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위섬 끝에 몸을 낮춘 집, Cruit Island House

아일랜드 북서부 도네갈(Donegal) 앞바다, 화강암 바위가 삐죽삐죽 솟은 작은 섬 Cruit Island에는 한 가족이 예순 해 가까이 여름을 보내온 땅이 있다. 서쪽으로는 거친 대서양이, 동쪽으로는 잔잔한 만이 감싸는 자리다. 어느 방향으로 걸어도 몇 분 안에 바다에 닿는 이곳에, 원래 있던 1960년대식 여름 별장을 허물고 새 집을 지었다. 설계는 도네갈에 자리한 건축사무소 Pasparakis Friel이 맡았다.

4대에 걸쳐 이 땅을 드나든 가족의 기억과 앞으로의 바람이 설계의 출발점이 됐다. 그 결과로 나온 건 크고 화려한 집이 아니라, 바위 언덕 사이에 몸을 낮추고 앉은 182제곱미터짜리 단층집이다. 거친 회벽과 콘크리트 지붕, 그 위에 산뜻하게 얹은 그린 톤 창호가 이 집의 첫인상을 만든다.

화강암 절벽 위에 낮게 앉은 Cruit Island House 전경, 아일랜드 도네갈
© Peter Molloy

절벽 끝, 지붕 하나로 낮게 엎드리다

집은 섬 동쪽 끝, 화강암 절벽 위에 자리 잡았다. 절벽 아래로는 조용한 백사장이 펼쳐지고, 지평선 위로는 에리갈산(Errigal Mountain)과 19세기에 세운 신호탑이 보인다. 건축가는 부지의 굴곡을 거스르지 않는 낮은 외쪽지붕(mono-pitch roof) 하나로 집 전체를 감쌌다. 언덕 뒤에서 보면 지붕선이 주변 바위 능선과 거의 같은 높이로 흘러가, 집이라기보다 지형의 일부처럼 읽힌다.

해변에서 올려다본 Cruit Island House, 화강암 절벽과 지붕선
© Peter Molloy

4대가 여름을 보낸 땅, 다시 짓기로 하다

이 터는 한 가족이 예순 해 가까이 여름마다 찾아온 곳이다. 부모에서 자녀로, 다시 그 자녀로 이어진 기억이 쌓인 땅이었던 셈이다. 낡은 여름 별장을 그대로 고쳐 쓰는 대신 완전히 새로 짓기로 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앞으로 몇 세대가 더 이 자리에서 여름을 보낼지 가늠하며 설계를 시작했다고 하며, 해변에서 올려다보면 새 집은 창호에 두른 그린 프레임 말고는 크게 시선을 끌지 않을 만큼 배경에 스며든다.

만(bay)을 등지고 선 Cruit Island House 외관, 그린 창호와 화이트 렌더 마감
© Peter Molloy

동쪽 바다와 서쪽 대서양 사이

Cruit Island은 서쪽으로 거친 대서양과 마주하고 동쪽으로는 작은 섬들이 흩어진 잔잔한 만을 낀 특이한 지형이다. 집은 이 두 얼굴을 그대로 평면에 옮겨놓았다. 거실과 다이닝, 부엌을 아우르는 공용 공간은 동쪽 만을 향해 통유리창으로 열어젖혔고, 침실이 모인 쪽은 서쪽으로 두어 창을 줄이고 벽을 두껍게 세웠다. 대서양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정면으로 맞는 자리인 만큼, 서쪽 벽은 육중한 조적 매스로 마감해 바람막이 역할까지 겸하게 했다.

러프 렌더 외벽과 그린으로 마감한 출입문, 창호 디테일
© Peter Molloy

회벽과 그린, 손이 덜 가는 마감을 택하다

외벽은 매끈하게 마감하는 대신 거칠게 뿌린 러프 렌더(roughcast render)로 덮었다. 바람에 시달리고 비에 젖고 볕에 바래는 섬 환경에서, 벽을 계속 칠하고 손보는 건 애초에 부질없는 일이라고 공동설립자 Ronan Friel은 말한다. 관리가 거의 필요 없는 마감을 택한 건 실용적인 선택이었지만, 동시에 이 거친 표면 자체를 그대로 즐기자는 태도이기도 했다. 유일하게 색을 낸 곳은 창호와 문틀뿐인데, 주변 관목의 색을 닮은 그린으로 칠해 무채색 벽 위에서 은근하게 도드라진다.

바위 사이 진입로, 빗물체인과 콘크리트 벤치
© Peter Molloy

바위 사이로 낸 좁은 진입로

대지에 원래 있던 화강암 바위는 걷어내지 않고 건물의 일부로 끌어들였다. 진입로는 바위 덩어리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는 좁은 길로 냈고, 그 옆 바위 하나는 다듬어 그대로 벤치로 눌러앉혔다. 처마 끝에는 홈통 대신 쇠사슬을 늘어뜨린 빗물체인(rain chain)을 달아, 비 오는 날이면 물줄기가 사슬을 타고 바닥까지 흘러내리는 모습이 그대로 드러난다. 작은 디테일이지만, 이 집이 자연을 가리기보다 끌어안는 쪽을 택했다는 걸 보여주는 장면이다.

파티오로 열리는 그린 프레임 슬라이딩 도어와 바다 전망
© Peter Molloy

슬라이딩 도어 너머, 파티오와 바다

서쪽 침실 영역과 달리, 거실 쪽 벽은 그린 프레임 슬라이딩 도어로 활짝 열린다. 문을 밀어 젖히면 콘크리트로 마감한 파티오가 바로 이어지고, 그 너머로 만과 건너편 마을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파티오 바닥과 실내 바닥의 높이차를 최소화해, 날이 좋을 땐 실내외 경계가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바위를 깎아 만든 낮은 담이 파티오 한쪽을 둘러, 바람은 막아주면서도 시야는 그대로 열어둔다.

거실 통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만과 산, 빌트인 벤치
© Peter Molloy

통유리창 안, 낮은 벤치 하나

공용 공간 안쪽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천장까지 닿는 통유리창이다. 목재 프레임을 촘촘히 세운 창 너머로 만과 산맥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창 아래에는 자작합판으로 짠 낮은 빌트인 벤치를 올리브 그린 패브릭으로 마감해 붙박이로 앉혔다. 소파를 따로 들이지 않고 벤치 하나로 거실을 정리한 셈인데, 가구가 줄어든 만큼 창밖 풍경이 공간의 주인공이 된다.

자작합판으로 짠 아일랜드 부엌, 오븐과 오픈 선반
© Peter Molloy

자작합판으로 짠 부엌

부엌은 거실과 한 공간에서 자작합판(birch plywood)으로 짠 아일랜드 하나로 구획된다. 상부장 없이 벽면 수납장을 천장까지 올리고, 한쪽엔 오픈 선반을 남겨 자잘한 살림이 숨 쉴 틈을 뒀다. 오븐과 전자레인지 같은 가전은 짙은 색으로 골라 밝은 합판 톤과 대비를 주었고, 아일랜드 상판은 화이트 계열 스톤으로 마감해 나무의 온기를 잡아준다. 매입 조명 대신 백열구 모양 펜던트 하나만 낮게 늘어뜨려, 부엌 전체가 카페처럼 차분한 인상을 준다.

TV월과 수납장, 올리브 그린 빌트인 벤치
© Peter Molloy

수납벽 뒤로 숨은 살림

거실 한쪽 벽은 TV와 오디오, 잡동사니를 모두 삼키는 자작합판 수납벽으로 마무리했다. 문을 닫으면 벽 전체가 목재 패널처럼 보여, 살림살이가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진다. 벽 옆으로는 복도로 이어지는 통로를 내고, 그 끝에 다시 올리브 그린 벤치를 반복해 배치했다. 같은 가구와 마감을 집 안 곳곳에서 되풀이하는 방식으로, 넓지 않은 평면임에도 공간마다 따로 노는 느낌 없이 하나로 묶인다.

ArchitectsPasparakis Friel
PhotosPeter Molloy
CategoryResidential
CountryIreland
MaterialsConcre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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