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런던 호텔 인테리어 이야기를 하려면 쇼디치(Shoreditch)부터 꺼내야 한다. 가구 공방과 창고가 빽빽하던 이 동네는 1990년대 싼 작업실을 찾아 아티스트들이 몰려들면서 판이 바뀌었고, 2010년대에는 Old Street 로터리 주변이 ‘실리콘 라운드어바웃’으로 불릴 만큼 스타트업의 동네가 됐다. 그 쇼디치 Willow Street에 2017년 문을 연 Nobu Hotel Shoreditch 건물이 이제 Aethos London Shoreditch라는 이름으로 운영된다.
유럽 곳곳에서 부티크 호텔을 운영하는 Aethos의 첫 영국 지점이다. 2025년 10월 164실 규모로 문을 열었고, 인테리어는 바르셀로나의 Astet Studio가 맡았다. 건물 껍데기는 그대로 두고 안쪽만 다시 짰는데, 방향이 꽤 흥미롭다. 쇼디치의 공장 문법 위에 일본식 목공과 무광 재료를 겹친 것. 설계팀은 이걸 ‘East meets East’라고 부른다. 이스트 런던과 극동이 만났다는 말장난이다.

공장 동네 한복판, 톱니처럼 뻗은 런던 호텔
Willow Street 모퉁이에 서면 이 건물이 왜 동네에서 튀는지 바로 보인다. 도로를 따라 길쭉하게 놓인 직육면체 매스가 북쪽으로 갈수록 좁아지고, 남쪽 끝에서는 바닥판과 스틸 빔이 제각각 튀어나와 가장자리가 해진 천처럼 흩어진다. 주변은 레드 벽돌 창고와 낮은 오피스가 대부분이라, 콘크리트와 유리로 된 이 덩어리는 처음부터 동네의 신참이었다.
건물 자체는 2017년 준공 이후 달라진 게 없다. 이번 리브랜딩은 간판과 실내에서만 일어났다. 호텔 브랜드가 바뀌어도 건물은 남는다는 것, 요즘 호텔 업계에서 점점 흔해지는 풍경이기도 하다. 새로 짓는 대신 이미 지어진 좋은 건물을 넘겨받아 브랜드를 갈아입히는 쪽이 빠르고 싸기 때문이다.

Ron Arad가 그리고 Ben Adams Architects가 완성한 건물
이 건물에는 설계자가 둘이다. 첫 스케치는 2011년 Ron Arad(론 아라드)의 스튜디오에서 나왔고, 이듬해 인허가를 받았다. Ron Arad는 스프링처럼 휘는 강철 책장 ‘Bookworm’으로 유명한 디자이너 출신 건축가다. 그가 2013년 프로젝트에서 빠지면서 Ben Adams Architects가 설계를 발전시켜 완공까지 이어받았다. 공사는 2014년 5월 시작해 2017년 9월 끝났고, 연면적은 약 9,400m²다.
가구처럼 조형적인 원안을 실제로 지을 수 있는 건물로 번역하는 게 두 번째 사무소의 몫이었던 셈이다. 그 과정에서 콘크리트가 주인공이 됐다. 노출된 포스트텐션 슬래브부터 얇은 유리섬유보강 패널까지 다섯 종류의 콘크리트가 쓰였고, 유리와 콘크리트 패널이 번갈아 서며 튀어나온 바닥판이 수평선을 강하게 긋는다. 레스토랑은 지하 7m에 묻었고, 그 앞 계단식 정원이 광정 역할을 하며 지하까지 빛을 떨어뜨린다.

해진 가장자리는 ‘빛의 권리’에서 나왔다
남쪽 끝이 계단처럼 뒤로 물러서고 발코니가 층마다 어긋난 데에는 조형 욕심만 있는 게 아니다. 영국에는 ‘빛의 권리(Right to Light)’라는 오래된 법리가 있다. 이웃 건물 창이 오랫동안 누려온 채광을 새 건물이 크게 빼앗으면 소송감이 된다는 원칙이다. 이 건물이 남쪽 끝에서 뒤로 기울어진 것도 이웃의 채광을 지키기 위해서다.
법이 깎아낸 볼륨을 캔틸레버 스위트와 계단식 발코니로 받아냈고, 그게 결과적으로 이 건물의 얼굴이 됐다. 반듯한 박스를 일부러 흐트러뜨려 긴장감을 만드는 감각은 1980~90년대 해체주의 건축을 떠올리게 한다. 해체주의는 모더니즘의 질서정연한 상자를 비틀고 쪼개 불안정한 에너지를 드러낸 경향이다. 다만 여기서 흐트러짐은 채광과 이웃 관계라는 꽤 현실적인 이유에서 출발했다. 규제가 형태의 동력이 된 셈이다.

호텔 인테리어의 출발점, East meets East
안으로 들어서면 분위기가 확 바뀐다. 겹겹의 콘크리트 파사드를 지나면 브라운과 차분한 뉴트럴 톤이 깔린 로비가 한 번에 열리고, 천장에는 한지 등을 크게 키운 듯한 원형 조명이 떠 있다. 원목 패널로 감싼 바 카운터가 로비 한쪽을 길게 따라간다.
Astet Studio 공동창업자 Oscar Engroba는 쇼디치의 산업적 과거를 재현하기보다, 지금 이 동네가 가진 성격을 일본 디자인 전통의 정밀함과 장인정신과 대화시키고 싶었다고 설명한다. 벽돌 벽에 에디슨 전구, 빈티지 철제 가구를 채우는 이른바 인더스트리얼 호텔 공식을 피해 간 선택이다. 쇼디치에서 그 공식은 이미 너무 많이 봤으니까. 공장 동네의 거친 뼈대는 그대로 두고, 그 위에 전혀 다른 문화권의 손맛을 얹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우쓰로이, 건축은 그대로 두고 경험을 바꾼다
설계팀이 꺼낸 키워드는 일본어 ‘우쓰로이(移ろい)’다. 계절이나 빛, 마음이 조금씩 옮겨 가는 상태를 가리키는 말로, 설계팀은 이를 ‘건축은 그대로인데 경험이 조용히 변하는 것’으로 풀었다. 로비와 바, 짐, 멤버스 라운지, 레스토랑까지 이 개념 하나로 엮었다.
로비에서는 낮은 소파와 커다란 질감 러그가 넓은 공간을 여러 휴식 구역으로 나눈다. 벽을 세워 방을 나누는 대신 러그 한 장으로 ‘여기서부터는 다른 자리’라고 말하는 방식이다. 그 사이사이 빈티지 장식품과 가구, 이스트 런던 지역 작가와 디자이너의 작품이 놓여 공간을 동네와 잇는다. 좌석 높이를 낮추면 천장이 상대적으로 높아 보이고 몸도 느슨해진다. 거실이 넓지 않은 집에서도 그대로 옮겨볼 만한 수법이다.

빛을 반사하지 않고 먹는 재료들
재료 팔레트는 손으로 마감한 원목, 질감 있는 세라믹, 직조 패브릭, 그리고 대부분 무광 마감이다. 원목 패널은 일본 전통 목공에서 영감을 얻어 로비와 조식 공간, 객실에 맞춤 제작했다. Engroba는 빛을 반사하기보다 흡수하는 재료를 골랐기 때문에 하루 동안 공간이 미묘하게 변하고, 더 조용하고 촉각적인 공간이 된다고 말한다.
반짝이는 대리석과 황동으로 럭셔리를 증명하던 호텔 로비 문법과는 정반대 쪽이다. 그늘과 흐릿한 광택에서 아름다움을 찾은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수필 『음예예찬』을 떠올리게 하는 태도라고 해야 할까. 공교롭게도 쇼디치는 19세기 런던 가구 제작의 중심지였다. 나무를 짜 맞추는 손기술이 모습을 바꿔 이 동네로 돌아온 셈이기도 하다.

호텔이 돈을 몰아넣은 곳은 멤버스 라운지다
이 호텔이 어디에 힘을 줬는지 보려면 객실보다 공용 공간을 봐야 한다. Aethos는 2026년 2월 호텔 안에 코워킹 공간과 멤버 전용 레스토랑·바·라이브러리·테라스를 묶은 멤버스 클럽 The Willow Room을 열었다. 멤버십은 Aethos One 2,200파운드, Aethos Unlimited 2,800파운드이고 월이나 분기로 나눠 낼 수 있다. 사우나와 콜드 플런지를 갖춘 웰니스 층도 따로 뒀다.
공동창업자이자 CEO인 Benjamin Habbel은 좋은 환대는 사람을 대접하는 데서 끝나지 않고 사람을 모이게 한다고 말한다. 투숙객만 받는 호텔이 아니라 쇼디치에서 일하는 크리에이티브들이 매일 드나드는 거실을 만들겠다는 계산이다. 바와 라운지가 벽 없이 이어지고 좌석 종류가 유난히 다양한 것도 그래서다. 객실을 줄이고 공용 공간에 투자를 몰아넣은 citizenM Washington DC Capitol과 같은 계열의 셈법이다.

Nobu가 떠난 자리에 다시 들어온 일본 레스토랑
다이닝에서도 일본은 이어진다. 새 일본 요리 레스토랑 Mitsu가 2026년 봄 문을 열었고, 다각형으로 쪼갠 원목 패널 벽과 둥근 테이블, 부드러운 곡선 의자가 공간을 채운다. 바닥의 로즈 톤 카펫이 목재의 온기를 한 번 더 끌어올린다.
재미있는 건 이 건물의 전 주인이 일본 요리 브랜드 Nobu였다는 점이다. Nobu가 떠난 자리에 다시 일본 요리가 들어온 셈인데, 청동 프레임과 그을린 목재, 날것의 콘크리트 블록이 주조였던 Nobu 시절의 어둡고 단단한 무드와는 결이 다르다. 같은 일본을 불러와도 브랜드마다 해석이 이렇게 갈린다. Nobu가 다른 도시에서 풀어낸 방식은 일본 미니멀리즘과 아트데코를 섞은 Nobu Hotel Warsaw와 비교해 볼 만하다.

객실은 한 톤 낮춰 도시 속 은신처로
객실로 올라가면 팔레트가 더 단순해진다. 그레이와 번트 오렌지, 블랙 톤으로 태운 목재가 차분하게 깔리고 조명은 한층 절제된다. Engroba는 객실에서는 편안함과 촉감, 더 조용한 감각 경험으로 초점이 옮겨 간다고 설명한다. 재료는 더 부드러워지고 분위기는 더 내밀해진다.
노출 콘크리트 천장과 어두운 목재 벽을 그대로 맞붙인 방은 건물의 거친 뼈대를 숨기지 않으면서도 손이 닿는 곳마다 부드러운 재료를 둔다. 2017년의 콘크리트 건물을 한 군데도 부수지 않고 표면의 온도만 바꿔 새 호텔을 만든 것. Aethos Shoreditch가 보여주는 리브랜딩은 결국 건축을 건드리지 않고 경험을 갈아 끼우는 기술이다. 우쓰로이라는 단어를 고른 이유가 여기서 선명해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