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이 무덤이라 창을 다 없앴다, Pyramid Hut

오키나와의 어느 주택가, 아파트 사이로 회색 삼각뿔 하나가 불쑥 솟아 있다. 언뜻 보면 창고나 종교시설처럼 보이는 이 건물의 정체는 다름 아닌 살림집이다. 설계를 맡은 IGArchitects는 신혼부부를 위한 이 집에 Pyramid Hut이라는 이름을 붙였는데, 이름 그대로 지붕과 벽이 하나로 이어진 피라미드 형태를 하고 있다.

집을 이렇게 지은 데는 이유가 있다. 대지 삼면이 아파트와 공동묘지로 둘러싸여 있었고, 특히 옆으로 붙은 묘지는 나무와 풀이 대지 안쪽까지 넘어올 정도로 경계가 흐릿했다. 오키나와 특유의 개방적인 건축 어휘, 그러니까 큰 창을 내고 마당과 실내를 트는 방식이 이 자리에는 어울리지 않아 보였다. 건축가는 대신 바깥과는 거리를 두면서 안에서는 밝고 열린 공간을 만드는 쪽을 택했다.

주변 녹지와 아파트 건물에 둘러싸인 Pyramid Hut의 외관
© Ooki Jingu

묘지와 아파트 사이, 좁고 긴 땅

옆으로 길게 뻗은 대지는 뒤쪽으로 갈수록 완만하게 낮아지는 지형이다. 삼면을 아파트와 묘지가 둘러싸고 있어 마치 계곡 바닥에 들어앉은 듯한 인상을 준다. 인접한 공동묘지는 관리되지 않은 숲처럼 무성해서 담장 대신 식물이 경계를 대신하고 있었고, 그 탓에 대지 자체가 묘지의 일부처럼 보이기도 했다. 이런 조건에서 오키나와 주택에 흔한, 마당을 향해 활짝 열린 구성은 오히려 어색하게 느껴졌다고 건축가는 말한다. 결국 이 집은 주변과 시선을 나누는 대신, 스스로 밝고 개방적인 내부를 품는 방향으로 답을 찾았다.

두 아파트 건물 사이에 자리한 Pyramid Hut의 정면 입면
© Ooki Jingu

콘크리트 삼각형이 두 건물 사이를 채운다

앞에서 보면 이 집은 좌우로 늘어선 아파트 사이 틈을 정확히 메우는 쐐기처럼 보인다. 매끈하게 마감하지 않은 노출 콘크리트가 그대로 드러나 있어 갓 거푸집을 뜯어낸 듯한 거친 질감이 살아 있다. 창은 거의 없고, 정면 낮은 자리에 목재 여닫이문 하나가 유일한 개구부처럼 자리 잡았다. 주변 아파트가 흔한 화이트톤 마감인 것과 대비되면서, 이 집은 동네에서 가장 이질적이면서도 가장 눈에 띄는 존재가 됐다.

목재 여닫이문과 콘크리트 경사벽이 만나는 Pyramid Hut 입구
© Ooki Jingu

신여를 닮은 지붕

건축가가 이 형태를 설명할 때 즐겨 쓰는 단어는 신여, 그러니까 축제 때 사람들이 어깨에 메고 옮기는 이동식 신전이다. 완만하게 조성한 3단의 대지 위에, 계단식으로 쌓은 옹벽을 두 줄의 기초처럼 두르고 그 위에 각진 피라미드를 얹은 구성이다. 지붕과 벽의 경계가 없다 보니 어디까지가 지붕이고 어디부터가 벽인지 가늠하기 어렵다. 오히려 그 모호함이 이 집을 하나의 조형물처럼 보이게 만든다.

해질 무렵 내부 조명이 켜진 Pyramid Hut 외관
© Ooki Jingu

류큐 석회암 위에, 게다를 신은 것처럼

이 집이 딛고 선 땅 밑에는 단단한 류큐 석회암층이 있다. 건축가는 주변 흙이 다 깎여나가도 이 집만은 마치 게다(나막신)를 신고 선 것처럼 굳건히 남아 있을 거라고 표현한다. 폐쇄적인 피라미드 형태는 구조적으로도 안정적이고, 동시에 사생활을 지키는 데도 유리하다. 대지 조건에 대응하는 최소한의 지지점만 남기고 기초와 지붕면의 개구부를 제한한 덕분에, 형태의 안정감을 잃지 않으면서도 차분한 내부 공간이 완성됐다.

천창을 통해 들어온 빛이 콘크리트 벽에 줄무늬로 드리운 모습
© Ooki Jingu

닫힌 상자에 낸 단 하나의 틈

두꺼운 콘크리트 매스 한가운데를 가르듯 천창이 길게 뚫려 있다. 이 좁은 틈이 하루 종일 실내로 빛을 실어 나르는 유일한 통로다. 시간에 따라 빛이 벽을 타고 미끄러지듯 움직이며 콘크리트 표면에 줄무늬 그림자를 만들어내는데, 이 집에서 가장 극적인 순간은 창이 아니라 바로 이 빛과 그림자에서 나온다. 사방이 막힌 집이지만 답답하다는 인상은 들지 않는 것도 이 천창 덕분이다.

현관 계단에서 주방 쪽을 바라본 Pyramid Hut 내부
© Ooki Jingu

1층엔 화장실과 현관뿐

내부는 세 단으로 나뉜 단순한 구성을 하고 있다. 가장 낮은 레벨에는 화장실과 현관을 배치해 배관이 필요한 공간을 한곳에 몰아넣었다. 군더더기 없이 기능만 남긴 진입부를 지나야 비로소 다음 레벨의 생활공간이 눈에 들어온다. 좁은 계단 몇 칸을 오르내리는 동안 천장의 경사가 계속 시야에 걸리는데, 이 반복이 오히려 공간을 탐험하듯 걷게 만든다.

천창 아래 주방과 다이닝 공간이 이어지는 Pyramid Hut 내부
© Ooki Jingu

1m 낮췄을 뿐인데 완전히 다른 공간

1층에서 1m 정도 내려앉은 두 번째 레벨에는 거실과 다이닝, 그리고 작은 서재가 자리한다. 굳이 벽으로 나누지 않았는데도 층고 차이만으로 공간의 성격이 뚜렷하게 갈린다. 천창에서 떨어지는 빛이 이 레벨 한가운데를 관통하듯 지나가면서, 낮 동안에는 조명을 켜지 않아도 될 만큼 실내가 환하다. 콘크리트로 마감한 주방 상판과 짙은 색 목재 가구가 대비를 이루며 차가운 인상을 한 겹 눅여준다.

목재로 마감된 다락형 침실 공간
© Ooki Jingu

가장 안쪽, 가장 조용한 자리

가장 안쪽, 지붕이 가장 낮게 내려앉는 자리에는 침실을 비롯한 사적인 공간을 배치했다. 목재로 마감한 천장과 콘크리트 벽이 만나면서 다른 레벨보다 한층 아늑한 분위기를 만든다. 창이 거의 없는 만큼 이 방은 낮에도 밤처럼 차분하고, 그 고요함이야말로 애초에 건축가가 의도한 것이기도 하다. 생활의 중심이 되는 두 번째 레벨과 달리, 이곳은 하루를 마무리하는 공간으로 온전히 남아 있다.

서재로 쓰이는 다락 서가와 계단
© Ooki Jingu

오키나와의 오래된 무덤을 떠올리며

오키나와의 옛 무덤은 단순한 매장지가 아니라 제사와 모임이 열리는 공간이었고, 혹독한 기후를 견디도록 튼튼하게 지어져 세대를 거듭해 쓰였다. 건축가는 완공된 집을 보고서야 이 집이 그런 무덤들과 닮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말한다. 형태 자체는 오키나와의 기후와 바람, 주변 환경, 예산이라는 지극히 현실적인 조건에서 출발했지만, 결과물에는 조상들이 무덤에 담았던 영속성과 격식이 은근히 배어 있다. 기이해 보일 수 있는 이 피라미드 지붕 아래에는, 뜻밖에도 오키나와다운 품격이 자리 잡고 있는 셈이다.

ArchitectsIGArchitects
PhotosOoki Jingu
CategoryHouse
CountryJapan
MaterialsConcrete, Gla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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