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차로 한 시간, 숲과 계곡이 있는 남양주 산자락에 작은 은신처 같은 집 한 채가 들어섰다. 건축사무소 스노우아이디(Snow AIDe)가 설계한 ‘무언가 하우스’다. 이름부터 예사롭지 않은 이 집은, 말 그대로 ‘말이 필요 없는 집’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사계절이 뚜렷하게 갈리는 이곳에서, 이 집은 계절마다 다른 빛과 풍경을 그대로 받아들이도록 설계됐다. 형태부터 남다르다. 두 개의 원이 서로 겹쳐지며 만들어진 이 독특한 실루엣은, 가까이서 보면 볼수록 ‘대체 왜 이런 모양이 됐을까’ 하는 궁금증을 자아낸다.

서울에서 한 시간, 숲과 계곡 사이
무언가 하우스가 자리한 곳은 서울에서 불과 한 시간 거리, 그런데도 도시의 소음과는 완전히 단절된 숲속이다. 울창한 나무와 계곡이 어우러진 이 대지는 사계절 내내 빛과 풍경이 바뀌는 걸 온몸으로 느낄 수 있는 흔치 않은 조건을 갖췄다. 봄에는 초록이, 가을에는 단풍이, 겨울에는 눈이 집을 에워싼다. 가까운 듯 멀리 떨어진, 그야말로 도심 속 탈출구 같은 입지인 셈이다.

두 개의 원이 겹쳐 만든 형태
공중에서 내려다보면 이 집의 정체가 좀 더 선명하게 드러난다. 두 개의 원이 서로 겹쳐진 평면, 그리고 그 위로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곡선형 지붕. 반듯한 사각형 집에 익숙한 눈으로 보면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이 형태 덕분에 집 안 어디에 있든 빛과 풍경을 사방에서 끌어들일 수 있다. 원형이라는 구조 자체가 채광과 조망을 최대한으로 확보하기 위한 계산된 선택이었던 셈이다.

말이 필요 없는 집, ‘무언가’
‘무언가(無言家)’라는 이름은 펠릭스 멘델스존의 피아노곡 ‘무언가(Songs Without Words)’에서 따왔다. 설명이나 해설 없이도 음악이 스스로 마음을 움직이듯, 이 집도 굳이 이유를 설명하지 않아도 그 자체로 아름답게 느껴지길 바랐다는 게 건축가의 설명이다. 말보다는 공간이, 논리보다는 감각이 앞서는 집이라고 해야 할까. 실제로 이 집에 들어서면 정형화된 기능이나 동선을 애써 찾으려 하기보다, 그냥 몸으로 공간을 느끼게 된다.

10년에 걸쳐 완성된 명상의 집
이 프로젝트는 거의 10년 전, 건축주가 스노우아이디를 대지로 초대하면서 시작됐다. 당시만 해도 건축주가 원하는 바는 그리 뚜렷하지 않았다고 한다. 수많은 대화와 답사를 거듭하며 두 사람은 조금씩 함께 그림을 그려나갔고, 그렇게 완성된 게 명상과 사색을 위한 집이었다. 시간이 흐르고 계절이 바뀌는 걸 빛과 풍경의 변화로 체감할 수 있도록, 집은 주변 환경 속으로 자연스럽게 녹아들도록 설계됐다.

카바코프에게서 빌려온 원형 공간
이 이음매 없는 원형 공간의 아이디어는 일리야 & 에밀리아 카바코프의 설치작품 ‘프로젝트의 궁전(The Palace of Projects)’에서 영감을 얻었다. 원형을 택한 이유는 명확하다. 햇빛을 최대한 끌어들이면서도, 어느 방향으로든 막힘없는 시야를 확보할 수 있어서다. 겹쳐진 두 원의 중심에는 각각 다른 역할이 주어졌다. 하나는 하늘을 올려다볼 수 있도록 바깥에, 다른 하나는 햇빛이 명상 공간 안쪽까지 스며들도록 실내에 자리한다.

이글루와 몽골 게르, 그리고 중국 토루
건축가들은 이 집의 원형 구조를 구상하며 이글루, 몽골의 게르, 중국 푸젠성의 토루 같은 원초적인 형태의 거주 공간을 떠올렸다고 한다. 자연을 마주한 둥근 구조물이라는 공통점 때문이다. 두 원이 맞닿아 만들어진 공간은 끊기지 않고 물처럼 흐른다. 방문객은 이어졌다가 다시 나뉘는, 마치 액체 같은 공간을 경험하게 된다.

끊김 없이 흐르는 실내, 계단이 그리는 궤적
다양한 방향에서 스며드는 빛과 그림자가 공간을 한층 풍성하게 만든다. 나선형으로 감아 도는 계단은 그 자체로 이 집의 조각적인 풍경이 된다. 벽을 세워 방을 나누는 대신, 곡선의 흐름만으로 공간의 성격을 은근히 구분해낸 셈이다. 걷는 동안 시선이 자연스럽게 계단을 따라 올라가고, 그 끝에서 또 다른 빛을 만난다.

빛과 그림자가 채우는 곡선의 거실
각진 벽 없이 매끄럽게 흘러가는 거실은, 창을 통해 들어오는 자연광과 그 빛이 만드는 그림자만으로도 표정이 계속 바뀐다. 시간대에 따라, 계절에 따라 이 방은 전혀 다른 얼굴을 하고 있을 것이다. 가구 배치도 곡선의 흐름을 거스르지 않도록 자연스럽게 곡률을 따라간다.

창마다 다른 계절이 걸린다
다이닝 공간의 커다란 베이윈도우는 액자처럼 바깥 풍경을 통째로 담아낸다. 사계절 내내 이 창밖 풍경은 같은 자리에 있으면서도 매번 다른 그림을 보여준다. 식사를 하는 순간에도, 차 한 잔을 마시는 순간에도 창밖 풍경이 대화의 일부가 되는 셈이다.

설명이 필요 없는, 감각으로 남는 방
무언가 하우스는 처음부터 설명이나 기능을 앞세우지 않는 집으로 계획됐다. 굽이치는 공기의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자기 자신 깊숙한 곳까지 다다르게 된다는 게 건축가들의 설명이다. 홀로 자연 속에서 사색하고 명상하기 위한 공간이라고 해야 할까. 숲 한가운데 놓인 묵직한 바위처럼 자리한 이 원형 구조물은, 방향 감각마저 잠시 내려놓게 만든다. 시간과 계절에 따라 달라지는 빛과 그림자의 놀이만이 이 공간을 계속 채워나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