 인상이 달라진다.
벽 대신 창이 이어진다
거실은 벽이 거의 없다시피 하다. 한쪽 면 전체가 바닥부터 천장까지 유리고, 그 창들이 꺾이면서 호수를 따라 돌아간다. 가구는 흰색과 아이보리 계열로 낮게 깔았고, 색을 낸 건 구리빛 암체어 정도다. 넓은 집에서 가구를 밝고 낮게 유지하는 건 정석에 가까운 선택이다. 창이 이미 화면을 다 차지하고 있으니 실내에서 시선을 잡아끄는 요소를 만들면 서로 싸운다. 다만 이렇게 큰 면적을 밝은 톤 하나로 통일하면 자칫 모델하우스처럼 비어 보이기 쉽다. 이 집은 러그와 목재 마루, 그리고 구리색 의자 두 개로 온도를 맞췄는데, 색을 넓게 쓰지 않고 포인트 가구 한두 개에 몰아주는 방식은 좁은 집에서도 그대로 쓸 수 있다.
주방과 다이닝, 그리고 벽난로
다이닝 테이블은 열 명이 앉을 만한 길이다. 그 너머로 주방이 이어지는데, 아일랜드에 바 스툴을 붙여 간단한 식사도 가능하게 했다. 흰 수납장에 유리문 캐비닛 하나를 섞었고, 창 쪽 벽에는 가로로 긴 벽난로가 들어갔다. 주방을 완전히 열어둔 배치라 조리 냄새와 소음이 거실까지 퍼진다는 단점은 있다. 대신 이 집처럼 창이 넓은 경우 주방을 벽으로 막으면 그 공간만 어두워지기 때문에 얻는 것보다 잃는 게 크다. 벽난로 위치도 눈여겨볼 만한데, 보통 거실 중앙 벽에 두는 것과 달리 여기는 창가 낮은 벽에 가로로 길게 넣었다. 불이 시야를 가리지 않으면서 호수 풍경과 같은 화면에 들어온다.
반대편은 도시를 본다
같은 집인데 반대쪽으로 돌아서면 창밖 풍경이 완전히 달라진다. 이쪽은 Toronto 도심의 고층 빌딩군이다. 호수 쪽이 수평선과 하늘이라면, 이쪽은 수직선과 불빛이다. 모서리 세대의 진짜 값어치가 여기 있다. 창이 두 방향으로 나면 채광 시간이 길어지고, 무엇보다 집 안에서 이동하는 것만으로 다른 풍경을 갖게 된다. 다만 두 방향 창은 여름 일사와 겨울 열손실이 그만큼 커진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 집이 커튼과 블라인드를 창마다 갖춘 것도 그래서일 텐데, 전망 좋은 집을 고를 때 냉난방비를 함께 계산에 넣어야 하는 이유다.
발코니에 서면
발코니로 나가면 Lake Ontario가 수평선까지 펼쳐진다. 해가 물 위에서 부서지고, 아래로는 산책로의 노란 단풍이 줄지어 있다. 오른쪽으로는 흰 타일로 마감한 이웃 건물이 나란히 선 게 보인다. 앞서 말한 어긋난 발코니의 효과가 실제로 확인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위층 발코니가 바로 머리 위를 덮지 않아서 하늘이 열려 있고, 옆으로도 시야가 트인다. 발코니는 면적으로만 따지면 실내보다 훨씬 싸게 만드는 공간인데, 실제 사용 여부는 이런 개방감에서 갈린다. 답답하게 눌린 발코니는 결국 창고가 된다.
침실은 조용한 쪽으로
안방은 거실의 화려함과 대비된다. 벽은 흰색, 침구는 카키와 회색, 장식이라고는 액자 하나와 스탠드 조명뿐이다. 침대 발치 쪽으로 작은 원형 테이블과 의자를 두어 앉을 자리를 만들었고, 그 너머로 대리석 마감의 앙수이트가 이어진다. 거실에 창을 몰아준 집에서 침실까지 전망을 욕심내면 정작 잠자리가 안정되지 않는다. 이 집은 침실에서는 오히려 창을 줄이고 벽을 남겨 뒀는데, 잘 판단한 쪽이라고 본다. 침실 인테리어가 밋밋해 보인다면 그건 결점이 아니라 용도에 맞춘 결과다. 다만 침대 헤드보드가 벽에서 떨어져 자리 잡은 배치는 뒤쪽 공간이 어중간하게 남는데, 헤드 뒤로 낮은 수납장을 넣어 벽처럼 쓰면 그 여백이 정리된다.
두 번째 침실에도 발코니가
두 번째 침실에는 자체 발코니가 딸렸다. 유리문을 열면 바로 바깥이고, 목재 난간 너머로 이웃 동이 보인다. 침대 옆에는 원목 협탁을 두 개 놓고 벽에는 추상화를 걸었다. 침대 발치의 흰 벤치가 이 방에서 유일하게 형태를 낸 가구다. 침실마다 발코니를 붙이는 건 면적을 꽤 잡아먹는 선택이다. 그래도 이 집이 그렇게 한 이유는 앞서 본 파사드 때문이다. 층마다 어긋나는 발코니 띠가 입면 전체를 감싸려면 세대 내 여러 방에서 그 띠를 받아야 한다. 외관의 논리가 평면까지 밀고 들어온 사례인데, 건물의 인상을 만드는 요소와 실제 사는 방식이 이렇게 연결되는 경우는 생각보다 드물다.
6층 골짜기에 놓인 수영장
두 봉우리 사이 낮아진 자리, 그러니까 6층이 주민 공용층이다. 목재 데크를 깔고 야외 수영장과 선베드를 놓았다. 뒤로는 구리빛 발코니가 층층이 쌓인 매스가 병풍처럼 서 있어서, 수영장에 있으면 건물의 파사드를 가장 가까이서 보게 된다. 공용 시설을 저층 실내나 지하에 몰아넣는 대신 건물 형태가 만든 빈자리에 올린 배치다. 매스를 둘로 나누면서 생긴 골짜기가 그냥 비는 공간이 아니라 쓸모를 갖게 된 셈이다. 형태를 먼저 정하고 남는 자리에 기능을 끼워 넣은 건지, 기능을 위해 형태를 그렇게 만든 건지는 알 수 없지만 결과적으로 둘이 맞아떨어졌다. 참고로 912호는 이 건물에서 350만 캐나다달러의 호가로 시장에 나와 있었다.
건축사무소: 3XN (Architect of Record: Kirkor Architects)
위치: 155 Merchants’ Wharf, Bayside, Toronto, Canada
준공연도: 2025
규모: 16층 2개 동, 240세대, 지상층 리테일 약 18,000ft²
조경: Janet Rosenburg Studio
개발: Hines, Tridel
소개한 세대: 912호 — 침실 2, 욕실 3, 약 2,250~2,499ft²(약 209~232㎡), 호가 350만 캐나다달러
분류: 공동주택(콘도미니엄)
출처: bhtours.ca
Architects3XN (Architect of Record: Kirkor Architects)
Photosbhtours.ca
CategoryApartment
CountryCanada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