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프란시스코 임대주택 중에 이렇게 좋은 자리를 차지한 집이 또 있을까. 골든게이트 파크 건너편, 헤이트 스트리트와 스태니언 스트리트가 만나는 모퉁이에 저소득층을 위한 임대주택 160세대가 들어섰다. 이름은 주소 그대로 730 Stanyan. 원래 이 자리에는 패스트푸드 매장 하나가 널찍한 주차장을 끼고 앉아 있었다.
설계는 OMA 뉴욕 사무소와 현지 건축사무소 Y.A. Studio가 맡았다. OMA가 미국에서 처음 완성한 100% 저소득층 임대주택이다. 발주처는 차이나타운 커뮤니티 개발센터(CCDC)와 텐더로인 지역개발공사(TNDC), 두 비영리 주택 단체다. 입주 대상은 저소득 가정, 노숙을 겪었던 가족, 그리고 보호 종료 청년이다. 집값 때문에 도시 밖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던 사람들에게 공원 앞 첫 줄을 내준 셈이다.

공원 앞 첫 줄을 임대주택에 내줬다
골든게이트 파크 쪽에서 보면 건물은 한 덩어리가 아니라 세 덩어리로 읽힌다. 가운데 8층 매스가 서고, 양쪽으로 4층짜리 날개가 내려앉는다. 헤이트 스트리트 쪽과 월러 스트리트 쪽 이웃들이 대부분 3~4층짜리 목조 주택이라, 그 높이에 맞춰 어깨를 낮춘 것이다. 연면적은 약 18,000m²(194,000 sq ft). 샌프란시스코가 미국에서 손꼽히는 주거 위기 도시라는 걸 생각하면, 이 규모의 공공 임대주택이 공원 정면에 들어섰다는 사실 자체가 뉴스다.

8층과 4층, 높이를 둘로 나눈 이유
정면에서 보면 높낮이가 왜 갈렸는지 더 분명해진다. 가운데를 높이 올려 세대 수를 확보하고, 거리 쪽은 낮춰 동네 스케일을 지킨다. 단순한 타협처럼 보이지만 부수 효과가 있다. 4층 날개의 지붕이 그대로 8층 매스의 옥외 테라스가 된다. 높이를 나눈 덕분에 옥상 정원이 두 개 생긴 셈이다. 입면은 화이트 톤으로 통일해, 파스텔 톤 빅토리안 주택들 사이에서 튀지 않으면서도 새 건물이라는 걸 굳이 숨기지 않는다.

히피의 거리, 헤이트-애시베리 한복판
이곳은 헤이트-애시베리(Haight-Ashbury)다. 1960년대 히피 문화의 발원지이자 지금도 빈티지 숍과 레코드 가게가 늘어선 상업 가로다. 바로 옆이 그 유명한 Amoeba Music 매장이다. 설계팀은 이 동네의 잡다하고 다채로운 성격을 새 건물이 눌러버리면 안 된다고 봤다. 그래서 파사드를 거대한 한 장의 벽으로 만드는 대신, 이웃한 타운하우스들의 리듬을 따라 잘게 쪼갰다. 거리에서 올려다보면 옆집과 크게 다르지 않은 폭으로 창이 반복된다.

GFRC 웨이브 패널, 창과 루버를 한 장에
가까이 가면 파사드가 벽돌이나 타일이 아니라 물결치는 패널이라는 걸 알 수 있다. 유리섬유 보강 콘크리트(GFRC)로 찍어낸 모듈형 ‘웨이브’ 패널이다. 패널 한 장에 창과 통풍 루버가 함께 들어가 있어, 현장에서는 패널을 걸기만 하면 외벽과 창과 환기가 한 번에 해결된다. 설계팀은 이 방식 덕분에 비용을 낮추고 시공을 빠르게 끝냈으며 내구성도 좋다고 설명한다. 패널 길이를 여러 종류로 만들어 스팬이 다른 면에도 대응하고, 중정 쪽으로는 곡면을 그리며 휘어 들어간다. 예산이 빠듯한 공공 임대주택인데 파사드가 값싸 보이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건물을 깎아 만든 세 개의 중정
이 집의 핵심은 파사드가 아니라 비워낸 자리다. 8층 매스를 곡면으로 파내 1층에 중정 세 개를 만들었다. 하나는 거리 쪽으로 깊게 U자를 그리는 진입 마당, 나머지 둘은 이웃 건물에 붙은 네모난 마당이다. 각각 입주민만의 내부 정원, 어린이집 놀이터, 그리고 공원을 향해 열린 모임 마당으로 쓰인다. 조경은 현지 스튜디오 GLS Landscape Architecture가 맡았다. OMA의 파트너 Jason Long은 이 건물을 두고 빛과 조망, 함께 쓰는 바깥 공간을 최대한 얻기 위해 깎아낸 것이라고 말한다.

골든게이트 파크로 열린 진입 마당
진입 마당은 길 건너 공원을 정면으로 마주한다. 마당을 감싸는 1층은 전부 유리로 마감해, 안쪽의 커뮤니티 공간과 복도까지 빛이 깊숙이 들어온다. 벤치와 식재가 놓인 이 마당은 입주민만의 공간이 아니다. 동네 주민에게도 열린 사회·문화 프로그램의 거점으로 쓰인다. 저소득층 임대주택이 담장을 두르고 스스로를 숨기던 관행을 거꾸로 뒤집은 셈이다.

노출 콘크리트 기둥과 메탈 천장, OMA다운 실내
1층 커뮤니티 공간에 들어서면 OMA 특유의 산업적인 감각이 그대로 드러난다. 둥근 콘크리트 기둥을 마감으로 덮지 않고 그대로 세웠고, 천장은 그리드 패턴의 메탈 플레이트로 덮었다. 벽은 최소한으로 두고, 대신 통유리 너머 공원의 초록이 인테리어 역할을 한다. 값비싼 마감재 없이도 공간이 허술해 보이지 않는 건 이 원칙 덕분이다. 입주민들은 이곳에서 모임을 갖고, 아이들은 바로 옆 놀이 마당으로 나간다.

복도가 중정과 공원을 잇는다
세 중정을 이어주는 것은 1층을 관통하는 유리 복도다. 한쪽으로는 스태니언 스트리트와 공원이, 다른 쪽으로는 중정이 보인다. 입주민 편의시설과 지원 서비스 공간도 이 복도에 붙어 있다. 복도라기보다 실내 산책로에 가깝다. 지원주택에서 서비스 공간이 으레 뒤편 구석에 숨는 것과 달리, 이 건물은 가장 밝은 자리에 그것을 내놓았다.

긴 복도를 없애고 창가에 자리를 놓았다
위층 복도도 같은 원칙으로 짰다. 세대가 늘어선 복도를 한 줄로 길게 뽑지 않고 어긋나게 배치해, 어디서도 익명의 긴 복도가 생기지 않게 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면 로비마다 공원 쪽으로 창이 열려 있고, 그 창가에 앉을 자리를 두었다. 층수를 알리는 큼직한 숫자와 곡면 창은 이 로비를 그냥 지나치는 곳이 아니라 잠시 머무는 곳으로 바꾼다. 160세대가 사는 집에서 이런 디테일은 이웃끼리 마주칠 기회를 늘리는 장치다.

160세대 중 82세대가 두세 개 방
세대 구성이 이 프로젝트의 성격을 말해준다. 160세대 중 82세대, 그러니까 절반이 넘는 집이 2베드룸과 3베드룸이다. 원룸 위주로 세대 수를 늘리는 대신 가족이 살 수 있는 집을 우선했다. 평면을 짜면서 설계팀이 신경 쓴 건 모서리 수였다. 매스를 깎아 모서리를 최대한 많이 만들면 코너 세대가 늘어나고, 그만큼 두 방향으로 창을 낸 집이 많아진다. 공원이 보이는 세대도 그렇게 늘렸다. 실내는 높은 천장과 단순한 디테일, 노출 기둥으로 마무리했다.

4층 지붕이 8층의 테라스가 된다
높이를 둘로 나눈 덕에 생긴 옥상 테라스다. 4층 날개의 지붕 위에 데크와 식재, 벤치를 놓았고, 8층 매스의 세대들은 창밖으로 이 정원을 내려다본다. 옥상에는 도시농업 팀 Top Leaf Farms가 참여한 텃밭도 있다. 공원이 코앞인데 굳이 옥상 정원이 필요할까 싶지만, 문을 잠그고 나가지 않아도 되는 바깥 공간이 있다는 건 다른 문제다. 특히 아이가 있는 가정에는 더 그렇다.

밤이 되면 공원 쪽으로 불이 켜진다
해가 지면 화이트 파사드는 뒤로 물러나고 창 하나하나가 앞으로 나온다. 공원 산책로에서 보면 160개의 창이 불을 켠 채 공원을 마주 본다. 샌프란시스코에서 임대주택은 오랫동안 눈에 띄지 않는 곳에 지어졌다. 언덕 위 단독주택 Hosono House가 다리 하나로 자기 땅을 숨긴 것과는 정반대로, 730 Stanyan은 도시에서 가장 좋은 공원 앞에 가장 눈에 띄는 모습으로 서 있다. 시공은 Cahill + Hercules 조인트벤처가, 파사드 제작은 Clark-Pacific이 맡았다. 2026년 준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