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공건축 설계공모에 한 번 도전하려면 몇 주를 쏟아부어야 한다. 도면과 패널, 모형까지 만들어 내도 당선은 한 팀뿐이다. 그 구조를 정부가 손보겠다고 나섰다. 대통령 소속 국가건축정책위원회가 9월 29일 서울 포스트타워에서 연 ‘설계공모 및 민간전문가 제도개선’ 토론회에서 공공건축 설계공모의 판을 바꿀 구체적인 방안이 처음 공개됐다.
숫자부터 극단적이다. 건축공간연구원(AURI) 자료에 따르면 2023~2025년 공공건축 설계공모 3,352건 가운데 98.3%가 참가 자격에 제한이 없는 ‘무제한 공개공모’였다. 사업 규모나 성격과 상관없이 거의 모든 공모가 불특정 다수의 설계안 경쟁으로 치러졌다는 뜻이다.
공공건축 설계공모, 무엇이 문제였나
발제를 맡은 전영훈 국가건축정책위원회 위원(중앙대 건축학부 교수)은 현행 설계공모의 문제를 여섯 가지로 짚었다. 과열 경쟁, 심사위원 검증 부실, 심사와 당선의 편중, 제안공모의 오용, 건축기획 부실, 행정업무 부담이다. 제안공모는 원래 아이디어와 수행 방식을 보는 방식인데, 실제로는 구체적인 설계안을 요구하는 사례가 많다는 지적도 함께 나왔다.
이 문제의식은 건축계에서 이미 터져 나오던 목소리다. 불과 열흘 전 대한건축사협회 토론회에서도 치솟는 공모 경쟁률을 ‘국가적 낭비’로 규정하는 발언이 나왔다(9월 28일 데일리 건축 이슈 큐레이션 참고). 이번에는 대통령 소속 위원회가 같은 진단을 내놓고 처방까지 제시했다는 점이 다르다.

설계비 2억 미만은 간편공모, 건축사 사전등록제 도입
가장 눈에 띄는 처방은 소규모 사업의 부담을 덜어주는 것이다. 설계비 2억 원 미만 사업에는 ‘간편공모’를 의무로 적용하자는 안이다. 지금의 간이공모를 이름을 바꿔 의무화하고, 제출물을 줄이고 기간을 단축하는 방식이다. 내진 보강이나 창호 교체처럼 단순히 성능을 개선하는 사업은 설계공모 우선 적용 대상에서 빼자는 제안도 나왔다. 지금은 사업비 기준 하나로 공모를 시행하다 보니 이런 사업에도 공모가 붙는 경우가 많았다.
‘건축사 사전등록제’도 제안됐다. 우수한 건축사로 풀을 꾸린 뒤 일정 물량의 소규모 공공건축에 한해 이들끼리 경쟁해 설계안을 뽑는 방식이다. 많은 선진국이 이미 쓰는 제도로, 법적 장치에 대한 합의를 거쳐 시범 운영부터 하자는 것이 전 위원의 설명이다. 신진공모·지명공모·지역제한공모 같은 참여제한공모도 대상과 운영 방식을 명확히 규정한다. 신진공모는 연령과 사무소 개설 기간을 기준으로 삼는 방향이다.
심사 쪽도 손본다. 심사위원과 참가자의 부정행위 처벌 규정을 법으로 강화하고, 데이터로 심사위원의 전문성을 검증하는 수단을 만든다. 부정신고센터와 신고자 포상제 도입도 거론됐다. 이 밖에 기획부터 유지관리까지 사업 전 단계를 조정하는 건축사업총괄(PM) 제도의 법제화, 광역지자체의 공공건축심의위원회 의무 설치, 공공건축지원센터의 광역 단위 확대가 함께 제시됐다.
‘사업담당 공공건축가’가 새로 생긴다
민간전문가 제도 개선안은 강인호 국가건축정책위원회 자문단 공공건축 분야 단장(한남대 명예교수)이 발표했다. 핵심은 기존 총괄건축가·공공건축가에 더해 ‘사업담당 공공건축가’를 새로 두는 것이다. 개별 공공건축 사업의 기획부터 추진까지 따라가며 자문하고 조정해, 계획이 도중에 흔들리지 않게 붙잡는 역할이다.
강 단장은 제도가 꾸준히 확대됐지만 실제로 운영하는 지자체, 특히 기초지자체는 많지 않다고 진단했다. 운영하더라도 도시 전체의 공간 전략을 짜기보다 개별 프로젝트 자문에 머무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그는 민간전문가의 역할이 설계를 직접 고치는 것이 아니라 조언하고 시스템을 만드는 데 있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국토교통부 고시인 ‘공공부문 건축디자인 업무기준’을 전면 개정하는 초안을 만들어 둔 상태이며, 정책 협의는 아직 거치지 않았다.
토론은 김진애 국가건축정책위원장이 좌장을 맡았고 이진철 국토부 건축정책관, 유준호 대한건축사협회 부회장, 윤정현 한국건축가협회 부회장, 이승환 새건축사협의회 정책위원장 등이 패널로 참여했다. 김 위원장은 “모든 공공건축 사업에 같은 방식의 설계공모를 적용하기보다 사업의 특성과 목적에 맞는 공모 방식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아직은 제안 단계다. 정부는 이번 토론회에서 나온 의견을 바탕으로 세부 개선안을 구체화할 계획이다. 설계비 2억 원이라는 선이 어디에 그어지느냐, 사전등록 풀에 누가 들어가느냐에 따라 소규모 사무소와 신진 건축가의 기회가 크게 달라질 수 있는 만큼, 후속 법령 작업을 지켜볼 필요가 있다.
이 기사는 아래 원문 보도를 참고해 PHM ZINE이 새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사진과 자세한 내용은 원문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출처 : 팍스경제TV — “공공건축 설계, 과도한 공개공모가 과열 경쟁 키웠다”…간편공모 병행·사전등록제 도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