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관, 명상하듯 걷게 되는 문턱
현관홀은 트레수노(Tresuno)라는 마감재로 벽과 천장을 통째로 감쌌다. 노출 거푸집 콘크리트를 재현한 질감인데, 실제 콘크리트보다 가볍고 시공이 자유롭다는 장점이 있다. 그 위로 한 줄기 매입 조명 라인이 공간을 가로지르며 시선을 안쪽으로 끌고 간다. 현관에서부터 거실까지는 소성 콘크리트 바닥이 이어지는데, 이 절제된 마감이 뒤에 이어질 사회적 공간의 톤을 미리 예고하는 느낌이다.
블랙과 그레이, 색을 지운 거실
거실로 들어서면 흑단으로 마감한 목재 패널이 벽면 전체를 하나의 면으로 통일한다. 그 뒤로 파우더룸과 세탁실, 팬트리가 감쪽같이 숨어 있다. 문이라기보다는 벽의 일부처럼 보이도록 설계한 디테일이라, 손잡이를 찾기 전까지는 수납공간이 있다는 사실조차 알아채기 어렵다. 가구 구성도 최소한으로 절제했다. 결과적으로 이 방에서 시선이 머무는 곳은 벽도 소파도 아니라 벽에 걸린 예술품이다.
기둥을 가리지 않은 이유
평면 한가운데 자리한 구조 기둥은 흔히 그렇듯 벽으로 감싸 지우는 대신 노출 콘크리트 그대로 남겨뒀다. 오히려 이 기둥의 존재감을 받아들여 커스텀 제작한 모듈형 소파가 기둥을 감싸듯 배치됐다. 소파 구성도 군더더기 없이 파울로 멘데스 다 로샤의 파울리스타노 암체어, 이자벨 드 마리의 볼리냐 스툴, 베토 가티의 조각 작품 정도로 마무리했다. 가구 수를 줄이는 대신 한 점 한 점의 존재감을 살리는 편을 택한 셈이다. 커튼 사이로 들어오는 빛 아래서 책을 읽는 사람의 모습이 이 거실이 실제로 어떻게 쓰이는 공간인지를 말해준다.
밤이 되면 갤러리로 바뀌는 셀빙
거실 한쪽에는 얇은 스틸 프레임으로 짠 셀빙 유닛이 벽에서 떨어져 떠 있듯 자리한다. 라울 모랑과 알렉산더 칼더의 작품이 이 선반 위에 놓이고, 후면에서 은은하게 쏘는 LED 조명이 작품 실루엣을 부각시킨다. 해가 지고 나면 이 구간은 거실이라기보다 개인 갤러리에 가까운 분위기로 바뀐다. 선반 프레임을 최대한 얇게 짠 것도 결국 조명과 작품이 주인공이 되도록 건축적 존재감을 낮추려는 선택이었을 것이다.
손잡이 하나로 완성한 주방
주방은 별도의 방이라기보다 사회적 공간의 연장선에 가깝다. 가족이 편하게 밥을 먹는 공간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가벼운 업무 미팅이 열리는 자리가 되기도 한다. 목재 패널이 가전과 수납장을 감싸 하나의 면으로 정리하고, 그 표면을 깨는 유일한 디테일은 벨로제스토(Bellogesto)의 자그마한 황동 손잡이뿐이다. 아일랜드와 조리대는 파라나 대리석으로 마감해 다크 톤 목재와 대비를 이루면서도 전체 팔레트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이 집에서 유일하게 허락된 색
다이닝 공간에는 폴리오 리빙의 원형 테이블과 자니니 데 자니네가 디자인한 커브 체어가 놓였다. 그 위로는 스틸 케이블에 매달린 다니엘 뮬런의 회화 작품이 시선을 압도한다. 블랙과 그레이로 절제된 집 전체에서 사실상 유일하게 강렬한 색이 등장하는 순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건축이 스스로 색을 비운 이유가 바로 이 장면 하나를 위해서였다고 해야 할까, 회화 앞에서는 나머지 모든 마감재가 조용히 배경으로 물러난다.
빛을 걸러내는 나무 슬랫
1층에서 메자닌으로 올라가는 지점에는 세로로 회전 배치한 목재 슬랫이 브리즈솔레이유처럼 빛을 걸러낸다. 낮에는 슬랫 사이로 스며든 빛이 자연스러운 그늘을 만들고, 밤이 되면 조명이 슬랫 그림자를 천장 위로 번지듯 흩뿌린다. 그 옆에는 필립 스탁이 디자인한 토템이 서 있고, 그 위에 헬무트 뉴튼의 대형 화보집 SUMO 에디션이 마치 조각 작품처럼 놓여 있다. 책 한 권을 오브제로 다루는 이런 디테일이야말로 이 집이 컬렉터의 안목으로 채워졌다는 사실을 가장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지점인 셈이다.
위층에서 뒤바뀐 팔레트
계단을 올라 침실로 들어서면 팔레트가 한 번 반전된다. 네오밤부 흑단 오크 마루가 부드러운 그레이 톤 벽지와 마주하며 아래층과는 다른 온기를 만든다. 침대 헤드보드는 흑연빛 소재로 제작해 사이드테이블까지 하나의 조형으로 이어지도록 디자인했다. 통유리창 너머로는 도시 스카이라인이 그대로 걸려, 침실에 누워서도 페라스 아파트 전체를 관통하는 도시적 정서를 놓치지 않는다.
카라라 대리석, 마지막 장식
마스터 욕실은 카라라 대리석과 블랙 톤 피팅으로 마무리했다. 건축 전체를 관통해온 중립적인 프레임이 욕실까지 그대로 이어지는 셈인데, 이 절제가 오히려 컬렉터가 모아온 개별 오브제 하나하나에 시선이 오래 머물도록 만든다. 화려한 장식 대신 재료의 질감과 비례만으로 공간을 완성하려 한 흔적이 곳곳에서 읽힌다. 이 집에서 건축은 스스로 조연을 자처한다. 벽과 바닥, 가구까지 모두 흑백의 절제된 언어로 통일해두고, 색이라는 무기는 오직 그림 한 점을 위해 아껴둔 셈이다. 건축이 겸손해질수록 그 안에 놓인 컬렉션은 더 크게 말한다는 걸, 페라스 아파트는 조용히 증명하고 있다.







PhotosMiti Sameshima
CategoryApartments
CountryBrazil, São Paulo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