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영상을 찍었나? – 끝나지 않을 이야기를 지금 시작하는 이유

「좋은 건축 설계공모의 조건」 기획 의도

이 기획은 아주 단순한 생각에서 출발했다. 우리끼리 하던 이야기를 카메라 앞에서 해보자는 것이었다. 공모전이 끝난 저녁 자리에서, 심사장을 나서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낙선을 확인한 다음 날 사무실에서 수없이 오갔던 말들이다. 다들 알고 다들 말한다. 문제는 딱 거기까지라는 것이다. 그렇게 십수 년이 지났고, 판은 그대로다. 그렇다면 이제는 그 자리 밖으로 이야기를 꺼내놓을 차례다. 되도록 많은 사람이 보는 곳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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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영상을 찍었나? – 끝나지 않을 이야기를 지금 시작하는 이유
공정건축설계공모추진위원, 공공건축 설계 공모 공정성 방안 발표 후 기념사진. – 공정건축사신문, 2026.04.13

지금 공모판의 상태를 한 문장으로 줄이면 이렇다. 민간 일감이 줄면서 공공 설계공모 하나에 수십 팀이 몰린다. 불과 서너 해 전만 해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한 번 응모하는 데 수백만 원에서 수천만 원이 들어가는데, 그중 단 하나를 뺀 나머지는 전부 버려진다. 매주, 아니 매일 전국에서 이런 일이 벌어진다. 사회 전체로 따지면 어마어마한 규모의 낭비이고, 응모한 쪽이 그 사실을 더 잘 알지만, 달리 방법이 없다. 이렇게라도 해야 일이 생긴다.

과열도 과열이지만, 좀 더 깊게 들여다보면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심사가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해 우리가 합의한 것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설계공모 운영지침은 절차를 정한다. 누가 발주하고, 언제 공고하고, 몇 명이 심사하는지를 정한다. 그러나 심사장 안에서 실제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서는 거의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는다.

가령 이런 질문들이다. 참가자 발표 때 심사위원은 무엇을 물어야 하는가. 설계 의도를 확인하는 질문과 자기 취향을 관철하려는 질문은 어떻게 구분되는가. 백 개가 넘는 응모작의 기술검토를 하루 이틀 만에 제대로 해낼 수 있는가. 검토에서 지적된 사항에 참가자가 해명할 기회를 어떻게 주어야 하는가. 토론을 거쳐 합의에 이르는 절차는 어떠해야 하는가. 토론 도중 다른 심사위원에게 설득당하는 것은 소신 없음인가 아니면 심사가 제대로 작동한다는 증거인가. 결과가 나온 뒤의 이의제기는 그저 딴지걸기인가, 아니면 정당한 절차인가.

이 질문들 앞에서 업계가 동의하는 답은 없다. 저마다 자기 경험과 자기 감각에 따라 알아서 한다. 그러니 심사의 수준이 그날 그 자리에 누가 앉았는지에 따라 통째로 달라진다. 운이 좋으면 진지한 토론이 벌어지고, 운이 나쁘면 침묵 속에 순식간에 결판이 나버린다. 말하자면 심사위원 개인의 성실함에 기대는 제도는 그 개인이 성실하지 않은 순간 곧바로 무너진다. 그리고 합의된 기준이 없는 자리에는 대개 다른 것이 들어와 앉는다. 우리가 불공정이라고 부르는 것들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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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영상 콘텐츠

그래서 유튜브를 떠올렸다. 이 주제를 다룬 기사나 기고문도 있었고 토론회도 여러 차례 열렸다. 다만 그런 자리에 오는 사람은 대개 이미 답을 아는 사람들이다. 정작 이 이야기가 닿아야 할 곳은 따로 있다. 처음 심사위원으로 위촉되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한 건축사, 공모를 운영해야 하는 발주기관 담당 공무원, 첫 응모를 준비하는 젊은 설계자, 그리고 자기가 낸 세금으로 지어지는 건물이 어떻게 정해지는지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시민이다. 어렵고 재미없는 주제일수록 문턱이 낮아야 한다. 건축 예능 채널과 손을 잡은 것도, 형식을 강연이 아니라 대담으로 정한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한 가지는 미리 밝혀두고 싶다. 우리는 정답을 정해놓고 이를 전하려는 것이 아니다. 몇 명이 모여 합의한 결론을 선포하는 자리였다면 이렇게 길게 찍을 이유도 없었다. 심사와 운영과 참여를 모두 겪어본 사람들이 큰 질문들만 가지고 모여앉아 각자의 이야기를 펼쳤다. 이 영상의 목적은 그동안 아무도 공개적으로 묻지 않았던 질문을 일단 꺼내놓는 것이다. 많이 보시고 그 이야기를, 그 답을 이어나가 주시면 좋겠다. 그것이 우리가 없다고 말한 바로 그 합의를 만드는 과정일 테니까.

아쉬움은 변화의 시작으로 이어져

마지막으로 아쉬움을 하나 적어둔다. 사전접촉과 브로커, 내정과 들러리, 지역이나 특수 분야라는 카르텔. 사실 이 이야기가 가장 하고 싶었던 이야기였고, 가장 벼르던 부분이기도 했다. 실태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고 우리가 당장 할 수 있는 일들까지 짚어보려 했다. 그러나 앞의 이야기를 제대로 하려다 보니 여기에 쓸 시간이 남지 않았다. 서둘러 결론만 몇 마디 붙이느니 다음을 기약하는 편이 낫다고 판단했다. 언젠가 다시 카메라를 켜게 될 날이 올 것이다.

오래 묵은 문제가 몇 차례의 대화로 풀릴 리 없다. 다만 그동안 술자리에서만 오가던 말들이 기록으로 남고, 누군가 그것을 이어가기 위해, 또는 반박하기 위해서라도 다시 입을 열게 된다면, 적어도 지금보다는 나은 자리에서 다음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 이승환: 아이디알 건축사사무소 공동대표, 대한건축사협회 공정건축설계공모추진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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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환
이승환https://www.idrarchitects.com/
아이디알(IDR)은 아이디어(idea)나 아이디얼(ideal) 같은 평이한 영어 단어를 연상시키는 알파벳의 조합이다. 특정한 논리나 이론에 구애받지 않고 다양한 외적 조건에 유연하게 대응하는 좀 더 자유로운 건축을 추구하려는 의도를 담고 있다. 우리네 도시와 건축에서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들에 대한 의문을 작업의 출발점으로 삼고 있으며, 특히 사용자와 일상을 매개하는 배경으로서의 건축의 역할에 남다른 관심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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