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개의 원이 지은 명상의 집, 무언가 하우스

서울에서 차로 한 시간, 숲과 계곡이 있는 남양주 산자락에 작은 은신처 같은 집 한 채가 들어섰다. 건축사무소 스노우아이디(Snow AIDe)가 설계한 ‘무언가 하우스’다. 이름부터 예사롭지 않은 이 집은, 말 그대로 ‘말이 필요 없는 집’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사계절이 뚜렷하게 갈리는 이곳에서, 이 집은 계절마다 다른 빛과 풍경을 그대로 받아들이도록 설계됐다. 형태부터 남다르다. 두 개의 원이 서로 겹쳐지며 만들어진 이 독특한 실루엣은, 가까이서 보면 볼수록 ‘대체 왜 이런 모양이 됐을까’ 하는 궁금증을 자아낸다.

무언가 하우스 숲 속 항공뷰
© Jaeyoun Kim

서울에서 한 시간, 숲과 계곡 사이

무언가 하우스가 자리한 곳은 서울에서 불과 한 시간 거리, 그런데도 도시의 소음과는 완전히 단절된 숲속이다. 울창한 나무와 계곡이 어우러진 이 대지는 사계절 내내 빛과 풍경이 바뀌는 걸 온몸으로 느낄 수 있는 흔치 않은 조건을 갖췄다. 봄에는 초록이, 가을에는 단풍이, 겨울에는 눈이 집을 에워싼다. 가까운 듯 멀리 떨어진, 그야말로 도심 속 탈출구 같은 입지인 셈이다.

무언가 하우스 눈 덮인 대지 항공뷰
© Jaeyoun Kim

두 개의 원이 겹쳐 만든 형태

공중에서 내려다보면 이 집의 정체가 좀 더 선명하게 드러난다. 두 개의 원이 서로 겹쳐진 평면, 그리고 그 위로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곡선형 지붕. 반듯한 사각형 집에 익숙한 눈으로 보면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이 형태 덕분에 집 안 어디에 있든 빛과 풍경을 사방에서 끌어들일 수 있다. 원형이라는 구조 자체가 채광과 조망을 최대한으로 확보하기 위한 계산된 선택이었던 셈이다.

무언가 하우스 벽돌 외벽과 그림자
© Jaeyoun Kim

말이 필요 없는 집, ‘무언가’

‘무언가(無言家)’라는 이름은 펠릭스 멘델스존의 피아노곡 ‘무언가(Songs Without Words)’에서 따왔다. 설명이나 해설 없이도 음악이 스스로 마음을 움직이듯, 이 집도 굳이 이유를 설명하지 않아도 그 자체로 아름답게 느껴지길 바랐다는 게 건축가의 설명이다. 말보다는 공간이, 논리보다는 감각이 앞서는 집이라고 해야 할까. 실제로 이 집에 들어서면 정형화된 기능이나 동선을 애써 찾으려 하기보다, 그냥 몸으로 공간을 느끼게 된다.

무언가 하우스 바위와 함께 보이는 외관
© Jaeyoun Kim

10년에 걸쳐 완성된 명상의 집

이 프로젝트는 거의 10년 전, 건축주가 스노우아이디를 대지로 초대하면서 시작됐다. 당시만 해도 건축주가 원하는 바는 그리 뚜렷하지 않았다고 한다. 수많은 대화와 답사를 거듭하며 두 사람은 조금씩 함께 그림을 그려나갔고, 그렇게 완성된 게 명상과 사색을 위한 집이었다. 시간이 흐르고 계절이 바뀌는 걸 빛과 풍경의 변화로 체감할 수 있도록, 집은 주변 환경 속으로 자연스럽게 녹아들도록 설계됐다.

무언가 하우스 원형 천창으로 들어오는 빛
© Jaeyoun Kim

카바코프에게서 빌려온 원형 공간

이 이음매 없는 원형 공간의 아이디어는 일리야 & 에밀리아 카바코프의 설치작품 ‘프로젝트의 궁전(The Palace of Projects)’에서 영감을 얻었다. 원형을 택한 이유는 명확하다. 햇빛을 최대한 끌어들이면서도, 어느 방향으로든 막힘없는 시야를 확보할 수 있어서다. 겹쳐진 두 원의 중심에는 각각 다른 역할이 주어졌다. 하나는 하늘을 올려다볼 수 있도록 바깥에, 다른 하나는 햇빛이 명상 공간 안쪽까지 스며들도록 실내에 자리한다.

무언가 하우스 곡면 외벽 디테일
© Jaeyoun Kim

이글루와 몽골 게르, 그리고 중국 토루

건축가들은 이 집의 원형 구조를 구상하며 이글루, 몽골의 게르, 중국 푸젠성의 토루 같은 원초적인 형태의 거주 공간을 떠올렸다고 한다. 자연을 마주한 둥근 구조물이라는 공통점 때문이다. 두 원이 맞닿아 만들어진 공간은 끊기지 않고 물처럼 흐른다. 방문객은 이어졌다가 다시 나뉘는, 마치 액체 같은 공간을 경험하게 된다.

무언가 하우스 나선형 계단이 있는 거실
© Jaeyoun Kim

끊김 없이 흐르는 실내, 계단이 그리는 궤적

다양한 방향에서 스며드는 빛과 그림자가 공간을 한층 풍성하게 만든다. 나선형으로 감아 도는 계단은 그 자체로 이 집의 조각적인 풍경이 된다. 벽을 세워 방을 나누는 대신, 곡선의 흐름만으로 공간의 성격을 은근히 구분해낸 셈이다. 걷는 동안 시선이 자연스럽게 계단을 따라 올라가고, 그 끝에서 또 다른 빛을 만난다.

무언가 하우스 곡선형 거실 창
© Jaeyoun Kim

빛과 그림자가 채우는 곡선의 거실

각진 벽 없이 매끄럽게 흘러가는 거실은, 창을 통해 들어오는 자연광과 그 빛이 만드는 그림자만으로도 표정이 계속 바뀐다. 시간대에 따라, 계절에 따라 이 방은 전혀 다른 얼굴을 하고 있을 것이다. 가구 배치도 곡선의 흐름을 거스르지 않도록 자연스럽게 곡률을 따라간다.

무언가 하우스 다이닝 베이윈도우
© Jaeyoun Kim

창마다 다른 계절이 걸린다

다이닝 공간의 커다란 베이윈도우는 액자처럼 바깥 풍경을 통째로 담아낸다. 사계절 내내 이 창밖 풍경은 같은 자리에 있으면서도 매번 다른 그림을 보여준다. 식사를 하는 순간에도, 차 한 잔을 마시는 순간에도 창밖 풍경이 대화의 일부가 되는 셈이다.

무언가 하우스 침실 창
© Jaeyoun Kim

설명이 필요 없는, 감각으로 남는 방

무언가 하우스는 처음부터 설명이나 기능을 앞세우지 않는 집으로 계획됐다. 굽이치는 공기의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자기 자신 깊숙한 곳까지 다다르게 된다는 게 건축가들의 설명이다. 홀로 자연 속에서 사색하고 명상하기 위한 공간이라고 해야 할까. 숲 한가운데 놓인 묵직한 바위처럼 자리한 이 원형 구조물은, 방향 감각마저 잠시 내려놓게 만든다. 시간과 계절에 따라 달라지는 빛과 그림자의 놀이만이 이 공간을 계속 채워나간다.

Architects스노우아이디(Snow AIDe)
PhotosJaeyoun Kim
CategoryHouse
Country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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