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마 곡선을 겹겹이 엮은 쑤저우 미술관, Suzhou MoCA

쑤저우 미술관 하면 지금까지는 I.M. Pei(아이엠 페이)가 2006년 졸정원 옆에 지은 Suzhou Museum이 먼저 떠올랐다. 이제 이 도시에 비교할 만한 미술관이 하나 더 생겼다. 진지호(Jinji Lake) 수변에 들어선 Suzhou Museum of Contemporary Art, 줄여서 Suzhou MoCA가 2026년 9월 정식 개관했다. 연면적 60,000m²에 파빌리온 12개를 리본처럼 이어지는 지붕 아래 엮은 단지로, BIG(비아이지)가 완공한 첫 미술관이다.

위에서 보면 들린 처마 모양의 지붕 여러 장이 어긋나게 겹쳐 있고, 그 아래는 가는 기둥과 유리로 열려 있다. 중국 전통 지붕의 실루엣을 스테인리스 스틸로 다시 쓴 셈인데, 이 미술관의 진짜 주제는 지붕보다 그 아래의 길이다. 쑤저우 원림의 회랑을 현대 미술관의 동선으로 옮겨왔기 때문이다.

들린 처마 모양 지붕 여러 장이 어긋나게 겹친 Suzhou MoCA 파빌리온 군집 항공 사진
© Ye Jianyuan

하늘에서 보면 매듭, 땅에서 보면 정원

이 단지는 위에서 볼 때 가장 선명하다. 파빌리온들이 서로 엉켜 들어가는 배치가 전통 매듭 공예나 종이를 오려 만든 전지(剪紙) 문양처럼 읽힌다. Bjarke Ingels(비야케 잉겔스)는 개별 파빌리온을 유리 갤러리와 주랑으로 엮어 조각 정원과 전시 공간이 서로 얽힌 중국식 매듭을 만들었다고 설명한다.

그런데 막상 땅에 내려서면 이 선명한 도형이 사라진다. 정원과 정원이 이어지고 시야가 계속 바뀌면서, 관람은 지도를 읽는 일보다 산책에 가까워진다. 위에서는 하나의 기호, 아래에서는 길을 잃어도 좋은 미로. 설계팀이 이 단지를 두고 식물과 작품 사이에서 길을 잃도록 만든 인공의 미로라고 표현한 것도 그래서다.

수면에 곡면 지붕이 비치는 쑤저우 미술관 Suzhou MoCA 외관
© Ye Jianyuan

대관람차 다리 사이로 도시와 호수를 잇다

부지 사정은 꽤 까다로웠다. 쑤저우 공업원구의 신시가지와 진지호 사이에 끼어 있고, 새로 세운 대관람차가 호수와의 관계를 일부 가로막고 있었다. Bjarke Ingels는 역사 도심이 중국 정원의 요람이라면 호수 지구는 새로운 쑤저우의 요람이라고 말한다. 구시가의 정원 문법을 신시가지로 옮겨 심겠다는 선언이다.

그래서 미술관을 덩어리 하나로 세우지 않고 공원 속 정자처럼 흩어놓았다. 파빌리온 사이로 시민이 조각 정원을 지나 호숫가까지 걸어갈 수 있고, 반대로 물은 파빌리온 사이를 파고들어 도시 쪽으로 들어온다. 단지는 대관람차의 다리 사이를 비집고 호수까지 뻗어 나간다. 미술관이 도시와 호수를 가르는 벽이 아니라 둘을 잇는 통로가 된 셈이다. 발주는 Suzhou Harmony Development Group이 맡았고, 설계에는 ARTS Group과 Front Inc., VIA.inc, SHUISHI가 협력했다.

연못가에 선 Suzhou MoCA 파빌리온의 곡면 유리 파사드와 들린 처마
© StudioSZ Photo / Justin Szeremeta

들린 처마를 스테인리스 스틸로 다시 쓰다

지붕은 기와 처마의 실루엣을 떠올리게 하는 완만한 곡면이다. 중국 전통 건축에서 처마 끝이 하늘로 들리는 건 무거운 지붕에 가벼움을 주고 깊은 처마 밑으로 빛을 끌어들이는 장치로 흔히 설명된다. BIG는 이 곡선을 원뿔형 곡률로 추상화하고, 표면을 스테인리스 스틸 지붕 타일로 덮었다.

파사드는 물결치는 곡면 유리와 웜톤 스테인리스 스틸로 마감해 하늘과 물, 정원을 되비춘다. 기와를 그대로 흉내 내지 않고 곡선의 기억만 가져왔다는 점에서, 직접 인용보다는 추상에 가까운 태도다. 호수를 배경으로 서면 이 곡면들이 수변에 우아한 실루엣을 그린다. 전통을 복제하는 순간 테마파크가 되고, 너무 멀리 가면 맥락이 끊긴다. 그 사이 어딘가에 줄을 잘 탔다.

해 질 녘 수공간 정원을 둘러싼 Suzhou MoCA 파빌리온들
© Ye Jianyuan

같은 도시, 두 세대의 쑤저우 미술관

이 미술관이 흥미로운 건 같은 도시에 비교 대상이 있어서다. I.M. Pei는 2006년 구시가 졸정원 옆에 Suzhou Museum을 지으면서 쑤저우 민가의 화이트 회벽과 그레이 지붕선을 기하학 도형으로 번역했다. 쑤저우 출신 가문의 건축가가 아흔을 앞두고 고향에 바친 작업이라는 서사도 따라붙었다.

Pei가 벽과 지붕의 ‘선’을 추상화했다면, BIG는 처마의 ‘곡면’과 정원의 ‘동선’을 추상화했다. 화이트 회벽 대신 빛을 반사하는 금속과 유리를 택한 것도 구시가와 신시가라는 입지 차이만큼이나 분명한 세대 차이다. 20년 간격을 두고 한 도시에 선 두 미술관이 같은 질문에 서로 다른 답을 낸 셈이니, 쑤저우 여행 동선에 둘을 나란히 넣어 보는 것도 방법이다.

스테인리스 스틸 지붕 타일로 덮인 Suzhou MoCA 곡면 지붕을 위에서 본 모습
© Ye Jianyuan

대관람차에서 내려다보는 다섯 번째 파사드

BIG가 지붕에 유난히 공을 들인 이유는 대관람차에 있다. 곤돌라를 타고 올라가는 수많은 관람객에게 이 미술관은 위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이 되고, 지붕은 사실상 이 건물의 진짜 얼굴, 이른바 ‘다섯 번째 파사드’가 된다. Bjarke Ingels도 이 매듭 같은 배치의 논리가 곤돌라에서 볼 때 비로소 뚜렷해진다고 말한다.

지붕을 입면처럼 다루는 발상은 옥상정원을 근대 건축 5원칙에 넣은 Le Corbusier(르 코르뷔지에) 이후 꾸준히 이어진 화두다. 드론과 인스타그램 시대에는 이 말이 훨씬 현실적인 의미를 갖는다. 사람들이 가장 많이 공유하는 사진이 항공 컷이라면, 지붕이 곧 브랜드가 된다. 지붕 자체를 전망대로 만든 노르웨이 박물관 The Whale과는 반대 방향에서 지붕을 풍경으로 쓴 사례다.

수공간 위 징검돌을 따라 이어지는 Suzhou MoCA의 회랑(랑) 공간
© Ye Jianyuan

쑤저우 정원의 회랑 ‘랑(廊)’을 미술관 동선으로

이 미술관의 뼈대는 쑤저우 원림의 ‘랑(廊)’이다. 랑은 지붕을 덮은 긴 회랑으로, 정원 안에서 길을 정하고 비를 막으며 걸음마다 다른 풍경을 보여주는 장치다. 중국 정원 미학에서는 이를 이보이경(移步易景), 걸음을 옮기면 풍경이 바뀐다는 말로 설명한다.

BIG는 이 회랑을 연속된 지붕으로 바꿔 파빌리온들을 하나로 묶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오른 쑤저우 고전 원림은 회랑과 정자, 연못과 가산이 한 몸으로 짜인 공간인데, 그 구성 논리가 이번 미술관 평면의 원리가 됐다. 수공간 위 징검돌을 따라 회랑 끝까지 시선이 빠지는 장면은 원림의 축소판처럼 보인다. 미술관을 ‘방의 연속’이 아니라 ‘길의 연속’으로 짠 것, 이게 이 건물을 다른 대형 미술관과 가르는 지점이다.

가는 기둥이 줄지어 선 Suzhou MoCA 처마 아래 회랑
© Ye Jianyuan

덴마크 건축가가 다시 읽은 중국 정원

Bjarke Ingels는 이 설계를 중국 정원이라는 고유한 유형에 대한 스칸디나비아식 재해석이라고 부른다. 덴마크 건축가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곳이 있다. 코펜하겐 북쪽 Humlebæk의 Louisiana Museum of Modern Art다.

1958년 문을 연 이 미술관은 정원과 바다 사이에 전시동을 흩어놓고 유리 복도로 이어, 관람을 산책으로 만든 모더니즘 미술관의 고전이다. 파빌리온을 흩고 유리 회랑으로 잇는 Suzhou MoCA의 구성은 이 북유럽 계보와 쑤저우 원림이 만나는 지점에 있다고 읽힌다. 가는 기둥이 줄지어 선 처마 밑 회랑을 걷다 보면, 동양의 정원과 북유럽의 파빌리온 미술관이 생각보다 가까운 친척이라는 걸 알게 된다.

목재 루버 천장 아래 두 개 층이 트인 Suzhou MoCA 전시 홀
© Ye Jianyuan

4개 동은 갤러리, 나머지는 도시의 거실 — 조닝과 동선

프로그램 배분은 명쾌하다. 파빌리온 가운데 4개 동이 본 전시 공간이고, 나머지는 대형 입구 홀과 다목적홀, 극장, 레스토랑이 나눠 쓴다. 전시만 보고 나가는 건물이 아니라 공연과 식사, 행사까지 품은 복합문화공간으로 짠 것이다. 방문객은 비지터 센터 앞 넓은 광장에서 출발해 실내로 들어가거나, 정원 산책로를 따라 호수로 뻗은 보행로까지 나갈 수 있다.

파빌리온끼리는 지상의 브리지와 지하 터널로 이어져 있어, 계절이나 전시 구성에 따라 동선을 열고 닫을 수 있다. 하나의 연속된 주동선이 전체를 꿰고, 전시 사이사이 작은 샛길로 갈라지는 구조다. 실내에는 고측창과 천창으로 자연광을 들여 그림자와 반사가 갤러리를 움직이게 한다. 목재 루버 천장 아래 두 개 층이 트인 홀은 곡면 지붕의 볼륨을 안에서도 느끼게 한다.

BIG의 Materialism 전시가 열린 Suzhou MoCA 갤러리 내부
© StudioSZ Photo / Justin Szeremeta

프리뷰는 BIG의 재료 이야기, 개관전은 Picasso

정식 개관에 앞서 미술관은 BIG가 직접 큐레이션한 프리뷰 전시 Materialism으로 먼저 문을 열었다. 돌, 흙, 콘크리트, 금속, 유리, 나무, 패브릭, 플라스틱, 식물, 재활용 소재까지 10가지 재료가 BIG의 건축을 어떻게 만들었는지를 코펜하겐 사옥과 Danish Maritime Museum, Google Bay View 등 20개 프로젝트의 대형 목업과 모형으로 보여준다. 전시장 벤치도 전시 중인 바로 그 재료로 만들었다.

정식 개관전은 Picasso(피카소) 전시와 중국 현대미술 대규모 서베이가 이끈다. 기술 기반 예술과 동서양 예술 전통의 교차를 다루는 전시도 이어진다. Wang Xiaosong 관장은 이곳을 사람들이 새로운 방식으로 예술을 경험하고, 문화와 세대를 넘나드는 생각을 만나는 발견과 교류의 장소로 그렸다. 서구 거장과 중국 현대미술을 한 지붕 아래 두는 기획 자체가 동서양의 공간 전통을 겹친 건축과 맞물린다.

정원 너머로 대관람차와 파빌리온 지붕이 겹쳐 보이는 Suzhou MoCA
© Suzhou MoCA

호숫가로 스며드는 조경과 친환경 설계

조경은 미술관에서 호수로 갈수록 성격을 바꾼다. 포장된 하드스케이프에서 녹지로, 다시 물가 식재로 넘어가며 미술관에서 땅, 땅에서 호수로 이어지는 순서를 그대로 밟는다. 정원 너머로 대관람차와 파빌리온 지붕이 겹쳐 보이는 장면은 이 단지가 도시 풍경의 일부가 됐다는 걸 보여준다.

건물은 중국 녹색건축 인증 2성급을 목표로 패시브 차양과 자연 환기, 지역 자재를 적용했다. 깊은 처마가 만든 그늘 자체가 차양 장치이니, 전통 지붕의 형태를 빌려온 이유가 상징만은 아닌 셈이다. 원림이 그랬듯 이 미술관도 결국 건물보다 그 사이를 걷는 시간을 설계했다. 대관람차에서 내려다보든 회랑 아래를 걷든, 쑤저우에 가야 할 이유가 하나 늘었다.

ArchitectsBIG – Bjarke Ingels Group
DesignerARTS Group, Front Inc., VIA.inc, SHUISHI
PhotosYe Jianyuan, StudioSZ Photo / Justin Szeremeta, Suzhou MoCA
Category미술관
Country중국
Materials스테인리스 스틸 지붕 타일, 곡면 유리, 웜톤 스테인리스 스틸
LocationJinji Lake, Suzhou Industrial Park, Suzhou
Area연면적 60, 000m²
Year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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