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ina 도심 인근, 오래된 동네 하나가 조용히 바뀌고 있었다. 낮은 방갈로들이 하나둘 헐려나가고 그 자리엔 특징 없는 신축 주택이 들어서는 참이었다. 이 동네에 집을 지어야 했던 David와 Jane Arthur 부부는 그 흐름에 순순히 따르는 대신 정반대의 방향을 골랐다. 부부가 Winnipeg 기반 건축사무소 5468796 Architecture에 던진 주문은 단순했다. 바깥 세상으로부터 온전히 물러날 수 있는, 조용한 안식처.
폭이 좁고 긴 대지에 들어선 Arthur Residence는 콘크리트와 스타코로 마감한 두 개 층 볼륨이 대지 폭을 거의 그대로 채운다. 옆마당이란 게 결국 방치된 자투리 공간이 되기 십상이라는 판단 아래, 건축가는 아예 집을 옆으로 최대한 늘려 붙이는 쪽을 택했다. 지하까지 합치면 세 개 층. 겉보기엔 무뚝뚝한 상자 하나지만, 안으로 들어가면 완전히 다른 이야기가 펼쳐진다.

골목에서 보면 그냥 하얀 상자다
보도에 서서 Arthur Residence를 마주치면 딱히 눈에 들어오는 정보가 없다. 미루나무와 자작나무 사이로 언뜻 비치는 하얀 벽면, 그게 전부다. 담장과 집의 외벽을 아예 하나로 붙여버렸기 때문에, 길에서 보면 이 집은 벽 하나가 길게 이어지다가 딱 한 군데만 틈을 벌린 모습으로 읽힌다. 이웃한 방갈로들이 하나씩 뜯겨나가고 그 자리에 몰개성한 신축이 들어서는 동네에서, 이 무심한 파사드는 오히려 뚜렷한 태도로 다가온다. 남들과 다르게 살고 싶다는 선언이라기보다는, 그냥 조용히 있고 싶다는 쪽에 가깝다.

담장과 벽을 하나로 붙였다
담장과 집의 외벽이 만나 하나의 면이 되고, 그 면에 틈 하나로 길이 열린다는 것이 건축가의 설명이다. 실제로 정면에서 본 Arthur Residence는 창도 문도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저녁 무렵 조명이 켜지면 그제서야 벽 틈 사이로 빛이 새어 나와 안에 사람이 산다는 사실을 알려줄 뿐이다. 이 집이 마을 다른 신축들과 갈라서는 지점이 바로 여기다. 남들은 창을 늘려 개방감을 자랑할 때, 이 집은 정반대로 닫아걸어 사생활을 지키는 쪽을 택했다.

그 틈에 놓인 빨간 문
무채색 벽 한가운데, 유일하게 벌어진 틈에는 새빨간 문 하나가 박혀 있다. 이웃한 집들과 구별되는 지점을 만들어달라는 요청에 건축가가 내놓은 답이다. 색을 아끼고 아낀 이 집에서 문 하나만큼은 과감하게 채도를 끌어올렸다. 담장 같은 파사드 사이로 붉은 점 하나가 찍혀 있으니, 지나가던 사람도 이 집 앞에서는 한 번쯤 걸음을 멈추게 된다. 정작 집주인에게는 그저 현관이지만, 동네 사람들에게는 좌표가 되어준 셈이다.

천장을 밀어올린 거실
1층 사회적 공간, 그러니까 거실과 다이닝룸과 주방은 층고를 두 개 층 높이로 틔워 놓았다. 바깥에서는 벽 하나로 뭉뚱그려 보이던 집이 안에서는 전혀 다른 규모로 다가온다. 바닥부터 천장까지 이어지는 통유리는 뒤편 작은 정원을 거실 안으로 끌어들인다. 매끈한 미장 벽과 폴리싱 콘크리트 바닥이 빛을 은은하게 반사하면서, 오래 일에 시달린 사람이 집에 돌아와 긴장을 풀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든다는 게 건축가의 설명이다.

콘크리트 벽 사이로 정원이 걸어 들어온다
다이닝룸에 앉으면 정면 통유리 너머로 작은 정원과 자작나무가 그대로 눈에 들어온다. 노출 콘크리트 벽이 액자처럼 그 풍경을 잘라내는데, 여기서 재미있는 건 이 정원이 이웃집과 완전히 차단된 채 오직 이 집만을 위해 존재한다는 점이다. 거리에서는 그렇게나 폐쇄적이던 집이, 안뜰 하나를 사이에 두고는 완전히 열린다. 닫힌 겉모습과 열린 속내 사이의 낙차, 이 집을 관통하는 가장 큰 아이러니다.

쪼개놓은 마당들
겉에서 보면 하나의 매스지만, 그 안쪽은 잘게 조각나 있다. 건축가는 이 덩어리를 군데군데 도려내 작은 파티오와 정원을 여러 개 끼워 넣었다. 방 하나가 끝나는 지점마다 손바닥만 한 마당이 나오고, 그 마당은 옆방의 창으로 다시 이어진다. 좁고 긴 땅에서 채광과 환기를 확보하는 동시에 방마다 독립된 바깥 풍경을 쥐여주는 방법인 셈이다. 정형화된 앞마당·뒷마당 구도 대신 집 전체에 자잘한 여백을 흩뿌려 놓은 셈이다.

위층엔 각자의 계단이 있다
2층에는 침실 두 개가 나란히 자리하는데, 각각 별도의 계단으로만 오갈 수 있다. 현관 위쪽 계단을 오르면 게스트룸이, 주방 위쪽 계단을 오르면 안방이 나오는 식이다. 한 지붕 아래 살면서도 서로의 동선을 마주치지 않게 짜놓은 셈이다. 곡선으로 처리한 스타코 벽과 집주인이 직접 짜 넣었다는 삼각형 목재 창틀이 이 층의 분위기를 한결 부드럽게 눌러준다.

은근하게 트인 전망
2층은 건축가의 표현대로 “은신처에 가까운 피난처”다. 창을 크게 내는 대신, 나무 캐노피와 이웃집 지붕선만 살짝 걸리는 각도로 좁게 열어놓았다. 훔쳐보는 것도 아니고 완전히 숨는 것도 아닌, 딱 그 중간의 시야다. 지하에는 별도로 두 개 침실짜리 세대를 하나 더 넣어놓았는데, 거리에서 바로 들어갈 수 있는 독립된 출입구를 갖췄다. 세를 놓든 다른 세대가 함께 살든 선택할 수 있게 마련해둔 여지다. 닫힌 얼굴 뒤에 이만큼 많은 살림이 겹겹이 들어차 있다는 걸, 담장을 마주친 행인은 짐작조차 못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