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기은세가 평창동 집의 거실과 위층 방, 게스트룸을 모두 열어 보였다. 기은세 평창동 집 인테리어를 두고 가장 많이 나온 반응은 의외로 “주방이 너무 심플하다”였다. 감각 좋기로 소문난 사람의 주방치고 요즘 흔히 보는 디자인이라는 것이다. 본인의 답은 명쾌하다. 주방을 비운 건 거실 책장에 힘을 몰아주기 위해서였다는 것.
집은 단독주택이 아니다. 고급 빌라도 아닌 평범한 빌라의 1층이고, 이 집에만 전용 테라스가 딸려 있다. 산비탈에 앉은 건물이라 현관이 있는 층은 층고가 낮고, 계단을 내려가야 층고 높은 거실과 다이닝이 나온다. 처음엔 페인트를 새로 칠하고 바닥과 욕실 정도만 손볼 생각이었는데 설비에 예상보다 큰돈이 들어갔고, “한 번 공사하면 10년은 못 건드린다”는 생각으로 로망을 다 담았다고 한다. 어디에 힘을 주고 어디를 덜어냈는지, 그 선택을 따라가 보면 이 집이 사람을 어떻게 움직이는지가 보인다.

신발장을 없앤 현관, 벽을 비워야 계단이 보인다
문을 열기 전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현관 앞 어둡고 칙칙하던 자리에는 조경 일을 하는 지인이 이사 선물로 만들어 준 미니 중정이 있다. 가지 모양을 하나하나 골라 돌과 함께 세우고 잎을 글루건으로 일일이 붙인, 시들지 않는 정원이다. 그 옆 현관문은 월넛 무늬목으로 골랐다. 작은 중정과 함께 입구에 무게감을 주고 싶어 일부러 어두운 컬러를 택했다. 사진으로 받은 시안과 실물이 너무 달라 직접 업체에 가서 보고 고르라는 게 본인의 조언이다.
현관 바닥은 블랙과 베이지 대리석을 엇갈려 짠 체크 타일이다. 원래 있는 문양이 아니라 새로 짠 패턴이라 3D 시안으로 봐도 실제 돌 색을 가늠하기 어려웠고, 남은 대리석 조각을 주워 와 붙여 보기도 했다. 결국 블랙을 고른 이유는 현관에서 내려다보이는 계단 난간이 블랙 계열이어서다. 이전 집의 클래식한 파리풍 바닥과는 다른, 좀 더 젊은 인상을 노렸다.
가장 과감한 결정은 신발장을 없앤 것이다. 이전 집은 현관 벽 전체가 신발장이라 답답했다. 그래서 이번엔 벽을 비우고, 철판을 넣어 고정한 장식장 하나만 공중에 띄웠다. 다른 쪽 벽 뒤로는 전기 설비가 지나가 고장 나면 열어야 하기 때문에 통거울 대신 거울을 여러 장으로 쪼개 붙였다. 현관은 집의 첫 문장이다. 들어서자마자 벽 한 면이 수납장으로 막혀 있으면 사람은 무의식중에 공간이 좁다고 판단하고, 시선이 바로 앞에서 끊긴다. 벽을 비우니 시선이 블랙 난간을 타고 계단 아래 거실까지 미끄러져 내려간다.
물론 본인도 인정하듯 이건 식구 적은 집이라 가능한 선택이다. 가족이 많은 아파트라면 신발장을 없애기보다 키를 허리 높이까지 낮추고 하부를 바닥에서 띄워 간접 조명을 넣는 쪽이 현실적이다. 문짝을 거울로 마감하면 수납은 지키면서 이 집처럼 벽이 열리는 효과를 어느 정도 낼 수 있다.

좁은 복도는 바닥으로 논다, 원목은 물 닿지 않는 곳에만
현관을 지나면 위층 방으로 이어지는 짧은 복도가 나온다. 이 복도만 바닥이 다르다. 아래층과 같은 마루를 깔지 고민하다 폭이 좁은 곳이니 조금 귀여운 원목을 써 보자며 조각 원목 마루를 골랐다. 본인 말로는 아래층과 같은 바닥이 일자로 쭉 들어왔다면 재미없었을 것이다. 난간에는 봉을 덧달아 흔한 모양에서 한 번 비틀었고, 같은 디자인을 테라스 난간까지 이어서 제작했다. 안과 밖의 난간이 같은 언어로 말하니 집이 한 덩어리로 읽힌다.
흥미로운 건 원목을 왜 여기만 썼느냐다. 이 집엔 강아지가 산다. 원목은 물을 그대로 먹기 때문에 실수 한 번이면 끝이다. 그래서 거실이 있는 아래층은 전부 원목처럼 생겼지만 물을 흡수하지 않고 미끄럽지 않은 마루로 통일했다. 원목보다 컬러가 조금 진한 대신 입주 청소하던 사람들이 물을 하나도 안 먹는다며 신기해했을 만큼 관리가 쉽다. 원목을 고집했다면 100% 후회했을 거라고 한다.
바닥재는 예쁜 것보다 그 위에서 벌어지는 일로 고르는 게 맞다. 반려동물이 주로 머무는 곳, 물이 튀는 주방과 현관에는 내수성 마루나 타일을, 사람만 지나다니는 복도나 서재에는 원목을 쓰는 식으로 집 안에서 재료를 나눠 배치하면 아름다움과 관리 사이에서 둘 다 놓치지 않는다. 좁은 복도처럼 면적이 작은 곳은 비싼 원목을 시도해 보기에도 부담이 적다.

작은 드레스룸은 거울로 넓히고, 서랍 높이는 물건이 정한다
위층에서 공들여 인테리어를 한 방은 하나뿐이다. 나머지 방은 바닥만 바꿨다. 그 한 곳이 드레스룸이다. 안방과 마찬가지로 원목재로 가구를 맞췄고, 돈이 많이 들었지만 오래 쓸 생각이면 기성 가구를 사는 것보다 낫다고 판단했다. 벨트와 스카프 서랍은 칸 크기를 물건에 맞춰 짰고, 니트와 양말처럼 접어 두는 옷은 낮은 서랍장으로 뺐다. 창가 쪽은 쿠션을 깔아 걸터앉는 자리로 만들 계획인데 아직 커튼과 쿠션은 들이지 못했다.
이 방의 핵심은 거울이다. 장 문짝마다 거울을 달아 따로 전신 거울이 필요 없게 했고, 거울끼리 마주 보게 하니 실제로는 조그만 방이 끝없이 이어지는 것처럼 보인다. 바로 옆 신발과 가방을 두는 방도 같은 수법을 썼다. 창 양옆에는 팔을 접었다 펼 수 있는 패브릭 셰이드 벽등을 한 쌍 달았다. 거울 앞에서 옷을 대 볼 때 얼굴 양쪽으로 빛이 들어와 그림자가 덜 진다. 천장등 하나만 있는 옷방에서는 옷 색이 실제와 다르게 보이기 쉬운데, 이렇게 눈높이에 웜톤 광원을 두면 색이 덜 왜곡된다.
그 뒤로 이어지는 방은 행거만 세운 옷방이다. 행거를 미로처럼 겹겹이 세워 한 사람이 겨우 지나갈 통로만 남겼다. 천장에 고정하지 않고 걸린 옷의 무게로 바닥에서 버티는 행거라 많이 걸어도 휘지 않는다고 한다. 보여주는 드레스룸과 몰아넣는 옷방을 나눈 셈이다.
다만 거울을 이렇게 많이 쓸 땐 주의할 점이 있다. 거울은 공간을 넓혀 주는 대신 모든 물건을 두 배로 보이게 한다. 수납이 조금만 흐트러져도 어수선함까지 두 배가 된다. 국내 아파트의 작은 방을 드레스룸으로 바꾼다면 문짝 전부를 거울로 하기보다 창과 마주 보는 한 면에만 거울을 두는 편이 낫다. 빛이 반사돼 방이 밝아지고, 거울에 비치는 것이 옷이 아니라 창밖이 되니 방이 훨씬 차분해진다.

계단 색은 세 번 보고 고른다, 비어 있는 조명 자리가 남긴 숙제
현관층에서 거실로 내려가는 계단은 새로 만들었다. 원래 있던 밝은 원목 계단과 난간을 살릴 생각이었지만 너무 오래돼 쓰지 않는 게 좋겠다는 인테리어 팀의 의견을 따랐다. 안방처럼 고재 느낌으로 마감했고, 난간 기둥은 하나하나 디자인을 정해 깎았다. 기둥 머리는 보통보다 일부러 낮게 깎아 귀여운 인상을 줬다. 색은 세 번쯤 다시 봤다. 연하지 않아 공간을 눌러 주되 답답한 다크 톤까지는 가지 않는 브라운이다.
그런데 지금 이 계단은 어둡다. 계단 벽에 달 조명을 아직 고르지 못해 자리가 비어 있다. 게스트룸 욕실의 조명 자리도, 거실 한쪽 조명 자리도 마찬가지로 비어 있다. 반대로 다이닝 쪽 창 사이 벽등은 설계 단계부터 골라 넣었다. 이 집의 조명은 지금 반쯤 채워진 상태인 셈이다.
계단은 조명 순서에서 앞에 와야 하는 곳이다. 짙은 브라운 디딤판은 빛을 먹기 때문에 같은 밝기여도 더 어둡게 읽히고, 단의 경계가 흐려지면 발을 헛디디기 쉽다. 계단에는 디딤판 끝을 비추는 낮은 빛과 공간 전체를 밝히는 벽등, 두 겹이 필요하다. 눈에 띄는 장식 조명을 고르느라 시간이 걸린다면 그 사이 벽 하부에 2700K 안팎의 풋라이트를 매립하거나 디딤판 아래에 라인 조명을 숨겨 두는 방법이 있다. 장식 조명은 나중에 더해도 되지만 발밑 빛은 처음부터 있어야 한다.

작은 욕실은 샤워부스를 앞으로, 변기는 안쪽으로
계단 옆 게스트룸 욕실은 작다. 문도 일부러 넓히지 않고 작게 제작해 귀여운 비율을 살렸다. 벽 아래쪽은 고재로 둘렀고 안방 욕실과는 결이 다른, 재미있는 클래식을 목표로 했다. 세면대 뒤 물이 튀는 구간에만 대리석을 넣은 건 나무가 젖어 썩어 들어가는 걸 막기 위해서다. 변기와 세면대는 클래식한 디자인이 많은 Kohler 제품을 골랐는데, 세면대는 친구들이 돈을 모아 선물해 줬다고 한다.
거울은 직접 제작했다. 양쪽 날개를 접었다 펴는 삼면 거울이라 옆모습까지 확인할 수 있다. 진짜 영리한 건 배치다. 작은 화장실 해외 레퍼런스를 찾고 또 찾은 끝에 원래 입구 쪽에 있던 변기를 안쪽으로 밀어 넣고, 샤워부스를 문 쪽으로 끌어냈다. 문을 열었을 때 변기가 정면에 보이지 않으니 작은 욕실이 훨씬 정돈돼 보인다. 샤워부스 밖은 건식으로 쓰고, 샤워 후엔 부스 안의 수증기를 말리는 기능을 켜 물때가 끼지 않게 관리한다.
욕실 평면에서 문을 열자마자 무엇이 보이느냐는 생각보다 중요하다. 첫 시선에 변기가 걸리면 같은 면적이라도 공간이 옹색하게 느껴지고, 손님은 그 방에서 서둘러 나오게 된다. 국내 아파트 욕실은 대개 문을 열면 변기와 세면대가 나란히 보이는 구조라 위치를 통째로 옮기긴 어렵다. 그럴 땐 세면대를 문 정면에 두고 변기 쪽에 낮은 가벽이나 수납장을 세워 시선을 한 번 끊어 주는 것만으로도 효과가 난다.
아쉬운 건 역시 빛이다. 세면대 위 조명 자리가 비어 있어 지금은 천장 빛에만 기대고 있다. 고재 벽은 빛을 흡수하니, 거울 양옆에 작은 벽등 한 쌍을 달면 얼굴 그림자도 줄고 짙은 나무 결도 살아난다.

집의 인상은 창이 만든다, 통창 대신 여닫는 격자창
계단을 내려오면 거실과 다이닝이 하나로 이어진다. 본인이 “사랑하는 뷰”라고 부르는 곳이다. 다이닝 쪽 창은 원래 거실 창처럼 고정창으로 설계돼 있었다. 그런데 이 풍경이 너무 아깝다는 의견에 이곳만 열리는 창으로 바꿨다. 보통이라면 통창을 넣어 현대적인 집이 됐겠지만, 집의 인상을 만드는 건 창이라는 생각에 격자창을 골랐다. 격자 자체를 새시로 만든 문을 미국에서 제작해 올 수 있는지도 알아봤지만 너무 오래 걸리고 비싸 포기했고, 결국 격자창과 새시를 겹친 이중창으로 해결했다.
창을 열면 테라스와 산자락의 숲이 그대로 거실로 들어온다. 이 차이는 생활을 바꾼다. 고정된 통창은 풍경을 보여주지만 사람을 안에 머물게 하고, 열리는 창은 사람을 밖으로 불러낸다. 날이 선선해지면 테라스의 계절이 다시 온다는 본인의 말처럼, 이 창 덕분에 거실의 경계가 테라스 끝까지 넓어진다. 빛을 막은 공간이 사람을 안으로 움츠러들게 한다는 이야기는 〈낮에도 커튼을 닫는다? 빛이 없는 생활공간, 취향이 아닌 행태에 대한 영향력〉에서 짚었는데, 이 집은 그 반대편에 서 있다. 바깥으로 열린 창이 사람을 밖으로, 또 서로에게로 이끈다.
격자창은 아파트에서도 응용할 수 있다. 실제로 요즘 아파트 리모델링에서도 격자창을 많이 넣는다. 통창 앞에 격자 디자인의 내창을 하나 더 세우면 단열은 보강되고, 창 하나만 바꿔도 아파트가 유럽 주택 같은 인상을 얻는다. 창 사이 벽에 이 집처럼 셰이드 벽등을 한 쌍 달면 밤에도 창이 어두운 구멍이 아니라 하나의 장면으로 남는다.

한 곳에 힘을 주면 나머지는 덜어낸다, 책장과 주방의 시선 배분
이 집의 주인공은 거실 한쪽 벽을 채운 책장이다. 높은 층고 끝까지 책장을 올리는 건 오래된 로망이었다. 한국 집에서 이게 가능할까 싶었던 그림을 실현하느라 여기에 힘을 가장 많이 줬고, 책장 높은 칸까지는 레일을 따라 움직이는 사다리로 오른다. 가운데에는 원목 문을 품었다. 본인도 “우리 집의 포인트는 여기”라고 못 박는다.
주방이 심플해진 이유가 여기 있다. 주방에 서서 몸을 돌리면 시선 정면에 이 책장이 들어온다. 책과 오브제로 가득 찬 복잡한 시선이다. 만약 주방까지 예전처럼 클래식하게 꾸몄다면 그림이 겹쳐 집 전체가 소란스러웠을 것이다. 그래서 한쪽은 클래식하고 장식적으로, 다른 쪽은 우드 패널로 단순하고 현대적으로 나눴다. 사람의 눈은 한 번에 하나의 주인공만 감당한다. 모든 벽이 말을 걸면 집은 쉬는 곳이 아니라 끊임없이 무언가를 읽어야 하는 곳이 된다. 시선이 쉬어 갈 벽을 남겨 두는 것, 그게 이 집이 주방을 비운 이유다.
책장 구성도 솔직하다. 손이 잘 닿지 않는 맨 위 세 칸은 인테리어용 책으로 채웠고, 그 아래 다섯 칸은 본인이 갖고 있던 책과 외국에서 사 온 책, 장식품이다. 도자기가 예뻐서 놓아두듯 책도 예쁘면 놓아둘 수 있다는 게 본인의 생각이다. 책장 하부는 모두 닫힌 수납장으로 짜서 강아지 용품, 휴지와 물티슈, 촬영 장비까지 생활의 잡동사니를 숨겼다. 보여줄 것은 위로, 감출 것은 아래로 나눈 것이다.
아파트라면 층고가 2.3~2.4m 안팎이라 이만한 스케일은 어렵다. 대신 거실 한 면을 천장까지 붙박이 책장으로 짜고 하단 70~90cm를 문 달린 수납으로 막으면 같은 원리를 가져올 수 있다. 그때 반대편 벽, 특히 TV나 주방 쪽은 이 집처럼 장식을 덜어내야 책장이 주인공 자리를 지킨다.

둥근 소파에는 둥근 테이블, 가구는 서로를 보고 고른다
책장 맞은편, 계단 아래에는 둥근 화이트 소파가 놓였다. 빌라레코드의 체크 소파에서 디자인만 가져오고, 원단은 직접 가서 골라 씌워 제작했다. 거실 테이블은 삼성동 집에서 쓰던 것으로, 사실 이사를 염두에 두고 산 테이블인데 막상 둥근 소파가 들어오니 어울리지 않았다. 집과는 잘 맞는데 소파 곡선과 부딪힌 것이다. 그래서 원래 사이드 테이블로 쓰던 작은 원형 테이블을 가운데 두었더니 여럿이 옹기종기 모였을 때 딱 맞는 크기가 됐다.
가구는 단품으로 예쁜지가 아니라 옆 가구와 어떤 대화를 하는지로 골라야 한다. 곡선 소파 앞에 각진 큰 테이블을 두면 소파가 만든 둥근 원이 끊기고 사람들이 테이블 모서리를 피해 흩어져 앉는다. 작은 원형 테이블은 곡선을 이어 주고, 앉은 사람들의 무릎을 가운데로 모은다. 대화가 한가운데로 모이는 거실이 되는 셈이다. 소파 주변 콘센트는 매립형으로 제작해 벽에 선이 지저분하게 드러나지 않게 했다.
곡선 소파는 벽에 붙이기 어렵고 생각보다 면적을 많이 차지한다. 국내 아파트 거실이라면 반원형 대신 한쪽 끝만 둥글게 말린 소파나, 일자 소파에 원형 라운지 체어를 하나 더하는 방식으로 곡선의 부드러움을 가져오는 편이 현실적이다. 테이블은 소파 길이의 절반 정도 지름의 원형을 고르면 동선도 막지 않는다.

부모님 방은 밝은 무늬목으로, 침대 밑까지 수납이 된다
공개하지 않았던 마지막 방은 게스트룸이다. 주로 부모님이 머물 공간이라 한국적인 느낌이 섞이길 바랐고, 그래서 다이닝 식탁과는 다른 밝은 컬러의 무늬목을 헤드보드 벽에 썼다. 방이 작아 수납이 부족하니 원래 막으려던 침대 밑을 파서 양쪽으로 여닫는 서랍을 짜 넣었다. 침대 옆 작은 협탁에는 충전기와 리모컨을 둘 수 있게 했고, 콘센트는 한쪽만 그린으로 색을 달리해 장난스러운 포인트를 줬다.
게스트룸은 단순할수록 좋다. 침대 하나만 딱 놓인 방에 손님이 짐을 풀 서랍과 휴대폰을 올려둘 자리가 있으면, 남의 집에서도 금방 내 방처럼 편해진다. 침대 양옆에는 팔이 달린 벽등을 하나씩 달아 천장등을 끄고도 각자 책을 읽거나 잠들 수 있게 했다. 한 사람이 불을 끄면 다른 사람도 같이 어둠 속에 있어야 하는 방과 달리, 이런 방은 함께 자는 사람의 생활 리듬이 달라도 서로를 방해하지 않는다.
천장 아래는 몰딩을 한 줄 붙였다가 두 줄로 바꿨다. 몰딩이 있고 없고에 따라 방의 인상이 크게 달라지기 때문이다. 원래는 벽돌처럼 들어갔다 나오는 입체적인 몰딩을 원했지만 시중에 파는 제품이 없어 새로 만들어야 했고, 일을 크게 벌이지 말자며 접었다. 손님이 없을 때 영화 보는 방으로 쓰려고 벽에 스피커도 매립했다. 거실에 하고 싶었지만 마땅한 벽이 없어 이 방으로 왔다. 작은 방 하나에 손님방과 영화방 두 역할을 겹쳐 둔 것이다. 국내 아파트에서 남는 방 하나가 창고가 되기 쉬운 걸 생각하면, 침대 밑 서랍과 벽 매립 스피커로 방의 쓰임을 두 겹으로 만드는 이 방법은 따라 해 볼 만하다.

비싼 집보다 오래 머물 집, 빌라 1층 테라스가 주는 것
이 집에만 있는 건 결국 테라스다. 숲을 향해 열린 데크 위에 긴 테이블과 파라솔을 두었고, 다이닝의 격자창을 열면 실내와 바로 이어진다. 빌라 1층이라 지하 주차장도 없지만 본인은 그 불편을 감수할 만큼 만족한다고 말한다. 유럽 여행에서 좋은 호텔을 실컷 보고 돌아와 문을 여는 순간 “우리 집 진짜 부잣집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이 집이 보여주는 건 값비싼 마감재 목록이 아니라 우선순위다. 신발장을 포기하고 현관의 여백을 얻었고, 주방의 장식을 덜어내 책장에 시선을 몰았고, 원목은 강아지가 닿지 않는 복도에만 깔았다. 위층에서 공들여 바꾼 방은 드레스룸 하나뿐이다. 무엇을 먼저 할지 정한 집은 같은 예산으로도 훨씬 또렷한 인상을 남긴다. 공간의 우선순위를 다른 각도에서 본 〈사우나가 손님방보다 먼저다? 소유 자택이 말하는 공간의 우선순위〉와 나란히 읽으면 더 선명해진다.
구축 빌라를 고치는 건 새 아파트를 사는 것보다 불편하고, 설비처럼 보이지 않는 곳에 돈이 먼저 새어 나간다. 그럼에도 내가 오래 살 집이라면 남이 매긴 값보다 그 안에서 매일 느끼는 감정이 더 중요하다는 걸 이 집은 말한다. 매일 내려오는 계단과 매일 앉는 소파, 매일 여는 창이 마음에 들면 집은 실제 값보다 훨씬 비싸게 느껴진다. 공간이 사람의 자존감까지 바꾸는 순간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