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넛 모양 발리 빌라가 중정을 품었다, Omah Prana

발리 빌라 하면 야자수 아래 네모난 풀장이 딸린 풍경을 먼저 떠올린다. Omah Prana는 그 공식에서 한참 벗어나 있다. 우붓 북쪽 Payangan의 숲 언덕에 놓인 이 집은 위에서 내려다보면 커다란 도넛이다.

독일 출신 건축가 Alexis Dornier가 설계한 475m² 규모의 원형 주택으로, 2022년에 완공됐다. 방을 전부 바깥 둘레에 늘어놓고 한가운데를 통째로 비웠다는 것이 이 집의 유일한, 그리고 가장 강력한 아이디어다.

숲 언덕 위에 도넛처럼 놓인 원형 발리 빌라 Omah Prana 전경
© KIE

발리 빌라의 공식을 뒤집은 도넛

가장자리가 완만하게 들려 올라간 깔때기형 지붕이 집 전체를 덮고, 지붕 한가운데에는 하늘을 향해 둥근 구멍이 뚫려 있다. 그 구멍 아래로 그린 중정이 내려다보인다. 언덕 경사면에 반지를 올려놓은 듯한 모양새라 숲 속에서도 이질감이 덜하다.

지붕은 나무 널(슁글)로 마감해 색과 결이 주변 숲의 톤에 자연스럽게 섞인다. 큼직한 형태인데도 튀기보다 스며드는 쪽에 가깝다. 이 집을 두고 설계자는 링 모양 평면 하나가 모든 것을 끌고 가는 프로젝트라고 설명한다.

큰 나무 뒤로 낮게 깔린 Omah Prana의 지붕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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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 사이로 낮게 깔린 지붕선

멀리서 보면 건물이라기보다 언덕의 일부처럼 보인다. 큰 나무 뒤로 지붕선이 땅과 나란히 누워 있고, 높이를 눌러 놓은 덕에 원형 평면의 덩치가 부담스럽게 느껴지지 않는다. 475m²를 원 하나에 담았는데도 존재감은 오히려 조용하다.

지붕이 곧 건물의 얼굴이 되는 집은 드물지 않지만, 이 정도로 지붕 하나에 모든 것을 맡긴 사례는 흔치 않다. 같은 결로 하늘에서 보면 사라지는 집, Earth는 지붕과 대지의 경계를 아예 지워 버렸다. Omah Prana는 반대로 지붕의 윤곽을 또렷하게 남겨 두고 그 아래를 비운다.

위에서 내려다본 Omah Prana의 동심원 지붕과 초승달 모양 수영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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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심원 하나로 짜인 평면

이 집은 단 하나의 중심점을 기준으로 지어졌다. 평면은 물론 수영장, 동선, 여러 붙박이 요소까지 그 점을 축으로 한 동심원을 따른다. 돌멩이 하나가 물에 떨어질 때 번지는 잔물결을 닮았고, 단순하지만 읽기 쉬운 질서가 집 전체에 깔려 있다.

설계자는 곡선의 일부와 공간의 분위기를 영화 Moonraker의 초기 콘셉트 스케치(미술감독 Ken Adam)에서 가져왔다고 밝힌다. 대담한 기하학적 한 수가 연극적이지 않으면서도 잘 연출된 공간감을 만든다는 점이 자신의 접근과 통한다는 이야기다. 위에서 보면 바깥 호를 따라 붙은 초승달 수영장까지 한 세트로 읽힌다.

지붕 한가운데 원형 구멍으로 하늘과 중정이 보이는 Omah Pra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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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붕 한가운데 뚫어 놓은 하늘

지붕 정중앙의 원형 개구부는 이 집에서 채광창이자 환기구이고, 동시에 집의 중심을 알리는 표지다. 빛과 바람이 이 구멍을 통해 링 안쪽으로 들어온다. 열대 기후에서 창문을 활짝 열지 않고도 실내 공기를 돌리는 방법이기도 하다.

나무 널이 촘촘히 덮인 지붕은 가까이서 보면 물고기 비늘처럼 결이 살아 있다. 그레이 톤이 도는 널의 질감이 바깥 숲의 그린과 맞닿으며 집 전체의 표정을 만든다. 구멍이 뚫린 지붕이 오히려 집을 더 무겁고 안정감 있게 눌러 주는 셈이다.

지붕 아래를 곡선으로 돌아가는 Omah Prana의 그늘진 외부 복도와 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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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붕 아래를 한 바퀴 도는 그늘 복도

넓게 뻗은 지붕 처마 덕에 건물 바깥 둘레에는 그늘진 산책로가 생겼다. 유리문을 열고 나서면 곧장 이 복도이고, 복도는 집의 곡률을 그대로 따라 휘어진다. 한쪽으로는 풀장과 숲이, 다른 쪽으로는 집의 벽이 이어진다.

비가 많은 열대에서 처마 아래 복도는 실내와 바깥 사이의 완충지대다. 볕은 가리고 바람은 통하면서도 풍경은 그대로 볼 수 있다. 원형 평면이라 복도가 끝나는 지점이 없다는 점도 이 집에서만 가능한 경험이다.

건물 바깥 호를 따라 미끄러지듯 이어진 초승달 인피니티 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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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승달 모양으로 흘러내린 인피니티 풀

바깥 호를 따라 초승달 모양 인피니티 풀이 집 가장자리와 아래로 내려가는 지형 사이에 끼어 있다. 수면이 지붕 처마 바로 옆까지 와서, 숲의 경사면이 물 너머로 이어지는 것처럼 보인다. 풀이 원형 기하학을 깨지 않고 오히려 그 일부가 된다.

이 집에서 물은 장식이 아니라 평면의 일부다. 풀의 곡선이 건물의 곡선을 그대로 받아 이어 붙였기 때문에 수영장과 집이 하나의 덩어리로 읽힌다. 물 위로 걸린 그늘진 처마 아래에서 바라보는 숲의 스카이라인이 이 집이 만든 가장 좋은 뷰다.

링 한가운데 잔디가 깔린 원형 중정과 하늘로 뚫린 지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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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 한가운데에 놓인 그린 원반

집의 한복판에는 잔디가 덮인 둥근 중정이 있다. 설계자는 이 그린 원반을 집의 명상적 중심이라고 부른다. 벽돌로 두른 낮은 벽이 원을 감싸고, 그 위로 지붕이 뚫려 하늘이 드러난다.

발리 전통 주거의 담 안 마당 구조에서 아이디어를 빌려 왔지만 형태는 완전히 다르게 풀었다. 모든 방이 이 중정을 안쪽 정원으로 삼으면서 동시에 바깥 숲을 향해서도 열려 있는 이중 구조다. 집 안 어디에서든 시선이 한가운데의 그린으로 모이고, 다시 바깥으로 빠져나간다.

중정과 숲 양쪽으로 열린 Omah Prana의 거실과 식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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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실은 중정과 숲 양쪽으로 열린다

거실은 이 집에서 유일하게 안쪽 중정과 바깥 숲 모두를 향해 열린 공간이다. 슬라이딩 도어를 밀어 젖히면 실내와 정원 사이의 경계가 사라진다. 원형 평면이라 식당과 주방까지 한눈에 이어져 보인다.

천장은 짙은 브라운 톤의 목재 판재로 마감해 공간을 차분하게 눌러 준다. 곡선을 따라 휘는 천장 라인이 방향을 안내하는 화살표 역할을 한다. 바닥은 매끈한 그레이 톤이라 목재와 벽돌의 결이 더 또렷하게 도드라진다.

헤링본 패턴으로 쌓은 벽돌과 목재 천장이 이어지는 복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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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듯이 쌓아 올린 헤링본 벽돌

벽은 벽돌을 헤링본 패턴으로 엮어 쌓았다. 발리의 직조 전통에서 가져온 아이디어로, 엮은 듯한 벽면 질감과 미묘한 기하학적 모티프가 현대적으로 재해석돼 있다. 화려하게 튀지는 않지만 가까이 다가갈수록 디테일이 촘촘하게 읽힌다.

벽 중간중간에는 구멍이 뚫린 부분이 있어 중정 쪽 빛을 침실 쪽으로 걸러 들인다. 직조의 결과 빛의 결이 한 벽에서 만나는 것이다. 설계자는 이 집이 디테일이 풍부하면서도 차분하고 안정된 상태를 유지하도록 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지붕 개구부 아래로 보이는 잔디 중정과 벽돌 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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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붕 틈으로 하늘이 들어오는 순간

복도를 걷다 보면 지붕 처마 끝과 바닥의 그린이 만든 타원형 틈으로 하늘이 조각조각 보인다. 걷는 위치에 따라 이 틈의 모양이 조금씩 달라진다. 같은 자리에 서 있어도 시간대와 날씨에 따라 전혀 다른 풍경이 된다.

중정이 집 안쪽의 정원 역할을 하면서 자연 환기와 채광까지 담당한다. 안쪽 벽을 감싼 둥근 집이지만 어디에도 막다른 벽이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논밭을 내다보는 Omah Prana의 침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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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실은 닫고 에어컨을 건다

거실과 달리 침실 같은 사적인 공간은 닫혀 있고 에어컨으로 시원하게 유지된다. 열대의 습기와 더위를 피해 조용하게 쉴 수 있는 방이다. 큰 유리창 너머로는 논밭의 그린이 그대로 들어온다.

천장은 리빙룸과 같은 목재 톤으로 이어지고 조명은 간접광으로 부드럽게 깔린다. 방 안에서도 링 모양 평면의 곡률이 벽에 그대로 나타난다. 열려 있는 공용 공간과 닫힌 침실을 한 집에서 나누어 쓰는 방식이 명확하다.

루버 문과 바나나 잎 화단이 이어지는 Omah Prana의 복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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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도 바깥으로 바짝 붙은 열대 식물

복도 바깥쪽으로는 넓은 잎을 가진 열대 식물이 바짝 붙어 자란다. 목재 루버 문과 곡선 복도, 그 옆의 넓은 잎이 한 장면 안에 만나는 모습이다. 건물이 숲의 일부가 되는 방식은 형태뿐 아니라 이런 식재 계획에서도 확인된다.

Omah Prana는 하나의 개념적 제스처를 재료와 장인 솜씨로 밀고 나가면서도 대지에 조용히 열려 있는 집이다. 도넛 하나로 시작한 이야기가 벽돌 결과 지붕 널 하나까지 이어져 끝까지 흩어지지 않는다.

ArchitectsAlexis Dornier
PhotosKIE
Category빌라(주택)
Country인도네시아
Materials헤링본 벽돌, 목재, 나무 널 지붕
LocationPayangan, Bali
Area연면적 475m²
Year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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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경태
공경태
사진 찍고 글 쓰고 칵테일 만들며 집 꾸미는 엔지니어. 생활 공간이 삶의 질의 바꾼다고 몸소 채험하는 집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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