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집인데 마을처럼 흩어졌다, House of Cluster

대만 중부 난터우(Nantou)의 야산 자락, 마을은 서쪽에서 동쪽으로 완만하게 솟아오르는 지형 위에 앉아 있다. YD Architects는 이 경사지 가장 높은 동쪽 자리에 한 가족을 위한 집을 지으면서, 집 한 채가 아니라 작은 마을 하나를 짓기로 했다. 매스를 하나로 뭉치는 대신 여러 개로 흩어 놓은 것이다.

언뜻 비효율적인 선택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계산이 깔려 있다. 볼륨을 나눈 자리마다 서로 다른 표정의 마당이 생기고, 그 마당들이 지형과 기존 식생, 주변 산세를 그대로 끌어안는다. 776제곱미터라는 넉넉한 대지 위에서 가족은 한 지붕 아래 모이는 대신 여러 채를 오가며 산다.

House of Cluster 진입로와 카포트, 목재 루버로 감싼 상부 볼륨
© Yu-Chen Chao

마을처럼 흩어 놓은 매스

대지 자체가 서쪽에서 동쪽으로 완만히 기울어 오르는 마을의 능선을 닮았다. 건축가는 이 경사를 무시하지 않고 그대로 따라가기로 했다.

대지가 만들어낸 블록 하나하나에 건물 볼륨을 따로 앉히자, 결과적으로 흩어진 집합체, 그러니까 작은 정착촌 같은 풍경이 완성됐다.

도로에서 진입하면 가장 먼저 만나는 것은 철골 구조 위에 목재 루버로 마감한 상부 볼륨이다. 1층은 필로티처럼 비워 차량이 드나들 공간으로 남겼고, 그 위로 얹힌 방들은 마치 공중에 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 구조 방식 덕분에 좁고 경사진 대지에서도 주차와 진입, 거주 공간을 한 켜씩 분리해 담을 수 있었다.

House of Cluster 지붕 덮인 연결 통로를 걷는 모습
© Yu-Chen Chao

처마 밑으로 이어지는 산책

여러 채로 나뉜 볼륨을 하나의 가족으로 묶어주는 장치는 지붕 낮은 통로다. 처마가 깊게 내려온 복도가 건물과 건물 사이를 잇고, 그 아래로 조경석과 이끼 낀 담장, 분재가 늘어선 좁은 길이 이어진다.

통로 하나를 걷는 동안에도 실내인지 실외인지 헷갈릴 정도로 안과 밖의 경계가 흐릿하다.

설계팀은 이 복도가 각 건물의 독립성과 전체의 연결성을 동시에 지키는 핵심 장치라고 설명한다.

손님이 오면 이 길을 따라 마당을 가로질러야 현관에 닿는데, 그 과정 자체가 이미 집을 소개하는 일종의 시퀀스가 된다.

House of Cluster 중정을 가로지르는 스틸 브리지와 두 볼륨
© Yu-Chen Chao

중정을 가로지르는 스틸 브리지

두 개의 별동을 잇는 다리는 순수하게 구조적인 해법이면서 동시에 이 집에서 가장 극적인 장면을 만든다. 노출된 철골보가 그대로 드러난 다리 위에서는 발아래로 자갈이 깔린 중정과 낮은 담장, 그 너머 마을 지붕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다리를 사이에 두고 마주 선 두 건물은 서로의 창을 바라보지 않도록 각도를 살짝 틀어 배치했다. 덕분에 프라이버시를 해치지 않으면서도 가족 구성원들은 매일 몇 번씩 이 다리 위에서 마주친다.

저녁 무렵 노을이 질 때면 철골 구조물의 그림자가 자갈 바닥 위로 길게 늘어지는데, 그 순간이 이 집에서 가장 사진 찍기 좋은 장면으로 꼽힌다.

House of Cluster 옥상 정원과 외부 계단, 뒤로 보이는 숲
© Yu-Chen Chao

지붕 위에 또 하나의 마당

경사지에 집을 얹다 보니 자연스럽게 지붕과 지붕 사이에 평평한 옥상 마당이 여럿 생겼다. 계단실 하나를 오르면 잔디가 깔린 옥상 정원이 나오고, 그 끝에는 조경석을 놓아둔 작은 정원이 다시 이어진다.

표준형 주택이라면 다락이나 창고로 버려졌을 법한 지붕 위 공간을 가족이 실제로 걸어 다니는 마당으로 되살린 셈이다.

난간 너머로는 산비탈의 짙은 녹음이 그대로 펼쳐져, 옥상에 서 있어도 숲 한가운데 들어와 있는 기분이 든다.

House of Cluster 다실에서 슬라이딩 도어 너머 중정을 내다보는 모습
© Yu-Chen Chao

혼자 있고 싶을 땐 다실로

가족이 다 함께 모이는 공용 공간과 별개로, 이 집에는 혼자만의 시간을 위한 작은 방들이 곳곳에 숨어 있다. 원목 마루가 깔린 다실이 그중 하나다.

방석 하나와 찻잔만 놓인 이 공간은 슬라이딩 도어를 열면 바로 중정과 이어지고, 문을 닫으면 완전히 독립된 방이 된다.

가족 구성원이 많은 집일수록 역설적으로 혼자 있을 자리가 부족해지기 마련인데, 이 집은 그 문제를 여러 채로 흩어진 배치 자체로 풀어냈다.

다실 창 너머로는 이웃한 볼륨의 목재 루버와 처마선이 겹쳐 보여, 좁은 실내에서도 답답함이 느껴지지 않는다.

House of Cluster 목재 루버 벽과 정원 산책로
© Yu-Chen Chao

정원이 현관보다 먼저 반긴다

대문을 열고 들어서도 바로 현관이 나오지 않는다. 대신 자연석을 드문드문 놓은 디딤돌 길과 다듬어진 관목, 오래 키운 소나무 분재가 방문객을 맞는다.

검은 철골 기둥이 규칙적으로 늘어선 회랑을 따라 걷다 보면 어느새 목재 루버로 마감한 벽면과 마주하게 되는데, 이 벽 안쪽이 바로 개인 침실 영역이다.

조경을 현관보다 앞세운 이 배치는 손님과 가족 모두에게 ‘도착’이라는 감각을 길게 늘여준다.

비 오는 날에도 처마가 깊어 우산 없이 정원을 가로지를 수 있다는 점도 실용적인 배려다.

House of Cluster 분재와 조경석이 놓인 중정
© Yu-Chen Chao

중정마다 표정이 다르다

이 집을 관통하는 설계 논리는 결국 중정이다. 건물 볼륨을 흩어 놓은 자리마다 크기와 성격이 다른 마당이 생겼고, 건축가는 그 마당 하나하나에 다른 식재 계획을 세웠다.

어떤 중정은 자갈과 분재로 정갈하게, 어떤 중정은 잔디를 넓게 깔아 개방적으로 꾸몄다.

여러 겹으로 중첩된 마당들은 바람과 빛이 집 안 구석구석까지 통하게 하는 실질적인 환기 장치이기도 하다.

방 하나를 나서면 반드시 마당 하나를 지나야 다음 공간에 닿는 구조라, 집 안에서 이동하는 동선 자체가 산책에 가깝다.

House of Cluster 연결 통로에서 내려다본 마을과 지붕들
© Yu-Chen Chao

통로에서 만나는 산과 마을

2층 높이로 떠 있는 연결 통로에 서면 낮은 담장 너머로 마을 지붕들과 그 뒤를 감싼 산세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대지가 마을에서 가장 높은 자리에 있다는 지리적 조건을 건축가는 놓치지 않았다. 사적인 통로 하나를 전망대처럼 활용한 셈이다.

저녁 무렵 이 통로를 걷는 가족의 모습이 노을과 겹쳐지는 순간은, 이 집이 그저 넓은 대지에 크게 지은 저택이 아니라 풍경과 대화하도록 설계된 집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House of Cluster 목재 루버 슬라이딩 도어가 있는 외부 통로
© Yu-Chen Chao

루버 뒤에 숨은 실용성

목재 루버로 감싼 벽면은 단순히 장식이 아니다. 건축가는 철골조 위에 여러 겹의 외벽과 지붕 마감재를 쌓아 단열 성능을 확보했고, 처마와 캐노피의 높낮이를 엇갈리게 배치해 대만 특유의 잦은 비와 강한 볕을 동시에 다스렸다.

슬라이딩으로 여닫는 루버 스크린은 볕이 강한 시간대에는 창을 가리는 차양 역할을, 저녁에는 사생활을 지키는 커튼 역할을 겸한다.

겉으로는 소박한 목재 마감이지만, 그 안에는 이 집이 놓인 기후 조건에 대한 세심한 계산이 깔려 있는 셈이다.

ArchitectsYD Architects
PhotosYu-Chen Chao
CategoryResidential
CountryTaiwan
MaterialsSteel, St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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