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 위트레흐트 근교 마을 틴호번(Tienhoven)에 있는 이 갈대 지붕 전원주택은 땅보다 물이 많은 풍경 한가운데 앉아 있다. 정원 세 면이 물이고, 마당 끝에 서면 가늘고 긴 물길과 둑이 빗살처럼 지평선까지 뻗어 나간다.
Serge Schoemaker Architects는 이 집을 3년에 걸쳐 천천히, 그러나 꽤 과감하게 고쳤다. 밖에서 보면 여전히 동네의 다른 시골집과 닮았다. 그런데 갈대 지붕 아래로 들어가면 바닥을 걷어낸 현관과 화이트 나선계단, 칸막이 없이 이어지는 거실이 나온다. 옛것을 지우지도, 흉내 내지도 않았다는 점이 이 리모델링의 핵심이다. 새로 더한 부분은 전부 안트라사이트 컬러로 또렷하게 선을 그었고, 원래 있던 부분은 원래 재료로 다시 손봤다. 한 집 안에 두 시대를 겹쳐 놓은 셈이다.

토탄을 캐낸 자리에 남은 물의 풍경
항공 사진을 보면 이 동네가 왜 이런 모양인지 감이 온다. 자로 잰 듯 나란히 뻗은 물길은 자연이 만든 지형이 아니다. 예전 이 일대에서는 연료로 쓸 토탄을 퍼냈다. 파낸 자리에는 물이 차올라 수로가 됐고, 캐낸 토탄을 말리던 좁은 둑만 띠처럼 남았다.
지금은 수련이 수면을 덮고 둑을 따라 갈대와 나무가 자라는 낭만적인 습지지만, 출발은 산업 현장이었던 셈이다. 집이 앉은 필지도 이 풍경의 일부다. 정원은 세 면이 물에 닿아 있고, 집에서는 주변 폴더(간척지)가 아득하게 내다보인다. 이런 땅에서 집을 고친다는 건 결국 풍경을 어떻게 집 안으로 들일지의 문제가 된다.

네덜란드 전원주택의 기본값, 갈대 지붕
이 지역 집들은 대부분 갈대로 지붕을 인다. 이 집도 본채와 부속동이 모두 갈대 지붕이다. 갈대 지붕은 네덜란드 시골 풍경을 상징하는 요소지만, 주기적으로 새로 이어야 하고 숙련된 장인의 손이 필요한 꽤 손 많이 가는 지붕이기도 하다.
설계팀은 리노베이션 과정에서 지붕을 전부 새로 이었다. 관리가 편한 금속이나 기와로 바꾸는 선택지도 있었겠지만, 그 순간 이 집은 동네에서 혼자 튀는 집이 된다. 작업 범위는 본채와 부속 건물 전체, 안팎을 모두 아우른다. 마을의 문법은 지키되 그 안에서 할 수 있는 걸 최대한 하겠다는 태도가 첫 결정에서 이미 드러난다.

옐로우 벽돌을 덮은 웜 그레이 석회 플라스터
정면에서 보면 변화가 가장 크게 읽힌다. 원래 이 집의 벽은 옐로우 벽돌이었다. 설계팀은 그 위에 따뜻한 기운이 도는 그레이 석회 플라스터를 발랐고, 낡은 도머창도 떼어냈다. 지붕에 군데군데 튀어나와 있던 도머가 사라지자 갈대 지붕이 비로소 한 덩어리의 조형으로 읽힌다.
벽돌을 덮을지 말지는 오래된 주택 리모델링에서 늘 고민거리다. 석회 플라스터는 시멘트 몰탈보다 습기를 잘 통과시켜 오래된 조적 벽과 궁합이 좋고, 표면에 미세한 결과 얼룩이 남아 새로 바른 벽인데도 묵은 표정이 난다. 거친 갈대 옆에 매끈한 화이트 페인트를 칠했다면 집이 갑자기 리조트처럼 보였을 것이다. 웜 그레이는 갈대의 결을 받쳐주는 배경으로 한발 물러서 있다.

갈대 지붕 사이에 끼운 안트라사이트 연결동
집이 넓어진 방식은 세 갈래다. 첫째가 본채와 옆 부속동을 잇는 2층짜리 연결동이다. 부속동은 이제 게스트하우스로 쓰인다. 연결동은 갈대 지붕 두 개 사이에 끼어 있는데, 지붕은 다크 그레이 금속판을 줄눈 세워 덮었고 벽은 블랙 목재를 세로로 붙였다. 경사는 갈대 지붕을 그대로 따르면서 재료만 완전히 바꾼 것이다.
설계팀은 새로 더한 부분을 정밀한 디테일과 안트라사이트 컬러로 기존 시골 건축과 구별했다고 설명한다. 옛 농가에 블랙 계열 증축동을 붙여 신구를 가르는 방식은 네덜란드 시골 주택 리모델링에서 자주 보이는 해법이기도 하다. 앞서 소개한 〈농가 리모델링에 블랙 헛간을 붙였다, Shadow Barn〉도 같은 계열이다.
게스트하우스를 본채에 붙인 건 생활 면에서도 의미가 있다. 손님이나 독립한 자녀, 나이 든 부모가 머무를 때 서로의 생활을 침범하지 않으면서도 한 지붕 아래 있다는 감각을 준다. 따로 또 같이 사는 요즘 가족에게 꽤 현실적인 구성이다.

풍경을 액자처럼 자르는 큰 개구부
둘째는 1층 거실을 넓힌 단층 증축이고, 셋째는 보트하우스를 새로 짓고 따로 서 있던 건초 헛간을 작업실로 바꾼 일이다. 이 모든 개입에 공통으로 들어간 장치가 큰 개구부다. 사진 속 증축 볼륨은 바닥부터 통유리를 세우고 그 위에 유리 난간을 둘렀다.
갈대 지붕 집은 처마가 깊게 내려와 창이 작고 실내가 어둡기 쉽다. 큰 유리는 그 한계를 정면으로 뒤집는다. 설계팀은 개구부마다 물 많은 토탄 습지를 다른 각도로 잘라 보여주도록 배치해 안과 밖의 경계를 흐렸다. 같은 풍경도 어느 창에서 보느냐에 따라 다른 그림이 되니, 집 안을 돌아다니는 일 자체가 산책처럼 된다.

물가로 내민 데크, 상자처럼 단정한 도머
지금 지붕에 남은 도머는 안트라사이트로 마감한 단정한 상자형이다. 옛 도머가 지붕 위 장식에 가까웠다면, 새 도머는 풍경을 보는 창이라는 기능만 남겼다. 갈대 지붕의 부드러운 곡면에 날 선 직육면체가 박혀 있으니 무엇이 옛것이고 무엇이 새것인지 누구라도 한눈에 구분한다.
그 아래로는 물가를 따라 데크와 스틸 난간이 이어진다. 세 면이 물인 땅에서 마당의 경계는 담장이 아니라 수면이다. 담을 세우지 않고 데크로 물가까지 걸어 나가게 한 덕에 정원이 실제 면적보다 훨씬 넓게 느껴진다.

2층 바닥을 걷어낸 현관, 화이트 나선계단
실내에서 가장 과감한 결정은 현관에 있다. 원래 이 집은 방이 칸칸이 나뉜 닫힌 구조였다. 설계팀은 현관 위 2층 바닥을 걷어내 두 개 층이 트인 보이드를 만들고, 그 안에 화이트 나선계단을 세웠다. 계단은 위층 침실로 이어진다. 디딤판은 우드, 바깥 띠는 매끈한 화이트로 감아 올려 계단 전체가 하나의 조각처럼 서 있다.
낮은 처마 밑을 지나 문을 열었는데 천장이 위로 뻥 뚫려 있고 화이트 곡선이 솟아 있다. 바깥에서 기대한 아늑하고 낮은 시골집의 인상이 첫걸음에서 뒤집힌다. 낮고 좁은 곳을 지나 높은 곳에 들어서는 압축과 해방의 순서는 사람의 호흡을 길게 만든다. 하루 몇 번씩 지나는 현관이 이렇게 설계되면 집에 들어오는 일 자체가 작은 환기가 된다. 나선계단 하나가 공간의 얼굴이 되는 장면은 〈레드 나선계단이 파사드가 된 방콕 카페, Harudot Thonburi〉에서도 볼 수 있다.

닫힌 방 대신 우드 포털로 나눈 열린 평면
닫힌 평면은 열린 평면으로 바뀌었다. 그렇다고 벽을 다 허물어 휑하게 만들지는 않았다. 다크 브라운 우드로 감싼 두꺼운 벽체와 포털이 공간 사이사이에 서 있다. 문 없이 액자처럼 뚫린 포털을 지나면 주방이 나오고, 그 옆으로 거실이 이어진다. 주방은 스테인리스 아일랜드에 틸 컬러 상부장을 짝지었다.
오픈 플랜의 약점은 시선을 막아줄 데가 없다는 것이다. 어디서든 주방 살림이 다 보이고 소리도 그대로 퍼진다. 이 집처럼 수납을 품은 두꺼운 벽을 군데군데 세우면 흐름은 열어두면서도 영역이 생긴다. 벽을 몽땅 철거했다가 오히려 집이 산만해졌다고 후회하는 리모델링이 적지 않은데, 칸막이 대신 수납벽으로 공간을 나누는 이 방식은 아파트에도 그대로 가져다 쓸 수 있다.

다크 우드 벽에는 빛을 한 겹 더 깔아야 한다
우드 벽 안에는 오븐과 수납이 매립돼 있다. 손잡이 없는 판이 바닥부터 천장까지 이어져 벽이라기보다 거대한 가구처럼 보인다. 천장에는 작은 화이트 원통형 스폿 조명이 듬성듬성 붙어 있고, 주방 아일랜드 위에는 납작한 원반형 펜던트가 낮게 내려와 있다. 조명 기구는 최소한으로 줄이고 낮에는 큰 창으로 들어오는 자연광이 실내를 거의 다 책임지는 구성이다.
문제는 해가 진 뒤다. 다크 브라운 우드처럼 짙은 마감은 빛을 먹어서 같은 밝기의 조명을 켜도 공간이 한 톤 어둡게 읽힌다. 조명은 전반(앰비언트), 국부(태스크), 연출(액센트) 세 겹이 겹쳐야 깊이가 생기는데, 천장 스폿과 펜던트만으로는 전반과 국부 두 겹에 그친다. 우드 벽의 결을 살려줄 연출 조명 한 겹이 비어 있는 셈이다.
비슷한 마감을 쓰는 집이라면 우드 벽 상단이나 포털 안쪽에 LED 라인 조명을 숨겨 빛을 벽면에 흘려보내는 방법을 권한다. 간접광이 나뭇결을 타고 내려오면 눈부심 없이 벽이 밝아지고 공간이 넓어 보인다. 색온도는 2700~3000K 웜톤이 우드와 잘 맞고, 디머를 달아 저녁 시간대에 밝기를 낮출 수 있게 하면 좋다.

갈대 지붕 다락, 삼각 창 하나로 완성한 방
지붕 밑 다락은 경사 천장을 밝은 목재로 덮고 박공 끝에 삼각형 창을 냈다. 창 모양이 지붕선 그대로라 갈대 지붕 집의 단면이 실내에서 고스란히 읽힌다. 창턱은 낮고 깊어서 그 너머로 물길과 둑이 그림처럼 담긴다.
방에는 블루 패브릭 라운지체어 하나뿐인데도 비어 보이지 않는다. 창이 방의 초점을 쥐고 있어서다. 다락 리모델링에서 흔한 실수는 좁은 경사 천장 아래를 짐으로 채우는 것이다. 천장이 낮은 쪽은 수납장으로 막고, 가장 높은 쪽에는 창과 의자 하나만 남겨 두는 편이 훨씬 넓고 오래 머물고 싶은 방이 된다.

굴뚝 같은 기둥을 세운 갈대 지붕 보트하우스
새로 지은 보트하우스는 이 프로젝트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대목이다. 블랙 목재로 마감한 몸체에 사방으로 처마가 내려오는 갈대 지붕을 얹었고, 지붕 위로 굴뚝처럼 생긴 가늘고 긴 기둥들이 솟아 있다. 모형을 보면 이 기둥이 지붕 네 귀퉁이에 하나씩 서 있다.
마을 갈대 지붕 집들의 굴뚝을 과장해 옮겨 온 듯한 이 수직선 덕분에 작은 건물이 물가에서 멀리서도 존재감을 갖는다. 본채와 같은 갈대 지붕, 연결동과 같은 블랙 목재를 썼으니 새 건물이면서도 이 땅의 식구처럼 보인다. 옛것과 새것의 문법이 이 작은 건물 한 채에 압축돼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보트하우스 안, 두 면을 통창으로 연 물가 거실
안으로 들어가면 지붕틀이 그대로 드러난다. 목조 지붕틀을 화이트로 칠해 가볍게 보이게 했고, 두 면의 통창이 모서리에서 만나 수면과 수풀을 파노라마로 끌어들인다. 창 아래에는 다크 우드 벤치가 길게 놓여 있다.
배만 넣어두는 창고였다면 이런 창도, 벤치도 필요 없었을 것이다. 결국 이 건물은 물에서 가장 가까운 거실이다. 아침 커피를 들고 내려와 수면을 바라보는 작은 정자랄까. 이 집에는 서로 다른 두 시대가 겹쳐 있다. 설계팀의 말을 빌리면 둘은 분명히 대비되면서도 한 집으로 자연스럽게 어우러진다. 갈대 지붕은 마을이 지나온 세월을, 안트라사이트 디테일과 큰 유리는 지금 이 집에 사는 사람의 감각을 맡는다. 어느 쪽도 상대를 덮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 집은 오래된 집을 고치는 방법에 대한 꽤 설득력 있는 답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